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라이스와 게이츠의 이중주

  • 2008-03-20
  • 하영선 (조선일보)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으려면 중요한 것이 인터넷 보기다. 매일 아침을 미국의 백악관·국무부·국방부, 중국의 외교부, 일본의 외무성 사이트 보기로 시작한다. 신문에서 읽기 어려운 주인공들의 모든 발언 내용을 실시간으로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의 사이트에는 콘돌리자 라이스(Rice)와 로버트 게이츠(Gates) 장관의 모스크바 공동 기자회견 내용 전문(全文)이 새 소식으로 올라 와 있다. 러시아와 "전략적 틀"에 합의를 본 후 즐거운 표정들이다.
 
최근 라이스와 게이츠는 환상의 듀엣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지난해 11월 캔자스대학의 초청 강연에서 많은 언론·방송들의 주목을 끄는 발언을 했다. 장관 스스로도 "사람이 개를 문" 연설이었다고 흥미 있는 자평을 하고 있다. 강연의 핵심 내용은 21세기 미국을 위해서는 "하드 파워"의 상징인 국방부보다 "소프트 파워"의 상징인 국무부의 예산과 인력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연 5000억달러 예산에 비해서 연 400억달러가 채 안 되는 국무부 예산은 세계 질서 주도국으로서 너무나 초라하다. 세계 외교를 주도하고 있는 7000명 미만의 국무부 직원 수는 항공모함 한 척의 운영요원 수에 불과하다. 전쟁보다 외교 싸움이 더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21세기에 세계 질서를 주도적으로 짜나가는 데 있어 현재 미 국무부의 예산과 인력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는 얘기다. 게이츠는 캔자스 강연 이후 중요한 연설마다 국방장관으로서 국무부 대변인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국제정치학의 고전적 주제인 관료이기주의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피아니스트가 어린 시절 꿈이었던 라이스 국무장관은 지난 2월 조지타운 대학에서 변환외교 3주년 기념 강연을 우아하게 진행했다. 게이츠의 연주에 화답하듯 라이스는 21세기 변환외교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인력 증원과 예산 증액이라는 양적 변화와 네트워크·정보지식 외교라는 질적 변화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무부는 완전히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향후 10년 내에 외교 인력을 배(倍)로 증원하되 현재 및 미래의 외교 관료들을 모두 21세기형 변환외교관으로 재교육 및 충원한다. 둘째 국가 외교·안보 업무를 국방부와 긴밀한 협력하에 주도적으로 통합한다. 셋째 전통적 국가외교를 넘어서서 세계 질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짜나가는 외교를 추진한다. 넷째 최고정보담당자(CIO)의 역할을 강화하고 최고지식담당자(CKO) 기능을 신설하여 21세기 정보지식시대에 맞는 통합 지식 관리를 해야 한다. 다섯째 전 세계의 기업, 비정부 기구, 연구소의 힘과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여섯째 국무부 조직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쇄신해야 한다.
 
두 장관의 이중주는 대선이 채 일 년도 안 남은 시기에 연주되는 단순한 간주곡은 아니다. 변환의 21세기에 걸맞은 세계 외교 질서 변화의 서곡이다. 9·11 테러와 이라크전의 역사적 체험을 겪으면서 미국은 새로운 외교·안보 전략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선 것이다. 주목할 것은 지난 중간선거 이후 미국의 주요한 외교·안보전략 연구 보고서들이 모두 국가 지식을 최대한 동원하려는 초당(超黨)보고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러운 일이다. 따라서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 누가 이기든 미국 외교·안보전략은 초당적인 합의하에 21세기적인 모습으로 추진될 것이다. 동시에 세계 외교·안보 질서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자주냐 동맹이냐, 친통일이냐 반통일이냐 하는 시대 착오적 논쟁을 벗어나서 21세기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연구 보고서라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 우리 외교통상부, 통일부, 국방부도 통합적으로 새로 태어나고 운영돼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대통령의 지휘하에 외교·국방·통일부장관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의 아름다운 사중주 앙상블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