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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冷眼看時務 虛心讀古書(냉안간시무 허심독고서). 차가운 눈으로 시무를 바로 보고 비운 마음으로 옛글을 읽는다는 뜻이다. 19세기 한국의 대표적 지식 관료였던 박규수의 좌우명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 청·일의 각축, 국내 정국의 혼란이라는 삼중의 어려움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기 시작하던 세월에 그가 늘 품고 있었던 글귀다.

日 '선거혁명'은 없었다 보수의 총합은 변함이 없다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도 미국 말고 대안이 없다

우애외교의 전제조건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冷眼看時務 虛心讀古書(냉안간시무 허심독고서). 차가운 눈으로 시무를 바로 보고 비운 마음으로 옛글을 읽는다는 뜻이다. 19세기 한국의 대표적 지식 관료였던 박규수의 좌우명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 청·일의 각축, 국내 정국의 혼란이라는 삼중의 어려움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기 시작하던 세월에 그가 늘 품고 있었던 글귀다. 한 세기 반이 지난 오늘 이 좌우명은 여전히 살아서 우리에게 그리고 아시아인들에게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뉴욕타임스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 직전 민주당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의 '나의 철학'이라는 글을 발췌 번역하여 '일본의 새로운 길(A New Path for Japan)'이라는 제목으로 실어 관심을 끌었다. 일본은 미국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주도하는 시장 원리주의 때문에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국내적으로는 자립과 공생의 원리에 기반을 둔 '우애사회'를 건설하고 국제적으로는 일본 외교의 기본 축인 미·일 안보체제와 더불어 동아시아공동체 건설을 또 하나의 축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극시대가 흔들리는 속에서 계속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패권국가가 되려 하는 중국의 틈에서 일본이 정치·경제적 자립을 유지하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 우애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적 기원을 유럽연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쿠텐호프 칼레르기에서 찾으면서 그의 말로 글을 끝내고 있다. "모든 위대한 역사적 사건은 유토피아에서 시작하여 현실로 끝났다." 그리고 "생각이 유토피아에 머무를지 현실이 될지는 그 생각을 믿는 사람들의 수와 실행력에 달려 있다."

 

시무를 단순히 차가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체 틀 속에서 볼 줄 알아야 한다. 하토야마 우애외교의 현실도 경제위기 이후 세계와 동아시아 질서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에 크게 달려 있다. 위기 발생 초기만 해도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두드러지고 중국의 괄목할 만한 약진을 누구나 예상했다. 하토야마 대표도 미국의 상대적 우세가 20년 정도 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논의는 훨씬 신중해지고 있다. 미국은 역시 미국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질서 주도권을 더 이상 행사하지 못하더라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상대적으로 경제위기의 피해가 크며 정치 리더십도 약하다.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하는 중국도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아직 원숙하지 못하다. 따라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미국의 주도권이 상당기간 연장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애외교의 기본 전제가 흔들리게 된다.

 

국내 질서도 문제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선거혁명'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조금만 자세히 보면 금방 표현의 부적절함을 알 수 있다. 민주당의 대승이고 자민당의 참패였으나 보수 양당 의석을 합하면 전에 비해 큰 변화가 없다. 공산당과 사민당은 퇴조의 어려움을 전혀 개선하지 못했다. 더구나 현재 겪고 있는 세계경제의 어려움 속에서 일본의 경제 전망은 상대적으로 어둡다. 빠르게 노령화하고 있는 일본 사회가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명실상부한 대국화 추세에 직면하고 국내적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이 쉽사리 풀리지 않는 속에 일국중심주의로 움츠러들지 않고 우애외교를 추진할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는 대단히 어렵다.

 

하토야마 우애외교의 앞길은 험난하다. 그가 꿈꾸는 동아시아 공동체나 국제사회는 결국 백일몽이 될 공산이 크나 최소한 아시아의 지역 네트워크 외교가 보다 활발해질 것이다. 동시에 전통적인 안보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교무대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치열한 협력과 경쟁의 한판을 벌일 것이다.

 

우리에게 급한 것은 외교 역량의 혁명적 강화다. 상대적으로 외로워질 미국을 품고, 정신없이 커져가는 중국을 책임감 있는 대국으로 제도화하고, 모처럼 우애외교를 펴보겠다는 일본이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신아시아외교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처럼 중국이나 일본 같은 대국들을 불과 열 명 남짓한 인원으로 담당하는 소꿉장난 외교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미국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주도하에 4개년 외교발전재검토(QDDR)를 의욕적으로 시작하면서 현재 1만여명 이상의 전문 외교 인력과 500억달러의 예산 규모를 대폭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과 일본의 외교력 증강도 불가피하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주변 대국과 현실적으로 대등하기 어려운 중진국 한국은 적어도 외교 분야에서는 최대한 인력과 예산의 질과 양을 21세기 현실에 맞게 확보해서 주변 대국들과 현명하게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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