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Editor's Note

한국 대학교육의 실험장처럼 여겨졌던 KAIST의 네 젊은 대학생과 한 교수의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뒤늦은 개혁안 마련에 모두들 부산하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교육은 우리의 미래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 미래에 대한 경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KAIST 개혁을 넘어선 교육 개혁이고 미래 개혁이다. 더 이상 늦기 전에 미래의 철학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궤도수정을 해야 한다.

韓末 지식인 유길준은 경쟁의 得失 꿰뚫어봤는데 130년 뒤의 우리는초보적 경쟁론에 머물러

카이스트 개혁 논란, 경쟁예찬론 vs 경쟁비판론 이분법 벗어나야

 

한국 대학교육의 실험장처럼 여겨졌던 KAIST의 네 젊은 대학생과 한 교수의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뒤늦은 개혁안 마련에 모두들 부산하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교육은 우리의 미래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 미래에 대한 경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KAIST 개혁을 넘어선 교육 개혁이고 미래 개혁이다. 더 이상 늦기 전에 미래의 철학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궤도수정을 해야 한다.

 

이번 비극의 뿌리에는 초보 수준의 경쟁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죽음까지 불러오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경쟁이란 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말(韓末)의 개화지식인 유길준은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서 1883년에 '경쟁론(競爭論)'이라는 짧은 글을 썼다. 경쟁이란 말이 한국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유길준은 몇 년 뒤 쓴 '서유견문'에서는 '경려론(競勵論)'을 펴고 있다.

 

앞글은 "만일 인생에 경쟁하는 바가 없다면 무엇으로 지덕(知德)과 행복을 높이고 진전시킬 수 있으며 국가가 경쟁하는 바가 없다면 무엇으로 빛나는 위신과 부강을 증진할 수 있겠는가?"라고 시작하는 전형적인 경쟁예찬론이다. 그러나 뒷글은 "경려를 선용하면 세상의 큰 복(福)을 이루고, 경려를 악용하면 세상의 큰 화(禍)를 키우므로 그 취사선택이 세상화복의 관건이다"라고 끝맺고 있다. 이처럼 유길준의 초보적 경쟁예찬론은 보다 신중한 경쟁화복론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 서양의 경쟁(competition)론이 일본을 경유해서 도입된 지 벌써 130년이 지났으나, 우리는 아직도 유길준의 초보적 경쟁론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쟁의 화복적 양면성을 해결해 보려는 가장 대표적 시도는 18세기 루소의 교육론이다. 그가 한평생 괴로워했던 것은 인간들은 원래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자연인으로 태어났는데 왜 서로 미워하는 사회인으로 변했는가라는 의문이었다. 루소는 그 책임을 잘못된 경쟁애(競爭愛·amour-propre)에서 찾고 있다. 맹목적 경쟁애는 자기애(自己愛·amour-soi)를 완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에 비치는 자기를 허망하게 사랑하다가 자기파멸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더 이상 경쟁 없는 자연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다. 루소는 그 해결책으로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경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나와 남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감성(感性)교육 위에 나와 남의 이해타산을 따지는 이성(理性)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KAIST 개혁의 열쇠는 경쟁체제의 완화가 아니라 사랑에 기반을 둔 경쟁체제의 구축이다. '경쟁(競爭)'의 한자 어원을 보면 신(神)을 모시는 두 사람이 함께 축사(祝辭)를 올리는 모습과 막대기를 위아래에서 붙잡고 서로 잡아당기는 모습이다. 반면에 '사랑(愛)'의 한자는 상대방에게 마음을 두고 뒤돌아본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사랑의 모습을 구체화하려면 형식적인 멘토 제도의 강화로 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전력투구해서 마련한 경쟁체제에 상응하는 사랑체제의 구축을 위해서 우선 교수 스스로가 연구자인 동시에 교육자라는 소명감을 가지고 사랑에 기반을 둔 경쟁교육을 개발해야 한다. 동시에 이를 위한 인적·물적 지원이 과감하게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KAIST의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국제화를 위한 영어강의 100%는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KAIST만의 문제가 아니다. 21세기 선진국가가 되기 위해서 어떤 언어로 교육시켜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은 현재 태어나서부터 영어 열병을 앓고 있다. 그러나 정답은 완벽한 모국어에 기반을 둔 완벽한 영어교육이다.

 

이를 위해서는 영어강의는 원칙적으로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하는 교수들에 의해 진행하고, 해외 교환학생 제도를 필수화해야 하며, 동시에 완벽한 모국어로 세계적인 지적 분석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강의가 병행돼야 한다. 따라서 현재처럼 대학교육의 국제화 수준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영어강의 비율이라는 잣대로 측정하려는 구시대적 촌스러움은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경쟁예찬론과 경쟁비판론의 이분법적 논쟁을 벗어나서 사랑에 기반을 둔 경쟁사회의 미래를 가꿔 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한 세기 전 유길준이 가졌던 경쟁화복론의 걱정을 졸업하게 될 것이다.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