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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연초 여의도에서 난장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불교방송에서 '김지하 시인에게 길을 묻다'라는 화면과 마주쳤다. 그는 특유의 화법으로 국내 정국을 난타한 후 세계가 걷는 길을 내다보면서 내가 썼던 조선 칼럼 '표류하는 정국, 달리는 세계'를 소개하며 미국의 '균형'과 중국의 '조화'라는 중도의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국내 진보의 대부인 김 시인의 길과 보수로 불리는 조선 칼럼의 길은 만나고 있었다.

지금 여의도는 고장난 내비게이터 누가 그에게 길을 묻겠나

 

연초 여의도에서 난장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불교방송에서 '김지하 시인에게 길을 묻다'라는 화면과 마주쳤다. 그는 특유의 화법으로 국내 정국을 난타한 후 세계가 걷는 길을 내다보면서 내가 썼던 조선 칼럼 '표류하는 정국, 달리는 세계'를 소개하며 미국의 '균형'과 중국의 '조화'라는 중도의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국내 진보의 대부인 김 시인의 길과 보수로 불리는 조선 칼럼의 길은 만나고 있었다.

지난 연말연시 입법전쟁은 쟁점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협의 또는 합의하여 처리하도록 타협했었다. 원내대표 연설에서 한나라당은 이번에는 미디어법을 비롯한 쟁점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번 국회에 MB악법이 설 자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쟁점법안일수록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국회는 또 한번 홍역을 치를 위험성이 높다.

 

현대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세계학계의 치열한 논쟁 중에 우리 처지를 생각하면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이 숙의(熟議)민주주의와 결의(決議)민주주의 논쟁이다. 한자 뜻대로 푼다면 숙의는 논의를 합의에 이를 때까지 충분히 익히는 것이다. 결의는 논의의 대결을 통해서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숙의민주주의는 원래 논의의 옳고 그름을 단순히 산술 계산으로만 결정하는 합의(合議)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충분한 합리적 논의를 통해서 이르는 합의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의민주주의는 이런 주장에 반기를 들고 나왔다. 전쟁의 특성이 적대성이라면 정치의 특성은 대결성이고 편 가르기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섣부른 합의보다도 다원적 대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여의도의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와 있나. 여당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산수민주주의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1차 입법전쟁을 통해서 산수민주주의의 정치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2차 입법전쟁에 대비해서 숙의민주주의의 초보적 모습을 갖추느라고 부산하다. 박 전 대표의 발언도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야당의 민주주의는 논의의 정치적 대결을 당당히 벌여 나가기보다는 전쟁적 적대성에 의존하는 쟁의(爭議)민주주의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결국 여의도는 산수민주주의와 쟁의민주주의의 악순환에서 헤매고 있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있다. 김 시인 강연과 조선 칼럼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길 찾기(求道)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실질적 민주주의의 싹이 트려면 우선 21세기 한민족이 걸어야 할 길을 찾으려는 논의가 하루빨리 시작돼야 한다. 오바마 새 정부를 비롯한 세계질서 주도국들이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중도의 길을 걸으리라는 것을 여의도만 모르고 다 안다. 남북관계가 더 이상 일방적 햇볕정책이나 무시정책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여의도 빼고는 다 안다.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 국내적으로 쟁점법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여의도 빼고는 다 안다. 여의도는 우리 사회의 내비게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여의도는 국민들이 길을 물어도 대답할 길이 없다. 국민들은 현명하다. 고장 난 내비게이터를 계속 사용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여의도에 민주주의의 꽃이 피려면 논의의 내용 마련과 함께 형식 마련이 급하다. 다수에 의존한 날치기나 소수의 폭력저지는 단기적으로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자충수다. 여당이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내놓고 싶으면 과감히 날치기 통과를 하면 된다. 야당이 정권교체의 꿈을 버리고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싶으면 폭력저지를 반복하면 된다. 충실한 논의 내용으로 당당하게 정치적으로 대결해서 합의를 모색하고 실패하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정치시장은 경제시장처럼 매일 장이 서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기억의 장부를 꼼꼼히 적는다. 정치판을 날치기판이나 난장판으로 만드는 정당에게 정권을 맡길 가능성은 없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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