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충신의 Deep Read>美 ‘신고립주의’ vs 中·러 ‘팽창전략’ vs 北 ‘核 고수’… 韓 정책 대전환 절실
| 2019-11-05
정충신
■ 한반도 주변 격화하는 강대국 패권경쟁
中·러, 보란 듯 核전략폭격기 앞세워 韓방공식별구역 침범 … 정부 무능이 부른 안보 위기
北 끊임없이 ‘核보유국 인정’ 요구 … 한·미·일 전술핵무기 공유 등 ‘플랜B’ 준비 나서야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검토하고 중국·러시아가 합세해 핵전략폭격기로 한·일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는 등 한반도 주변의 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맞서 중·러가 군사동맹 체결까지 추진하면서 강대국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양상도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집권 2년 반 동안 한·미 동맹은 퇴색했고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며, 중국의 홀대와 북한의 냉대는 노골화하고 있다. 안보 당국 간 혼선도 깊다.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북한이 미·북 비핵화 협상으로 시간을 벌며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할 경우 한국은 북한의 핵 인질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깊어진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주도 세계 질서’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고립주의를 내세운다. 여기에 중·러 패권 도전, 북의 핵보유국 드라이브 등 상황이 맞물려 한국의 안보정책 대전환이 절실해졌다.
◇당국 혼선과 정부 무능이 부추긴 안보 위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북한은 10여 기의 핵무기를 추가 생산하고 핵 투발 수단인 ‘북한판 이스칸데르급’ 미사일(KN-23) 등 미사일방어체계(MD)를 무력화할 신형 전술 유도무기 4종 세트를 개발했다. 북한은 북극성-3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성공에 이어 3000t급 신형 잠수함 진수식을 연말 목표로 준비하고 있으며, 연말 비핵화 협상이 실패할 경우 내년 초 화성-14형,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위협하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EAI)과 한국리서치가 실시해 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전반기 외교·안보정책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에 4.6점(0∼4점 못함, 5점 보통, 6∼10점 잘함)이었다. 4점 이하의 낙제점을 준 비율은 42.1%나 됐다. 한반도 비핵화가 ‘단기간에 실현될 전망’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2.3%에 불과했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35.6%), ‘비핵화가 실현되지 않을 것’(38.9%) 응답이 주를 이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질문에 ‘신뢰한다’가 13.7%, ‘신뢰하지 않는다’가 64.6%로 부정 의견이 긍정 의견보다 무려 50%포인트 이상 높게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안보 당국의 혼선 등 정책의 실패가 안보 위기를 부추기고 안보 불안의 주요인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미 INF 조약 파기와 중·러 밀착…동북아 패권경쟁 촉발
중국의 잦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무단 진입에 이어 핵전력이나 공군력이 중국보다 훨씬 앞선 러시아까지 보란 듯이 한반도 상공 무력시위를 벌이는 것은 동북아 패권 경쟁의 전조다. 미국은 중·러의 도전에 맞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폐기 선언을 한 뒤 동아시아와 태평양지역에서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중·러의 무력시위는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후보지로 거론되는 한국과 일본 등을 겨냥한 경고로 해석된다. 미국이 INF 조약 폐기를 결정한 이유는 러시아나 중국이 이미 지상 발사 중거리미사일을 생산해 실전 배치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 중국의 항공모함 잡는 미사일로 불리는 둥펑(DF)-100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과 DF-17 등 극초음속 미사일이 미 항모전단에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하는 것도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국의 ‘반 접근·지역 거부(A2AD)’ 전략에 맞서 한반도를 포함한 태평양 일대에 유사시 미군 투입을 원활히 하기 위한 군사전략 변화 조치를 취했다. 개량형 전술미사일(ATACMS·에이태큼스)과 장차 도입될 장거리 정밀타격 미사일로 지상에 있는 적의 미사일 발사대, 레이더 시설, 지휘소 등을 타격할 수 있도록 통합전력을 투사하는 전략 조치다. 미 육군이 한국 등 동맹국에 지상 발사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추진하는 것은 이런 군사전략 변화에 기인한다.
