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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이슬람 문화권의 튀니지·이집트의 민주화 열풍이 드디어 리비아에 상륙하는 거대한 변화 속에 오랫동안 준비했던 기독교 문화권의 유럽제국(帝國) 답사를 21세기의 한국과 아시아를 짊어질 대학생 30명과 함께 열흘간 다녀왔다.

1884년 보빙사 일행이 들렀던 유럽의 중심지,

120여년 만에 다시 찾은 우리 청년들은 당당했다

새로운 문명의 표준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이슬람 문화권의 튀니지·이집트의 민주화 열풍이 드디어 리비아에 상륙하는 거대한 변화 속에 오랫동안 준비했던 기독교 문화권의 유럽제국(帝國) 답사를 21세기의 한국과 아시아를 짊어질 대학생 30명과 함께 열흘간 다녀왔다.

 

한국인들의 공식적인 근대유럽 첫 방문은 1884년 초 민영익을 단장으로 하는 미국 방문 보빙사(報聘使) 일행이었다. 미국 정부가 제공한 군함 트랜튼호를 타고 귀국길에 마르세유에 도착하여 파리·런던·로마를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안내역으로 동승했던 미국 해군 소위 포크는 민영익이 서양문명을 열심히 관찰하지 않고 가져온 책만 보려 한다고 불평했지만 미국에 이은 유럽 여행은 아직 20대였던 보빙사 일행들에게는 충분히 부럽고 놀랄만한 것이었다. 당시 주한미국공사 푸트는 "광명의 세계에서 암흑의 세계로 돌아온 것 같다"는 보빙사 일행의 귀국 소감을 전하고 있다.

 

그로부터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21세기 초 젊은 대학생 답사대는 민영익 일행과 비슷한 여정을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근대 유럽의 뿌리인 고대 로마제국에서 시작해서 근대 유럽제국의 수도들이었던 암스테르담·런던·파리, 그리고 미래 유럽의 중심인 브뤼셀을 미리 작성한 답사보고서에 따라서 초고속으로 돌았다. 민영익과 동갑내기인 답사대들은 주눅 들기보다는 당당했으며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답사에는 숨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우선 제국 흥망의 비밀캐기다. 제국의 '帝'자는 원래 신(神) 중에서 최고의 신인 상제(上帝)에게 제사지내는 상(床)의 모습을 상형화한 것이다. 따라서 제국은 다른 나라에 전지전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고의 신국(神國)을 의미한다. 오늘 격랑을 겪고 있는 이슬람 문화권은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1000년을 선진 제국으로 군림했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기독교 문화권의 유럽 국가들이 선진 이슬람문화의 전파 속에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꿈을 지난 500년의 근대 국제질서 현실 속에서 펼쳐왔으며, 유럽의 전통을 이어받은 미(美) 제국은 '천년 제국'의 꿈을 마저 완성해 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 속에서 천하국가(天下國家)의 역사적 체험을 가진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도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기 시작하고 있다.

 

제국 흥망의 핵심은 시대에 걸맞은 문명표준을 누가 주도하느냐에 달려 있다. 신(新)천년제국의 등장을 새롭게 읽기 위해 구(舊)천년제국의 전반부를 주도했던 유럽 국가들이 어떻게 새로운 문명표준으로서 부국과 강병을 목표로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근대국가체제를 마련하고 유지해 왔는가를 보러 간 것이다. 우리를 맞이하는 유럽은 청년답사대에 비해서 조금은 나이 들어 보였고, 브뤼셀의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회춘(回春)을 위한 영약(靈藥)을 만들기 위해 부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갈 때마다 들르는 오베르쉬르와즈의 고흐 묘지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늦겨울 비를 맞으며 30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고흐 형제의 아이비 덮인 흙 무덤 앞에서 그림의 표준이 아니라 삶의 표준을 다시 생각하면서 묵도를 했다. 그리고 런던의 데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21세기 국제정치학자들보다 적어도 반세기는 앞서 가고 있는 20세기 전위예술의 실험정신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표준 싸움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번 답사의 마지막 목적은 한국과 동아시아의 21세기 신화 창조였다. 20세기의 짧은 100년 동안 망국(亡國)에서 흥국(興國)이라는 신화 창조에 성공한 한국은 21세기를 맞이해서 신문명 한국이라는 제2의 신화 창조를 앞두고 있다. 신화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화는 인간들이 꿈꾸는 세상의 얘기다. 이 글을 쓰면서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서는 민주화의 대변혁에 직면한 카다피가 지지자들과 외신기자들을 모아놓고 리비아가 얼마나 인민의 국가인가라는 연설을 끝도 없이 계속하고 있다. 그곳에서 세계가 꿈꾸는 얘기를 찾기는 어렵다.

 

21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세계가 꿈꾸는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세계가 모두 부러워하는 천년의 꿈을 꾸기 시작해야 한다. 젊은 답사대의 10일간의 유럽 둘러보기는 천년의 한국, 아시아, 그리고 지구의 꿈을 키우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다. 천년 앞을 내다보고 벌어지는 새로운 꿈의 표준 경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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