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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취임 후 첫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돌아 들어가는 이명박 대통령의 뒷모습은 외로워 보였다. 그는 꿀맛 같아야 할 허니문 기간에 앞으로 펼칠 5년간 사랑의 노래를 국민에게 들려주지 못하고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을 사과하고 한미 FTA 비준을 호소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이 힘들게 부른 노래에 국민들의 화답이 기대대로 들려올는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취임 후 첫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돌아 들어가는 이명박 대통령의 뒷모습은 외로워 보였다. 그는 꿀맛 같아야 할 허니문 기간에 앞으로 펼칠 5년간 사랑의 노래를 국민에게 들려주지 못하고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을 사과하고 한미 FTA 비준을 호소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이 힘들게 부른 노래에 국민들의 화답이 기대대로 들려올는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취임 100일도 채 되기 전에 부닥친 높은 파도를 제대로 타고 넘으려면 얼마나 신속하게 후속조치를 취해서 정국을 주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의 고전적 삼면성(三面性)을 제대로 파악하고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정치"란 말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양의 politics의 번역어로 처음 사용됐다. 그러나 정(政)은 이미 3000여 년 전 중국 은나라의 갑골문에 등장하고 있다. 그 뜻은 성읍(城邑)을 정복하고 세금 거두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치(治)도 물을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 정과 치는 다스림에서 비롯한 것이다. 다스림의 내용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바뀌어 왔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政)을 풀이하면서 먹을 것을 충족시키고 싸울 사람을 충분히 갖추고 백성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21세기 한국 정치가 다스려야 할 것은 훨씬 복잡해졌다. 외교, 안보, 경제, 복지, 교육, 문화, 환경, 기술, 지식을 동시에 다스려야 한다. 그러자면 두 가지 일이 시급하다. 지난 석 달 동안의 업무실적을 기반으로 적재적소에 인물들이 제대로 배치되어 있는가를 철저히 재검토해야 한다. 다음으로 이 인물들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21세기 대통령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돼야 한다. 지휘자가 직접 연주에 나서서는 안 된다. 명지휘자는 각 부문 연주자들이 자기 책임하에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독려한 다음에 총체적으로 음악을 완성한다.

 

공자는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政者 正也)"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치는 단순한 다스림이 아니라 "바른 다스림"이다. 중국 고대 은나라를 멸한 주나라는 새로운 왕조 설립을 정당화하기 위해 천명(天命)의 논리를 궁리해 냈다. 현대정치에서는 민심이 천명의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민심 잡기 위한 담론 투쟁이 정치의 정당성을 판가름하는 핵심이 된 것이다. 이 대통령이 희망하듯이 소모적인 이념정치를 벗어나서 생산적인 실용정치를 실천하려면 역설적으로 앞으로 추진해야 할 크고 작은 정치 현안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명분 싸움에서 우선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담화에서 "광우병 괴담"의 확산에 당황스러웠다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핵심적으로 고쳐야 할 부분이다. 21세기 한국 민심을 제대로 읽고 이끌어 가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인터넷을 포함한 복합매체의 영향 속에 사건의 진실과 괴담이 어떻게 전파되고 여론을 형성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이 시급하다.

 

정치는 마지막으로 "편 가르기"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의 정국 분위기는 다음 대통령 선거가 아직 4년 반이나 남았는데도 대선의 서곡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국민들이 지난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이념정치의 현실에 불만족스러워서 실용정치의 이상에 기회를 한 번 준 것이라면 이명박 지휘자를 비롯한 단원들은 일사불란하게 그 연주에 임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편 가르기의 기반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친박연대와의 자중지란을 바로 해결하고 실용정치의 현실화에 기여할 수 있는 모든 정치세력들과의 건강한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편 가르기의 동심원은 더 넓게 퍼져 나가야 한다. 지난 10년 이념정치 기간에 이념이 아니라 실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우수한 인적 자원들을 과감하게 품고 명연주의 꿈을 펼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 정부는 역(逆)편 가르기의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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