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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한반도 평화체제의 논의와 기대가 증폭돼 가는 가운데 북핵 폐기 과정이 중대한 기로에 놓이게 됐다. 불능화 작업 시한이 내년 2월로 연장됐다는 소식이야 기술적인 이유니까 차치하더라도, 3일 평양에 들어간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에 관해 납득할 만한 내용을 듣는 것이 관건이다. 이미 북한은 핵프로그램의 초기 신고를 마쳤어야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논의와 기대가 증폭돼 가는 가운데 북핵 폐기 과정이 중대한 기로에 놓이게 됐다. 불능화 작업 시한이 내년 2월로 연장됐다는 소식이야 기술적인 이유니까 차치하더라도, 3일 평양에 들어간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에 관해 납득할 만한 내용을 듣는 것이 관건이다. 이미 북한은 핵프로그램의 초기 신고를 마쳤어야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핵심 이슈는 2002년에 문제가 됐던 북한의 우라늄 농축계획(UEP)의 실재 여부이다. 힐 차관보는 “UEP와 관련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이번 방북에서 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겠다는 태세다. 게다가 미국 내에서는 북한이 UEP를 위해 파키스탄으로부터 사들인 원심분리기들이 시리아로 이전됐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 9월 이스라엘의 공습에 의해 파괴된 시리아의 군사시설이 북한이 지원하여 건설된 핵시설이라는 의혹과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만일 이번 방북에서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 내용이 미흡하다고 판단하게 되면, 최근 미국 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불신은 커질 것이다. 이는 네오콘의 대북 강경 여론이 부상할 좋은 기회가 된다. 현재 미 대선전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역시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북한·시리아 커넥션 의혹을 좌시할 수 없다. 북한으로서는 이중삼중의 해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미국 내 대미 협상파인 힐·라이스 외교라인도 입지가 좁아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일만 잘 되면’이란 기원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러한 때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남한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그의 동선은 남한 내 산업단지에 머물렀지만 정확하게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안들을 원만하게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돌아가기 직전 그는 ‘남쪽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고 한다. ‘남쪽 분위기’가 대선 판세를 의미하는 것인지, 차기 정권의 대북정책을 가늠하기 위한 것인지, 남한 정부의 평화체제 구상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때마침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미국으로 날아갔다. 김양건 부장이 북핵 완전 폐기 이전이라도 4자 정상선언을 할 수 있다는 남한 정부의 입장에 공감을 표시했기 때문에 이를 미국에 전달하고 협의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종전선언에 집착하고 있는 남한 정부의 태도가 너무나 잘 드러나고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으니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평화체제란 평화협정이나 조약을 맺는다고 해서 구축되는 게 아니다. 심지어 군비통제를 한다고 해서 구축되는 것도 아니다. 분쟁 당사국들이 적극적으로 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이해관계 구조를 가져야 된다. 다시 말하면 분쟁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때 오는 것이다.

정상들이 모여서 선언을 하면 종전은 선언되겠지만 평화체제가 오는 것은 아니다. 종전선언 그 자체가 평화체제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북한의 핵개발 의도와 능력이 충분히 투명하게 폐기되는 것이야말로 종전선언이든, 평화체제든 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선결조건이다.

2단계 핵폐기 과정이 얼마나 잘 진전되는가를 살펴보고, 내년에 추진될 이보다 더 어려운 3단계 과정에 진척이 왔을 때 종전이든, 평화체제든 제안한다면 남한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자칫하면 동맹국인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앞장서서 가로막는 나라로 인식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류길재 경남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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