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GDP 서프라이즈’의 그늘

  • 2009-10-27
  • 박태견 (내일신문)

3분기 GDP가 ‘서프라이즈’라는 평가를 시장에서 받고 있다. 시장 예상치 2% 중반보다 높은 2.9%(전기대비)를 기록했으니 그런 얘기를 들어도 당연하다. 당연히 시장은 주가 상승으로 화답했고, 시중금리도 급등했다. 정부가 더이상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을 막을 명분이 부족해졌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도 싱글벙글이다. 윤증현 재정부장관은 “올해 플러스 성장도 가능하다”고 호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3분기의 높은 성장률로, 4분기에 0.5% 성장만 해도 플러스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높은 3분기 성장률은 모두에게 안도감과 반가움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착시현상’을 경고하기도 한다. 한 예로 3분기에 민간소비가 1.4% 성장을 했으나, 이는 현대차의 신차 개발 효과와 주식-아파트 등 자산거품 확산에 따른 상류층 소비 증대의 산물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환율효과가 소진되면서 수출은 전기대비 5.1% 증가에 그쳤으나 수입은 8.4% 늘어나면서 무역흑자 규모가 빠르게 줄고 있는 점도 간과해선 안될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상류층만 샴페인 터트려


그러나 여러 지적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소비가 상류층에서만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일 게다. 실제로 3분기만 해도 백화점 매출은 급증한 반면, 대형마트 매출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소득 가운데 먹고사는 데 쓰는 정도를 나타낸 지니계수도 사상최악을 기록했다. 한마디로 상류층은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는 반면, 중산·서민층은 지갑을 닫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같은 빈부 양극화, 소비 양극화 심화가 경제가 핑크빛을 띠면 띨수록 사회·정치적 불안 증폭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서민들의 ‘절대적 빈곤’과 중산층의 ‘상대적 빈곤’이 심화될 개연성이 높다는 의미다. 벌써 그런 징후가 곳곳에서 읽히고 있다.


한 예로 동아시아연구원(EAI)과 한국리서치가 지난 24일 실시한 정기 월례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대통령 지지율은 전월 조사(9월 26일)의 44.5%보다 2.7%포인트 하락한 41.8%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 지지율 상승세가 벽에 부딪쳤다는 건 새삼스런 뉴스가 못된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중도·진보층에선 이 대통령 지지율 낙폭이 큰 반면, 보수층에선 도리어 상승세를 탔다는 대목이다. 중도층의 경우 이 대통령 지지율은 전월의 47%에서 이달에는 39.3%로 7.7%포인트나 떨어졌고, 진보층에서도 전달의 31.5%에서 이달에는 23.7%로 7.8%포인트 하락했다. 반면에 보수층에서는 전달에 51.4%였던 지지율이 56.1%로 높아졌다.


이를 단순히 한국사회의 ‘이념적 대립’이 심화된다고 보면 단견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근원을 보면 맨 밑바닥에 있는 게 바로 경제적 양극화 심화다.


청와대도 이런 구조적 위기 심화가 초래할 정치-사회적 불안을 직감하고 있는 듯 싶다. 이명박 대통령이 계속 “지금은 아랫목만 따뜻하나 조금만 더 지나면 윗목도 따뜻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 반증이다. 문제는 그러나 이런 얘기를 한 것은 이 대통령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아랫목 윗목’론의 원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최근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환란 직후에도 있었다. IMF가 강요한 살인적 고금리로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실업이 대거발생하면서 경제 전체가 붕괴할 위기에 직면하자, IMF는 뒤늦게 고금리를 저금리 정책으로 바꾸었다.


그러자 돈은 1차로 증시로 몰려갔고, 주가가 정점에 도달하자 2차로 부동산시장으로 몰려가면서 자산거품을 양산해 현찰을 쥐고 있던 상층부로 부가 집중됐다. 그러자 사회적으로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이때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국민에게 시간을 달라며 호소한 말이 바로 ‘아랫목 윗목’론이었다.

빈부양극화, 소비양극화 심화


양극화는 한번 진행되기는 쉬워도 이를 해소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강제적 수단은 상류층에 세금을 더 매기는 것이나 이는 힘있는 상층부의 엄청난 조세저항과 반정부 저항을 낳게 마련이다. 결국 쉽게 만들어진 게 즉흥적 ‘카드거품’이었으나, 이는 애당초 오래 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카드거품은 결국 참여정부로의 정권교체 후 정권과 서민들에게 더 큰 고통으로 도래했다.


26일 만난 외국계 시중은행 고위책임자에게 물었다. 경제가 좀 풀리는 것 같냐고. 그는 답했다. “아직 판단 유보다. 쏠림현상이 심하다. 양극화 심화가 극심해 한쪽의 샴페인 잔치 갖고 전체를 평가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전문가들이 보기에 아직 한국경제는 사선에 서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경제회복은 사상누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