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사업까지 정부가 합의해선 안돼… 法 정비 등 투자 환경개선에 중점을
봉동에는 역이 없다. 그런데도 지난 정상회담에서는 남측 문산에서 북측 봉동까지 화물열차 운행을 합의했다. 그러다 보니 봉동역이 아니라 그 전인 판문역까지만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게다가 아직 매일 실어 나를 화물도 없다. 결국 개통 직후부터 빈 열차만 오고 가는 실정이다.
안변 조선협력단지도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업이다. 그러나 우리 측 기업은 사전에 안변을 가본 적이 없다. 해당 지역을 한번 둘러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합의부터 된 것이다.
이처럼 기본적인 실태조차 모르면서 합의부터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북한과의 경제협력이라면 무조건 많이 하는 것이 좋은 일일까. 더욱이 민간이 해야 할 사업을 정부가 나서서 추진을 약속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이제 ‘많이’ 하는 것이 좋은 시대는 지나갔다. 워낙 남북경협이 없던 시절에는 정부가 나서서라도 사업을 추진할 필요성이 있었다. 퍼주고라도 경제관계를 만들어 나갈 당위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남북 경제관계는 크게 변화했다. 남한은 북한의 제1위 수출시장이고, 제2위 무역상대국이다. 제1위 투자국이고, 지원 역시 제1위이다. 따라서 이제는 남북경협에 대한 인식과 추진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 대북경제정책도 결국은 경제정책이기 때문이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이라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협 속도가 더디다고 안달할 일이 아니다. 그만큼 아직 북한의 투자환경이 열악하다고 시장이 판단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경협의 외형적 성과에 집착해서 민간의 사업까지 정부가 북쪽과 합의한다면 이는 새로운 관치경제인 셈이고, 개발독재의 변형된 모습일 뿐이다.
정부로서는 시장에 직접 개입할 것이 아니라 각종 법과 제도의 구축 및 철도·도로·통신 등 인프라 정비지원을 통해 경협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시장이 스스로 대북투자의 수익성을 자신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남북경협이 한 단계 발전한다.
또한 남북경협은 북한경제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과의 경협은 제3국과의 경협과는 성격이 다르다. 언젠간 더불어 살아야 할 상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북한 경제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질적으로 발전하여야 순조롭고 원만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 결국 남북경협은 북한의 개방과 개혁에 기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우리가 지원한다면 당연히 북한의 자구 노력도 요구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북한의 개방·개혁을 이야기하지 말자고 한 것은 그래서 잘못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남북경협도 다자간 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북한과의 경협이라고 양자 간의 시각에서만 접근할 일이 아니다. 이미 남북문제는 국제문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자간 방식이라야 재원조달은 물론 사업의 안정적 추진에도 유리하다. 우리가 희망하는 북한의 변화를 불러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도 ‘우리 민족끼리’라는 19세기적 사고로 21세기 남북경협을 추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같은 민족끼린데, 자꾸 수익성이니 뭐니 하고 따질 겁네까”라고 북측이 말하는 한, 남북경협의 미래는 물론 의미도 없다.
조동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