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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Government`s first duty is to protect the people)."

 

도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링컨 못지않게 위대한 대통령으로 불리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안보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야당 및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 동맹국 정상들과의 친밀한 관계(Rapport)를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인 반공주의자였던 레이건은 "자유는 대가 없이 누릴 수 없다"는 원칙 아래 국방력 강화에 온 힘을 쏟았다. 김인영 한림대 교수가 `레이건의 리더십`이라고 표현한 대로, 그는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지목하고 핵 미사일 위협에 맞서 소위 스타워즈로 불린 전략방위구상(SDI)과 군비 증강을 통해 소련 붕괴를 이끌어냈다. 1981년 소련의 SS-20 등 중거리 핵 미사일 철거와 미국의 퍼싱2 등 미사일 불배치를 연결시킨 `제로 옵션` 협상을 제안했고 6년 만에 타결지었다.

 

SDI 발표 후 야당인 민주당과 여론의 반대가 심상치 않자, 수차례 TV 연설을 통해 설득에 나섰다. 당시 민주당이 장악하던 하원 의장 토머스 오닐을 수시로 만나 대화를 나눴고, 백악관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타협점을 찾았다. 대외적으로는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협상함으로써 냉전 종식의 초석을 놓았다. 워싱턴타임스의 도널드 램브로 전 정치부장은 "레이건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정치적 반대세력과도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의사소통 라인을 열어둔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건은 영국 등 우방국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다졌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추도사에서 "레이건은 어떤 지도자보다 자유를 위한 냉전에서 총성 없이 승리한 주인공이 될 만한 자격을 갖췄다"며 소련과 동구권 몰락의 공을 그에게 돌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30여 년 전 레이건 행정부의 국정 운영은 출범 한 달을 맞은 문재인정부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발사대 4기의 보고 누락과 관련해 국방정책실장을 좌천시켰고, 용지에 대해 철저한 환경영향평가를 지시했다. 하지만 보고 누락 처벌과 사드 배치는 별개의 문제다. 지난 4월 동아시아연구원이 전국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드 배치 찬성은 57.2%, 반대는 37.9%로 찬성 의견이 훨씬 더 많았다. 그만큼 한반도 상공을 가로지르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민 불안이 크다는 방증이다.

 

현행 환경영향평가법 제10조와 제23조에는 `군사상 고도의 기밀보호가 필요하거나 군사작전의 긴급한 수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전략·일반 평가를 실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이런 예외 규정은 제쳐 둔 채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보다 평가항목이 많고 절차가 까다로운 환경평가를 서둘러 추진하려는 모습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만일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사드 배치를 전면 유보할 생각이라면 먼저 야당과 국민에게 사드 추진 경과와 문제점, 전력공백을 메울 대안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순서다.

 

사드 배치 지연은 국론 분열은 물론 한미동맹의 근간을 훼손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는 민주적·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내 조치일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미국은 "김정은의 무기 위협을 막아낼 중요 시스템인데 왜 거부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심쩍게 여기는 눈치다. 국가 간 동맹은 신뢰가 생명이다. 64년간 이어져 온 혈맹이라고 해도 우리가 미국에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고선 한반도 유사시 대규모 군사 지원을 바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내심 사드에 대한 중국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추가 배치를 늦추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8일 5번째 미사일 도발에서 보듯이 북한은 무력 강화로 체제유지를 추구하는 노선을 고집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한 탈북자는 "김정은은 핵 실험이 성공하기 전까지 대북 유화 제스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사드 연기는 중국의 집요한 압박에 굴복하는 모양새로 비쳐 자칫 중국의 대북 정책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의 친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좌측 깜박이 우회전`이라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국가안보와 한미동맹을 위해 이라크 파병과 제주해군기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자주`를 외쳤던 노 전 대통령도 북한 위협의 현실 앞에서 미국의 안보 제공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드 연기에 따른 한미동맹의 균열과 소모적 논란을 막으려면 어느 때보다 지도자의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금은 `진영 논리`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챙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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