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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와 한국 민주주의 시리즈] ① “조용한” 중도는 무엇을 원하나
워킹페이퍼 | 2025-02-13
강원택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EAI 민주주의연구센터 소장
강원택 서울대 미래전략연구원장(EAI 민주주의연구센터 소장) 정치적 무관심층인 ‘조용한 중도층’의 역할을 조명하며, 정치 효능감이 낮은 이들이 공론장에서 배제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합니다. 강 원장은 소수 집단의 의견이 과대 대표되고 있는 한국 정치 상황을 우려하며, 온건하고 합리적인 다수의 목소리가 토론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적 소통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I. 서론
이 글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오히려 격화되고 있는 정파적 대립과 갈등에 주목하면서, 그러한 정파적, 이념적 대결과 대립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는 이념적 ‘중도층’의 정치적 태도와 특성을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와 그에 기반한 적대적 정당 정치는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대통령과 의회라는 두 기구 간 극단적 대결을 낳았고, 이는 결국 대통령의 군 동원과 의회의 탄핵이라는 또 다른 극단적 방법의 동원으로 이어지면서 정국은 파국을 맞이했다. 계엄 선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했지만, 그 이후에도 정파적 대립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을 앞두고 이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정치권에서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격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법원 난입과 같은 일부의 극단적인 행위까지 발생했다. 이 글은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한국 사회는 이러한 계엄-탄핵의 사건을 통해 이전의 정파적 양극화가 과연 더 격렬해졌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그 권한 행사의 법적 요건이나 절차상의 문제를 넘어,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군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런 점에서 이 사안은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은 헌정 체제에 대한 도전이고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계엄 해제 이후에도 “윤석열”은 여야 간 정파적 갈등의 중심이 되고 있고, 이는 또한 각 정파 지지자들 간 격렬한 다툼과 대립을 불러왔다. 적어도 ‘외형상’ 계엄 선포 사태를 겪고도 그 이전까지 한국 정치를 분열시켜 온 양극화의 정치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구체적으로 계엄 선포 사태 이후 “윤석열” 이슈가 이념이나 정파에 따라 우리 사회를 심각하게 분열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로 규정한 이들에 주목한다. 이념적으로 중도적 입장이라고 해서 정파적 선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강원택 2007), 이들은 이념 스펙트럼상에서 어느 한쪽으로의 편향을 분명하게 밝힌 이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정파적 충성심이나 이념적 강도는 낮을 것이다. 더욱이 양쪽으로 갈려 격렬하게 전개되는 정치적 논쟁에 이들의 의견이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들 스스로 정치참여나 의견 개진에 소극적일 수도 있고, 혹은 이념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위치한 이념적으로 강하고 적극적인 이들의 크고 강한 목소리에 밀려 입을 닫고 있을 수도 있다(Noelle-Neumann 1974).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정치적 선호가 이념 스펙트럼상 두 개의 진영으로 전체 국민이 완전히 분열된 형태의 쌍봉형 분포이기보다 중앙의 중도 유권자를 중심으로 대칭적인 단봉형 분포라고 한다면, 중요한 이슈에 대한 여론의 흐름이나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 역할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중도적 입장을 가진 이들이 될 수밖에 없다(Downs 1957).
현실 정치의 대립 속에서 보수와 진보로 양분하여 정치적 태도를 구분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이분법적 구분 속에 다양한 정치적 태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 이 글에서의 출발점이다. 광의의 보수, 진보라는 두 개의 범주로 나뉘더라도, 그 안에는 이념적 방향성과 강도가 다른 여러 하위 집단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그간의 한국 정치에 대한 해석이 정파적 양극화라는 외양 속에서 그 내부의 다양한 관심을 무시한 채 과도하게 두 개의 대립적 관계만을 강조해 온 기존의 관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중도층에 주목함으로써 이 글에서는 정파적 양극화 속에서도 ‘서로 다름’과 ‘배제’만이 아니라, 인식의 ‘유사함’이나 태도의 ‘타협 가능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여기서 사용하는 데이터는 동아시아연구원(이하 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025년 1월 22일, 23일 양일간 1,5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웹 서베이 결과이다.
