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버넌스’는 이제 더 이상 국내정치나 행정 분야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다. 국제관계에서 상호의존성이 강화되면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 외교안보 거버넌스 능력의 중요성은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의 거버넌스 능력은 오늘날과 같은 대변환transformation의 시대를 헤쳐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거버넌스는 정부 차원의 노력으로만 확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내에 존재하는 여러 목소리들을 수렴하고 조정하여 최적의 화음을 이끌어낼 수 있는 체제가 구비될 때에만 비로소 한국의 외교안보 거버넌스 능력도 완전성을 구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연구원은 외교안보 거버넌스 라운드테이블을 기획하여 외교안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학자/전문가 그룹을 초빙하여,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유대감을 강화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외교안보 관련 지식 네트워크 창출에 힘을 보태려 한다.
2010년 1월 20일에 열린 제2차 외교안보 거버넌스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주요 외신기자들을 초빙하여 한국의 외교안보를 바라보는 해외언론의 시각을 통해 세계에 비쳐지는 한국의 모습과 자기 인식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고, 한국 외교안보의 과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특히, 다양한 뉴스 소재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러한 이슈들이 해외 여론의 관심을 끄는 뉴스로 발전하지 못한 채 외면되는 한국의 현재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그 구조적 원인에 대한 논의를 통해 보다 발전적인 한국 외교안보 정책을 위한 개선점을 찾는 데 목적을 두었다. 네 명의 외신기자들이 참가한 이번 라운드 테이블의 주요 토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한 특파원의 시각에서 본 한국외교안보 거버넌스의 과제
참석자들은 주한 특파원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이 다양한 뉴스 소재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생산하는 이야기들이 해외 언론의 눈길을 끌만한 뉴스가 되는 “Story Selling”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 한국 관련 뉴스가 특정 이슈들에 집중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하였다. 현재 한국에 대한 해외 언론보도는 대부분 한국 자체에 대한 뉴스라기보다는 북한 문제, 특히 북핵 문제와 관련한 내용이며, 이 역시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어지기 보다는 한미동맹과 같은 미국 관련 이슈들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기타 한국 관련 뉴스의 경우, 연속성이 떨어지는 토픽성 기사가 대부분이며, 북핵 관련 이슈나 자극적인 사건사고 소식이 없을 경우에는 한국 관련 뉴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주요 해외 언론 보도가 한국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대신 북핵 문제에 편중되어 있는 현실은 세계에 비춰지는 한국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한국의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언론의 보도 성향 문제이기보다는 정부와 민간 차원의 다양한 노력과 협력이 필요한 외교안보 거버넌스의 과제이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이번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먼저 구조적 원인으로서 북핵 문제에 매몰된 한국 관련 이슈와 편향된 언론 보도로 인한 파급효과 관리 부재, 자기중심적인 정부의 홍보 체제 및 다양한 국제 뉴스 개발에 소홀한 국내 언론의 문제 등에 대해 살펴보고, 그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1. 북핵 문제에 매몰된 한국 관련 이슈
현재 세계에 비춰지는 한국 관련 뉴스는 북한 핵 문제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 북핵문제는 단기간 내에 해결하기가 어려운 복잡한 안보 문제이며, 동시에 안보 이슈가 가지는 특성으로 인해 언론보도 상에서 모든 이야기들이 공개되기가 어려운 이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과 관련한 해외 언론보도가 북핵 문제에 집중되면서, 한국 관련 이슈가 북핵 문제라는 풀리지 않는 문제에 매몰되고 있다. 이러한 해외 언론의 북핵 편중 보도가 한국과 관련하여 북한 문제에 먼저 관심을 보이는 해외 여론의 기대치를 반영한 결과인지, 아니면 북핵 관련 이슈를 강조하는 언론보도로 인해 한국에 대한 해외 여론의 관심이 북핵 문제를 우선시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닭과 달걀의 문제 자체이기보다는 해외 주요 언론들이 북핵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해외 여론의 초점이 북한 문제에 집중되고, 독자의 관심이 북핵 문제에 집중되면서 한국 관련 뉴스의 초점이 북한 문제에 더욱 편중되는 악순환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라는 중요한 이슈가 그 자체의 화제성보다는 대북 환경 변화의 측면에서 뉴스로서의 가치를 더 인정받는다거나, 대화국면 전개로 인한 대북 긴장감 완화가 한국 관련 뉴스의 가치 하락으로 연결되는 등의 상황은 그 악순환적 구조 강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가속화를 통해 한국의 주요 이슈들이 북한과 북핵 문제에 매몰되는 현재의 상황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성취한 중진국가로서의 한국이 아닌 항상 전쟁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위험국가로서의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감소시킬 뿐 아니라 한국의 주요 외교안보 정책의 방향과 중요성 자체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교안보 거버넌스적 관점에서의 접근과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2. 편향된 해외 언론 노출로 인한 파급효과 관리의 부재
참석자들은 해외 언론에 노출되는 한국의 주요 외교안보 이슈들이 북핵 문제에 편중되어 있는 동시에 미국 편향적인 면이 있으며, 이러한 편향성으로 인해 한국 외교안보의 무게 중심이 미국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인식을 주변 국가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파급효과에 대한 관리는 미흡한 실정이다. 예를 들어, 한미동맹과 양국 공조체제의 강화가 중국에 반드시 적대적인 행위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주요 외교안보 이슈들이 미국 편향적으로 해외 언론에 노출되면서, 중국에게는 한국 정부가 중국을 경시하거나 중국에 적대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여러 채널을 통한 설명으로 이러한 위험을 완화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한일 FTA나 한중 FTA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 두 FTA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국가 간 경제체제의 차이나 산업구조 등 경제적 요인이 핵심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미국 중심적인 외교정책으로 인해 중국이나 일본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한중 FTA와 한일 FTA가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일본과 중국 내에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주변국 여론에 뿌리내리지 않도록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해외 언론보도의 편향성이 야기할 수 있는 파급효과를 인지하고, 불필요한 오해로 인한 잘못된 파급효과들을 개선•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3. 자기중심적인 정부의 홍보 체제