◇북, 핵보유국의 길…한국 플랜B 준비 시급
러시아와 중국 전략폭격기의 잦은 한반도 무력시위에 대해 미국은 1년여 만에 B-52 전략폭격기 2대를 지난 10월 25일 동해와 러시아 인근 상공에 전개했다. B-52는 남중국해 전쟁과 관련, 중국 동해안 지역에서 수시로 무력시위하는 중이다. 북한의 ICBM 추가 도발 위협에 대한 경고성 무력시위도 포함됐다. B-52는 북한 지휘부가 숨은 지하벙커 등을 초토화할 수 있는 합동정밀직격탄(JDAM)을 포함, 최대 31t에 달하는 무기로 평양 등 북한 핵심시설을 초토화할 수 있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전력이다.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전략무기 전개 금지를 북이 요청하고 9·19 남북군사합의 때 비무장지대(DMZ) 인근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도 B-52 등 전략무기가 김정은 체제 유지에 가장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나아가 차세대 전술핵폭탄 B61-12를 개발 중이다. B61-12는 스마트 전술 소형 핵폭탄으로 산악지대나 지하 60m에 은신한 적 지휘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인데, 2020년까지 대량 생산해 2024년까지 실전 배치할 방침이다. B61-12는 폭발력을 4개 수준(0.3㏏, 1.5㏏, 10㏏, 50㏏)으로 조절할 수 있어 불필요한 살상도 막을 수 있고, 원형공산 오차(CEP)가 기존 핵폭탄의 20% 수준인 30m에 불과하다. 한국이 2021년까지 40대 도입 예정인 F-35A 스텔스 전투기에도 B61-12를 장착할 수 있다. 북한이 한국의 F-35A 도입에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며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북한은 현재 미·북 비핵화 협상으로 시간을 벌면서 핵무기 및 핵투발 수단을 개발하고 기어코 핵보유국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이 확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에 미국이 북한을 정밀타격하거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식의 전술핵무기 한·일 공유 방안 등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내에서 플랜B 준비 필요성이 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플랜B에는 자체 핵무장과 미국과의 핵 공유 방안을 포함해 핵추진잠수함 독자 개발, ICBM 및 KN-23 등 탐지가 가능한 E-2D 조기경보기 탑재 퀸엘리자베스급 (7만t급) 항공모함 개발 등이 포함돼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충돌…한국 안보정책 대전환 요구
세계는 지금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을 중심으로 총성 없는 ‘하이브리드 전쟁’, 즉 복합전쟁을 치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유럽·중동은 러시아, 인도·태평양은 중국이 맡는다’는 암묵적 합의를 맺었다는 느낌도 감지된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을 막을 수단은 MD, 경제 제재, 일본·호주·인도와의 안보 협력, 한·미·일 3각 안보 공조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은 중요하다. EAI 여론조사에서 미·중 갈등 시 한국의 바람직한 대응과 관련, ‘기본적으로는 중립을 추구해야 한다’(69.9%)는 것에 많은 답변이 나왔다. ‘미국 선택’이 24.4%, ‘중국 선택’이 5.1%였다. 한·미 연합(공동) 훈련과 관련해서는 ‘중단 지지’가 31.6%, ‘중단 반대’가 61.1%로 나타났다. 미국 세계정책의 변화, 중·러의 패권 도전, 북의 핵보유국 드라이브 등에 맞서 안보정책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부 부장
■ 세줄 요약
안보 무능이 부른 위기 : 중·러, 핵전략폭격기로 한반도 해상과 상공 무력시위. 미, 북 핵심시설 초토화할 B-52 전략폭격기 전개 맞불.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안보 당국의 혼선 등 정책의 실패가 안보 위기를 부추겨.
북 핵보유국 의지, 한국 ‘플랜B’ 호출 : 북은 미·북 비핵화 협상으로 시간을 벌면서 핵무기 및 핵투발 수단 개발해 핵보유국 길 걸어. 비핵화 플랜B로 한국 자체 핵무장, 미국과의 핵 공유, 핵추진잠수함 독자 개발, 퀸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 개발 등 거론.
안보정책 대전환 시급 :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주도 세계 질서’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신고립주의적 행태. 미 세계정책의 변화, 중·러의 패권 도전, 북의 핵보유국 드라이브 등에 맞서 한국의 안보정책 대전환 필요.
■ 용어 설명
하이브리드 전쟁 :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은 2013년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이 처음 사용한 용어. 강대국이 경제 제재와 무역 전쟁, 군사 동맹 등을 통해 군사·경제 패권을 강화하거나 세계 경제와 안보 새 질서를 개편하기 위해 전개하는 새 개념의 전쟁 수행방식.
원형공산 오차(CEP) : 원형공산 오차란 발사된 미사일이나 포탄의 낙하지점이 절반 이상 분포될 것으로 예상되는 원의 반경을 말한다. 타격 정확도를 표시하는 기준이며 표적에 대한 예상 피해를 판단하는 요소로 사용된다.
[리셋 코리아] 미·중 디커플링 충격 대비에 사활 걸어야
중앙일보 | 2019-11-05
윤석열 이후 노골화한 `혐오·선동 정치`, 이걸 없애려면
오마이뉴스 | 2019-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