II. 이념과 계엄-탄핵 정국
우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전체 응답자의 인식에 대해 분석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전체 응답자의 72.7%가 그 결정을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응답자 중 58%는 계엄 선포를 “매우 잘못한 일”이라고 응답하여 이에 대한 강한 비판적 태도를 나타냈다. 14% 정도의 응답자만이 계엄 선포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정파적 입장이나 이념적 태도와 무관하게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매우 비판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재적의원 300석 중 찬성 204, 반대 85, 기권 3, 무효 8로 가결됐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탄핵에 대한 응답자들의 태도를 분석한 결과 탄핵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64.5%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절반을 넘는 51.5%는 탄핵 인용을 “매우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탄핵을 반대한다는 응답도 1/4에 가까운 23.4%에 달했다. 탄핵 인용을 “매우 반대한다”는 응답도 12.8%에 달했다. 앞서 본 계엄 선포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비교해 볼 때 탄핵 반대 비율은 10% 정도 더 높게 나타났고, 특히 “매우 반대한다”는 강한 부정의 비율은 계엄 선포에 대한 강한 긍정의 비율보다 두 배 정도 높았다.
[그림 1], [그림 2]는 계엄 사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요약해 보여주고 있다. 우선 계엄 선포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전체 응답자의 3/4이 비판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이념이나 정파적 선호를 넘어 대부분의 국민이 그것을 잘못된 행위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는 찬성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높기는 하지만, 계엄 선언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비해서는 그 비율이 다소 낮게 나타났다. 더욱이 반대의 강도나 비율도 계엄 선포에 대한 반응에 비해 강하고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가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갈등의 원인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계엄 선포는 잘못한 것이지만, 탄핵은 반대한다”는 ‘모순된 입장’을 보이는 이들이 존재하며, 이것이 탄핵 정국의 정치적 갈등을 부추기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림 1] 계엄 선포에 대한 평가
[그림 2] 윤석열 탄핵에 대한 입장
그런데 그동안의 양극화된 정치 상황을 고려해 보면, 정파적 선호에 따라 계엄 선포에 대한 반응이나 윤석열 탄핵에 대한 태도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했느냐에 따른 태도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표 1]에서 보듯이, 분석 결과 지지 후보에 따른 뚜렷한 입장의 차이가 확인되었다. 계엄 선포에 대해서는 두 후보 지지자 모두 잘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간값이 3인데, 윤석열 투표자도 평균값이 2.76으로 부정적 판단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재명 지지자들은 1.15로 매우 강한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두 집단 평균의 차이도 통계적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는 두 집단 간 방향성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이재명 투표자는 1-5점 척도에서 평균 4.8의 매우 강한 찬성의 태도를 보인 반면, 윤석열 투표자는 2.67로 중간값 3보다 다소 작은 ‘반대’의 방향으로 나타났다. 탄핵을 둘러싼 정파적 갈등은 이런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이재명 지지자가 10점이 최고점인데 평균값이 1.73으로 대단히 낮은 평가를 내렸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윤석열 투표자는 –10점 척도에서 대체로 중간 정도의 평가를 내렸다.
이처럼 앞의 [그림 1], [그림 2]에서 본 것처럼 대다수의 국민은 계엄 선언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고, 탄핵 결정에 대해서도 다수가 찬성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정파적 태도에 따라서는 그 태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현재의 정치적 갈등은 윤석열 탄핵에 대한 정파적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단호한 태도의 이재명 투표자들에 비해 윤석열 투표자들은 이에 대해 다소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표 1]을 보면, 윤석열 투표자들이 탄핵 결정에 다소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표준편차가 상대적으로 매우 크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집단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평균값은 탄핵 반대쪽으로 살짝 기울었지만 내부 분포는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유의하여 윤석열 투표자의 계엄-탄핵 관련 인식에 대한 선형 회귀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가 [표 2]에 정리되어 있다.
