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왕적 대통령 이렇게 바꾸자] 6. 외교안보 독주 제어장치 구축해야

  • 2002-10-11
  • 모종린 (중앙일보)

EAI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외교안보 분야만큼 제왕적 국정운영의 유혹이 큰 분야도 드물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 자체를 월남전 수행 과정에서 무리하게 권력을 행사한 닉슨 대통령을 가리켜 미국의 역사학자 슐레진저가 처음 사용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미국과 같이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도 대통령 중심의 외교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유독 일방적 권력행사의 유혹을 많이 받는 첫째 이유는 대통령이 국내 분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율권과 재량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은 외교안보에 대한 대통령의 주도권을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긴박한 위기상황에서 적절한 정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의 민주적 제약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스러워야 한다는 외교안보 정책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다.

 

안보정책의 성격상 대부분의 정보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것도 한 원인이다. 국회나 참모진보다 훨씬 방대하고 정확한 정보를 갖게 된 대통령은 그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기 쉽다.

 

정상외교의 매력도 대통령이 외교안보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화려한 의전, 국내 문제로부터의 탈피, 국제적 인정 등 정상외교의 매력은 하나 둘이 아니다.

 

정상외교를 통한 위압으로 국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대통령이 외교성과에 집착하는 원인이 된다.그러나 이같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은 결국 실패의 길을 걷게 된다.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이익을 배려하지 않고 왜곡된 정보에 의존한 독선적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올바른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 일방주의가 지나치면 필연적으로 "권력남용" 시비에 휩쓸리게 된다.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닉슨 대통령이다. 닉슨 대통령은 월남전 당시 캄보디아 등에서 의회의 동의 없이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이에 반발한 의회가 군사작전에 대한 예산지원을 중단하자 닉슨 대통령이 불법적인 예산전용으로 대응하면서 대통령과 의회 관계가 악화됐다.

 

닉슨은 대통령의 특권(executive privilege)을 주장하면서 의회 조사에 불응하고 정보 제공을 거부했다.

 

궁지에 몰린 닉슨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개적인 정책 수행보다 비공식 조직과 비밀 공작을 선호하게 되고, 급기야 국가위기 상황에서 부여되는 권한을 자신의 정적(政敵)을 상대로 남용하기에 이르렀다.

 

닉슨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의 보좌기구인 국가안보회의 참모진에 의한 불법적인 공작을 묵인함으로써 이란-콘트라 스캔들이라는 헌정 위기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현재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앞두고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논쟁은 다시 불붙고 있다.

 

민주화가 상당 수준 진행된 한국도 더 이상 민주주의와 대통령 외교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딜레마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1990년대 이후 대북 정책을 둘러싼 국내 갈등이 악화되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독선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임기 중반 대북 강경정책으로 선회한 후 이를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고수했던 김영삼(金泳三)정부와 초지일관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대중(金大中)정부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통령이 외교안보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대통령 자신이 헌법 규정과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정책결정 과정에 정보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등 대통령 스스로 독선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어온 이유는 대부분 특정 인맥 중심으로 정책을 수행하거나 한명의 참모에게 권한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권력을 분산해 하부 조직의 정보 담합을 방지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보기관의 장과 독대하는 관행도 제고해야 할 시점이 됐다. 적어도 대통령을 포함한 최고 정책결정자 사이에는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시에 행정부 내부의 정책 조정을 담당하는 국가안보회의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국가안보회의 제도는 대통령을 견제한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과 같이 행정부에 대한 견제가 제도화된 국가에서도 국회와 언론이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 수행을 외부에서 견제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과 국가안보회의 사무처로 이원화돼 있는 대통령 보좌기구를 통합해 청와대 정책기획실 내에 외교안보보좌관실을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국가안보회의 운영을 지원하고 중장기 외교안보 전략을 조정하기 위한 유기적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외교안보보좌관실은 정책조정.정책기획 등 기존 외교안보수석실과 국가안보회의 사무처의 핵심 기능을 흡수하고, 정보상황실 운영 등 일부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

 

외교안보 정책에서 국회의 역할을 정상화하는 것도 시급하다. 여야 대립 구도가 반복되는 대북 정책 분야에는 국회 역할을 공식화해 참여를 유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평소 정책개발과 심의를 행정부에 일임하던 국회가 정작 결단의 시점에는 행정부 안을 반대하기에 바쁜 게 현실이다.

 

따라서 그동안 야당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남북관계의 기본법인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과 "남북협력기금법"을 개정해 일정 규모 이상의 "남북교류협력 및 지원사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회의 사전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을 건의한다.

 

모종린 연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