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무게 중심이 친이(親李, 친 이명박)에서 친박(親朴, 친 박근혜)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물론 중앙당은 여전히 박희태 대표를 비롯해 안상수 원내대표와 장광근 사무총장 등 친이 핵심세력이 버티고 있지만, 점차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태다.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한을 가진 시도당위원장직에 친박계가 대거 약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내에서는 사실상 지방권력의 교체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전국 16개 시도당 가운데 위원장 선출이 마무리된 13곳 중 6곳은 이경재 의원 등 친박계와 권영세 의원 등 사실상의 범 친박계가 차지했다.
거의 절반 가까운 수치다.
물론 친이 위원장도 6명이 선출됐다.
완전한 중립성향의 위원장은 1명이 선출됐다.
외형상으로는 친박계와 친이계가 6대 6으로 무승부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역을 보면 그렇지 않다.
우선 친이계의 아성으로 분류되던 서울에서마저 친이 핵심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전여옥 의원이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중도성향의 권영세 의원에서 무너졌다.
이번 시당위원장 경선을 계기로 권 의원은 범 친박계로 분류되고 있다.
또 서울 인근 수도권 지역인 인천도 지난 24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서구·강화을 출신 4선 의원인 이경재 의원을 만장일치로 신임 시당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이 의원은 확실한 친박계다.
뿐만 아니라 부산(유기준 의원), 대구(서상기 의원), 경북(김태환 의원), 경남(이주영 의원) 등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남권에서도 친박계가 싹쓸이 했다.
반면 친이계는 경기도당(원유철)을 제외, 충북도당(송태영), 충남도당(이훈규), 강원도당(허천), 제주도당(부상일), 울산시당(김기현)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역에서 승리했을 뿐이다.
물론 아직 경선이 끝나지 않은 광주시당, 전남도당, 전북도당의 경우, 모두 친이계가 싹쓸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단순히 수치로만 보자면 친이 위원장들의 수가 더 많다.
그럼에도 친박이 승리했다고 보는 이유는 수도권과 영남권이라는 ‘노른자위’를 친박이 대부분 점령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친박의 대약진(大躍進)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같은 친박의 대약진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반 MB’ 정서가 팽배해 있는 지금, 이에 따른 민심이반으로 내년 지방선거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오차범위 내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언론법이 강행 처리된 직후 시점인 지난 25일 치러진 'EAI 한국리서치 7월 정기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지율은 26.9%와 21.8%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불과 5.1% 차이로, 오차 범위(±3.5% 포인트)다.
같은 날 한겨레신문의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율(28.1%)이 한나라당(23.9%)에 비해 다소 앞섰다.
양 당의 격차는 4.1%포인트로, 역시 오차범위(±3.1%포인트)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조금씩 빠지는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조금씩 오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다분히 ‘반 MB’ 정서에 따른 반사이익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한나라당 지지율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한나라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한나라당은 이대로 지방선거를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방법이 있다.
이른바 ‘박풍(朴風)’이 제대로 불어주기만 한다면, 사정은 180도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면 박풍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박 전 대표의 지원유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박 전 대표가 항상 말하는 것처럼 친박 위원장들이 ‘올바른 공천’을 하는 것이다.
즉 계파의 이익을 쫓지 않고, 공정하고도 투명한 공천을 진행하는 것으로 ‘박풍’을 일으키면 해 볼만 한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차제에 친박 시도당위원장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공정한 공천, 투명한 공천, 언론이 주목하는 공천, ‘박풍’을 기대하는 공천을 위해 공천위원장이나 위원들 가운데 일부를 외부인사로 하는 방안을 검토해 주기 바란다.
또 그동안 오직 이명박 대통령의 시선만 의식했던 시도당이었다면, 이제는 부디 국민의 눈을 두려워하는 시도당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다시 말하지만 친박 시도당 위원장들마저 예전의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박풍’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