[표 2]에는 독립변수를 계엄 선포, 정부 기관 신뢰, 정치인 호감도, 선거 공정성, 정치 태도, 사회경제적 배경 등 6개의 범주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계엄 선포’ 범주의 4개 변수는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엄 선포 자체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높을수록, 그리고 계엄 선포가 국가 안보와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고, 야당의 비협조로 인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간주할수록 탄핵 반대의 태도를 취할 확률이 높아졌다. 반면 계엄 선포가 윤 대통령 권력 유지를 위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은, 계엄 자체에 대해 동의하는 이들도 있지만, 계엄 선포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윤석열에 대한 호감과 이재명에 대한 비호감이 탄핵 반대 태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선거 공정성에 대한 태도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신뢰도 등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때 명분으로 내걸었던 이른바 ‘부정선거’에 대한 것은 2022 윤석열 투표자의 탄핵 반대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는 통계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윤석열 투표자 집단에서 탄핵 반대에 대한 태도가 나타나는 것은 계엄 사태를 초래하게 된 원인에 대한 ‘동조적’ 태도, 즉 야당에 대한 불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표 1]에서 탄핵 결정에 대한 윤석열 투표자의 평균을 보면 탄핵 반대 방향으로 다소 치우쳐 있기는 하지만 그 강도는 그리 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그 집단의 표준편차가 상대적으로 크다. 즉, 그 집단 내에서도 이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갖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대선 때 윤석열에게 투표했다는 이유만으로 각각의 집단을 내부적으로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은 이재명 투표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될 것이다. 스스로 보수나 진보라고 이념적으로 규정해도 그 강도에 따라 온건 보수, 강성 보수, 온건 진보, 강성 진보의 구분이 있을 수 있고, 또 자신을 중도로 간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유의하여 우선 보수, 진보 집단을 온건, 강성으로 각각 구분하여 5개의 하위 집단으로 구분해 보았다. 중도를 포함한 5개 집단의 빈도 분포는 [그림 3]과 같다. 이념 분포 중 스스로 중도라고 응답한 비율이 46.4%로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또한 온건 보수와 온건 진보, 강성 보수와 강성 진보의 비율이 거의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3]에서 볼 수 있듯이, 이념 집단의 분포는 좌우 대칭의 단봉형(單峯形) 분포를 보이고 있다.
[그림 3] 응답자의 이념 분포
여기서 중도 이념을 보다 세분화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도 이념이라고 해도 정파적으로 어느 쪽도 아닌 완전한 중립을 취하겠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투표 행태를 설명하는 방향 이론(directional theory)에서 말하는 대로, 중도 지점이 이슈에 대한 어떤 감정적 반응도 없고, 선호의 방향이나 강도도 없는 중립적(neutral) 입장(Rabinowitz and Macdonald 1989.)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중도적인 유권자라고 해도 선거 때 투표를 한다면 누군가 후보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고, 최근 한국 정치에서처럼 양극화된 상황이라면, 두 정파적 진영 가운데 조금이라도 더 선호하는 어느 한쪽을 결국 선택해야만 한다. 그래서 중도 유권자의 특성을 2022년 대선에서의 후보 선택을 통해 구분해 보았다.
