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NK 논평] 거래의 기술 vs. 구조적 위기: 트럼프식 협상과 북한 비핵화의 미래](/data/bbs/kor_issuebriefing/2025052618533550425109.png)
[Global NK 논평] 거래의 기술 vs. 구조적 위기: 트럼프식 협상과 북한 비핵화의 미래
논평·이슈브리핑 | 2025-05-26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중재 방식이 강제적 압박과 제한적 합의에 기초한 브로커적 접근에 가깝다고 진단합니다. 전 소장은 향후 북미 정상회담 또한 이러한 전략 기조의 연장선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협상이 실패할 경우 북한의 도발, 국제 제재 체제의 균열, 한미동맹의 약화 등 복합적 파급효과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한국은 장기 전략 중심의 독자적인 대응 역량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합니다.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I. 트럼프 중재 스타일의 진화와 한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부터 세계 곳곳의 분쟁을 조기에 종식하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미국의 대외 개입으로 인한 국력 손실과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로 패권의 경제적 기반 회복의 목적을 추구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자제(restraint)전략이 여전히 미국의 지구적 리더십을 유지한다는 목표 하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억제실패를 방지하면서 미국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취임 후 100일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다양한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5월 중동 순방 중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된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내 정치·경제 상황을 언급하는 한편, 취임 이후 대외관계에서 주요 협상들을 타결한 성과를 강조하였다. 미국은 유럽, 중동, 남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을 추진하였으며, 향후 미중 관계 및 한반도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협상 전개가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멘, 인도·파키스탄, 이란, 시리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 각지의 이슈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며 자신을 '위기 해결사'로 부각시키려는 외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협상을 통해 외교적 성과를 조기에 가시화함으로써 국내 정치적 지지를 제고하고자 하는 의도도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미국은 세계 패권국으로서 지구적 차원의 군사 및 외교 정책을 주도해왔으며, 다양한 지역에 개입할 때 여러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개입은 국제 질서와 지역 안정을 위한 전략적 목적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났으며, 이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안정자(stabilizer), 균형자(balancer), 중재자(mediator), 그리고 브로커(broker)의 역할이 그것이다.
첫째, 안정자(stabilizer)의 역할은 미국이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 갈등과 위기를 예방함으로써 지역 및 세계 차원에서 평화와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안정자로서 미국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질서의 정합성을 유지하고, 체제 전반의 균형과 안정을 촉진하는 데 주력한다. 이는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글로벌 리더십에 해당하며,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와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기여한다.
둘째, 균형자(balancer)의 역할은 특정 지역에서 어느 한 세력의 패권화 또는 영향력의 편중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개입을 뜻한다. 이는 역내 국가 간 세력 불균형이 갈등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균형자로서의 미국은 갈등의 조정과 완화, 협력의 촉진, 그리고 공동 이익의 증대를 위한 다자적 조율에 집중한다.
셋째, 중재자(mediator)는 갈등이나 분쟁이 발생한 지역에서 당사자 간의 협상과 타협을 이끌어내는 조정자의 역할이다. 중재자는 명백한 중립성을 전제로 하여, 당사자 간 신뢰 구축과 합의 형성에 깊이 관여하며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중시한다. 중재자의 개입은 자국의 직접적 이익보다 국제적 평화와 협력을 지향하는 외교적 관여의 모범으로 간주된다.
