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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퓨리서치센터는 지난 6월19일 최근 몇 년 동안 고소득 국가들 민주주의 만족도가 낮아졌다는 보고를 했다. 2021~2024년 추이를 국가별로 비교하고 있는 이 보고서에서 한국은 2021년 53%였던 만족도가 2024년 36%로 17%포인트 낮아져 21%포인트 하락한 영국에 이어 주요국 중 하락 폭이 둘째로 컸다.

민주주의 만족도 큰 폭 하락한 한국

한국을 포함한 6개 국가에서 두 자릿수 하락이 있었다고 밝혔는데, 주요국의 하락 폭은 다음과 같다. 영국과 한국에 이어 캐나다 14%포인트, 독일 11%포인트, 미국과 그리스 10%포인트, 프랑스 9%포인트, 네덜란드 8%포인트, 일본 7%포인트로 주요국 모두 하락했는데, 퓨리서치센터는 주요 12개 국가 중 만족도가 상승한 국가는 없다고 한다. 이렇게 주요국 모두에서 민주주의 만족도가 하락했다는 것은 어쩌면 2021년 무렵 민주주의 만족도의 평균적 상승과 2023년 이후 하락이 전 지구적 이슈에 의한 영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유독 영국과 한국에서 하락 폭이 컸다는 사실과 함께, 아시아 태평양권에서 유독 일본·한국·스리랑카만이 만족 응답 대비 불만족 응답이 뚜렷하게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만족한다는 응답이 불만족한다는 응답보다 많은 국가는 싱가포르(80%)·인디아(77%)·태국(64%)·호주(60%)·필리핀(57%) 등이고, 말레이시아는 만족(51%)이 불만족(49%)과 대등했다.

일본도 만족도가 7%포인트 하락했다고 하지만, 2021년에는 만족도가 38%였다가 하락한 것으로 원래 불만족 응답이 더 많았다는 건데, 한국은 과반이었던 만족 응답이 36%가 된 것이니 하락 폭이 클 뿐 아니라, 만족과 불만족이 뒤집힌 결과로 주목된다. 이처럼 절반을 넘던 만족 응답이 절반 아래로 하락한 국가는 영국과 한국뿐이다. 전 지구적 이슈에 의한 출렁임과 함께 두 국가만의 독특한 상황이 반영된 것일 수 있겠다.

한국, 정치 갈등 가장 심각한 나라

그런데 퓨리서치센터가 2022년에 조사해 낸 보고서에 의하면, ‘지지하는 정당이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충돌이 강하다’라는 응답이 가장 많은 국가가 바로 한국임을 밝혔다. 미국과 거의 비슷한 정도였다. 한국 응답자 중 90%, 미국 응답자 중 89%가 충돌이 강하다고 응답했다. 그렇지만 충돌이 매우 강하다는 응답은 한국에서 49%, 미국에서 41%로 달랐다. 한국민 중 자국 내 정치적 갈등이 매우 강하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는 거다.

필자는 앞서 민주주의 만족도가 낮아진 국가들을 2022년 자국 내 정치적 갈등에 대한 평가 결과와 비교해 봤다. 북미에서는 미국민 중 89%가 충돌이 강하다고 했는데, 캐나다는 66%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2024년 민주주의 만족도에서 미국에서는 68%가 불만족한다고 했는데 캐나다는 52%가 만족한다고 했으니, 대략 정치적 충돌에 대한 평가가 민주주의 작동 방식에 대한 만족도에 영향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아시아·태평양 권역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강하다는 응답이 한국에서 90%, 말레이시아에서 69%로 나타났지만, 호주와 싱가포르는 강하지 않다는 응답이 각각 55%와 57%로 더 많았다. 민주주의 만족도와 비교하면 대략 비슷한 흐름이다. 일본만 독특하게 충돌이 강하지 않다는 응답이 53%로 과반인데, 민주주의 작동 방식 만족도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을 제외한다면, 정치적 충돌이 강하다는 응답이 많을수록 민주주의 작동 방식 만족도는 낮게 나타난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물론 정치 갈등 심화와 민주주의 작동 방식 만족도 하락이 이렇게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시기가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22년, 그리고 출범 후 몇 년 동안에 발생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감정적 균열 강한 한국

