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강원택 EAI 민주주의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은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의 정치가 가짜뉴스 생산과 유통, 소비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설명합니다. 강 소장은 EAI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치제도 및 사법부에 대한 신뢰성 하락이 가짜뉴스 수용성을 높인다고 분석하고, 보다 경쟁적이고 투명한 정치를 위한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1. 들어가는 말

 

197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민주화의 ‘제3의 물결’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생겨났지만,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등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주의 후퇴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점은 포퓰리즘의 부상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당선이나 영국에서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는 민주적 전통이 강한 국가라고 해도 포퓰리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미국, 유럽 등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해서 우리나라에서 포퓰리즘 현상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다. 유럽에서처럼 포퓰리스트 정당이 의회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거나, 혹은 미국의 트럼프처럼 노골적으로 포퓰리즘을 내세우는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부상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의 포퓰리즘은 정치학적 분석의 대상보다는 정치권에서의 상호 비방의 용어이거나, 혹은 정치권의 무책임한 공약을 비판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포퓰리즘의 현상은 나타나고 있으며, 최근의 정치적 상황은 포퓰리즘 부상에 오히려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하 강원택 2021). 무엇보다 우선 정치 전반에 대한 신뢰가 낮고,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비율도 높은 편이다. 정치는 양극화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정치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크다. 정당 정치뿐만 아니라, 국회, 법원, 행정부 등 정치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도 상당히 낮고, 반엘리트 경향도 강하다. 이 때문에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정치적 경험이 없는 ‘외부자’를 찾고, 그 인물을 통해 현실의 불만을 해결해 내고자 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다른 서구 민주주의와 비교할 때 현재 한국 정치가 ‘포퓰리즘 정치’라고 단언할 수는 없더라도, 정치 전반에 대한 높은 불신, 국회와 정당에 대한 불신, 반엘리트주의, 정치적 양극화 등 포퓰리즘 정치에 ‘취약한’ 상황이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양극화와 포퓰리즘의 정치는 가짜뉴스(혹은 허위조작정보 disinformation)[1]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 글에서의 문제의식은 포퓰리즘이나 양극화는 정치적 공급자, 즉 정치인이나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려고 하는 정치적 소비자, 즉 일반 시민의 태도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포퓰리즘의 위험성은 포퓰리즘적 선동과 주장을 내세우는 정치인이나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민의 태도와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포퓰리즘은 정치적 양극화라는 토양에서 커나가는 것이고, 가짜뉴스의 수용과 소비 역시 포퓰리즘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가짜뉴스의 생성, 유통, 소비는 정치적 양극화, 그리고 포퓰리즘에 대한 수용적 태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정치적 양극화, 포퓰리즘, 그리고 가짜뉴스에 대한 태도의 관계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2. 포퓰리즘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지만 포퓰리즘에 대한 정의는 사실 쉽지 않다(이하 강원택 2021). 포퓰리즘은 잘 정의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볼 수 없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얇은(thin)’ 이데올로기로 불리기도 한다 (Mudde 2004; Stanley 2008). 현실 정치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성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포퓰리즘은 그 용어가 시사하듯 기본적으로 대중, 인민(people)과 관련된 정치 현상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그 자체에 의해 비춰진 그림자 (a shadow cast by democracy itself)’ (Canova 1999: 2-3)라는 표현처럼 민주주의 체제와 포퓰리즘은 근본적으로 분리되기 어렵다. 포퓰리즘에서 인민에 대비되는 존재는 엘리트이다. 포퓰리즘은 고결하고 순수한 보통의 대중들, 인민이 타락하고 비도덕적이며 무능한 엘리트에 대항하는 정치라는 형태로 프레임이 만들어지며, 그 결과는 반드시 인민의 일반의지가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Mudde 2004; Mudde and Rovira Kaltwasser 2017). 이처럼 포퓰리즘은 기본적으로 반엘리트주의의 속성을 갖고 있다. 정치 엘리트가 실업의 증가,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 등 대중의 어려움을 제대로 해결해 내지 못한다는 불만에 부패까지 더해지면 포퓰리즘의 부상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포퓰리즘의 두 번째 특징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다. 기존 정당이나 정치 엘리트는 기득권을 대표할 뿐이기 때문에, 기존 정당이나 이익집단의 매개보다 대중의 정치 참여와 이를 통한 의사의 직접적 표출을 선호한다. 복잡한 정치 구조에 의지하는 대신 엘리트의 매개가 필요 없는 국민투표와 같은 방식을 통해 인민들이 직접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서병훈 2008: 117). 즉, 포퓰리즘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운영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대의제와 정당 정치에 대한 불신을 담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분열의 정치, 배제의 정치다. ‘아군과 적’의 명백한 구분이 있으며, 배제, 증오의 대상이 존재한다. 최근에 나타나는 포퓰리즘의 경우 ‘우리’가 종교, 인종, 계층, 풍습 등 문화적 요인에 의해 매우 협소하게 정의되면서(Galston 2019: 11) 그 이외의 ‘그들’에 대한 적대감과 배척이 이뤄지고 있다. 유럽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 인종주의. 애국주의, 지역주의의 정서와 이로 인한 반이민, 반난민, 국수주의, 보호무역주의, 분리주의, 반EU 등의 주장이 바로 이것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말한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a big beautiful wall’)을 짓겠다고 한 것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이는 현실적으로 손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경제적, 사회적 문제의 책임을 외부의 ‘그들’이나 ‘적’을 찾아 그들에게 전가하고 비난한다 (Mounk 2018: 15).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나타나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갈등을 이민자나 소수 인종의 탓으로 돌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것이 포퓰리즘의 주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네 번째는 반자유주의적, 집단주의적 속성이다. 특히 문제인 것은 자유민주주의 핵심적 가치인 다원주의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자유롭고 동등하며 축소될 수 없는 다양한 시민들(irreducibly diverse citizens)이 함께 살아간다고 하는 다원주의(Galston 2019: 12-13)는, 인민의 의지를 강조하고 특정 집단의 다른 집단에 대한 우위와 순수성을 전제로 하는 포퓰리즘에서는 수용되기 어렵다. 인민 전체의 일반의지를 강조하는 포퓰리즘은 서로 다름과 차이를 전제로 하는 다원주의와 공존하기 어렵다.

