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한국의 도움 필요 … 통미봉남 결국 실패할 것”
금융위기와 이라크 전쟁 실패로 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틈을 타 2009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외교력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격동의 세계 질서 재편 상황을 어떻게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까. 새해를 맞아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안보 전문가들이 미국과 동아시아, 북핵 문제, 북·미와 한·미 관계를 전망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전재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미국 ‘북핵’ 한없이 끌지 않을 듯
한국, 통미통남통북의 전략 필요
2009년은 통미봉남의 한 해로 기억될 것인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화해의 악수를 나눌 때, 한국은 소외된 채 무기력하게 방관만 하게 될 것인가.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간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와의 담판을 통해 북핵 협상과 향후의 북·미관계에서 더 많은 양보를 끌어내고자 한다. 체제와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확실한 담보를 요구하고, 경제 발전과 체제 강화에 필요한 대가를 얻어내고자 한다. 이미 금강산과 개성공단에서 한국을 몰아낸 지금, 통미전략을 통해 봉남을 추구하고, 더 나아가 남남갈등을 더욱 부추기려 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외교를 추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자회담과 북·미 양자회담을 병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은 소위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북한의 핵을 완전히 포기시킬 수 있을 것인가? 북핵은 북한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사활적인 물적 담보다. 북한의 미래에 대한 총체적인 합의가 있기 전에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포기하는 척하는 가운데 더 오래 협상하고,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력을 지켜보는 미국 내 핵 전문가들과 야당이 된 공화당은, 성과 없이 계속되는 북핵 협상을 지켜보고만 있지도 않을 것이다. 민주당 역시 북한의 핵 포기만 기다리며 대북 보상만을 한없이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대미 협상이 지지부진할 경우 또 다른 긴장을 조성하여 원하는 바를 달성하려고 할 것이다. 문제는 협상을 둘러싼 북·미 간의 밀고 당기기나 보상의 수준이 아니다. 1차 북핵 위기 이후 지난 16년간 확인된 구조적 대립이 상황의 본질이다. 선군의 북한을 정상국가화할 총체적 계획을 제시하지 않으면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와의 통미전략이 성공하지 못하고, 북한은 미국과 한국 모두로부터 소외되는 봉미봉남의 위기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북·미 양자회담이 진행되어 북핵 폐기를 논하는 과정에서 봉남은 물론 주변국을 소외시킨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엄청난 대북 지원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장기 지원은 불가피할 것이며, 미국은 한국에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할 것이다. 제네바 합의는 한국형 경수로 때문에 추진될 수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 역시 통미봉남의 논의를 무조건 부정하는데 그치지 말고, 올 한 해 벌어질 모든 가능성에 대한 장기적 대비책을 마련해 놓아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핵과 북한의 미래에 대한 총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안과, 북·미를 설득하고 이끌 수 있는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해 놓고 있어야 할 것이다. 봉미봉남의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통미통남통북의 대북 전략이 필요하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오바마, 북한에 마냥 끌려가지 않아 … 한국 역할 더 중요해질 것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소위 이념의 엇박자에 주목하는 시각이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진보-보수정권이 엇갈리며 갈등을 겪었던 경험을 들어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 사이의 갈등을 점친다. 노무현 ‘진보’정권과 조지 W 부시 ‘보수’정권 사이에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 조정 등을 둘러싸고 빚어졌던 갈등이 이명박 ‘보수’정권과 오바마 ‘진보’정권 사이에 역전된 형태로 재현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시각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노-부시 정권 사이의 갈등은 이념의 갈등이라기보다 노선의 갈등이었다. 바로 ‘자주’와 ‘일방주의’가 만난 결과였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오바마 행정부가 지향하는 다자주의적 균형 외교는 바로 그에 대한 반성을 반영한다. 그리고 현실적 필요와 미래의 비전 또한 반영하고 있다.
