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비해 검찰과 청와대는 영향력이 높아진 반면 LG와 국세청의 영향력은 낮아졌다. 신뢰도에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주요 대기업은 올해도 영향력과 신뢰도 양쪽 모두에서 1~3위를 차지했다. 이는 중앙일보-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이숙종)이 공동 실시한 ‘2009 파워조직 25곳 영향력-신뢰도 평가’ 조사 결과다.
삼성·현대차·SK 등 주요 대기업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영향력과 신뢰도 둘 다 최상위로 평가됐다. 영향력에선 삼성이 7.00점으로 1위, 현대차가 2위(6.91점), SK가 3위(6.70점)였다. 검찰과 헌법재판소· 청와대 등의 영향력이 부쩍 커지면서 LG는 7위(6.21점)로 밀려났다. 신뢰도에선 주요 대기업이 1~4위를 차지했다. 현대차(6.58점), SK(6.41점), 삼성(6.09점), LG(5.84점) 순이다.
검찰과 청와대 등 전통적 권력기관은 지난해에 비해 영향력이 높아진 반면 신뢰도는 하락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수사 과정에서 영향력을 보여준 검찰은 지난해 6위(6.19점)에서 올해 4위(6.68점)로 뛰어올랐다. 청와대는 지난해 9위(5.96점)에서 올해 6위(6.22점)로 영향력 순위가 높아졌다. 그러나 신뢰도는 검찰 12위(4.48점), 청와대 17위(4.19점)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주요 정당의 신뢰도는 바닥권으로 추락했다. 한나라당의 경우 영향력은 5.35점으로 중위권이지만 신뢰도는 3.62점으로 25개 조직 중 최하위로 떨어졌다. 민주당 역시 일시적으로 지지율 상승을 경험하긴 했지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엔 미치지 못했다. 25개 조직 중 영향력은 21위(4.25점), 신뢰도는 24위(3.65점)였다.
전화로 실시한 이번 조사의 표본은 성·연령·지역별 인구비례에 따른 할당추출법으로 선정했다. 최대 허용 표집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9~4.0%포인트다(응답률 평균 11.7%). 조사 대상 조직을 세 묶음으로 나눠 6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간 1845명(619명, 615명, 611명)을 조사했다. 따라서 조사 결과 해석 시 조사 대상을 묶는 방식과 시차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비표집오차를 감안해야 한다.
힘은 더 세지는데 믿음은 갈수록 약해져
강원택(숭실대) · 이현우(서강대) 교수
우리 사회 파워조직의 영향력과 신뢰도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 2005년의 경우 전체 25개 기관의 영향력에 비해 신뢰도 평균이 0.55점 낮았지만 올해 조사에선 그 차이가 0.8점으로 벌어졌다. 특히 영향력은 2007년을 기점으로 높아지고 있는 데 비해 신뢰도는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힘은 세지고 있는 반면 믿음은 약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영향력과 신뢰도 사이의 격차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곳이 검찰이다. 검찰의 영향력은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올해의 경우 전체 조직의 영향력이 지난해 대비 0.05점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검찰은 0.49점이나 높아졌다. 반면 신뢰도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올해 조사에선 영향력과 신뢰도 간 점수 차이가 2.2점으로 조사 대상 중 가장 큰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PD수첩 제작진 e-메일 공개 논란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청와대의 영향력 역시 급증했다. 노무현 정권 후반기인 2006~2007년과 비교해 영향력 수치가 1.3점가량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신뢰도는 다소 하락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년간의 청와대에 대한 신뢰도는 2005년의 4.34점을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영향력과 신뢰도 모두 밑바닥이다. 전체 조직의 영향력 평균이 5.2~5.6점인 데 비해 각 정당은 4점대 초반이다. 신뢰도의 경우 25개 기관 평균이 4.6~5.1점인 데 비해 정당은 3점대 후반에 불과하다.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극도의 불신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당의 대의 기능 취약성과 함께 ‘거리의 정치’가 생겨나는 원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당 신뢰도가 집권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즉 여당이 되면 신뢰도가 하락하고 야당이 되면 신뢰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과거 집권당이던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인 2008~2009년 신뢰도가 높아졌다. 반면 한나라당은 야당이던 2007년까지 높은 신뢰도를 유지하다가 지난해부터 낮아지고 있다. 각 정당의 신뢰도가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와 긴밀히 연계돼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