넷째, 브로커(broker)는 직접적인 이해관계나 제도적 연결이 없는 국가나 집단 간에 정보와 자원, 협력 기회를 중개하는 역할이다. 브로커는 네트워크 내 구조적 공백을 메우고, 상호작용의 장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립성과 공공성보다는 단기적 실용성과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중시한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반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고 단기적 이득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미국은 단일한 패권국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국제 정치적 맥락과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외교 전략과 역할을 수행해 왔다. 각 역할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시기와 지역에 따라 중첩되거나 혼합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지구적 패권국으로 미국은 안정자와 균형자의 역할을 추구하고 각 지역의 구조적, 장기적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전략은 중재자, 혹은 브로커의 역할로 점차 변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멘, 이란, 시리아 등 주요 현안에서 미국은 군사적 압박과 제한적 협상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외교 전개를 시도해왔다. 여기서 단기적 분쟁해결을 위한 노력을 추구하면서 브로커의 역할에 더욱 치중하였다. 우선, 예멘의 후티 반군과의 협상은 대표적인 사례다. 2025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은 한 달 이내에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겠다는 목표 하에, 후티에 대한 강경한 군사공격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의 공습은 일정한 피해를 입혔으나, 후티의 군사력과 은신 능력, 방공 체계는 여전히 건재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데는 실패하였다. 5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은 후티가 홍해에서의 선박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이를 "항복"으로 규정하고, 미국 또한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양측은 상호 공격 중단이라는 조건부 합의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후티는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및 드론 공격은 지속하겠다고 밝혔으며, 자신들이 미국을 물리쳤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일시적인 홍해 해상운송의 안전은 확보되었으나, 후티의 역량 약화나 중장기적 지역 안정 확보에는 실패한 셈이다.
이란과의 핵 협상 역시 본질적으로 제한적인 합의에 그치고 있다. 2025년 4월, 트럼프 정부는 약 7년 만에 이란과의 핵 협상을 재개하였으나, 포괄적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저지하고자 협상을 시작하였으나, 이란은 민간용 우라늄 농축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역내 친이란 세력들에 대한 지원도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과거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과 같은 종합적 틀 대신, 핵 프로그램의 일시적 동결과 미국의 일부 제재 완화라는 단기적이고 제한적인 교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과 역내 영향력 행사를 전략적 지렛대로 보고 양보할 의사가 없으며, 여전히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 국제 제재 복원 가능성 등 복합적 변수들이 교차하는 상태다.
한편, 시리아 문제와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내전 종료를 계기로 미국의 제재를 해제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협상을 본격화했다. 2025년 5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하였고, 양국은 관계 정상화의 절차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시리아는 천연자원 개발, 광물협정, 석유 공급, 재건 사업 참여 등 경제 협력을 제안하였으며, 미국은 이에 대해 제재 해제를 대가로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내전 과정에서의 인권 문제나 책임 소재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이루어진 합의로 단기적인 이익 교환 중심의 협상이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결국, 트럼프 2기 정부의 중동 외교는 전반적으로 강압적 수단을 활용한 뒤 제한적 양보를 통해 단기 성과를 도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는 제도적 평화나 지속가능한 협력보다는 가시적 외교성과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25년 4월 22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총기 테러 사건은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무력 충돌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양측은 단순한 국지적 교전을 넘어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는 사태에 이르렀고, 양국 모두 핵보유국이라는 점에서 핵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중대한 위기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초기 대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본 사안이 미국과 무관한 지역 분쟁이라는 점을 들어 관망적 자세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파키스탄 측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공식 언급하면서 사태가 고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개입을 결정하였다. 미국의 중재 노력 결과, 인도와 파키스탄은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휴전에 합의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성과를 미국의 외교적 중재의 결과라고 자평하였다.
