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외교, ‘갑툭튀’가 아니다
| 2016-11-12
나지원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선에서 당선이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성조기를 배경으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외교, ‘갑툭튀’가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용당하고 호구 잡히지 않을 것이다!”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 유세 기간 중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단정했다. 미국이 이용당하고 있고(taken advantage of) 심지어 호구(ripped off)라고 하는 트럼프의 진단을 전문가들은 냉소하고 비판했지만 미국의 대중은 열광적인 호응을 보냈다.
막말과 기행으로 정치적 명성을 얻은 트럼프의 행보는 외교문제 관련 발언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특히 미국의 잠재적 경쟁상대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그의 ‘막말’에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그가 미·중관계에 관해 집요하고 일관되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중국이 미국의 선의와 관대함을 남용하기 때문에 미국이 항상 중국에 ‘호구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중국의 ‘영리하고 약삭빠른 지도자들’과 미국의 ‘유약하고 무능한 지도자들’을 대비시키는 수사법을 즐겨 사용했다.
‘미국 우선주의’ 내세운 인물들 많아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들조차 트럼프의 과격 발언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경제적·지리적으로 밀접한 멕시코 정부에 대해 “문제가 많은 사람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면서 “남쪽 국경에 거대한 벽을 쌓겠다. 돈은 멕시코가 내게 하겠다”고 주장했던 것은 유명한 일이다. 더욱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해 한국, 일본과 같은 오랜 동맹들마저도 미국의 호의를 이용하고 착취하며 무임승차하고 있다면서 미국 국민들의 피해의식에 호소했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트럼프의 막말 퍼레이드는 독선적이고 이분법적인 외교정책으로 비판받았던 조지 부시와 그의 측근들에게조차 비판받았다. 그렇다면 과연 ‘트럼프 현상’은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돌발상황일까? 그렇지는 않다.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트럼프의 등장과 그에 대한 열광은 결코 예외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분출되는 미국 정치문명의 단면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뿌리는 결코 얕지 않다.
지난 7월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요새 보수주의’로 정의했다. 외부세계와 담을 쌓고 오로지 미국의 안보와 경제적 우위를 방어하는 데에만 치중하려는 전형적인 백인 노동계층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표방하는 미국 우월주의, 제조업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백인 우월주의에 기초한 국가주의는 이미 미국 정치사에서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인물들이 제시한 정치 슬로건이었다는 점이다. 즉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는 우리에게도 유명한 맥아더와 찰스 린드버그가, 제조업 쇠퇴에 대한 위기의식과 보호무역주의는 1992년 무소속 대선 후보로 출마했던 기업가 로스 페로가, 인종차별에 기반을 둔 강력한 법치는 앨라배마 주지사였던 조지 월레스가 내세운 강령이었다. 다만 트럼프가 이들과 다른 점은 그 모든 극단적 이념을 한데 합쳐놓은 ‘끝판왕’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미국 정치의 정치제도와 문명이 낳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이념을 트럼프가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평가는 ‘트럼프 현상’ 혹은 ‘트럼프주의’가 미국 정치에서 있을 수 없는 ‘비정상’이 아니라 드물기는 하지만 정상범위 내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의 공약이 대중의 환호와 결합하면서 연출되는 일련의 ‘트럼프 신드롬’은 미국의 전통적 정치사상 중에서도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에 강하게 호소하는 ‘잭슨주의(Jacksonian)’ 전통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미국 국익 최우선 고립 노선 ‘잭슨주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1767~1845)의 이름에서 비롯된 이 정치관은 민주주의 확산을 포함해 어떠한 명분을 위한 대외적 국력 소모에도 반대한다는 점에서 겉보기에는 고립주의적이다. 이 고립주의 노선의 강력한 동력원은 경제위기로 인한 대중의 불안, 그리고 경제가 불안할수록 값비싼 대가를 동반하는 대외 개입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혐오다. 철저히 미국의 국익만을 바탕에 깔고 있는 고립주의, 경제우선주의, 그리고 포퓰리즘이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난다. 잭슨 대통령은 아일랜드 이민 2세이자 고아 출신으로서 엘리트주의를 배격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내세웠던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주류 언론들로부터는 “체신머리없는 대통령”으로 불렸으며 대통령 취임 후 하버드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려 하자 정적들이 “철자법도 모르는 인간에게 박사라니 가당치도 않다”는 공격을 받을 만큼 그는 어느 모로나 미국적 포퓰리즘의 상징과도 같은 대통령이었다.
