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일까지 여론조사 가능해야
| 2007-12-19
이현우
조사를 들여다보면 20%도 못 되는 응답률, 유선전화가 아예 없거나 전화번호부에 등재하지 않은 경우,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이 짧은 사람이 제외되기 쉬운 문제가 있다. 어떤 경우는 정치적 이슈가 발생하자마자 여론이 채 형성되기도 전에 조사를 함으로써 결과가 부정확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조사 결과는 상당한 정도의 정확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여러모로 입증되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 선거 여론조사가 필요한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범람하는 조사가 여론의 동향을 보여줄 뿐 아니라 여론 자체를 규정해 버리는 주객전도의 구조를 가져온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특히 조사의 특성상 현재의 판세를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구도 형성을 억제하는 부정적 역할을 한다고 비난받는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밝혀진 이명박 후보의 광운대 특강에서 BBK 소유에 관한 발언이 얼마나 후보 지지에 영향을 미쳤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러나 현행 선거법상 선거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돼 여론 변화를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이 후보의 지지세력 결집부터 정동영 후보나 이회창 후보의 지지 상승까지 정치인들의 아전인수식 추측들이 인구에 회자했다. 과잉 정보가 여론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정보가 부족할 경우에도 심각한 여론의 왜곡 가능성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포괄적으로 보면 선거 결과는 선거 당일의 국민 여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거 여론조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 후보를 선택하는 데 여론조사 결과가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은 낮은 차원에서의 규범적 주장일 뿐이다. 자유 의사에 따른 결정을 강조하는 것은 강압적 요인을 배제한다는 것이지 여론의 추이와 같은 환경적 요인이 무시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청각을 잃으면 발음이 어눌해질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발음을 듣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 교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아 의견을 형성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비교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견을 변경하는 것은 필요하다. 대의제 민주주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는 심의 민주주의의 핵심이 토론과 합의다. 이는 쉽게 말하면 타인의 의견을 듣고 참여자들이 상호 의견 차를 줄여 가는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론을 고려한 의사결정은 바람직할 수 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문제는 조사 결과를 어떻게 전달하고 사용했는가에 있다. 언론들은 순위 경쟁에만 관심을 뒀지 어떤 후보가 왜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언론이 조사 결과의 통계 수치가 아니라 그 원인과 의미를 부여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은 지지 경쟁뿐만 아니라 대선 후보들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를 정당들이 당내 경선의 후보 선출에 직접 반영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결정을 위한 기초자료로 사용되는 것이지 결정 요인이 돼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는 전체 중 일부만을 추출해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의 의사를 추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여론조사가 많았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결과를 피상적으로 전달하거나 과도하게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이현우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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