파키스탄은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중재에 공식적인 감사를 표명하였으나, 인도 측은 양국 간 직접 대화를 통해 이뤄진 합의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미국의 개입 역할을 축소하였다. 이후에도 국경 지역에서 간헐적 충돌이 이어졌으며, 무역, 테러, 카슈미르 지위 문제 등 구조적 갈등 요소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특히, 인도 모디 총리는 파키스탄의 테러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을 새로운 정상상태(new normal)으로 선언하면서 양국 관계는 여전히 긴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조기 종식을 공언하며 중재 노력을 시도하였으나, 전쟁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를 미국이 직접 장기 관리·개발하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주시킨다는 소위 '가자 리조트' 구상의 대강을 언급했지만, 국제법 위반, 인종청소 논란 등의 비판에 직면하였다. 트럼프 정부는 무장해제, 경제 재건, 인프라 개발 등을 통해 전쟁 종식을 유도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실질적인 내용과 성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미국 간의 관계는 점진적으로 악화되었고, 미국의 중동 중재자 역할은 크게 약화되었다. '가자 리조트' 구상은 실용주의적 접근이라는 평가와 동시에, 미국의 자국 중심적 시각을 반영한 비현실적 제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중동 지역 전반의 정세 또한 별다른 돌파구 없이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미국의 외교적 영향력에도 일정한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트럼프 정부의 안보전략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미국의 국력을 활용하여 위기유발, 혹은 강제적 압박 수단 활용 수 협상으로 전환하여 분쟁을 타결하지만, 단기적 외교성과에 그칠 뿐 전체적 질서는 오히려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협상의 진행 과정에서 핵심적이고 구조적인 논점은 상대적으로 회피되고 협소하고 타결가능한 의제에 머물게 된다. 셋째, 미국이 분쟁 자체에 대해서는 중재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협상 이후 이러한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지원과 보증, 제재 이행 등에는 소극적 모습을 보인다. 협상 타결 결과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발생하는 것이다. 넷째, 이 과정에서 미국의 동맹국들의 이해관계가 핵심적으로 걸려있는 경우 동맹에 대한 지원과 지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단기적 이익이나 협상타결 자체의 목적에 집중하면 장기적으로 미국이 동맹국과 추구할 지역질서의 재조정 과정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다섯째,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문제 자체를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국내정치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쟁 해결 절차 및 결과에 대한 신빙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II. 향후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과 성패의 조건
트럼프 정부는 세계 각 지역의 분쟁을 조속히 해결하고 미국의 자원이 소모될 수 있는 개입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 남아시아 등지의 분쟁이 잦아들면 동아시아의 여러 사안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수 있다. 미국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이 미국과 경쟁하는 지역이므로 동아시아의 모든 사안들은 더욱 민감하고 미국의 핵심이익과 연결되어 있다. 한반도의 안보상황, 남북한 관계, 북핵 문제 등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미중 간 지정학적 이익 조정, 세계핵질서의 보존과 유지 등의 거시적 문제가 연결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분쟁 중재 노력을 볼 때 향후 개최될 가능성이 농후한 북미 정상회담의 미래를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과연 북핵 문제가 발생하게 된 한반도의 구조적 문제,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북한의 정치적 지위를 결정하는 문제, 북중러 협력이 야기하는 국제정치적 문제 등 구조적 문제를 온전히 고려해가면서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이익, 미국우선주의에 부합하는 미국의 실익을 챙기는 브로커적 접근, 동맹의 이익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비전통적 접근, 안보와 관련된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기보다 단기적인 협상타결을 추구하는 협상스타일 등 기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북미 정상회담은 궁극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겠지만,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남북 간 군사적 합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와 북한의 정상국가화, 국제사회와 북한 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 북중러 협력이 지역안보에 위협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협력의 방향을 설정하는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스타일로 볼 때, 우선은 북핵 문제 해결을 염두에 두더라도 경제적 접근이 두드러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최근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광물협정은 단순한 경제적 거래를 넘어, 안보 협력과 전략적 연계를 포괄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 파트너십으로 주목받았다. 이 협정은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에 대한 주권을 존중하는 동시에, 미국의 투자, 기술이전, 시장 접근권, 그리고 안보적 협조 체계를 연계한 경제안보 보장형 모델로 설계되었다. 이는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위험 분산, 파트너국의 자립 능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향후 미국의 대외 경제 전략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선례로 평가된다.
이와 같은 모델이 북한과의 협상에도 이론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다. 김정은 체제는 집권 이후 지속적으로 경제 발전과 주민 생활 개선을 주요 국가목표로 강조해왔으며, 외화 획득 및 투자 유치를 위한 정책적 시도도 이어져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보유한 광물 자원에 대한 국제적 투자,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 개발, 인프라 건설, 산업단지 조성 등은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유의미한 경제적 유인으로 기능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으며, 마식령 스키장, 원산관광지구 등 관광산업 육성을 국가적 어젠다로 제시해 왔다. 김정은 정권은 주민 복지를 내세우는 동시에, 외자 유치와 관광객 유입을 통해 대외 경제 개방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전례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북한의 전략적 관심 영역에 일부 부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관광지구 개발이나 광물협정과 같은 경제적 접근이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요구된다. 첫째, 국제사회의 제재가 일정 부분 완화되거나, 최소한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대한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 둘째, 외부 투자자의 안전 보장과 자금 회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프로젝트 운영의 투명성과 감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국제적 협정 또는 다자적 프레임이 구축되어야 한다.