오늘의 세계는 복합의 세계다. 국민국가를 비롯해 국제기구, 다국적 기업, 지방정부, 시민단체들도 국제무대의 주역이 됐다. 그 무대도 정치·경제·군사를 넘어 문화·환경·지식 등으로 확장되었다. 이들이 여러 무대에서 동시에 활동하면서 종으로 횡으로, 아래로 위로 엮인 복합적인 네트워크를 이루었다.
이러한 세계에서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복합 네트워크 공간 속에서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는 요소들 간에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물리적 힘만이 능사가 아니다. 교조적 이념은 시대착오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오바마 행정부의 균형외교와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외교는 바로 이와 같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세계 금융위기의 해소와 미국 지도력의 회복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금융위기 해소를 통한 지도력 회복이 되겠다. 그러나 현재의 약화된 경제력으로는 해결 방안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결국 소프트파워, 그중에서도 국제제도가 가장 큰 자원이다. 기존의 다자, 양자 제도들을 적극 활용하고 확대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한·미 FTA와 한·미동맹도 이 틀 속에서 접근할 것이 자명하다. FTA 비준을 거부하여 세계 무역자유화에 역행하고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미동맹 조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늘리되 연합작전체계는 강화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포괄적·적극적 접근을 통해 비확산레짐의 강화를 추구하겠지만 마냥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6자회담, 특히 한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는 글로벌 코리아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외교노선과 수렴한다. 한국으로선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외교적 위상을 높이고 남북관계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북 문제로 남남갈등 극심
당파성 버리고 현실 직시를공허하거나 단지 형식에 얽매이는 합의가 남북 간에 반복되어왔지만, 시선을 우리 안으로 돌려보면 합의의 결핍은 더욱 두드러진다. 북핵의 진의에서부터 개성공단의 잠재력에 이르기까지 보수와 진보는 충돌과 반목을 거듭해 왔다. 합의에 기반한 대북정책 추진은 이상일 뿐 북한 문제를 둘러싼 심각한 자기 분열이 우리의 실질적 자화상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만들어진 합의’가 해체된 이후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끝을 모르는 ‘자기 분열의 증식’이었다. 햇볕정책이 우리의 대북정책을 청와대 안의 밀실로부터 시청 앞 광장으로 끌어낸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광장으로 나온 대북정책은 보수와 진보의 갈등에 의해 쪼개져 있다. 민주화 초기에 정경 연계를 강조하던 보수는 이제 북한 민주화와 인권으로 확장되면서 도덕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른 한편 정경 분리에서 출발했던 진보는 점차 북한의 역사적 특수성과 내재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또 다른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보수의 도덕과 진보의 규범이 대치하면서 남남갈등은 ‘우리 안의 잠재된 분열’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대북정책이 ‘우리 안의 분열’을 일으켜 세우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대북정책은 북한에 대한 정책이기에 앞서 ‘북한을 대하는 우리는 누구인가’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민주화 20년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궁극적 정체성에 대한 민주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한국 사회 정체성의 핵심 중 핵심이므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북한에 심는 것이 대북정책의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라는 입장이 고수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보다는 계획과 개입이 경제의 중심이고, 주권재민을 초월할 수도 있는 나름의 전통과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이념적 대립이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보수-진보 정치세력의 갈등 속에서 이러한 대립은 오히려 증폭되고 정치 갈등의 포로가 되어 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새로운 정체성에 합의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나 정치세력들의 각성이 필요하지만, 우선 급한 과제는 두 가지다. 첫째, 대북정책은 당파성의 주술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민주화 이후 대외정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책 영역은 오늘날 당파성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혀 있다. 당파적 시각과 세력에 봉사하면서 눈앞의 이익과 안온함을 챙기는 세속주의가 당파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둘째, 대북정책은 당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규범은 오직 현실을 비추어 볼 때에만 등대의 역할을 할 뿐이다. 보수든 진보든 규범의 눈 대신에 현실의 눈으로 북한을 바라볼 때 우리 안의 대화는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