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정은 후계구도 공식화
| 2010-11-02
안중열기자
지난 9월 28일 북한은 44년 만에 당 대표자회를 비공개적으로 개최해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와 함께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과 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을 부여하며 3대 권력세습을 공식화했다.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는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의 공식무대 등장을 예상하긴 했지만,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이라는 파격적인 직책을 부여하며 발 빠른 권력승계과정을 보여준 북한의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9월 28일 북한은 44년 만에 당 대표자회를 비공개적으로 개최해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와 함께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과 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을 부여하며 3대 권력세습을 공식화했다.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는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의 공식무대 등장을 예상하긴 했지만,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이라는 파격적인 직책을 부여하며 발 빠른 권력승계과정을 보여준 북한의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해외 유학 등의 이력을 갖춘 김정은의 등장과 함께 북한이 개혁 . 개방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는 일부 기대도 있었지만 결과는 철저하게 후계 권력구도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경뉴스>가 김정은 권력세습이 향후 남북관계와 국제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폈다. <편집자 주>
세계 주요 언론들은 김정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부자가 함께 모습을 드러낸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 대대적인 관심을 보였다.
로이터 통신은 평양발 기사에서 김정은이 김 위원장 가까이에 서서 열병식에 박수를 보내고 경례를 받으면서 군부에 데뷔하고 자신의 위상을 강화했다고 전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김정은이 이날 열병식에서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면서 북한 관리들의 말을 인용, 이것이 선군정치 계승을 뜻한다고 보도했다. BBC 방송은 이날 열병식을 ‘김정은의 힘을 과시하는 행사’로 표현하기도 했다.
AP 통신 역시 평양발 보도에서 김정일 부자가 나란히 열병식을 지켜봤다면서 일부 전문가는 이날 김정은이 군복을 입고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검은 옷을 입었다고 전했다. 또한 AFP 통신은 북한이 군사력과 함께 후계자를 보여줬다며 이날 열병식을 권력승계 과정의 서막을 알리는 공개 행사로 기획됐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언론을 포함한 서방 언론매체들이 사상 처음으로 열병식 행사가 열리는 김일성광장에서 생중계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주요 외신은 이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사망 소식을 사실 위주로 신속히 보도했다. 이들 외신은 서울발 기사에서 황 전 비서가 북한의 대규모 열병식 직전 숨졌다며 사망 시점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김정일의 왕자 김정은 ‘서열 6위’ 굳혀
현재까지 북한 매체의 간부 소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당정치국 상무위원 3명에 이어 김정은의 서열은 5위다. 하지만 실제 김정은의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직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포함하는 5명의 당정치국 상무위원 다음 서열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당정치국 상무위원에는 대장인 김정은보다 상급자인 차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끼어 있는데, 조명록 제1부위원장이 복귀하면 김정은은 그에 이어 서열 6위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받음으로써 사실상 봉건적인 ‘3대 세습’이 가시화된 김정은은 외부로 알려진 게 많지 않은 인물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2004년 사망한 그의 세 번째 부인 고영희 사이의 둘째아들인 김정은이 1월 8일생이라는 것은 여러 곳에서 확인됐지만, 현재까지도 출생년도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가 후계자로 김정남을 지목하던 2003년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김정일의 전 요리사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매년 김정은 생일잔칫상을 직접 차려줬기 때문에 1983년 1월 8일생이 확실하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1982년생이라는 말이 많다. 그가 애초 1983년생이거나 그 아래이지만, 북한이 후계자로서 젊다는 핸디캡 극복을 위해 “강성대국의 문을 열겠다”고 공언한 2012년에 서른 살이 되도록 나이를 올렸거나, 1912년생인 김일성 주석 및 1942년생인 김 위원장과 끝자리를 맞춘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는 1996년 여름부터 2001년 1월까지 스위스 베른에서 리베펠트-슈타인횔츨리 등을 다니며 유학생활을 했으며, 2001년에 귀국한 후 2002년부터 2006년 12월까지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연구원(대학원 과정)에서 공부했다.
김정은은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준비·수행하면서, 특히 군사 분야에서 보좌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첫 공식직함으로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은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북한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평양살림집 10만호’ 건설과 지난해 ‘100일 전투’ 및 ‘150일 전투’도 김정은이 주도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1974년 후계자로 추대된 직후 주도했던 ‘70일 전투’를 연상시킨다.
