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인 지시로 자료 유출됐다면 박 대통령은 감옥행"
| 2016-10-31
김도균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의 시계는 거꾸로 흘러갔다."
지난 20여 년 동안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을 낱낱이 해부한 <시크릿파일 국정원>을 낸 김당 전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본부장(편집국장)이 내린 결론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선개입 댓글공작, 불법해킹, 간첩조작을 자행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과거 북풍과 총풍, 세풍 사건을 주도했던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과거로 회귀한 국정원의 모습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역대 국정원장을 비롯한 50여 명의 전·현직 요원들과의 인터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라는 점에서 김 전 본부장의 분석은 자못 무게감을 갖는다.
'5000명이 넘는 인원이 연간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하는' 국정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정부이지만, 정보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국회에 설치된 정보위원회가 국정원의 활동을 통제해야 하지만 이는 다분히 형식적일 뿐이다. 국가와 시민에게 더없이 중요한 조직일수록 소홀히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은 국정원에도 해당된다는 것이 김 전 본부장의 지적이다.
오직 대통령만 바라보고 대통령에게만 충성을 다하는 국정원은 그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지난 대선이 증명하듯 대통령과 원장의 '선한 의지'에만 국정원을 맡겨두기에는 전 국민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
김 전 본부장은 국정원을 신뢰받는 국가정보기관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시민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책에 '정보기관 사용설명서'란 부제가 붙은 까닭이다. 그는 <시크릿파일 국정원>이 도대체 국정원은 어떤 조직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쉽게 설명하는 입문서라면 곧 출판될 2권은 실제 국정원의 조직과 예산, 기능에 대한 심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전 본부장은 최근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는 '부패 스캔들'을 넘어서 '국가보안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중대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당장 국정원이 보안시스템의 뚫린 구멍을 찾기 위해 보안누설 조사를 실시해야 하며 그 대상에는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만약 대통령의 지시나 묵인 아래 대통령 측근인사들이 최씨한테 이메일로 보냈다면, 미국처럼 대통령도 기소되어 감옥에 가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20일 오후 국회 앞마당에서 김 전 본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으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이후 일부 문답을 추가했다.
"정보 하는 사람이 수사까지 하면 늘 불법의 유혹 받아"
- 국정원 전문기자로 알려져 있다. 언제부터 국정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1994년 국회에 정보위원회가 설치되었고, 이듬해 국가안전기획부가 내곡동으로 옮겨가면서 처음으로 정보기관에 공보관 자리가 만들어졌다. 국정원이 대통령 직속기관이어서 형식적으로는 청와대 출입기자가 담당하게 되어 있는데, 사실 상시적으로 취재하는 사람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국정원이 일종의 틈새시장이었던 셈이다."
- 책이 나온 후 국정원 쪽의 반응이 있었나.
- 국정원의 역사에 대해 다루면서 편제는 CIA를 따랐지만 탄생 배경은 소련의 KGB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정보기관보다는 체제 유지를 위한 비밀경찰로 기능했던 과거를 비판했던 것으로 읽히는데, 이 지적은 지금도 유효한가.
국정원은 북한이라는 적국이 있기 때문에 수사권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지금도 구사하고 있지만, 이것은 정말 냉전시대에나 가능한 논리다. 또 지금은 수사권이 불법적이나 초법적으로 행사되고 있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부 감찰 등을 통해 유지될 뿐이다. 근본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이 수사까지 하게 되면 늘 불법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아닌가. 영사증명서까지 위조해서 간첩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나. 결국은 이런 일을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수사권을 환원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 국정원을 개혁하려는 여러 차례의 시도가 있었다. 성과와 한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어쨌든 김대중 정부에서는 적어도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중립성의 토대는 닦았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토대 위에서 노무현 정부가 이른바 '4대 권력기관 힘빼기' 차원에서 국정원 제자리 찾기를 시도했고 실제 어느 정도 성과를 봤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2005년부터 지식인을 대상으로 국내 파워집단 영향력 조사를 하고 있는데,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국정원은 한 번도 10위권 안에 들지 못했다. 순서도 다 검찰, 경찰, 국세청 다음으로 나왔다. 이건 굉장한 변화인데,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국정원은 과거로 회귀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원세훈 전 원장의 정치개입이고 유우성 조작간첩 사건 아닌가."
"대통령-국정원장의 선한 의지만 믿고는 국정원 개혁 불가능"
- 보수세력은 국정원이 북한 정보에 대해 '깜깜이'가 된 것이 햇볕정책 탓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김대중 정부 시절 4000명의 대공전문가들이 강제 퇴직을 당했다고 하는데.
- 박근혜 정부 이후 다음 대선에서 보수정부가 정권을 이어간다면 국정원 개혁의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정원이 과거로 회귀했기 때문에 지금 가장 시급하고 확실한 방법은 바로 정권교체다. 실제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두 번의 총선과 두 번의 대선을 치르면서는 아무런 중립성 시비가 없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정권교체가 되면 다시는 댓글공작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것이다.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선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정원장 인준청문회 도입이나 국정원장 임기제, 또 내부 고발자 보호 제도를 강화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국정원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비밀이기 때문에 내부 고발자가 고발하지 않고서는 알기가 어렵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익명의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어떤 행동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이라는 유혹을 늘 받을 수밖에 없다."
- 국정원 역사를 통틀어 베스트 원장과 워스트 원장을 한 사람씩 뽑는다면.
결국은 문민화가 진행된 김대중 정부 이후의 원장들 중 뽑을 수밖에 없는데 국정원 직원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은 2001년 3월 취임한 신건 전 원장이다. 신 전 원장은 취임 후 1(해외)·2(국내)·3(대북) 차장과 기조실장을 모두 내부에서 발탁해서 조직의 사기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 국정원이 중립적인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과거로 회귀했다는 점에서 원세훈 전 원장은 단연 최악의 원장이었다."
최순실 연설문 수정 논란 "보안 사고 조사? 대통령도 예외 없어"
-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국정원은 최순실씨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고 보는가.
- 민간인 최순실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PC에서 대통령연설문과 기밀 외교문서, 남북 군사접촉 관련 문서까지 발견되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하나.
- 보안사고는 국정원 소관이 아닌가.
- 만약 대통령의 지시나 묵인 아래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최씨한테 이메일로 보냈다면 어떻게 되나.
만약 힐러리가 개인 이메일을 사용해 정부 인사가 아닌 민간인에게 유출했다면 기소되어 감옥행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부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실수로 CIA 공작원 이름을 언급해 자청해서 보안누설 경위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도 '형사소추 목적의 수사가 아닌 보안시스템 유지를 위한 보안누설 조사는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없이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
- JTBC의 추가보도에 따르면, 최씨의 태블릿PC에서 남북한 군당국 비밀접촉 시나리오 문건도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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