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크라우치 - 하영선 서울대 교수 대담
한·미·일, 중국 압박해 북한 움직여야
체제 순탄치 않을 것 … 붕괴 대비해야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다. 북한은 핵을 그대로 보유하면서 얻어낼 것은 다 얻어내는 ‘꿩 먹고 알 먹고’식 협상을 하려 할 것이다. 북한에 지원만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
잭 크라우치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현 국가공공정책연구소 고문)은 3일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한 하영선 서울대 교수(외교학) 와의 대담에서 이같이 밝혔다. 대담은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그는 이날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주최하고 경기도 평택시가 후원한 ‘변환시대의 새로운 한·미 동맹’ 콘퍼런스에서 주제 발표를 했다.
▶하영선=오는 11월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 대외정책이 변할 수 있다. 미국 차기 정권의 대외정책 전망은.
▶크라우치=존 매케인이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중 누가 당선되든 대외정책의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오마바가 되면 인권과 노동·보호주의 목소리를 높여 중국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매케인은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세력 균형을 원해 중국을 포용하는 편이다.
▶하영선=한국에선 올해 초 이명박 정권이 출범했고, 미국에선 내년에 새 정권이 들어선다. 양국은 새로운 21세기 전략적 동맹 관계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어려움이 있고, 중기적으론 북핵 등이 미해결 상태다. 한·미 관계 전망은.
▶크라우치=낙관한다. 양국의 전략적 동맹은 다시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두 나라는 이해 관계뿐 아니라 (인권·민주주의 등) 기본 가치를 공유한다. 쇠고기 문제의 경우 전문적 식견은 없지만 단기에 해결될 것으로 본다. 나의 경우 50년간 미국산 쇠고기를 잘 먹었으며 두 아이에게도 먹였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양국 동맹이다. 이는 한반도 안보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안보에도 중요하다. 한·미 동맹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미국적 가치를 확산하는 핵심이다. 다음 달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이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한·미 동맹은 더 강화될 전망이다.
▶하영선=부시 대통령의 2기 임기 때인 2005~2007년 NSC 부보좌관으로 재직할 때 한·미 관계에서 어려웠던 점은.
▶크라우치=두 나라는 혈맹이라 부를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한국의 전 정권 기간 갑작스럽게 긴장 관계가 증폭됐다. 민감한 사안이 된 미국산 쇠고기 문제도 전임 정권이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가 실현되지 않았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인식도 달랐다. 한반도 통일 문제 등에서도 갈등이 있었으나 극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영선=부시 행정부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고 들었다. 유럽·일본과 같이 가장 친밀한 핵심권과 중국과 같은 중간권, 독재 국가가 속하는 주변권이다. 최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전략적 동맹국가로 일본·호주를 언급하면서 한국을 뺐다. 한국은 세 분류 중 어디에 속하나.
▶크라우치=한국은 핵심권이다. 한국은 미국과 근본 가치를 공유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협력하며, 외부 도전에 공조한다. 북한은 주변권에 속한다. 이로 인해 한국은 중간자로서 어려운 입장이다. 한국은 미국이 북한의 정권 교체를 추진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분명한 것은 북한 정권이 21세기 말까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개인 숭배의 전제국가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정권 교체는 성공했지만 앞으로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체제가 순식간에 변할 수도 있는 만큼 한국은 비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의 체제 붕괴에 대비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위협이 아닌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북한 체제 붕괴는 한반도만이 아닌 동아시아, 나아가 국제적 문제이므로 신뢰를 바탕으로 건설적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영선=다음 주에 6자회담이 시작된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를 검증하는 45일 동안이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나.
▶크라우치=개인적으로 매우 비관적이다. 북한은 과거 여러 번 약속을 어겼다. 북한은 미사일과 핵 기술 이외에는 팔 만한 게 없다.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는 긍정적이나 북한은 여전히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 다른 핵 시설 등을 갖고 있다. 특히 영변 핵시설과 같은 모델이 시리아로 이전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검증기간이 끝난 뒤에도 미 대선 결과를 보며 다음 정부와 협상하려 할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한·미·일은 공동 보조로 중국을 압박해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
▶하영선=북한은 딜레마 상태다. 군사에 우선순위를 두는 선군 정치 리더십은 핵 옵션을 포기하기 힘들다. 그러나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대외 경제 협력이나 지원을 받기 어렵다. 북한은 시간을 벌면서 최종 결정을 미룰 가능성이 크다.
▶크라우치=한국은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힘든 결정을 해야 한다. 과거 한국이 식량을 지원했을 때 북한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 군과 노동당 지휘부에 나눠줬다. 북한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데도 제재가 없었다. 북한이 지원에 합당한 행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글=정재홍·김정욱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잭 크라우치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3~2001년 사우스웨스트 미주리주립대에서 국방·전략 분야 교수로 재직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첫 번째 임기 중 국방부 국제안보정책 담당 차관을 지낸 뒤 2004년 주 루마니아 대사를 거쳤다. 2005~2007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을 지냈다. 현재 미 국가공공정책연구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