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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좌우 양극화는 국력소모다 좌파적 국제정치관을 버려라
우파 논리도 물론 안 된다 둘 다 무대 중심을 벗어났다
그렇다고 중도(中道)는 아니다 세계를 촘촘하게 읽어라

좌우 양극화는 국력소모다 좌파적 국제정치관을 버려라
우파 논리도 물론 안 된다 둘 다 무대 중심을 벗어났다
그렇다고 중도(中道)는 아니다 세계를 촘촘하게 읽어라


이명박 대통령의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라는 지적과 함께 현 정국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풀기 위한 '근원적 처방'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세계는 복합의 길을 찾느라고 바쁜데 우리는 좌우의 양극화를 못 벗어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아픔의 원인을 찾으려는 진단은 타당하다.

그러나 중도 강화라는 처방을 통해서 병을 치료하기에는 우리의 양극화 병세는 훨씬 위독하다. 한국 현대사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아픔을 21세기에 맞게 근원적으로 치료하려면 현재와 같이 평면적인 좌우논쟁을 입체적인 전후(前後)논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여의도는 예상대로 다시 한 번 양극화의 격전장이 되고 있다. 여야 모두 말의 논리가 아닌 몸의 논리로 국회의사당을 장악하려는 시대착오적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좌우 양극화의 의회적 비극이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예상과 달리 싱거울 정도로 대승을 했다. 그러나 대승의 기쁨은 잠시였다. 유권자들은 우파 정치인들을 찾아서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시대 변화의 지각생이면서도 시대의 전위부대라는 착각에 빠진 좌파 정치인들에게 지치고 실망해서 떠났을 뿐이다. 좌우논쟁 대신에 전후논쟁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통합의 정치를 원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지각생인 우파 정치인들뿐이었다. 여야 모두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다시 한 번 방황의 계절을 견디고 있다. 흔들리는 표심을 잡으려면 구시대적인 좌우세력의 중간에 끼인 중도의 길로써는 불가능하다. 좌우를 불문하고 신시대에 맞는 전도(前道)의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정치인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는 이 기다림이 눈앞에 드러나는 현장이 될 것이다.

남북한 관계의 핵심현안인 북핵문 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양극화의 어려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좌파의 일방적 햇볕정책도, 우파의 전면 제재정책도 북한 선군정치세력의 핵화정책을 막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좌우논쟁은 뒤늦게라도 철저한 자기반성 위에 현실적인 북한 비핵화정책을 새로 구상하는 대신 상호 책임전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와중에 북한은 2차 핵실험에 성공하고 핵 보유량을 최대한 늘리면서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대신에 핵군축을 위한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제안하고 있다.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된 5자회담안도 좌우논쟁의 안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상대로 중국은 "6자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시키는 최선의 길"이라고 명백하게 답변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반응을 제대로 읽지 못한 5자회담안은 전형적인 좌우논쟁의 불량품일 뿐이다.

북핵문제의 해결은 햇볕과 제재를 넘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생존의 마지막 담보인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 선경제정치의 등장은 외부의 햇볕이나 제재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진화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한국이 미국·중국과 우선 공조하여, 북한의 자생적 정치경제 선진화와 국제안보번영질서의 선진화를 함께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좌우 양극화는 국제관계에서도 불필요한 국력소모를 자초해 왔다.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겪었던 자주와 동맹의 이분법 논쟁은 21세기의 세계변화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한 구시대적 발상의 대표적 표현이었다.

21 세기 세계질서는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더구나 100년 만에 겪고 있는 세계경제위기의 폭풍이 일단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또 한 번 새로운 주인공과 무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유효기간이 이미 한참 지난 20세기 좌파의 국제정치관을 21세기에 고집하면 19세기 국제정치관으로 21세기를 살아보려는 북한과 함께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대의 중심에서 밀려날 것이다.

그 러나 동시에 20세기 우파의 국제정치관으로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꿈도 버려야 한다. 이명박 외교의 최대과제는 좌우 논쟁을 넘어선 전도의 시각에서 세계 공간을 누구보다도 촘촘하게 엮어 나갈 수 있는 큰 그림을 제대로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 속에서 당면 현안인 아프간 재건 지원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를 설득력 있게 풀어야 한다. 그래야 환하게 불 켜진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고 더 이상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지 않게 될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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