 

다섯 번째는 공동체 내부에서 이상화된 관련으로 받아들여지는 마음속 이상향(heartland) (이하 Taggart 2017: 163-169)에 대한 강조이다. 사실 마음속 이상향은 상상의 공간이며, 이런 이상향이 명시적으로 요구되는 시기는 고난의 시기다. 그런데 이상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니며, 현재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과거에 대한 회상을 기반으로 마음속에 그려진 이상향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구호 ‘Make America Great Again’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여섯 번째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갖는 강한 지도자에 대한 선호이다. 카리스마를 가진 강력한 지도자들은 청렴, 정직, 소박함과 같이 인민들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소망하는 가치를 구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기적 상황에서 인민을 구출해 내고 수호해 줄 수 있는 특별한 권능을 지닌 이들로 간주된다 (주정립 2006: 59-61). 이런 성향은 때때로 앞서 지적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위임민주주의적인 형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특성을 고려할 때 포퓰리즘은 “대의정치의 사상, 제도, 실천 등을 비판하고 사회적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잠재적 또는 명시적으로 마음속 이상향을 추구하려는 반동적 정치” (Taggart 2017: 23)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포퓰리즘 정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포퓰리스트 혹은 포퓰리즘 정당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경향성이 발견되고 있다. 포퓰리즘에 대한 논의는 노무현 정부 시절 시작되었지만 (김일영 2004),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적폐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 시기에 그런 특성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차태서 2021: 152-153). 당시 친문 세력으로부터 제기된 “적 이미지 구성으로서 ‘토착왜구’론”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포퓰리즘과 반일 민족주의의 융합 혹은 인종주의와 반엘리트 의식의 결합으로서 토착 왜구라는 개념화는 자신들의 반대자는 “비국민”이라는 쇼비니스트적 배제의 언어이자 다원주의에 반대하는 포퓰리즘의 멘탈리티를 표현한다. 이 개념은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촉발된 한일 양국간 외교 갈등과 함께 소위 “정의연·윤미향 사태”의 배경 아래 주로 동원되었다 .... 다른 한편, 정체성 정치 혹은 부족주의의 논리의 다른 쪽 극은 거악에 맞서는 자아 집단의 도덕적 우월성을 전제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차태서 2021: 153)

 

또한 문재인 정부는 정당이나 의회에서의 논의보다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대중 ‘촛불집회’를 찬양하고 활용함으로써 대의제보다 직접 민주주의적 방식을 선호했다.