[표 3]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다. 강성 진보의 92.9%가 이재명 후보에게, 강성 보수의 91.9%가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 온건 진보의 86.1%, 그리고 온건 보수의 79.1%가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자신의 이념적 방향성을 분명히 밝힌 이들`의 압도적 다수가 자기 진영의 후보를 선택했다. 그런데 중도라고 밝힌 이들의 선택은 거의 반반으로 지지 후보가 갈렸다. 49.1%가 이재명을, 50.9%가 윤석열을 찍었다고 밝혔다. [표 3]의 결과는 우리 정치의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념적 선호가 분명한 이들은 압도적으로 그 정파의 후보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중도라고 한 이들 역시 거의 완전하게 둘로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그림 3]과 [표 3]의 결과는 한국 사회가 정파적으로 둘로 갈라져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계엄-탄핵 정국에서 양극화된 정파적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이념의 하위 집단이 정치 지도자와 양대 정당을 이념 스펙트럼 상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 4]와 [그림 5]는 각각 윤석열 투표자와 이재명 투표자를 대상으로 하여 강성 이념 집단, 온건 이념 집단과 중도의 6개 하위 단위로 구분하여 윤석열, 이재명 두 정치 지도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대 정당에 대한 이념 위치의 평균값을 정리한 것이다.
[그림 4]를 보면, 강성 보수집단의 경우 이념 평균값이 8.88로 상당히 극단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 역시 매우 극단적 보수로 간주하고 있지만, 그들의 이념적 입장이 더 극단적이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윤석열과의 이념거리는 0.15로 대단히 가깝게 느끼고 있다. 반면, 이재명 대표의 이념 위치에 대한 인식은 평균 0.54로 극단적 진보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이념 인식은 두 정치 지도자의 위치를 이념 스펙트럼상의 양극단에 두고 있다. 윤석열-이재명 이념 거리보다는 다소 가깝지만 국민의힘-민주당 간 거리도 거의 7에 가깝다. 이들과 같은 인식으로는 두 정파 간 타협이나 합의 도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에 비해 온건 보수집단은 그들의 이념 위치도 6.44로 비교적 온건한 입장이고, 이들이 인식하는 정파 간 이념 거리는 이재명-윤석열이 6 정도이고 국민의힘-민주당도 5.32로 상대적으로 가까워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념적 입장이 그들이 투표한 윤석열이나 국민의힘보다 온건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들이 투표한 윤석열과의 이념거리도 0.88로 강성 보수의 0.15와는 차이를 보였다.
한편, 윤석열에 투표한 중도층(중도 보수)은 인식하는 정파 간 이념 거리는 온건 보수보다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열-이재명 이념 거리는 4.61, 국민의힘-민주당 간 거리는 4.1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중도층의 경우, 그들과 윤석열 간의 이념 거리는 1.93, 국민의힘과는 1.82로 적지 않은 거리를 보였다. 이념적으로는 윤석열이나 국민의힘과는 다소 입장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세 하위 집단 모두에서 각 정당보다 윤석열이나 이재명의 이념적 위치가 더 극단에 가깝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모두 윤석열, 이재명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을 두 정치 지도자에게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특성은 이재명 투표자에게서 유사하게 확인된다. 강성 진보층의 이념 평균값은 1.09로 매우 극단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강성 보수층의 평균값이 8.88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강성 보수와 강성 진보 모두 이념 축의 극단적 위치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념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가진 이들에 의해 주도되면 정치적 상황은 극단적 대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강성 보수층의 경우처럼, 이들도 이재명 대표의 이념적 입장이 상당히 극단적 지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입장이 더 극단적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이재명 대표의 이념 위치는 1.39로 그들과 가장 가까운 지점에 놓여 있으며 이념 거리는 불과 0.3이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념적으로 대단히 극단적 위치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의 이념 평균값은 9.30이었다. 강성 보수가 이재명의 위치를 0.54로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윤석열의 위치를 대단히 극단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두 정치 지도자의 위치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강성 보수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념 스펙트럼상의 양극단에 두고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국민의힘-민주당 간 거리는 윤석열-이재명 이념 거리보다는 다소 가깝지만 7.30이나 된다. 강성 보수층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인식으로는 타협이나 합의의 정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온건 진보 집단은 이념 위치가 3.54이다. 온건 보수집단의 평균이 6.44인데, 중앙의 5를 기준으로 온건 보수는 1.44 오른쪽, 온건 진보는 1.46 왼쪽에 놓여 있다. 온건 진보나 온건 보수의 평균 이념이 모두 중앙 쪽으로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온건 보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온건 진보가 인식하는 정파 간 이념 거리도 이재명-윤석열이 6.12이고 국민의힘-민주당도 5.64로 상대적으로 가까워졌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이념적 입장이 그들이 투표한 이재명이나 민주당보다 온건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한편, 이재명에 투표한 중도층(중도 진보)이 인식하는 이념 거리는 온건 진보보다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열-이재명 이념 거리는 3.98, 국민의힘-민주당 간 거리는 3.91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들과 이재명 간의 이념 거리는 1.37, 민주당과는 1.24로 앞의 두 집단보다는 거리가 커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각 정당보다 윤석열이나 이재명의 이념적 위치가 더 극단에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 진보 집단의 국민의힘의 경우를 제외하면 (여기서도 그 차이가 0.06에 불과하지만), 세 경우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 윤석열, 이재명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것은 정당보다 두 정치 지도자라는 인식은 이재명 투표자에게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되고 있다.
