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민변 기사’ 왜곡 보도 했습니까?
-파워기관신뢰영향력조사 2008 인용기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우리 사회 민주화와 인권 수호의 상징처럼 인식돼 왔다. 1988년 창립 이후 소속 변호사들은 시국사건 변론을 도맡았다. 권위주의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법정에 서서 양심수를 방어했다. 민변은 지난 5월 28일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성인식을 치른 셈이다.
그런 민변이 1일 오후 ‘민변에 대한 조·중·동의 악의적인 왜곡보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본지에 대해서는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모씨의 재판 기사를 문제 삼았다.
민변 소속 이광철 변호사가 윤씨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 기사 내용이다. <본지 7월 1일자 10면>
민변 입장에서는 이 보도가 불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속 변호사 한 사람의 잘못으로 마치 폭력 옹호 집단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한다면 “이 변호사의 발언이 말실수였다”고 해명할 줄 알았다.
그런데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 내용은 예상과 달랐다. 민변 백승헌 회장은 “이 변호사가 쇠파이프 얘기를 할 이유가 없으며 보도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기자가 있지도 않은 걸 지어내 왜곡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기사 내용은 법정에서 들은 걸 그대로 쓴 것이었다. 법원 녹취록만 확인해 봐도 사실 관계를 쉽게 알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 변호사는 기자회견 직후 일부 기자들에게 “솔직히 그런 발언을 한 것도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권위 있는 법률가 단체가 이 변호사의 말만 믿고 사실 보도를 비난한 셈이다.
기자회견 내용이 보도되면서 기자는 ‘작문을 한 것이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는 등의 항의 메일을 수십 통 받았다.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는 민변과 이 변호사의 주장만을 담은 기사를 게재했다. 본지가 이 변호사의 주장이 허위라고 알려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사실이 아닌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비우호적인 보도라고 ‘왜곡보도’로 밀어붙인다면 정치 공세와 다를 바가 없다. 민변은 쇠파이프 발언이 사태의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폭력 시위와 강경 진압으로 수많은 사람이 다친 상황에서 법률가가 법정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민변은 정치 단체가 아닌 법률가 단체다. 어느 한쪽의 정치적 입장을 취할 수 있지만 적어도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얘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민변은 앞으로도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