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의 규칙과 한나라당
| 2007-05-14
하연섭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스타 플레이어에 열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특히 프로 스포츠에서 관중을 불러오고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마력은 스타 플레이어 덕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기가 막힌 작전까지 짜주는 스타 감독까지 있다면 흥행은 대 성공일 수 있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스타 플레이어에 열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특히 프로 스포츠에서 관중을 불러오고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마력은 스타 플레이어 덕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기가 막힌 작전까지 짜주는 스타 감독까지 있다면 흥행은 대 성공일 수 있다.
그런데 게임을 하는 선수와 작전을 지시하는 감독과는 달리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가끔씩 잊고 있지만, 스포츠의 재미를 더해주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게임의 규칙"이다. 모든 스포츠에는 수많은 규칙이 있고, 그 규칙 내에서 감독은 작전을 지시하고 선수는 자신과 팀에 가장 유리한 형태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심판은 선수들이 게임의 규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감독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관중의 눈에는 선수, 감독, 심판만 보이지만 이들의 판단과 움직임을 결정해주는 것은 바로 게임의 규칙인 것이다. 규칙이 정해지고 이를 모든 팀이 인정한 다음에야 감독의 작전과 선수들의 플레이와 심판의 판단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가장 말도 안 되는 상황은 게임을 하면서 규칙을 정해나가는 일일 게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우리 정치판에서는 나타나고 있다. 바로 한나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선룰"을 둘러싼 대선주자 간 싸움이다. 출전 선수와 감독의 작전이 모두 정해진 상태에서 게임 직전에 모여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농구를 예로 들자. 날쌘 중거리 슈터들로 구성된 팀과 골밑 공격이 능한 키 큰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경기 직전에 모여 멀리서 쏜 슛을 3점으로 인정할지 여부를 놓고 협상을 벌인다면 그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게임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는 이제 게임의 규칙이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임의 규칙은 선수 구성이 이루어지기 전에, 감독의 작전이 나오기 전에 미리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모든 스포츠에서는 그렇게 한다. 게임의 규칙은 나에게 규칙이 유리한지 불리한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정해진 "게임의 룰"에 맞추어서 내보낼 선수를 결정하고 자신들의 작전을 바꾸어나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규칙이 만들어지고 선수와 작전이 결정되는 것, 이것이 세상의 자연스러운 이치요 순서인 것이다.
우리 정치권은 이번에도 이 순서를 거꾸로 가고 있다. 한나라당 대표는 "쫀쫀하게 경선룰에도 합의를 못하는가"라고 불만을 터뜨렸다는데, 규칙을 정하는 일을 사소한 일로 치부했다는 그 자체가 우리 정치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선수와 작전이 모두 정해진 다음에 게임의 규칙에 대해 합의한다면 쫀쫀한 차원을 넘어 월드컵 4강처럼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할만하다.
규칙을 미리미리 만들지 못하는 정치, 규칙에 따라 전략을 정해나가는 지극히 당연한 과정을 밟지 못하는 정치, 규칙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정치…. 한국의 정치는 "제도화"의 차원에서 보면 스포츠보다도 못한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스포츠에 열광하나보다.
하연섭 EAI 국가인적자원패널위원 · 연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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