[그림 4]와 [그림 5]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양극적 대립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파적 지지와 무관하게 중도적 입장을 갖는 이들은 물론이고, 이념적으로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이들의 정치 상황에 대한 시각이 극단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전체 이념 분포의 46.4%로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도층의 경우에는 보수든 진보든 중앙으로 이념적 평가가 수렴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정치적 태도나 입장을 따른다면, 두 정파 간 타협이나 합의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지금의 극한적 대립이나 갈등은 이러한 중도층, 혹은 온건 이념층의 입장보다 극단적 입장을 가진 강성 보수, 강성 진보가 정치적 논쟁이나 쟁점 이슈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강성 보수와 강성 진보의 비율은 [그림 3]에서 볼 수 있듯이, 각각 9.6%에 불과하다. 전체의 20%도 안 되는 극단적 입장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전반적인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III. 정치적 쟁점과 이념적 하위집단의 특성
앞의 논의에서 윤석열 지지나 이재명 지지라는 동일한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정치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내부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수세적 입장’인 윤석열 지지층에서의 시각 차이가 상대적으로 더욱 컸다. 그렇다면 현재 계엄-탄핵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각 정파 내 이념적 강도가 다른 각 집단이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표 4]는 계엄 선포의 이유에 대한 공감 정도, 정치적 논란이 되어 온 ‘부정선거’에 대한 인식, 그리고 두 정치 지도자에 대한 호감도에 대한 하위 이념 집단별 평균을 정리한 것이다. 윤석열 투표자를 보면, 모든 항목에 대한 분산분석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계엄 선포의 두 명분에 대해서는 강성 보수 → 온건 보수 → 중도 보수의 순으로 공감의 정도가 낮아지고 있다. 계엄 선포의 명분이 안보, 질서라는 데 대해서는 명백하게 동의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고, 야당의 비협조 때문이라는 데 대해서도 중간값인 5.5보다 작은 평균치를 보였다. 선거 공정성에 대한 인식에서도 같은 패턴이 나타났고, 논란이 큰 2022년 총선에 대해서도 강성 보수와의 큰 시각의 차이를 보였다. 윤석열에 대한 호감도에서 강성 보수의 평균이 78.49인데 비해, 중도 보수의 평균은 34.87이었다. 온건 보수가 대체로 중간 정도의 평가를 한 데 비해 중도 보수는 50점 이하의 낮은 점수를 주었다. 이재명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대단히 낮은 평가를 했지만 중도 보수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았다. [표 4]의 결과는 윤석열 투표자라고 해도 중도 보수가, 특히 강성 보수와는 정치적 인식이나 판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재명 투표자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항목에서 통계적인 차이가 유의미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하위 이념 집단과 무관하게 선거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강하게 드러났고 윤석열에 대한 극도로 낮은 호감도를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재명에 대한 호감도이다. 강성 진보가 76.5점으로 높은 호감도를 보인데 비해, 온건 진보는 66.27으로 평균 10점 낮아졌다. 그리고 중도 진보는 51.79점으로 중간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 야당의 비협조 때문에 계엄을 선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세 집단 모두 낮은 값이었지만 중도 진보에서 미세하게나마 수긍의 답이 높았다. 이재명 투표자의 경우에도 이재명 호감도의 차이에서 알 수 있듯이 강성 지지층과 중도 지지층 간에 시각의 차이가 존재했다.
