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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국무회의에서 한 임기 관련 발언에 대해 말꼬리 잡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의 지명을 철회해야 했던 좌절감과 임기 말 대통령의 무기력에 대한 답답함의 표현이었으리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한 열린우리당에 대한 섭섭함도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번에도 노 대통령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국무회의에서 한 임기 관련 발언에 대해 말꼬리 잡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의 지명을 철회해야 했던 좌절감과 임기 말 대통령의 무기력에 대한 답답함의 표현이었으리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한 열린우리당에 대한 섭섭함도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번에도 노 대통령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전효숙 후보의 인준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이 플래카드까지 걸어놓고 국회를 단상 점거했던 행동은 결코 잘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일부 인사권 행사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한 것은, 대통령이 자의적이고 일방적으로 인사를 행하지 못하도록 제약을 두자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합의의 산물이다. 그런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지명이 어려워져 철회하게 된 것을 두고 대통령이 이제는 인사권조차 내 맘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고 탄식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태도다.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자리에 원하는 사람을 앉히고 싶었다면 여론의 높은 지지를 이끌어 냈거나 야당을 설득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논란이 적은 인물을 선택했어야 했다. 그러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자신의 뜻이 좌절되었다고 임기 문제까지 언급한 것은 지나친 반응이다.

 

이와 관련해 지적할 또 다른 문제점은 야당과 의회를 바라보는 노 대통령의 시각이다. 노 대통령은 "임기 동안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이런저런 타협과 굴복이 필요하다면 해야 할 것"이라고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서 "타협과 굴복"이라는 표현은 향후 대통령에게 모멸적인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그것이 매우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이런 인식 때문에 임기 중 중도 하차의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도 나온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정치는 필요하다면 타협.후퇴.양보를 통해 목표를 이뤄내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 말이 우려를 자아내는 까닭은 아직도 정치를 "대결과 투쟁" "승자와 패자"라는 제로섬 게임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아마도 최근 제안한 여.야.정 정치협상회의가 바로 정치적 타협과 양보를 위한 방안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호적인 상황에서도 정치적 경쟁자가 이끄는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일은 야당에는 언제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동안 야당 지도자들과 깊은 신뢰관계를 형성했거나, 혹은 그 제안 이전에 물밑 접촉을 통해 이들을 끌어들이려는 적극적인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제안을 불쑥 던져놓고 이를 받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상하다.

 

여당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최근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제 국민 거의 모두가 노 대통령에 대해 별다른 기대감을 갖지 않게 된 것이다. 대통령이야 임기를 마치면 그만이지만 "차기"를 강구해야 하는 여당으로서는, 변변한 대권 후보조차 내놓지 못하는 형편에서, 민심이 따르지 않는 사안에 대해 최악의 지지도를 보이는 대통령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면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도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했다. 그것이 임기 말의 대통령이 레임덕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진작부터 타협도 하고 때때로 "굴복"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어쩌랴. 지금이라도 길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탄식이나 위협이 아니라 노 대통령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 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강원택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 숭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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