국내 연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동아시아연구원을 통해 공개한 ‘한국 유권자의 당파 분열과 당파 정렬: 2012년 및 2022년 대통령 선거 비교’라는 보고서에서 10년 전 대비 감정적 당파 정렬은 심각한 상황이고, 진보와 보수 성향 유권자 모두에게서 감정적 당파 정렬이 매우 강해졌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감정 차원의 유권자 당파 정렬은 2012년 선거에서 보수정당 ‘고 호감’ 유권자 및 ‘저 호감’ 유권자를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2022년 선거에서 진보정당 ‘고 호감’ 유권자는 25.5%포인트, 진보정당 ‘저 호감’ 유권자는 39.2%포인트 각각 선호 정당과의 정렬 강도가 높아졌다. 보수정당 ‘고 호감’ 유권자는 3.1%포인트, 보수정당 ‘저 호감’ 유권자는 13.2%포인트 각각 선호 정당과의 정렬 강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박근혜 대 문재인 대통령 선거보다, 2022년 윤석열 대 이재명 대통령 선거 때 진보정당에 높은 호감도를 보인 응답자 중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보수정당에 대한 호감도에 따른 보수후보인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 빈도 역시 비슷하게 양극화됐다는 분석이다.

서두에서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 한국에서 두 자릿수로 민주주의 작동 방식 만족도가 하락했다는 분석과 함께 읽는다면, 어쩌면 지난 2012년 대비 2022년의 대선에서 나타난 감정적 정파 정렬 현상이 민주주의 작동 방식 만족도를 하락시킨 원인으로 지목될 수도 있겠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해서 원인을 단정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김정 교수 연구에 따르면 “2012년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념적 당파 정렬이 유권자의 투표 선택을 좌우했다고 한다면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감정적 당파 정렬이 유권자의 투표 선택을 좌우했다”고 하며, 또 “유권자의 감정적 당파 정렬 강도의 증가는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념적 정파 정렬이 갖는 건설적 효과가 감정적 당파 정렬에 의한 파괴적 효과에 의해 상쇄돼 민주주의 퇴행 위험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섬뜩하다.

중도 소외 가속화와 정치의 후퇴

필자는 지난 대선 후 최근까지의 양대 정당 내 민주주의를 지켜보면서 위와 같은 현상, 즉 국내 양대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간의 충돌 양상이 극심해진 결과가 다시 두 정당의 성격을 바꾸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심과 괴리된 당심만으로 당 지도부를 선출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양념처럼 20%를 반영하는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원내 최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당대표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80~90%로 높지만 정당 지지도는 총선 승리 후에도 그다지 변화가 없이 20% 중후반대에 고착돼 있다.

이처럼 양당은 자당 지지자 중심의 정치를 강화해 왔다. 일부 유튜버에 의한 영향이 지배적이라고는 하지만, 각 진영 내 영향력이 큰 유튜버에게 정당의 본원적 기능 일부를 의탁해 온 결정은 각 당 지도부의 전략적 선택이다. 즉, 각 당 외부에서 진영 내 유권자의 정치 콘텐츠 구매력에 의존하는 유튜버에게 당의 정체성을 맡긴 건 그 정당 지도부였다는 것이다.

이런 선택의 배경에는 중도 성향 유권자의 경제적 선택 경향이라는 정치적 욕구를 만족시킬 역량이 두 정당 모두 현저히 하락해 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 투표자에게 호소하는 것보다는 혐오에 기반한 진영 투표 경향에 의존하는 것이 가성비가 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중도 성향자 소외는 국가 경제 운영 능력 저하에 의한 어필 포인트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에 위 민주주의 작동 방식 만족도 보고서의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등 7개국에서는 35세 미만의 성인들이 50세 이상과 비교해 민주주의에 더 만족하고 있다”는 것인데, 역으로 해석하면 국내 50세 이상 고령자 중에서 더 민주주의 만족도가 낮은 것은 어쩌면 더 감정적 균열이 깊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결국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면 이제부터라도 국가경제와 민생을 위해 감정적 균열을 좁히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50세 이상 기성세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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