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J.펨펠 U.C. 버클리대 정치학과 교수는 비교정치 및 일본정치, 그리고 정치경제학 분야에 정통한 세계적 석학이다. 저서, 공저 및 편저로는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2012), Remapping East Asia: The Construction of a Region (2005), Beyond Bilateralism: U.S.-Japan Relations in the New Asia-Pacific (2004), Regime Shift: Comparative Dynamics of the Japanese Political Economy (1998) 등이 있으며 현재 아시아 지역주의 및 안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손열 EAI 일본연구센터 소장은 미국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안보정책이 이웃 국가들인 한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에게도 지속적인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에게 중국의 부상이 큰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면 한국과 중국은 아베 총리의 수정주의 역사관과 우경화 행보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관계는 미국에게도 자국의 역내 입지 강화 및 아시아 재균형 전략 추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듯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역내 구도를 놓고 T.J. 펨펠 교수(UC Berkeley)와 손열 소장(EAI 일본연구센터;연세대)은 동아시아 지역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과 한국 및 일본의 전략적 고려요인들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일본의 아베식 수정주의와 미국의 우려

 

“미국은 중국과의 다방면적 협력관계 구축과 한일 안보협력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와 거리두기 할 것.”

 

손열(이하 손) 미국은 중국과 협력적 관계를 추구하면서도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견제하려는 전략을 추구하는 것 같다. 특히 중국을 견제하려면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러한 협력관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T.J. 펨펠(이하 펨펠) 동아시아에는 두 개의 중요한 3각 협력관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한미일 3각 협력관계로, 이는 중국 또는 북한을 견제하는 3각 안보체제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또 하나의 중요한 3각 협력관계로 한중일 3각 협력관계가 존재하며, 이는 전자와는 달리 협력과 관여를 추구하는 관계라고 할 수 이다. 불행하게도 한중일 3각 협력관계는 일본 아베 총리의 역사 수정주의로 인해 한국과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지 못하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행보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아베 내각의 지속적인 역사 왜곡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NHK 대표의 난징 대학살 부정 발언 등의 행태는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노력해 온 결과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골적이고 터무니없는 역사 수정주의로부터 미국은 분명 거리를 두고자 할 것이며 아베 총리가 “제발 조용히 있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아베식 역사 수정주의는 미국의 장기적 목표인 중국과의 다방면적 협력관계 구축과 한일 안보협력 증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베 수상이 국수주의적인 발언을 할 때마다 한국과 중국의 우려는 심화될 것이며 그만큼 한중일 3각 협력관계도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아세안+3(ASEAN Plus Three; APT)에서 파생된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2008년 출범 이후 상호 투자협정 체결, 자유무역협정 협상 추진 등 실질적인 성과를 이뤄낸 바 있다. 그러나 현재 3국 정상회의는 중단됐으며 진행 중이던 자유무역협정 협상 또한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역내 협력과 관여 증진에 매우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견제에 기반한 한미일 3각 안보체제가 공고하거나 강화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한미일 협력 추진 역시 일본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한일 공조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일본 아베 총리의 행보는 결국 관여와 견제를 동시에 실행하려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반하는 것으로 오바마 행정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일본은 어려운 국내 여건 속에서 지속적으로 쇠퇴의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등장과 함께 일본은 어느새 안보와 경제 분야에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방금 아베 총리의 역사 수정주의 행보에 대해 설명해줬는데, 그렇다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본의 전향적 태도가 동북아시아 역내 안보 및 경제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가? 아직까지 소강상태에 머물고 있기는 하나 일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도 나름대로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다.

 