이번에는 윤석열 투표자와 이재명 투표자 집단에서 각각 하위 집단의 이념적 강도에 따라 주요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도와 계엄 선포, 그리고 두 정당의 호감도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았다.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도에 대해 살펴본 것은 계엄-탄핵 정국에서 국회,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그리고 법원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탄핵을 소추했고, 헌법재판소는 탄핵 심판을 해야 하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른바 ‘부정선거’ 논란과 함께 윤 대통령이 군을 투입했던 기관이다. 법원은 이재명 대표의 재판을 담당하고 있어 정치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위해 다항 로지스틱 분석을 실시했다. 여기서 참조 범주는 각각 ‘강성 보수’와 ‘강성 진보’ 집단이다. 분석을 위해 네 개의 범주로 구분하여 변인을 선정했다. 첫 번째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평가이다. 두 번째는 기관 신뢰도이다. 국회,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법원 등 네 기관을 포함했다. 세 번째는 두 거대 정당에 대한 호감도이다. 마지막으로는 연령, 학력, 재산, 소득 등 사회경제적 배경 변수를 포함했다.
[표 5]는 윤석열 투표자만을 대상으로 세 이념 집단의 태도의 차이를 분석한 것이다. 참조 범주인 ‘강성 보수’와 중도 보수는 여러 가지 변수에서 입장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계엄 선포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높았다. 또한 국가 기관 신뢰도 가운데서는 일부 보수층에서 ‘부정선거’ 논란과 관련해 비난하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신뢰도도 중도 보수층에서 강성 보수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한 국민의힘에 대한 호감도가 강성 보수에 비해 낮았고,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감정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들은 강성 보수에 비해 연령이 높고 학력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온건 보수의 경우에도 국민의힘에 대한 호감도가 강성 보수집단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표 5]의 결과에서도 윤석열 투표자의 44.9%를 차지하는 중도 보수층은 강성 보수층과 다른 인식과 판단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이재명 투표자 집단을 대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분석을 실시했다. [표 5]에 그 결과가 정리되어 있다. 강성 진보와 비교할 때, 온건 진보, 중도 진보에서 계엄 선포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는데, 이는 강성 진보에서의 부정적 평가가 워낙 강한 탓으로 보인다. 중도 진보나 온건 진보 모두에서 흥미로운 점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호감도가 강성 진보보다 낮다는 점이다.
사실 계엄-탄핵 국면에서 진보 집단이 특별히 이견을 가질 만한 이슈는 많지 않다. “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고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되어야 한다”는 데 대체로 공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표 4]와 [표 6]의 결과는 이재명이나 민주당에 대한 호감도에서 하위 이념 집단별로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보수집단의 경우 그 내부적으로 매우 뚜렷한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엄의 불가피성에 대한 인정이나 탄핵 반대’는 보수 집단 내 강성 보수층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고, 온건 보수, 특히 중도 보수는 이와 분명하게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진보 집단의 경우에는 사안의 성격 자체가 내부적으로 큰 차별성을 보이기 어려운 것이지만, 이재명이나 민주당에 대한 호감도에서는 내부적으로 주목할 만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V. “조용한” 중도층?
보수나 진보로 대별되더라도 이처럼 이념적 하위 집단에 따라 현재의 정치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인식과 판단을 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정치적 논쟁을 주도해 가는 것은 대체로 강경한 주장들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 중도의 견해와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일까? 이들은 상대적으로 정치참여나 의견 개진에 소극적인 것일까?
