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DJ ‘병상정치’ 리모트컨트롤 파워 막전막후

  • 2009-08-15
  • 일요시사 (스포츠서울닷컴)

 

김대중 전 대통령 병상서도 정치적 영향력 재확인

정치 영향력 MB, 박근혜 이어 3위…신뢰도는 2위

 

‘노병은 죽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상에 누워서도 만만치 않은 정치 내공을 발휘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운을 띄운 ‘민주대연합론’은 민주진영 단결의 중심축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또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은 그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파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와 생각을 같이하고 있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북한과의 대화가 막혀 있는 현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의 ‘병상정치’를 따라갔다.

 

병상에 누웠어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오히려 더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동아시아연구원(EAI),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제2차 파워 정치인 신뢰도 영향력 조사’에서 DJ는 신뢰도 2위, 영향력 3위를 기록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등과 같은 현역 정치인이 아님에도 영향력 순위에서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신뢰도는 박 전 대표에 이어 2위에 올라 지난 2007년 1차 조사 때보다 2계단 상승했다. 아직까지 DJ의 정치력이 생생히 살아 있으며 신뢰도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민주진영 울려 퍼지는

DJ ‘민주대연합’ 목소리

 

민주진영에서 DJ는 구심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느낌”이라며 절절한 감정을 표출하면서 MB정부를 비판, 민주당과 친노 진영 등이 뭉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DJ의 최측근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DJ의 입원 이유에 대해 “5월초 중국 방문,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열심히 준비해 피로가 쌓인 데다 치아가 잘못돼 식사를 잘 못하셨다”며 “그런 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큰 실망을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유신, 5공시대로의 회귀, 서민경제의 몰락, 남북문제의 붕괴에 대해 큰 걱정을 하셨다”고 전했다.

 

DJ가 강조한 ‘민주세력의 대연합’에 대한 무게감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정세균 대표가 서있다. 정 대표는 취임 1주년을 맞아 “MB정부의 일방독주를 막아야 한다”며 민주개혁진영의 연대와 통합을 강조했다. 이른바 ‘반MB 민주세력 대통합론’이다.

 

정 대표는 이를 위해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이라며 “제2 창당에 버금가는 통합과 혁신을 추진하겠다. 세력통합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고 문호를 개방하는 노력을 하겠다. 민주대연합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0일 원외투쟁’에서도 “김 전 대통령은 고비 고비마다 가르침을 줬다”면서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고 나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서민경제가 무너지고 남북관계가 파탄 났다. 그때 ‘민주당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세력 대연합 통해 한나라당의 실정을 비판하고 한나라당의 잘못된 국정운영을 제대로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고 했다”고 거듭 ‘대연합’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당내에서는 ‘대연합’을 위해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김두관 전 장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영입, 친노 진영을 끌어안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친노 인사들은 복당에 거리를 두고 있지만 당 지도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엄기영 문화방송 사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유종일 전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등 각계 인사들을 영입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친노 진영도 ‘연합’에 대해서는 일부 동의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10년간 (분열했다가) 쫄딱 망했다”면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대연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한명숙 전 총리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민주당에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친노 신당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사전적 의미에서 민주세력이 대연합을 해야 한다는 말은 맞다”면서도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대통합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정치권 관계자들은 “친노 신당이 외따로 간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며 “홀로 남은 민주진영 ‘큰 어른’의 발언력을 염두에 둬도 그렇지만 친노 신당 추진은 ‘정치하지 마라’ ‘아무도 원망마라’던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오히려 훼손한다는 역풍에 휩싸일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대북문제에 대한 DJ의 영향력을 재확인시켰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는 그의 조언이 컸기 때문이다.

 

박지원 의원에 따르면 DJ는 지난 5월18일 ‘C40 서울세계도시 기후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방북을 적극 권유했다. DJ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처럼 당신이 적극 나설 때”라고 했고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에 돌아가자마자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국무장관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했다는 것.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DJ의 햇볕정책에 대해 “운전석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앉으십시오”라고 말할 정도로 공감했던 인물이다.

 

대북문제 영향력 생생

클린턴으로 북한 움직였다

 

김 전 대통령 측 최경환 비서관도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 “지난 5월18일 방한한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양자간에 북핵문제 해결 방안을 놓고 심도 깊은 이야기가 오갔다”며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번 방북에 김 전 대통령의 조언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김 전 대통령의 조언이 받아들여져서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직접 북한을 찾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DJ가 대북문제에 대한 의견이 일치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후에도 미국의 공식적인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더 이상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아야 관계개선이 가능하다”고 못 박았고 국무부도 “북한이 핵협상에 복귀할지 더 지켜봐야만 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여기자 석방과 북핵 협상이 별개임을 강조하면서 “(미국과) 북한과의 향후 관계는 그들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에 대해 공감하고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계기로 북-미 관계가 기존의 ‘제재’ 국면에서 ‘대화’ 국면으로 바뀔 가능성을 짚는 시선도 늘고 있다. 넉달 넘게 억류됐던 2명의 여기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등 물밑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보는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북한의 대화는 MB정부의 대북정책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개성공단에 억류된 유씨와 북한에 의해 나포된 연안호 문제에 정부의 역할을 재촉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6자 회담이든 북미간 대화든 대화로 연결돼서 북한 핵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면서 정부에 “개성공단에 억류된 유씨는 어떻게 됐는가. 북한에 의해 나포된 연안호는 어떻게 됐는가.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라고 물었다.

 

MB정부 대북정책

‘햇볕정책’으로 압박

 

그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일차적 책무인데 정부는 남북문제에서 대화도 완전히 끊고 북한과 협상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무능하게 구경꾼으로 전락한 상황은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또한 “작년부터 대북정책기조를 바꿀 것을 요구했다. 이명박 정권은 대북정책기조를 바꾸고 6·15, 10·4선언을 존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특사 파견 등 특단의 대책을 통해서 남북문제를 정상화하고 대화를 재개하는 노력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도 “현 정부 들어 지난 10년간 쌓아놓은 신뢰를 모두 붕괴시켜버렸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통미봉남을 스스로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가 인사들은 “DJ는 정치시계가 멈춰버린 대표적인 인물”이라며 “정치시계가 자정을 지났음에도 민주당의 거목으로서 그의 역할론은 계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