일부에서는 그의 스위스 유학을 중국의 덩샤오핑과 저우언라이의 프랑스 유학 경험에 빗대, 김정은이 개혁개방 드라이브를 펼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김정은 후견 세력 요직에 전진 배치
후계체계 구축을 위한 대규모 인적 개편도 이루어졌다. 124명을 선출한 당 중앙위원회를 시작으로 5명으로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보완했고, 17명의 정치국 위원과 15명의 후보위원을 충원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에는 기존 중앙군사위 위원이었던 리을설, 조명록 등 원로들을 퇴진시키고, 김경옥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김정은의 후견 세력을 포진시켰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최대 실세로 부상한 사람은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다. 리영호는 상장과 대장을 단기간에 거친 후에 이번에 차수로 승진해 정치국 상무위원, 김정은과 함께 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선임자인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당 정치국원, 당 군사위원인 것과 비교할 때 파격적인 승진이다.
리영호 총참모장과 함께 김정은 시대에 주목할 인물로는 최룡해다. 최룡해는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다. 정치국 후보위원과 비서국 비서, 군사위 위원에 동시에 오르면서 후계구도 구축에 리용호와 함께 군 장악에 주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당에서는 고모인 김경희가 정치국 위원에 임명돼 고모부 장성택과 함께 김정은의 후견 세력이 될 것이다. 장성택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됐고 이번 당 대표자회를 통해 정치국 후보위원, 당 행정부장, 당 중앙군사위 위원에 임명됨으로써 북한의 모든 권력기관을 직·간접적으로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당 대표자회의를 통한 인적 개편의 특징은 후계구도를 위해 실무능력을 중심으로 한 개혁성향의 인사보다는 검증된 충성심을 기준으로 기용됐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개편은 시작에 불과하다. 김정은이 군과 당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세대교체가 거세게 불어 닥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선군계승 VS 경제회생 딜레마
동아시아연구원은 10월 13일 하영선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4명이 공동집필한 ‘김정일 후계체제 공식화와 한반도의 미래’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김정은 후계체제는 3대 세습의 태생적 한계로 선군의 ‘계승’을 내세울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선군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는 게 딜레마”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김정은이 최종적으로 후계자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2012년까지 ‘경제강국’ 건설에 성과를 거둬야 하는데 기존의 선군노선을 유지하는 한 자체적으로 경제회생을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의 대중 의존도 증대가 선군노선에 대한 변경과 개혁개방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고, 최근 북한이 대남접근이나 북미관계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도 경제난 극복을 위한 지원획득의 목적도 있지만 지나치게 일방적인 대중 의존이 초래할 개방 압력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선군의 ‘계승’과 경제회생을 위한 ‘변화’라는 구조적 압력이 공존하는 딜레마 속에서 김정은 후계체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라면서 “선군에 얽매여 고난의 행군을 감수하는 길과 핵 없는 평화체제를 기반으로 선경(先經)의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붕괴는 어느 국가에도 이익이 되지 않고 동북아와 세계에 커다란 구조적 공백만을 초래할 뿐”이라면서 “김정은이 기존의 선군노선을 변환해 비핵화와 개혁개방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핵 대신 선택할 수 있는 평화체제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과 북미간 평화협정을 중국이 보증하는 복합적인 형태의 평화체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결국 북한이 핵과 수령체제, 경제발전 세 가지를 함께 가질 수 없음을 확인시키고 인센티브와 압박수단을 모두 강화하는 노력을 동시에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국제 정치학과 안인혜 교수는 “김정은은 선군계승과 경제회생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겠지만, 김정은의 현 입지 대부분이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후광에서 나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선군계승을 포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남이 반대하는 북 3대 세습, 공인하는 중국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북의 3대 세습을 반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동생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데 대해 “있을 수 없다”면서 “김 위원장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 수 있다”는 폭탄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김 위원장이 권력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가족마저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대변해 준다. 더욱 문제는 가족 인정도 못 받는 마당에 북한 주민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생존을 위한 김정남의 필사적인 반응이란 시각도 있다.
국제사회는 봉건사회적인 행태라며 북의 3대 권력세습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북한을 맹목적으로 감싸 안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김정일 위원장과 새 지도부가 편리한 시간에 중국을 방문해 달라”고 북측에 요청했다. 중국이 김정은을 초청한 것은 북의 권력세습을 공인하고 나선 것이나 진배없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민을 최우선시해야 하는데 ‘3대 권력세습’이라니 초유의 사태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3대 세습 과정이 어떻든 간에, 북한이 진정한 핵 문제, 남북 평화 문제, 또 북한 주민의 인권과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면서 “북한이 진정한 자세를 보이면, 우리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대할 것”이라며 김정은이 후계자가 됐다고 해도 카운터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과거 입장에서 벗어나 전향적으로 바뀔 뜻을 내비쳤다. 이 같은 이 대통령 발언은 북한의 3대 세습 문제가 한국 자체적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와 복잡하게 엮여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만큼 대통령과 정부의 대북정책기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리셋 코리아] 미·중 디커플링 충격 대비에 사활 걸어야
중앙일보 | 2010-11-02
윤석열 이후 노골화한 `혐오·선동 정치`, 이걸 없애려면
오마이뉴스 | 2010-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