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2007-02-12
하영선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널리 알려져 있는 T S 엘리엇의 장편시 "황무지" 첫 구절이다. 베이징(北京)에서 열리고 있는 6자회담을 서울에서 바라보면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글귀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얼른 보면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초기 단계 조치 이행 합의를 위한 북한 영변 핵시설의 동결 및 검증과 관련 당사국들의 경제.에너지 지원, 정치 관계 개선, 평화체제 구축 노력의 밀고 당기기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는 더 깊은 곳에 있다. 동결과 폐기라는 해묵은 싸움이다. 영변 5㎿ 원자로 동결이 1990년대 제네바 기본합의 때처럼 재개를 위한 동결이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폐기를 위한 동결의 첫걸음이 될 수 있느냐의 여부다. 이 결과를 점치기 위해서는 최소한 초기 조치 이행 합의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게 돼 있는 4월의 날씨를 바로 예보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한과 미국, 그리고 한국의 4월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널리 알려져 있는 T S 엘리엇의 장편시 "황무지" 첫 구절이다. 베이징(北京)에서 열리고 있는 6자회담을 서울에서 바라보면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글귀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얼른 보면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초기 단계 조치 이행 합의를 위한 북한 영변 핵시설의 동결 및 검증과 관련 당사국들의 경제.에너지 지원, 정치 관계 개선, 평화체제 구축 노력의 밀고 당기기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는 더 깊은 곳에 있다. 동결과 폐기라는 해묵은 싸움이다. 영변 5㎿ 원자로 동결이 1990년대 제네바 기본합의 때처럼 재개를 위한 동결이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폐기를 위한 동결의 첫걸음이 될 수 있느냐의 여부다. 이 결과를 점치기 위해서는 최소한 초기 조치 이행 합의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게 돼 있는 4월의 날씨를 바로 예보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한과 미국, 그리고 한국의 4월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이유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동결과 폐기를 마지막으로 선택해야 하는 북한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황무지 북한의 선군 주체세력은 쉽사리 따뜻한 겨울을 떠나기 어렵다. 폐기의 선택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핵선군노선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선경제노선의 선택을 의미한다. 선군 주체세력에는 삶과 죽음의 문제다. 4월의 밝은 생명력이 오히려 겨울의 죽음을 가져오는 잔인함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동결 조건도 쉽지 않은 협상이지만 김정일 수령체제가 원하는 폐기 조건은 사실상 협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현재의 대북 적대시 정책 대신 북한형 평화체제 구축을 행동으로 담보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선군 주체세력이 잔인한 4월의 깨어남 앞에서 머뭇거리면 머뭇거릴수록 미국이 맞이하는 4월의 모습도 잔인해져 갈 것이다. 미국의 머리와 가슴으로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북한의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베이징 6자회담의 주인공 역할을 맡아 고생하는 크리스토퍼 힐 미국 대표는 회담 이틀 전 도쿄에서 일본 기자들과 연 원탁토론에서 회담에 임하는 소감을 비교적 솔직하고 자세히 밝히고 있다. 다가오는 10주 이내에 북한과 미국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이 9.19 공동성명의 1단계 이행 실천으로서 취할 행동의 묶음은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비핵화의 정상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첫 단계라는 것을 애처로울 정도로 강하게, 그리고 반복해 밝히고 있다. 힐 대표의 발언은 태평양을 넘어 워싱턴의 협상 회의론자들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라이스 국무장관과 힐 차관보 팀의 노력이 결과적으로 시시포스의 신화를 재현하게 된다면 워싱턴의 4월은 평양 못지않게 잔인한 달이 될 것이다.
평양과 워싱턴의 4월 못지않게 서울의 4월도 잔인한 달이 될 위험성은 높다. 대통령 선거를 연말에 앞두고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정부와 여권의 정치세력은 90년대 제네바 수준의 동결 합의만 이뤄지더라도 대북 경제 지원과 정상회담 추진을 본격화할 준비 자세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폐기라는 출발 총성이 들리기 전에 혼자서 뛰어나가면 결국 부정출발의 머쓱함을 외롭게 겪어야 한다. 9.19 공동성명 때 보여 준 섣부른 흥분은 금물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아니라 가장 달콤한 달이라고 노래하려면 하루빨리 겨울의 따뜻함에서 깨어나야 한다. 북한은 핵선군노선이 삶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을 피하기 위한 절실한 노력을 할 마지막 기회다. 미국은 폐기를 위한 동결의 협상만으로 비핵화의 정상에 오르기 어렵다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한국은 국내 정치적 분위기 때문에 동결을 폐기로 속단하는 순간 가장 잔인한 4월을 맞이할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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