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세계로 그물을 던져라

  • 2007-12-27
  • 하영선 (조선일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대통령 당선자는 창조적 인수위를 주문했다. 창조적 발상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외교·안보·통일분과위다. 경영인 출신인 당선자가 가장 생소한 무대일 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함께 어울려야 할 상대가 지구 차원의 창조력을 기반으로 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 과정의 선거공약과 토론, 그리고 당선 기자회견 내용에는 각론은 있으나 아직 총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외교·안보·통일분과위의 첫걸음은 총론 마련이다. 한미동맹 강화, 적극적 아시아외교,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새로운 남북협력, 그리고 ‘글로벌 코리아’를 하나로 꿸 수 있는 외교·안보·통일철학이 필요하다. 기업거래 차원의 실용외교로만은 부족하다. 21세기는 복합변환(complex transformation)이라는 준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변환의 세계를 제대로 읽고 한국의 위상을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바람직한 한반도 삶터 마련을 위한 생각과 행동의 원칙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주목해야 할 것은 그물망 외교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관계를 그물망으로 읽어 내려는 노력은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아직 그물망외교에 관한 창조적 발상은 상대적으로 초보적이다. 이 외교의 특징은 우선 그물망이 다중심의 크고 작은 그물코로 짜여 있으며, 다음으로 그물코들이 입체적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물망외교의 발상은 북한의 자주외교나 주변 4강의 제국외교에 비해서 훨씬 현실적이면서도 우리 외교의 운신 폭을 넓혀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분과위의 다음 걸음은 총론과 각론의 유기적 관계 설정이다. ‘글로벌 코리아’의 커다란 그물망을 제대로 짜려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동아시아, 그리고 지구의 다양한 그물코들을 서로 제대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동맹의 강화는 당선자가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그러나 참여정부 동안 잃어버렸던 신뢰성만 회복하면 저절로 동맹의 강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21세기 신동맹의 방향을 찾으려면 미국의 군사변환과 변환외교의 역사적 의미를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 기반 위에 한국은 늦었지만 당당하고 복합적이며 동시에 실천적인 21세기 한미신동맹구상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라는 그물코에 버금가게 중요한 것이 중국이다. 중국은 주변 4강 중 가장 조심스럽게 새 정부의 4강 실용외교 정책을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모처럼 마련한 친중(親中) 분위기가 회복되는 친미(親美) 또는 용미(用美) 분위기 속에서 약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담감이다. 새 정부의 신외교는 이런 구시대적 이분법 외교의 불안감을 과감하게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의 21세기 삶터 마련에 미국과 중국은 더 이상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튼튼하게 엮어야 할 두 그물코다.

한일관계의 21세기적 개선은 이미 새 정부의 예상되는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21세기 미·일 신동맹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반도의 단기·중기·장기 생존번영전략의 포석으로서 한일관계는 조정되어야 한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도 상향조정을 기다리고 있다. 새 정부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시급한 일은 참여정부가 협력적 자주라는 구시대적 발상으로 꾸려 온 동아시아 및 지구외교를 그물망외교의 새 틀에서 전면 개편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10년의 햇볕정책의 공과를 철저히 검토한 후 보다 합리적인 포용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분과위의 마지막 목표는 비전과 실천의 구체적 결합방안을 찾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추진위원회나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시대위원회는 시대를 선도하는 비전을마련하지 못했고 실천을 위한 관련 행정부처와의 효율적 연계에도 실패했다. 분과위는 새 정부가 ‘글로벌 코리아’의 비전 정립과 실무 부처의 비전 이행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도록 인적 제도적 장치를 새롭게 구상해야 한다. 새 대통령이 이렇게 마련된 그물망을 세계로 던질 수 있을 때 ‘글로벌 코리아’는 동아시아의 작은 거인으로서 주변 4강과 함께 화려하게 21세기 세계무대를 누빌 수 있을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