해외 언론에 보도되는 한국의 외교안보 이슈들이 북핵 문제에 치중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뉴스를 생산하여 세계가 한국의 여러 이슈에 대해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다루어지는 이슈들이 해외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한국이 의제를 개발함에 있어서 뒤쳐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설사 의제를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복합적이고 융합적 사고의 부족과 지나친 국내중심적 시각으로 인해 해외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의제를 엮는 능력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와 해외 언론 간 관점의 차이를 인식하고 독자나 외신 기자가 어떠한 정보에 관심을 보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홍보를 위한 홍보를 권위주의적으로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참석자들은 한국이 국내외의 여러 문제들을 너무 국내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는 점을 주요 원인의 하나로 지적하였다. 사실 한국만큼 외국 언론에 비쳐지는 자신에 대한 평가에 대해 예민한 국가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의 문제에 대한 너무나도 한국적인 관점으로 인해, 결국 해외 언론의 국제적 관점까지도 국내적 시각으로 환원하여 버리는 문제까지 발생한다.
아울러 일방적인 홍보활동이 아닌 쌍방적인 의사소통을 통한 정부 정책 설명 노력의 부족도 문제이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국의 주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뉴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 주재 특파원들이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의 하나는 정부 정책을 설명해줄 수 있는 정부측 실무자들을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한 토픽이 아닌 뉴스가 되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시각에서 Story-telling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대변인이 아닌 정책 실무자들은 언론 노출을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책 비판적인 견해만을 확보하거나 이야기 자체를 엮을 수 없어 뉴스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권위주의적 홍보 활동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보다는 복합적 사고를 가지고 다각적 측면에서 양방향의 의사소통을 통해 핵심 의제의 이슈화를 이끌고 해외언론의 관심을 끄는 뉴스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4. 다양한 국제 뉴스 개발에 소홀한 국내언론
마지막으로 한국 언론매체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졌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특파원들 역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기사화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국내 언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언론이 한국의 다양한 뉴스 소재들을 해외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이야기로 엮어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또한, 국내 언론매체들이 다루는 국제 뉴스의 비중이 단편적이고 제한적일 뿐 아니라 해외의 사건사고에 대한 토픽성 기사가 상당 수를 차지한다. 게다가, 이러한 국제 뉴스 역시 자체적인 취재 활동의 결과이기보다는 해외 주요 언론매체들의 기사를 활용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대다수 국내 언론매체가 국제적인 관심을 환기할 수 있는 뉴스를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 주재 특파원들 스스로가 한정된 시간과 자원 속에서 국제적 뉴스를 엮어내는 작업을 담당해야 하지만, 서울에 상주하는 특파원들이 주요 해외 언론매체 당 한두 명에 불과한 현실 속에서 북핵 문제 등 특정 이슈 외에 한국과 관련한 다양한 뉴스가 나오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5. 명확한 철학 개발과 지속적 추진의 필요성
해외 언론 보도와 관련한 한국 외교안보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한국 관련 뉴스의 시장성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국내의 주요 현안들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강대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우리가 복합적•국제적 시각에서 한국의 문제를 이해하고 엮어내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한국과 관련한 뉴스가 해외 주요 언론의 관심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나 참여정부 시절의 균형자 개념과 같이 한국 외교에 대해 논의할 때 기억에 남는 핵심 개념들은 분명 존재한다. 이는 당시 한국 외교안보가 추구하고자 했던 철학과 목표가 무엇이었는지가 이 개념들을 통해 명확히 나타나기 때문이며, 동시에 정부가 지적 상상력과 용기를 통해 새로운 개념을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 외교안보의 뚜렷한 철학을 개발하고, 명확한 정책목표와 내용을 입안하며, 이를 꾸준히 설명하고 추진해야 한다. 국내적•정부중심적 시각을 가지고 해외 언론에 팔리지 않을 이슈를 위한 자의적인 홍보만을 고수하는 태도는 분명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급속히 변화하는 동아시아 및 국제 정세의 흐름에 걸맞는 새로운 복합적인 개념을 개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추진한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의 주요 외교안보 이슈가 해외 언론의 주목을 끌고 세계에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한국 외교안보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중요성, 나아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참석자명단
김병국, 고려대학교 교수
마키노, 요시히로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
손지애, CNN 서울특파원
차두현, 국방연구원 연구실장
첨덕빈, 환구시보 서울특파원
최 강,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최상훈,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서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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