오로지 (일반 대중이) 잘 먹고 잘사는 강한 미국을 만드는 데에만 신경 쓰면 된다는 포퓰리즘은 외교정책에서는 민주주의의 확산이나 자유무역의 보장과 같은 보편적 가치의 전파, 그리고 동맹과의 관계 유지 등에는 전혀 무관심한 고립주의로 나타난다. 4월 27일 연설에서 트럼프가 “서구 민주주의에 관심도 없고 민주주의를 경험해본 적도 없는 국가들을 우리가 민주화할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민주주의 전파를 위한 대외적 개입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힐러리 클린턴과 달리 아시아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이념이나 가치로 외교정책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입장을 드러낸다.
그러나 ‘강하고 언제나 이기는 미국’에 대한 깊은 신념 때문에 잭슨주의자들은 부당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맞서는 외부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잭슨주의자들은 이처럼 이기적인 고립주의로 출발했으면서도 어느 순간 공격적인 개입주의로 뒤바뀌는 경향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단적인 예다. 그는 불황이 극심했던 1980년 집권해 감세와 긴축재정으로 대표되는 국내 경제정책에만 집중하는 듯했다. 그러나 임기 후반기로 갈수록 레바논 파병과 리비아 폭격, 포클랜드 전쟁 등 군사적 행동에 나섰다. 고립주의와 개입주의의 양 극단을 오고 간다는 점에서도 레이건은 전형적 잭슨주의자라고 부를 만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국을 지키느라 국력을 소모하는 사이에 동맹국들은 미국 시장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비논리적이고 억지스럽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시작한 중동 개입의 여파가 오바마 집권기까지 이어지고, 미국의 ‘서민’ 계층이 경기회복의 효과를 생각보다 크게 체감하지 못하면서, 미국이 굳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고 때로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타국의 안보를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강한 회의감이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고 있다. 트럼프의 주장은 그런 대중의 감정에 제대로 편승했다. 비록 논리는 허술할지 몰라도 영악하고 비겁한 외국 세력과 정의롭고 강하지만 그 힘을 허비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일관되게 전달함으로써 미국 대중의 도덕적 우월감, 강한 힘에 대한 열망, 그리고 경제적 손실에 대한 보상심리를 한꺼번에 충족시킨 것이다.
트럼프는 11월 8일 당선 확정 후 한국 등 주요 우방 정상과의 통화에서 의외로 평이하고 무난한 내용으로 기존 외교관계를 존중할 것임을 밝혔다. 대통령으로서의 트럼프가 실제로 자신이 내걸었던 모든 외교정책 공약을 실천에 옮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그가 선거과정에서 일깨우고 부추긴 잭슨주의적 충동은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 현상’의 본질은 비정상적 일탈이라기보다 미국의 정치문명에 잠재되어 있다가 취약한 순간 주기적으로 표출되는 ‘본능’에 가깝다. 문제는 미국이 국제 체제의 선도국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20세기 중반 이후, 이처럼 노골적으로 (고립주의와 포퓰리즘으로 대변되는) 잭슨주의를 표방한 대통령의 등장은 처음이라는 점이다. 21세기에 부활한 잭슨주의는 어느 시대보다 국제화된 미국 사회에 격변이 일어날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안보와 교역 등 국제정치의 어떠한 현안도 미국과의 관계를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많은 국가들에게 대외정책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암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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