여러 도전 요인들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안전보장의 문제이다.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에서 미국은 경제적 안전보장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지만 정작 협상결과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미국의 기업들이 북한에서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더라도 이것이 북한이 느끼는 안보위협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또한 대외주체들의 활발한 경제활동이 북한 체제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북한은 미국에 대한 최강경의 대응을 주장하며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 능력을 갖추는데 전념하고 있다. 아마도 2차 핵타격능력을 온전히 갖추어 군사적 억제능력을 온전히 확보하는 것이 현재까지 북한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어도 이러한 그간의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가 없을 경우 협상 타결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할 수 있다. 더욱이 러시아로부터 지속적인 군사기술의 이전 가능성이 존재하고, 중국, 러시아로부터 일정한 수준의 경제지원도 가능한 만큼, 북미 협상타결이 사활적인 변수라고 북한이 느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또한 북한은 외부의 감시나 통제, 자금 사용처에 대한 조건부 제한을 체제 위협으로 간주하며, 주권 침해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적 접근의 실현 가능성은 제재 체제, 정치적 신뢰도, 제도적 투명성이라는 복합적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III. 협상 실패 시의 파급효과와 한국의 대응
북미 정상회담으로 북핵문제와 북한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출발점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또다른 실패를 보일 경우 그 파급효과는 더욱 위중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북한 역시 미국과의 협상 결렬 책임을 미국에 돌리고,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여 국제사회에서 공인받으려는 계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후 북한은 핵무기 관련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고, 러시아로부터 첨단 기술을 이전받는 데 더욱 노력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북한이 추가적 핵실험을 하거나 ICBM 시험발사와 같은 고강도 도발을 지속할 경우,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결국 미국 본토에 대한 핵무기 공격 능력과 2차 타격 능력을 갖추어 온전한 억제력 확보를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셋째, 협상이 결렬되면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적 공조체제에 균열이 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핵무기 국가로 공인받으려 할 것이고, 중국, 러시아 역시 협상 결렬 상황을 보면서 한국과 미국 등 주변국의 노력을 비판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대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고, 국제연합을 중심으로 한 대북 제재 역시 심각한 시험대에 놓이게 될 수 있다.
넷째,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미 간 긴밀한 협력과 미래 비전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안보에 대한 한미동맹 역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 방법 및 북한 문제의 미래에 대한 한미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한데, 협상의 진행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이 단기적이고 개별 사안에 집중하는 중재에 제한될 경우 한미관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미 협상이 실패하고 북핵 문제가 진전되지 못하면, 이는 한반도의 구조적 안보 문제로 고착화될 수 있다. 남북 관계 및 평화체제, 더 나아가 통일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일 협력이 강화될 수 있고, 북중러 군사협력 또한 고도화될 수 있다. 안보적 진영 대결과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면 평화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한국의 전략적 과제는 명백하다. 첫째,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로드맵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사안에서처럼 브로커의 역할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수 있다. 동맹과의 협력보다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사안의 성공에 치중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협의의 북핵 문제보다 포괄적인 북한 문제 및 한반도 문제 전체에 대한 한미 간 협력을 최대한 도모해야 한다. 북미 협상의 성공도 물론 중요하지만,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북핵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분쟁의 중재라는 측면에서 단기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군사 억제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미중 간 전략 경쟁 속에서 주한미군의 유연성 및 대북 억제체제 변화 등 다양한 동맹 재편 과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억제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한국의 차기 정부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 전재성_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 담당 및 편집:김채린, 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crkim@ea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