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정동칼럼] 국민들은 더 답답하다

  • 2008-06-19
  • 강원택 (경향신문)

참 답답할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 말이다. 촛불집회는 40여일째 계속되고 있고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까지 떨어졌지만 미국과의 ‘추가협상’에서 속 시원한 해결책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화물연대 등 노동계는 파업에 돌입했고, 국제유가와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경제는 어려워졌지만 해 보려던 대운하는 말도 꺼내기 힘들게 되었다. 청와대 비서진과 장관은 처음부터 손가락질을 받았고, 한나라당 내 측근 인사들은 권력투쟁으로 비쳐질 다툼만 하고 있다.

 

해답 못찾아 답답한 李대통령

그러나 답답하기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힘과 힘의 충돌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위기는 대통령의 권위와 힘을 약화시키려는 ‘불순한’ 세력의 작동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금 더 직접적 표현으로는 10년 만에 되찾은 보수 정권을 뒤흔들려는 좌파의 선동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촛불집회에 배후세력이 있다거나 ‘양초를 누가 사주었는지 알아보라’거나 ‘사탄의 무리’라는 발언도 나왔을 것이다.

 

딱한 점은 그 배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대항세력은 야당이 되어야 한다. 각종 선거에서 권력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패배하고 나서는 집권 세력의 실정과 문제점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야당이기 때문이다. 집권 세력의 인기 하락은 그만큼 야당의 차기 권력 복귀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위기에도 배후가 있다면 야당이 되어야 마땅할 일이다. 야당이라면 이명박 정부의 어려움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촛불집회에서 야당은 없다. 그들의 존재감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심지어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지만 야당이 그로 인한 반사적 혜택을 누리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야당의 지지율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배후는 어디에 있을까. 과거 냉전적 상황이었다면 북한의 대남 공작 때문이라고 했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아마 그럴 듯한 조직도와 함께 촛불집회의 배후로 북한에서 파견한 간첩과 그에 포섭된 ‘무시무시한’ 비밀조직단의 실체가 드러났을 것이다. 아니 여전히 그런 심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촛불집회에서 만나게 되는 중·고생이나 주부, 어린 아들ㆍ딸 손잡고 나온 가족들을 모두 ‘빨갱이’라고 밀어붙이기는 어려운 노릇일 것이다. 그럼 인터넷이 배후? 그런 인식도 나타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신뢰 없는 인터넷은 독(毒)이라고 했다.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인터넷 사용을 규제하고 포털을 처벌하겠다면서 인터넷 사이트 대표를 잡아넣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소통의 도구일 뿐이다. 마치 전화 통화로 유언비어가 퍼져나간다고 해서 휴대전화 사용을 억제하고, 휴대전화 회사를 처벌하고, 그 회사 대표를 구속시키려는 것과 똑같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일 뿐이다.

 

엉뚱한 화풀이론 촛불 안꺼져

결국 아무리 찾아봐도 배후는 없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안갯속에서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혼자서 허우적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적, 아니 실체도 없는 적과 혼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이를 극복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진정되지 않는 것이다. 진짜 배후에 있는 국민들은 답답하다.

 

강원택 숭실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