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Editor's Note


백년을 가겠다던 열린우리당이 창당한 지 3년 만에 휘청거리고 있다. 단순히 실패했다는 평가를 넘어 애당초 창당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는 말까지 창당 주역들 입에서 나오고 있다.

백년을 가겠다던 열린우리당이 창당한 지 3년 만에 휘청거리고 있다. 단순히 실패했다는 평가를 넘어 애당초 창당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는 말까지 창당 주역들 입에서 나오고 있다.

 

집권당이자 원내 제1당인 열린우리당 내에서 이처럼 재창당을 포함한 정계개편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지지도 추락 때문일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지방선거, 보궐선거 등 그 동안 모든 선거에서 참패했고 당 지지율도 현재 겨우 10%대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대선 경쟁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도 주목할 만한 대선 후보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선뿐만 아니라 뒤 이은 총선까지 고려해야 할 여권 국회의원들로서는 이대로는 다 죽는다는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듯하다. "새로운 판"에 대한 구상은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시장에서 기업들이 상품 경쟁을 하듯이 정치 세계에서도 정당은 선거라는 정치시장에서 경쟁을 한다. 시장에서는 소비자 기호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품은 팔리지 않게 되어 결과적으로 그 기업은 경쟁에서 도태된다. 도태된 그 자리는 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이 대신하게 된다. 시장의 건강함은 여기서 나온다.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유권자 여망을 제대로 담아 내지 못하는 경쟁력 없는 정당은, 시장에서 기업이 도태되듯이 정치적으로 퇴출되는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좋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최근 정계개편 논의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장 경쟁에서는 기업이 망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정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보듯이 창당 주역들조차 실패했다고 결론 내린 정당이 통합신당이니 정계개편이니 하는 말과 함께 다시 시장에 나오려 하고 있다. 경쟁력이 없어 퇴출 위기에 놓인 상품을 내용물은 그대로 둔 채 겉포장만 바꿔 다시 내보내겠다는 꼴이다.

 

지금 여권에서 진행되는 정계개편 논의에 대해 국민들이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열린우리당이 기존 간판을 내리고 새로운 형태로 정계개편을 하려 한다면 적어도 두 가지는 반드시 먼저 설명되어야 할 것 같다. 우선은 왜 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반성과 책임이다. 2003년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에서 분당하면서 내걸었던 지역주의 극복, 정치개혁, 낡은정치 타파 등 명분에 대해 적지 않은 유권자가 공감했고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가진 제1당이 되었다.

 

그렇게 화려한 시절을 누렸던 열린우리당이 불과 3년도 되지 않아 이처럼 몰락하게 된 것은 그 동안 당이 잘못되어도 아주 잘못되어 왔다는 걸 말해 준다. 멀쩡한 당의 간판을 내리겠다고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왜 이처럼 버림받게 되었는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리고 누구 잘못인지에 대한 치열한 자기반성일 것이다.

 

그 동안 너무 오만하지 않았는지, 지나치게 이념에만 경도된 것은 아니었는지, 너무 닫혀 있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면 반성할 만한 것들이 무척 많을 것 같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 속에서 이러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백년을 꿈꾸던 원내 제1당이 잘못되어 망하게 되었는데 아무도 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반성도 하지 않는다.

 

둘째로 지적할 점은 기존 간판을 내리고 새 간판을 걸겠다고 한다면, 새 간판하에서 내놓을 상품이 이전 것과 비교해서 어떻게 "품질 개선"이 이뤄졌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열린우리당에서 재창당을 말하는 이들은 호남과 지역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지역주의 타파는 과거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이 뛰쳐나올 때 스스로 내걸었던 명분이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참신한 명분은 고사하고, 자신들 존립 근거가 되었던 명분마저 이제는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신상품이라고 우기면서 창고 속 철 지난 재고 물건을 내놓는 격이다. 현재 진행중인 정계개편 논의가 궁지에 몰린 여권 정치인들의 제 살길 찾기라는 것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몰락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책임의식 없이 정치공학적인 계산에만 몰두해 있는 열린우리당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본들 과연 무엇이 달라질 것이며 또 거기서 도대체 뭘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데 대한 회의와 의구심은 그래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강원택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 숭실대학교 교수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