우리나라가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도입한 뒤로 모든 정권에서 때만 되면 나왔던 말이 '3불(不) 시대' '3불 정권'이라는 비난이다. 기여입학·본고사·고교등급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국민이 불신(不信)·불만(不滿)·불안(不安) 3가지를 느낀다는 얘기다. 이 말이 다시 나왔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는 지난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을 여러 가지 시각에서 분석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하게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이 "국민은 지금 '3불'을 느끼고 있으며 그 결과가 이번 선거에 드러난 것"이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국민은 일자리를 못 구하고, 노후(老後) 대책도 서지 않고, 내 집 마련도 희망이 없고, 경기는 좋아졌다는데 나한테 들어오는 돈은 없고, 자녀 교육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기회가 오지 않는 자신들의 처지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권이 별 성과를 못 보여주면서 '불만'이 커졌고, 앞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주지 못하고 있다(불신)"고 말했다. 한마디로 '3불 정권'으로 취급당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92년 한완상 서울대 교수는 노태우 당시 정부에 대해 "정부의 정책 효과에 대한 불만, 집권 세력의 정당성에 대한 불신, 그런 가운데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망국적 징조"라고 했다. 2000년에는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 등이 김대중 정부를 향해 "정치는 불신당하고 경제는 불안하며 사회도 불안한 3불 정권"이라고 했다. 2004년에는 역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는 국민에게 불안과 불신, 불만을 주고 지지자에게는 배신감만 갖게 하는 3불 1배(背)정권"이라고 이름 붙여준 적이 있다.
이 정권 들어서는 작년 초 박병석 민주당 당시 정책위 의장이 "국민은 현재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다. 특히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관한 불신이 깊다"고 '3불'을 지적했다. 모든 정부가 '3불 정권'이란 말을 듣고 국민 대다수는 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이념적 지역적 기반이 약했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여유 있게 이길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중산층이 "쓸데없는 이념 갈등에 빠지지 않고 우리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표를 몰아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동아시아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중산층의 67.1%는 "이 정권이 상위층 이익만 대변하고 있다"고, 60%는 "법 집행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수 권력자가 정부와 정치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중산층도 81.2%나 된다. 정무수석실은 "이런 상황에선 30~40대와 중산층이 떠나게 되며 어떤 선거도 이길 수 없다"고 보고한 것이다.
이번에 나온 '3불'을 보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권력집단 내부에서 스스로 "우리가 지금 불신·불만·불안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방송인 주철환씨는 "젊고 즐겁게 살려면 '3불'을 버리고 '3사'를 해야 한다"는 생활철학을 오래전부터 전파해왔다. 3사는 감사·찬사·봉사다. 청와대와 내각에 새로 배치될 사람들도,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감사하고 정치적 반대자들도 칭찬하며 국민에게 늘 봉사하는 자세로 일한다면 이 정부의 3불 상태를 풀 수 있지 않을까.
권대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