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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1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 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을 제안하면서 개헌논쟁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야당의 의도적인 무시, 그 ‘정략적’ 의도에 대한 언론의 의심,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 등에 직면하여 개헌논의는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1월 17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개헌이 안 됐을 경우 반대했던 사람들한테 끊임없이 책임을 물어가겠다”며 개헌안 발의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대통령의 말마따나 여론이라는 것이 자주 변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현재 개헌 문제에 대해 여론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개헌 자체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거나 찬성 쪽이 약간 우세한 듯하고, 개헌의 시기에 대해서는 차기 정부에 하자는 의견이 대체로 지배적인 것 같다.

1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 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을 제안하면서 개헌논쟁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야당의 의도적인 무시, 그 ‘정략적’ 의도에 대한 언론의 의심,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 등에 직면하여 개헌논의는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1월 17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개헌이 안 됐을 경우 반대했던 사람들한테 끊임없이 책임을 물어가겠다”며 개헌안 발의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대통령의 말마따나 여론이라는 것이 자주 변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현재 개헌 문제에 대해 여론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개헌 자체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거나 찬성 쪽이 약간 우세한 듯하고, 개헌의 시기에 대해서는 차기 정부에 하자는 의견이 대체로 지배적인 것 같다.

 

다른 민주화 사례와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크게 힘입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 한국의 민주화는 남유럽이나 남미 국가들에서 두드러졌던 군부-문민 엘리트 간 ‘협약을 통한 민주화’가 아니라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하지만 ‘운동에 의한 민주화’는 이내 ‘협약을 통한 민주화’로 변질되었다. 왜냐하면 1987년 하반기, 즉 6·29에서 대선에 이르는 시기에 민주화의 범위와 속도 설정, 민주화의 주요 의제 결정, ‘민주헌법’의 제정, 정초(定礎)선거를 비롯한 새로운 정치적 ‘게임의 규칙’ 고안 등 신생 민주주의의 제도설계 전반을 관장했던 것은 시민사회의 운동세력이 아니라 권위주의 집권당과 보수야당의 정치 엘리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탄생한 ‘87년체제’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별로 반영하지 못했다.

 

한편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확립되었고, 선거가 공정해져 여야간, 지역간, 세대간, 주류-비주류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남북관계도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정보화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파고가 높았고, 경제위기 이후 고용불안정, 사회양극화의 그늘이 드리웠다. 하지만 ‘민주헌법’을 비롯해 1987년에 우리가 창안해놓은 제도의 대부분은 민주화 이후 발생한 다양한 변화들을 반영하지 못하고, 새로운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방향이나 원칙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이미 꽤 오래 전부터 개헌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어왔다. 대통령의 임기나 정체(政體) 등 권력구조의 문제뿐 아니라 지방분권, 통일, 인권, 평화, 환경, 여성 등 다양한 관점과 분야에서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들을 어떻게 헌법에 반영하여 민주주의의 제도적 심화를 촉진할 것인가에 관해 진지한 논의가 계속되어왔던 것이다. 개헌에 관한 시민사회의 선행 논의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임기말이 되어, 대선을 앞두고, 그것도 대통령 임기 문제에만 한정하여 갑자기 제기하는 개헌론이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여론의 성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 대통령이 촉발시킨 개헌논쟁의 진정한 성과는 개헌 문제를 국민적 의제로, 그리고 국가적 과제로 공론화시킨 것이다. 개헌을 둘러싼 논쟁은 ‘87년체제’의 한계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경험을 종합적·총체적으로 성찰해보고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한 제도적 변화를 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개헌 문제가 법학자들을 포함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치권에서, 언론에서, 시민사회에서 공론화되어야 하고,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도 포함되어 일반 국민의 평가와 심판을 받아야 한다. 단지 합의가 쉬울 것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임기 문제만 가지고 ‘원포인트’ 개헌을 서둘러서는 1987년 헌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고, 민주주의의 심화도 기대하기 힘들다. 혹여 대통령의 계획대로 개헌이 순조로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가까운 장래에 또다시 ‘07년체제’의 극복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선혁 EAI 분권화센터 소장 · 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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