이런 특성을 확인하기 위해 정치 효능감과 정치참여의 적극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정치 효능감은 종종 내적 효능감(internal efficacy)과 외적 효능감(external efficacy)의 두 가지 차원으로 설명한다. 내적 효능감은 “내가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주관적 지각”이며, ‘외적 효능감은 “정부나 정치권이 시민의 요구를 얼마나 잘 경청하고 반응하는가에 대한 개인의 태도”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내적 정치 효능감이 높다면 정치적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표 7]에 내적 효능감에 대한 이념 하위집단별 분석이 정리되어 있다. ‘나 정도의 사람은 정부가 하는 일에 어떤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데 대해 온건 보수와 중도 보수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효능감이 확인되었다. 또한 ‘나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항목에 대해서는 중도 보수나 중도 진보 모두 가장 낮은 효능감을 보였다. 결국 내적 정치 효능감과 관련하여 중도층이 상대적으로 낮은 효능감을 보인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중도 보수의 효능감이 낮게 확인되었다.
낮은 정치 효능감은 낮은 정치 참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탄핵 촉구나 반대 집회 참여 경험, 그리고 정치 관심도에 대한 하위 이념 집단별 차이에 대해 분석했다. [표 8]에서 볼 수 있듯이,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참가에서 진보 집단에서 중도 진보의 평균이 가장 낮게 나타났고,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참가에서 중도 보수의 평균 값이 가장 낮았다. 그리고 정치 문제에 대한 관심도에서도 보수, 진보와 무관하게 중도층에서 가장 낮은 값이 확인되었다. 즉, 중도층은 정치 관심도도 상대적으로 낮고 정치 참여에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른 이념 집단에 비해 중도 이념 집단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이들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들의 목소리나 견해가 정치적 논의 속에 효과적으로 반영되지 못하면서 정치적 논쟁이 극단이나 강경으로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V. 결론
이 글에서는 계엄-탄핵 정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강경과 극단의 주장이 실제 우리 사회의 양극화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에서 출발했다. 즉 두 개의 진영으로 사회가 양분되었고 그 진영의 논리에 모두가 구속되어 있어서 강경한 두 주장이나 견해가 대립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여기서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집단을 중도, 온건, 강성의 세 하위 집단으로 구분하여 각 하위 집단의 정치적, 이념적 특성의 차이를 찾아보았다. 분석 결과 보수나 진보로 대별되는 집단 내부에는 상당히 차별화된 견해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보수 집단 내에서는 강성 보수와 관점, 인식, 평가가 뚜렷이 다른 중도 보수 집단이 상당한 규모로 존재했고, 온건 보수 역시 강성 보수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였다. 진보 집단에서는 이슈의 특성상 보수 집단보다 내부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이재명과 민주당 호감도에서는 각 하위 집단별로 차이를 보였다.
이렇게 다른 목소리나 견해가 존재하고 심지어 그 비율도 더 크지만 이들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주장이나 의견 대신 강경하고 극단적인 주장이 정치적 토론이나 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특히 중도층의 경우 내적 효능감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정치 관심도나 정치참여가 낮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수이지만 정치참여에 적극적인” 강경한 이들의 주장이 정치 토론을 주도해 가는 것이다.
최근의 이해하기 힘든 일부 여론조사 결과 역시 ‘참여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으로 보인다. 소극적이어서 참여를 거부하는 중도나 온건 집단 대신 참여에 적극적인 강경한 이들의 견해가 과대 표집되면서 실제 여론의 흐름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소수에 의한 정치적 의사 형성의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극단과 강경의 목소리가 주도하는 정치적 토론과 정치 과정은 결코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다. 침묵하고 있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다수의 목소리가 정치적 토론 과정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적 소통의 구조가 개혁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 강원택_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EAI 민주주의연구센터 소장.
■ 담당 및 편집:송채린,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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