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돌파구는
이숙종 전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행보에 대해 “다소 초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측이 조바심을 치면 오히려 북한이 남측을 관리하면서 주도권을 쥐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 전 원장은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원을 남측에 우회적으로 요청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경색된 남북관계에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재인 정부의 미·북 간 ‘중재자’ 역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할 정도로 한반도가 긴장 상태였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통해 미국과 북한을 잇는 가교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미·북 정상의 깜짝 회동을 이끌어냈지만 북·미 대화에 별 진전이 없이 올해가 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 코로나19 사태와 뒤따른 경기침체 대응문제가 대선 스케줄과 맞물려 긴박하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같은 것은 자제하면서 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 친분은 이어가는 ‘현상유지’로 들어간 것 같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승자가 가려지면 북한이 미국의 새로운 정부에 신호를 보낼 것이고, 이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내년 봄쯤 협상의 물꼬가 다시 트이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정부는 미·북 비핵화 협상이 경색되자 중국을 적극 활용해 북핵 문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 같다.
“역대 정부를 보면 북핵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할수록 중국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핵 문제는 근본적으로 미·북 간 의제이기 때문에 중국이 노력해도 쉽게 중재하기 힘들다. 물론 당사국인 한국이 핵 문제 해결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개발에 주력하도록 설득해 가야 한다.”
―한국이 보다 적극적이며 창의적인 중재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비핵화 협상의 구체적 중재안이 과거에 없어서 일이 해결되지 않은 게 아니다. 결국 미·북 지도자들이 결단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양측 간 신뢰구축이 긴요하다. 한국은 이러한 미·북 간 신뢰를 쌓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인데, 이 역할을 하려면 미국과의 신뢰관계, 북한과의 신뢰관계가 공고해야 가능한 일이다. 후자를 위해서는 북한이 남측의 이러한 진정성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할까.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면 어떤 제스처를 통해서든 한국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진단키트라든지 보건·의료장비 등을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이 부분은 인도적 지원이니 대북제재 위반이 아니며, 우리가 줄 수 있는 여력도 된다. 이게 모멘텀이 되면 남북관계가 훨씬 부드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