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시론] 강력하나 군림 않는 청와대

  • 2003-01-14
  • 이홍규 (중앙일보)

"대통령은 참모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는 당연하지만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 초 들은 말이다. 대통령의 참모진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들이 대통령의 성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참모란 가장 충성스런 측근이면서도, 어쩌면 대통령을 실패로 이끌기 가장 쉬운 사람이다.

 

지난 한해 동아시아연구원(EAI)에서 "대통령 성공학(?)"에 관해 학자들이 모여 토론한 결과는 "제왕적 대통령"이 권력은 강하나 기능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대통령이라는 것이었다.

 

과거 개발연대의 만기친람적(萬機親覽的)이고 권위주의적 내각통제 방식이 지속돼서는 누구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청와대가 과거의 포괄적 개입에서 "선택적.집중적" 개입으로, 각자 개별 약진하는 접근방식에서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 "기능적" 접근으로, 명령.지시적 방식에서 "설득하는" 방식으로 운영이 혁신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권력은 약화시키고 정책적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부연한다면 청와대 조직은 우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그들의 일은 국가전략, 위기관리, 개혁에 관한 정책들이거나 정책간 조정이 긴요한 것들이어야 한다.

 

즉 대통령의 비전과 철학이 직접 반영돼야 하거나, 안보상의 문제이거나, 현상유지를 원하는 관료로서는 하기 힘든 개혁정책들, 그리고 다수의 정부부처 간에 정책적 갈등이 큰 문제들인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정책들을 하나로 묶고 그 목표를 명확히 해 "대통령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정부 부처에 맡겨도 되는 정책들, 인기 관리를 위한 정책들, 내각을 장악하기 위한 정책들이 그 프로젝트에 포함돼서는 안된다.

 

선거공약에 있었다 해서 무조건 포함돼서도 안된다. 짧은 임기 내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달려들어서도 안된다. 레이건 대통령은 몇개의 정책에만 집중함으로써 성공한 대통령이 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의 우선순위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역대 정권의 국정 청사진은 언제나 백화점식 나열 방식이었다. 이제는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을 위해 모든 정책조직이 정책기획 조직으로 통합되고, 다른 기능들은 이제 정책의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한 지원부서가 돼야 한다.

 

둘째, 청와대 조직의 운영 소프트웨어가 혁신돼야 한다. 사회는 분권화.민주화됐는데 정부조직에는 아직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가 유지되고 있다.

 

관료 위에 군림은 하나 정책조정 능력은 취약하고, 정보는 보고되고 있으나 수석실 간의 벽이 높아 제대로 공유되지 못하는 권위주의 시대의 운영 소프트웨어로는 참다운 언로가 막히고 정책이 형식으로 흘러 실효를 거둘 수 없다.

 

그래서 운영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정책조정 능력을 향상시켜야 하고, 맡은 일에 대해서는 모두가 하나의 팀이 돼 확실한 책임을 지고 추진하는 그런 체제가 돼야 한다. 내각의 정책도 장기적 안목에서 철저히 평가돼야 한다. 자율은 올바른 평가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셋째, 참모진이 설득 역량을 갖춰야 한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설득이다. 특히 우리는 지금 세대.지역.이념.계층.집단 간의 첨예한 갈등을 소화해 내는 동시에, 세계화 속에 전개되는 국가 간의 정책경쟁.제도경쟁에서도 이겨야 한다.

 

따라서 참모진에게는 탁월한 갈등조정 능력, 변혁관리 능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원칙을 지키면서도 야당.언론.관료.시민단체.이익집단을 설득시킬 수 있는 식견과 지혜가 뒷받침돼야 한다. 즉 유능한 "정책 세일즈맨"이 돼야 한다.

 

사회의 하드웨어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할 일은 바로 그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업그레이드(upgrade) 하는 일이다. 21세기 벽두 성공한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홍규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