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북풍(北風)을 앞세우며 지난 정권에 대한 심판론을 주장하던 현 정권을 유권자인 국민이 ‘표’로 심판한 것이다. 매서운 민심을 피부로 접한 정몽준 대표 등 한나라당의 지도부는 3일 오전 곧바로 총사퇴를 결정했다.
이런 가운데 선거 기간 내내 여당의 우세를 점치면서 결과적으로 ‘못 믿을’ 여론조사를 내보낸 것으로 확인된 방송·언론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미디어 선거 시대 공정과 객관을 우선 가치에 놓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도왔어야 할 방송·언론이 이른바 ‘여론조사 정치’로 표심을 왜곡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방송·언론 여론조사, 선거 기간 내내 ‘표심’ 왜곡 논란
지방선거 기간 내내 이른바 ‘여당지’로 분류되는 조선·중앙·동아일보뿐 아니라 유례없는 공동 예측조사를 진행한 KBS·MBC·SBS 지상파 방송 3사의 여론조사 결과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일찍부터 표심을 가를 정책 이슈로 꼽혀왔던 △무상급식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 등에 대한 보도는 외면하면서,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정부·여당 측 입장을 ‘합리적 의심’ 없이 전달하고 선거 막판까지 광역단체장 판세와 관련한 여론조사 보도만을 쏟아낸 탓이다.
▲ 5월 17일 SBS <8뉴스> ⓒSBS
특히 사상 최초로 공동 여론조사를 실시한 지상파 방송 3사의 여론조사 관련 보도는 선거 막판까지 논란이었다. 지상파 방송 3사는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 결과를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공동 조사의 취지를 밝혔지만, 유권자들이 선거의 성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나 적극 투표층 등에 대한 면밀한 고려가 없는 결과는 되레 유권자인 시청자들에게 ‘판세’를 단정하게끔 해 표심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 3사는 지방선거 기간 동안 모두 3차례 조사를 실시했고, 선거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여론조사 발표 기간(선거 6일전까지) 동안 2개의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첫 번째 보도는 지난 5월 17일 있었는데, 이는 같은 달 14~16일 사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로 서울에선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16%p 앞섰다. 인천과 경기도에서도 각각 안상수 한나라당 후보가 송영길 민주당 후보를 10.2%p, 김문수 한나라당 후보가 유시민 민주당 후보를 9%p 앞섰다.
두 번째 여론조사는 지난 5월 24~26일 사이 진행해 같은 달 27일 보도됐는데, 여기서도 오세훈-한명숙 후보의 격차는 17.8%p였으며, 안상수-송영길 후보와 김문수-유시민 후보의 격차도 각각 11.3%p, 12.1%p였다.
문제는 여야 후보들의 이 같은 격차를 단정적으로 보도할 때 여론조사에 앞서는 후보들에 표가 몰리는 ‘밴드왜건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5월 24~25일 진행한 유권자의식 조사에서 ‘적극 투표층’이 59.5%에 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지상파 방송 3사가 선거기간 동안의 여론조사가 빗나간 데 대해 높은 투표율을 이유로 들고 있는 것에 대한 타당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5월 내내 각종 방송·언론이 전문기관에 의뢰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6·2 지방선거를 의미를 ‘정권 심판론에 두고 있다’는 응답은 42~65%에 달했다(5월 4~6일 SBS·한국리서치 49.9%, 5월 8~9일 <내일신문>·한길리서치 42.9%, 5월 24~26일 SBS·<중앙일보>·동아시아연구원 65% 등)는 점도 고려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다수 조사들이 평일 낮 유선전화를 통해 이뤄져 낮은 응답률을 보인 것도 감안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용휴 폴앤폴 대표가 지방선거 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당의 압승을 예상한 여론조사들에 대해 ‘이변’을 예측했던 것도 일련의 문제들을 고려한 결과다.
현재진행형인 방송 장악 논란 속 공동조사…정치적 의도 ‘의혹’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는 정권의 방송 장악 논란 속 지상파 방송 3사가 ‘이례적으로’ 합동 조사를 실시한 것을 놓고 민주당 등 야당은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왔다.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측 이해찬 선대위원장이 지난 5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정보의 90% 이상을 제공하는 방송사들이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해서 하나의 결과만 알려주는 것은 유권자들이 오판할 수 있게 하는 큰 과오를 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도 3일 지방선거 승리가 확정된 직후 진행한 브리핑에서 “(결과를 떠나) 수차례에 걸쳐 진행됐고, 수많은 언론이 보도했던 정치 여론조사의 정확성 문제를 다시 한 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언론의 무분별한 정치 여론조사 보도가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했다. 향후 각 언론에선 여론조사 보도의 기준과 원칙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