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6자회담은 북의 핵정책을 정확히 읽는 데 실패했다
한미 정상은 이제부터 솔직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북한이 '선군(先軍)' 대신 '선경제(先經濟)'를 하도록 도와야 한다
6자회담은 북의 핵정책을 정확히 읽는 데 실패했다
한미 정상은 이제부터 솔직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북한이 '선군(先軍)' 대신 '선경제(先經濟)'를 하도록 도와야 한다
조선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한미관계 포럼에 참석하느라고 워싱턴 DC를 다녀왔다. 양국의 실무자와 전문가들은 당면 문제와 미래에 대해서 하루종일 열띤 토론을 벌였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를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논의 중이고 서울과 워싱턴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정상회담을 준비하느라고 부산한 가운데 열린 모임이라 본고사를 앞둔 수험생들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토론의 꽃은 역시 북핵 문제였다. 북한의 광명성 2호 발사와 2차 핵실험 그리고 ICBM 발사 및 폐연료봉 재처리 예고의 의미에 대해서 양국 고위 당국자를 포함한 회의 참가자들은 다양한 의견 개진을 했으나 쉽사리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보물은 의외로 찾기 쉬운 곳에 숨겨져 있다.
북한의 최고 정책결정을 공식적으로 밖에 알리는 외교부 대변인의 지난 5개월 동안의 성명, 담화 그리고 답변을 조심스럽게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1월 13일과 17일의 미국 주장을 비판하는 성명이다. 북한은 결코 관계정상화나 경제지원을 기대해서 핵무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으로부터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강한 어투로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이 근본적으로 제거되지 않는 한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포기하는 일은 100년이 가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따라서 적대시 정책을 그대로 두고 핵문제를 풀려면 모든 핵보유국이 모여서 동시에 핵군축을 실현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주장은 두 가지 면에서 새롭다. 핵무기를 수령체제의 마지막 자기 방어를 위해 개발한 것이라면, 선군 정치가 계속되는 한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선군 지도부의 지나친 자기 방어 논리는 미국을 비롯한 누구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의 '회초리와 당근' 정책을 비판하면서 당근은 미국 민주당의 상징인 당나귀에게나 먹이라고 야유하고 있다. 동시에 북한은 미래의 핵정책 방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의 비핵화 3단계 대신 핵군축 3단계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북한은 핵군축협상을 위해서 협상 전까지 최대한 핵 능력을 늘린 다음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핵 능력을 단계적으로 상호 감축하되 북한의 안보 과잉논리가 충족되지 않는 한 비핵화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6자회담의 관련당사국들은 북한의 이처럼 확고한 핵정책을 바로 읽는 데 실패했다. 북한 외교부 대변인이 4월 14일, 29일 그리고 5월 8일 핵실험을 명확하게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관련 당사국을 순방한 미국 보즈워스 특사는 핵실험 직전까지 계속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한미 두 정상은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정책을 바로 읽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선군 논리를 미국적 논리로 잘못 읽는 미국의 한계를 적절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비핵화 정책을 추진하도록 만들려면 관련 당사국들이 어떤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포럼의 진지한 토의는 북한이 야유하는 '채찍과 당근'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책 모색까지 본격적으로 전개되지는 못했다. 북한이 선군 핵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한 제재와 지원을 통해서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한미 정상회담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 노력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후 관련 당사국들이 어떤 새로운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관련 당사국들의 채찍과 당근이 북한의 핵정책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면 북한이 스스로 핵무기를 안보의 최종 수단으로 삼는 선군 핵정책을 포기하고 비핵화를 기반으로 한 선경제 비핵정책을 추진하도록 돕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수령체제와 북한을 둘러싼 안보번영 환경의 공동진화가 필요하다.
수령체제를 살리기 위한 핵무기 정책이 북한인민을 죽이게 되고 북한인민을 살리기 위한 개혁개방 정책이 수령체제를 무너뜨리는 딜레마를 북한 스스로 극복하려면 보다 진화한 민주수령체제와 북한형 개혁개방체제의 복합을 시도해야 한다. 한국 주도로 미국과 중국 그리고 관련 당사국들이 단순히 제재에 합의할 뿐만 아니라 북한이 21세기의 실패국가가 아니라 성공국가가 되기 위한 새로운 정책 방향을 공동 모색하고 동시에 이에 도움되는 안보번영 환경을 마련해서 북한을 선군 핵정책의 비현실성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