펨펠 일본의 경제 발전은 아시아에 굉장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의 경제 발전 모델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좋은 선행 사례가 되었으며 대만의 장개석 총통 역시 이러한 일본의 전략을 차용한 바 있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과 대만이 197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서 1980년대 경제성장의 중흥기를 지나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는 데 있어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의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많은 투자를 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위한 중요한 촉매자 역할을 했다. 경제적 번영과 발전에 총력을 기울여 온 일본이 아시아 지역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중국으로서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일본은 중국 경제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은 중국에 상당한 원조를 제공한 바 있으며 천안문 사태 이후 가장 먼저 제재를 해제했던 국가이기도 하다.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일본은 중국에게 그렇게 나쁜 파트너는 아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일본의 군사적 움직임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일본이 헌법을 재해석하고 더 많은 역내 안보 및 군사 활동을 추구하려는 데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일본의 국방비 지출은 국가 경제규모에 비해 여전히 작은 수준이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급유•급수 지원을 한 경험이나 소규모 분대 파견 등의 사례들은 일본이 대체적으로 군사활동에 매우 조심스러워 하고 있으며 어떠한 분쟁에도 휘말리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나마 확대된 군사활동으로는 해적 소탕을 목적으로 한 일본 해상보안청의 동남아시아 국가 지원 등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국방비 지출을 약간 증가시키거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논의를 한다고 해서 일본이 무조건 1930년대로 회귀했다고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러한 일본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고 1930년대 일제의 만행에 대해 묵인하면서 헌법 재해석을 고집하거나 종교 교육 또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등, 아베 총리는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정치가였던 기시 노부스케의 환생이라고 불릴 정도로 극우적 성향이 매우 뚜렷해 보인다. 아베 총리가 지속적으로 국방, 안보문제를 얘기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731 번호가 달린 비행기에 타게 되면 아시아 주변국들과의 갈등은 커지고 경제회복이라는 중요한 과제에 일본이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일본 국민들은 지난 20년 동안 경제 침체와 부채 등의 어려움으로 다분히 사기가 저하된 상태다. 따라서 일본의 경제 회복과 발전은 자국 입장에서 볼 때 핵심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으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역내 주변국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바라건대 아베 총리가 지금의 역사 수정주의적 행보와 대외 정책과 관련된 국력 소모를 중단하고 경제 활성화와 개혁에 집중한다면, 오히려 한국과 더 가까워지고 중국을 더 이상 위협으로 느끼지 않으며 동남아시아에서 자국의 입지를 더욱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아베 총리의 수정주의적 역사관, 군국주의, 아베노믹스 추진 등이 한미 양국의 이해관계에 반할 수 있다고 평가했는데, 일본이 실용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대외정책 기조를 바꾸고 3각 협력관계를 회복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펨펠 미국은 이미 수 차례 아베 총리에게 역사 및 국방 등의 이슈들로 더 이상 논란거리를 양산하지 말라고 권고했으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에 대해서도 반대입장을 표명해왔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경고를 듣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 사고방식의 저변에는 아베 총리 스스로가 옳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 정치구도 속에서 자신에게 맞설만한 세력이 없다는 점 또한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 동북아 정세에서 가장 크게 우려되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미국의 동맹국이자 민주주의 국가로서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기에 유리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베 총리가 그러한 점을 충분히 활용해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지난 분기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0.7% 증가하는데 그쳤으며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점 또한 사실이다. 상승하던 일본 주가 지수역시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이러한 현상은 아베 내각의 등장과 함께 상승했던 경기 회복에 대한 열망이 점차 줄어들 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베 총리의 결단력 있는 개혁 조치가 없다면 활력을 되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여전히 역사와 국수주의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결국 엄청난 정치력 낭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한일관계 회복과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시아 지역전략

 

“한일관계는 동북아시아 지역협력 활성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복원되어야 하는 중요한 과제이며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적임자. 신뢰증진을 위해서는 동북아시아평화협력구상과 더불어 한중일 3국 정상회담과 같은 정상외교 틀도 고려해야 할 것.”

 

현재의 한일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안 좋은 상황이다. 한국의 대일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베 총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펨펠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간의 신뢰를 강조하면서 비교적 협력이 수월한 비전통 안보분야에서부터 신뢰를 쌓아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박 대통령의 노력은 한일관계 회복에도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양국 간의 역사문제를 극복하고 미래 협력 방안을 함께 모색하자고 제안할 수 있었던 용기를 조금 더 따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오부치 전 총리와 아베 총리, 그리고 김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 역시 고려할 수 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한국과 일본은 성공적인 민주주의 체제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공유하면서 서로가 매우 역동적이고 긴밀한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력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역사문제를 둘러싼 양국 정상들의 시각은 협력을 추진하는 데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방금 비전통 안보분야에 입각한 한국의 지역 접근에 대해 지적해 줬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Northeast Asia Peace and Cooperation Initiative)과 맞닿아 있는 얘기인 것 같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박 대통령의 신뢰외교(trustpolitik)에 기반한 한국의 아시아 지역전략이라고 볼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비전통 안보분야 내지는 소프트 이슈에서 협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협력의 관행을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전통 안보분야로까지 협력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구상에 기반한 한국의 지역 접근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펨펠 개념만 놓고 봤을 때는 좋은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동북아시아 정치 지도자들 간에는 신뢰가 부족한 상황이므로 국가간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분명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세 나라가 환경문제에 대해 협력한다고 해서 곧바로 영토나 역사, 정체성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A, B, C 분야에서의 협력이 D, E, F로 확산될 수 있다는 기대는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각각의 국가정책이 현실적으로는 독립적이며 반드시 연동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환경 담당 기술자들이 협력하는 데에는 꼭 군 장성이나 고위 외교관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공적개발원조와 같은 정부 정책과 연동되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등장 이후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실질적으로 중단됐다는 것은 오늘날 동아시아 지역주의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신뢰 구축이 다방면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만큼 좋은 틀이 없다. 정상들이 공식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각국의 관료들이 사전에 어떤 분야에서 협력할 것인지 또는 서로 어떤 의제를 주고받을지 등을 놓고 부단한 준비를 해야 한다. 과정 속에서 유관 부처 및 기관간의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신뢰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가간 협력이 국장급 또는 기관장 수준에서만 이루어진다면 최고위 정치 지도자가 참여했을 때만큼 파급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 총리, 국가주석 등이 관여할 경우에만 정부 전체를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재개하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시진핑 국가주석 모두 국내정치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일 간에 이러한 최고위급 회담이 성사된다면 동북아시아 신뢰 증진에 매우 긍정적인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등 다양한 구상이 논의될 수 있다. 한중일 3국의 정상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이를 성사시킬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향후 박 대통령에게 있어서도 매우 긍정적이고 값진 업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The John D. and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으로부터 중견국 외교 연구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는 국내외 전문가를 대상으로 동영상 인터뷰 형식의 스마트 Q&A를 진행해오고 있으며, 관련 분야 전문가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현안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심도 있는 분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본 원고는 EAI 아시아안보연구센터 유재승 연구원이 작성한 영문 보고서를 김민걸, 서창교, 이정현 번역•정리한 것으로, 인터뷰 당사자의 개인 의견이며 동아시아연구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스마트 Q&A를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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