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과 망각의 정치, 6·25와 6·15
| 2007-06-04
하영선
6월이다. 분단된 남북한에는 특별한 달이다. 악몽 같은 6.25전쟁이 일어난 달이고, 백일몽 같은 6.15 공동선언을 한 달이다. 우리는 더 이상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부르면서 한국전쟁을 기억하지 않는다. 쉽사리 공동실천의 앞길이 내다보이지 않는 6.15 공동선언의 기념식은 해가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6월이다. 분단된 남북한에는 특별한 달이다. 악몽 같은 6.25전쟁이 일어난 달이고, 백일몽 같은 6.15 공동선언을 한 달이다. 우리는 더 이상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부르면서 한국전쟁을 기억하지 않는다. 쉽사리 공동실천의 앞길이 내다보이지 않는 6.15 공동선언의 기념식은 해가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프랑스 학술 저널리스트 피에르 노라는 1984년부터 8년 동안 프랑스의 일급 사학자 120명을 동원해 일곱 권 분량의 대저인 "기억의 장(場)(lieux de memoire)"을 완성한다. 사학자들이 기록 속에 파묻혀 죽어 있는 프랑스의 역사를 찾느라고 바쁜 동안 그는 집단기억의 입체적 조명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살아 있는 프랑스사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이후 기억과 망각의 역사쓰기는 유행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반도의 남과 북이 전혀 다른 역사쓰기를 하고 있고, 더구나 뉴라이트와 뉴레프트의 한국사 새로 쓰기 경쟁이 심화되는 요즈음 제대로 집단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곳은 바로 한반도다.
6.25는 냉전의 오랜 기간 동안 남과 북에서 서로 전혀 다른 전쟁으로 기억돼 왔다. 북한은 북침론과 미 제국주의의 6.25론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한국에서는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미국과 한국에 오히려 일차적 전쟁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수정 6.25론의 등장과 함께 소련 지원의 북한 남침이라는 정통 6.25론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6.25를 다루는 많은 영화.소설.텔레비전 드라마들은 더 이상 정통 6.25의 기억을 보여 주지 않는다.
미국은 고마운 친구이기보다는 자기 이익 때문에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적지 않은 잘못을 저지른 제국으로 다뤄졌다. 북한의 남침도 서로 치고받는 남북한의 내전이라는 시각에서 무대의 조명을 피해갔다. 그러나 미국과 함께 냉전 세계질서 무대의 주연이었던 소련이 해체됨에 따라 밝혀진 냉전사는 수정 6.25론의 설 자리를 없애 버렸다. 한국전쟁은 보다 세련된 수정이후론의 시각에서 새롭게 정리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정통론과 수정론의 뒤늦은 국내 정치적 싸움 속에서 혼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수정론의 퇴장은 시간문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더 이상 6.25를 기억하지 못하는 21세기 신세대들에게 보여 줘야 할 새로운 한국전쟁론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나 "웰컴 투 동막골"을 넘어선 시각이 필요하다. 6.15 공동선언이 쉽사리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하는 원인을 새로운 6.25의 기억에서 조심스럽게 찾아야 한다.
6.15 공동선언 이후 지난 7년 동안 북한은 핵실험을 했고, 남북한 교류협력은 "일방적 퍼주기"라는 비난을 들을 만큼 증가했다. 7년의 햇볕정책 실험결과는 확실해졌다. 효과는 제한적이다. 수령 체제의 옹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핵선군주의를 햇볕정책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햇볕정책은 핵선군주의의 한계 안에서 교류협력을 증가시켰다. 따라서 햇볕정책이 남북한 관계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착각은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지난주 남북 장관급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것은 당연하다. 우리 장관이 북한의 책임참사에게 간절히 호소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장관급회담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당당하게 도와줄 것은 도와주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정상회담이 6자회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꿈은 빨리 깨야 한다. 오히려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와 국제관계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게 될 것이다. 6.15 공동선언의 공과를 제대로 알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은 기념해야 한다.
6.25와 6.15는 쉽사리 망각해서도, 섣불리 마음대로 기억해서도 안 된다. 한반도 전쟁과 평화의 핵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6.25 속에 어제의 6.25가 얼마나 살아서 숨쉬고 있는가를 국내 및 국제정치적으로 읽을 줄 알아야 우리가 망각할 수 있는 내일의 6.25를 맞이할 수 있다. 6.15도 마찬가지다. 6.15 공동선언의 현실적 한계를 제대로 알고 대단히 조심스럽게 공동실천의 길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내일의 6.15는 역사 속에서 쉽사리 잊힐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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