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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을 열흘 앞둔 지난 15일 국민원로회의에서 북한의 정권교체와 붕괴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지난 20여년간 비핵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 제재 모두 통하지 않는 데 대한 불만 섞인 좌절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 붕괴론은 실체가 있는 것인가.

김일성 사망 이후 잇단 예측… MB정부 “2∼3년내 가능”
김정은 제거·쿠데타·봉기, 내외 여건감안 가능성 희박
전문가 “핵저지 차원 넘어 北체제 진화에 초점 맞춰야”

 

 

“(북한) 정권이 바뀌고 무너지기 전에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을 열흘 앞둔 지난 15일 국민원로회의에서 북한의 정권교체와 붕괴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지난 20여년간 비핵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 제재 모두 통하지 않는 데 대한 불만 섞인 좌절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 붕괴론은 실체가 있는 것인가.

 

위기 때마다 고개드는 북한 붕괴론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북한 내부 정세가 불안정할 때마다 국내외에서는 북한 급변사태를 비롯한 붕괴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미국 외교전문을 보면, 이명박정부는 남북 화해협력정책을 폈던 김대중·노무현정부에 비해 북한의 정권 붕괴와 급변사태 가능성을 높게 봤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비서관은 2010년 2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무너진 북한 경제를 거론하며 “김정일 사후 2∼3년 안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도 2009년 7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북한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며 “한·미 양국은 기다리며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던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캠벨 차관보와의 대화에서 ‘북한 정권의 완전 붕괴’를 거론하는 등 이명박정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정책 결정자들은 북한 붕괴와 급변사태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었다.

 

이런 시각을 전제로 한 대북정책은 제재와 압박 위주의 강경책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과거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북한을 ‘악의 축’(2002년), ‘폭정의 전초기지’(2005년)로 규정하며 북한 정권 교체와 붕괴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북한 붕괴론의 실체와 한계

 

한·미의 대북강경파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북한 붕괴론의 핵심 내용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 제거 전략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 당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제거하는 ‘참수 공격’(decapitation attack)을 시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북한 붕괴는 개연성이 극히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우선 북한 지도부를 겨냥한 암살 또는 군사공격 카드는 국제법 측면의 적법성 요건은 차치하고라도 민주적 방식이 아니어서 국제사회 지지를 얻기 어려운 방식이다. 북한 권력 내부의 쿠데타나 민중봉기 가능성도 폐쇄적이고 철저한 사회통제가 이뤄지는 북한체제 특성을 고려하면 의문시 된다. 무엇보다 북한체제 생존의 보루나 다름없는 중국이 존재하는한 북한 내 급변사태나 붕괴 가능성은 높지않다는게 대체적 분석이다.

 

이러한 북한붕괴론에 기반한 대북 접근 방법에 대해 최근 한국을 방문한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은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같은 맥락에서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 역시 “1994년의 제네바 합의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기대에 편승한 합의가 아니었다”며 “김정은 체제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바탕해 정책을 추진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체제 붕괴→체제 진화 유도해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북한체제 위기에 따른 급변사태를 점치는 목소리는 다시 힘을 얻는 듯했으나 김 제1위원장으로의 권력승계 작업이 빠른 속도로 마무리되면서 급변사태론은 다시 잦아들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지난달 ‘2012년도 정세 평가와 2013년도 전망’ 보고서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안착으로 단기 내 북한정세의 급변 가능성은 작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대북 정책 목표는 북한의 체제 붕괴가 아닌 ‘체제 진화’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통일·외교·국방정책이 균형을 이루는 ‘복합적 관여정책’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EAI는 최근 발간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북한 스스로 ‘핵·선군(先軍) 노선’에서 ‘비핵·선경제’ 체제로 전환하고, 한국과 주변국은 이를 도와주는 ‘공진(coevolution)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영선 EAI 이사장은 최근 EAI 홈페이지에 공개한 전재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와의 대담에서 “새 정부는 지금이라도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차원을 넘어 김정은 체제가 진화할 수 있는 새로운 그림을 창출하는 공격적 논의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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