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을 끄려면…
| 2008-06-12
하영선
촛불 집회의 열기가 뜨겁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시청 앞 광장의 촛불은 40일을 넘었으나 쉽사리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인사와 정책 쇄신 고민으로 밤을 밝히고 있고 여의도는 재협상과 내각 총사퇴를 둘러싼 논란으로 휴업 중이다. 정말 촛불을 끄려면 촛불의 의미를 새롭게 읽어야 한다.
지금 촛불을 든 국민들은 "民을 위한 나라"를 외치는것
거대한 국가이익 강요보다 "개인행복 정치"로 다가서야
촛불 집회의 열기가 뜨겁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시청 앞 광장의 촛불은 40일을 넘었으나 쉽사리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인사와 정책 쇄신 고민으로 밤을 밝히고 있고 여의도는 재협상과 내각 총사퇴를 둘러싼 논란으로 휴업 중이다. 정말 촛불을 끄려면 촛불의 의미를 새롭게 읽어야 한다. 광우병 시비는 촛불 켜기의 작은 불씨였을 뿐이다. 그 밑바닥에는 한국이 겪고 있는 21세기적 변환의 혼란이 도사리고 있다.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국민들은 더 이상 19세기 조선 국민도 아니고 20세기 한국 국민도 아니고 21세기 신한국 국민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국민(國民)이란 말이 지금처럼 익숙해진 것은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9세기 조선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거대한 역사적 변환 앞에서 임금의 민(民) 대신 국가의 민(民)을 새롭게 만드는 데 실패한다. 신채호는 국망(國亡)의 해인 1910년에 나라를 살리려면 "20세기 신국민"이 돼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고 나라는 망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은 다시 한 번 국민국가 건설을 위해 "민을 위한 국가"보다 우선 "국가를 위한 민"을 만드는 역사적 계단을 밟아 올라가야 했다. 다음 계단은 민주화 과정에서 보듯이 "민을 위한 국가" 건설이었다.
지난 40여일 시청 앞 광장을 메운 주인공들은 "그물망 개민(個民)"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21세기 신국민이다. 1960년대 중반 김수영은 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는" 자신의 옹졸한 모습을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고 괴로워했다. 21세기 개민들은 더 이상 김수영의 고민을 함께 하고 있지 않다. 보다 당당하게 거대한 국가 이익보다는 구체적인 개인의 행복을 고민한다. 이런 개민들의 고민은 인터넷이 만들어 낸 사이버 공간에서 아무런 국가의 개입 없이 새로운 삶터들을 가꿔 나간다. 그 결과가 광장의 촛불이다.
문제의 핵심은 21세기 초 한국에는 전혀 다른 세 가지 "민관(民觀)"이 공존하면서 충돌하는 데 있다. 청와대의 "국가를 위한 민"관, 여의도의 "민을 위한 국가"관, 그리고 시청 앞 광장의 "그물망 개민"관이다. 청와대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월 취임사에서 지난 10년 "이념의 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실용의 시대"로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건국 60년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기반으로 선진화를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실용의 정치는 이념의 정치보다는 21세기 개민들이 바라는 개인의 행복정치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친화력을 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100일 만에 축복이 아닌 분노의 촛불이 등장하게 된 것은 목표의 잘못보다는 과정의 잘못이다. 새 정부는 근대화 시절의 "국가를 위한 민"관을 충분히 벗어나지 못하고 새롭게 등장한 21세기 개민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민을 위한 국가"관을 이념적 수준에서 외쳐 온 여의도의 국회가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국민들의 마음을 잘 못 읽고 있는 것은 청와대나 마찬가지다. 개민들은 국회의원들이 광장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여의도의 불을 밝히고 구태의연한 권력투쟁을 넘어서서 개민의 행복정치를 본격적으로 구현하는 심야토론을 기대하고 있다.
촛불을 끄는 해답은 촛불에 있지 않다. 촛불만으로 칠흑 같은 21세기의 어둠을 밝힐 수는 없다. 해답은 청와대, 여의도 그리고 시청 앞 광장이 이루고 있는 삼각형의 중심점에 있다. 촛불은 개민의 행복정치를 위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지만 해답까지 동시에 밝히기에는 약하다. 여의도에서 해답 찾기 위한 국가지(國家知)의 난상토론과 수렴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청와대는 21세기 선진국가 건설을 새로운 국민관 위에 추진해야 한다. 21세기의 역사적 변환 속에서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새 정부, 새 국회, 새 국민 되기를 위한 심기일전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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