 

의회정치와 정당정치는 물론 노조와 직능집단 등 자율적 결사체들에 의한 이익 조정의 기능보다는 대중 집회와 국민청원 같은 무정형적 국민운동을 좋아한다.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즉각 해결하라는 정치적 조급증을 자극하며, 편견과 증오, 적대를 통해 압력을 행사하는 데 익숙하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견 속에서 타협과 조정을 통해 일하는 대의 민주주의가 이들에게는 기득권 유지의 방편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불완전함에 대한 존중과 다름과 차이에 대한 지혜로운 관용 등 현대 다원주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덕목이 이들에게는 깨어있지 못한 시민의 비겁함으로 치부될 뿐이다. 상호 신뢰를 조직하고 제도화함으로써 갈등을 절약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했던 인류의 역사적 경험과는 정반대로, 이들은 신뢰보다 신뢰하지 못함을 동원하는 데 익숙하다. 음모론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절제하지도 못한다 (박상훈 2020: 18).

 

이러한 정치는 ‘우리는 선, 상대방은 악’이라는 포퓰리즘적 속성과 함께 정치 양극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더욱이 정보화의 진전과 함께 기존 언론의 문지기(gatekeeping) 기능은 약화된 반면, 유튜브나 SNS 등 새로운 미디어의 부상은 정치적 양극화의 악화와 함께 가짜뉴스 소비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양극화 속에 ‘끼리끼리’(like-minded people) 간의 소통이 강화되었고 이는 기존 자기의 견해를 강화시키는 반향실(eco chamber)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Diaz Ruiz and Nilsson 2023).

 

이러한 환경은 정보의 소비에서도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이거나 ‘우리 편에 유리한 것’만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정보 소비의 편향을 가져오게 되었다. 가짜뉴스의 생성과 유통, 소비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가짜뉴스가 수용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우리’와 ‘그들’의 구분, 그리고 이에 수반하는 선악의 대결로 진영을 나누는 편가르기 등 포퓰리즘의 정치 역시 가짜뉴스의 수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음 절에서는 정파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에 대한 수용성, 그리고 포퓰리즘에 대한 태도가 가짜뉴스의 수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험적 자료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3. 포퓰리즘, 정파성과 가짜뉴스

 

3.1 정파적 양극화

 

앞서 살펴본 대로, 우리나라에서 포퓰리즘은 정파적 양극화 긴밀한 관련이 있다. 여기서의 문제의식은 포퓰리즘이나 양극화는 정치적 공급자, 즉 정치인이나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려고 하는 정치적 소비자, 즉 일반 시민의 태도와도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포퓰리즘은 정파적 양극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앞서 논의에서 본 대로, 포퓰리즘은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편가르기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얼마나 현재 한국 정치의 정파적 양극화가 심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우선 정파적 선호도의 차이에 대해서 분석했다. <표 1>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별로 두 거대 정당 및 주요 정치 지도자에 대한 선호도, 국정평가를 분석한 것이다.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지지하는 정파에 따라 정당별 선호도가 극명하게 달라졌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과 국민의힘 지지자들 간 선호는 서로 완전히 대비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나 국민의힘 지지자들 모두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당 소속 인물에 대해서는 6 이상의 긍정적 평가를 했지만, 상대 정파에 대해서는 2 미만의 낮은 평가를 했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이들의 평가는 대체로 두 정파 지지자들의 중간 정도로 대체로 3에서 4 사이의 값을 일관된 형태로 보였다. <표 1>은 정파적 지지에 따라 상대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다르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모든 항목에서 이러한 평균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서적 선호도에 있어서 정파에 따른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정서적 호오도가 아니라 주관적으로 느끼는 이념적 거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 정파적 입장에 따라 두 경쟁 정당에 대한 이념적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각 정당 지지자가 생각하는 각 정당의 이념 위치를 <그림 1>에서처럼 이념 스펙트럼 위에 정리했다.

 

우선 정당 지지에 따른 이념적 근접성이 확인된다. 다운즈(Downs 1957)가 주장한 근접이론(proximity model)의 효용성이 여기서 확인된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서 민주당과의 이념 거리는 0.28인 반면, 국민의힘과는 무려 3.85의 거리감을 보였다. 민주당 지지자들과 이재명 대표와의 이념거리는 0.58인 반면, 윤석열 대통령과의 거리는 3.96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패턴은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국민의힘과 지지자들 간 이념 거리는 0.74, 그리고 국민의힘 지지자들과 윤석열 대통령 간의 이념거리는 0.99였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들과 민주당 간의 이념거리는 3.84, 이재명 대표와의 이념거리는 4.07이었다.

 

또한 각 정당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두 경쟁 정당 간 이념거리, 두 주요 정치 지도자 간의 이념거리는 매우 먼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의 이념 거리는 4.13, 이재명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간의 이념 거리는 4.54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두 정당 간 거리는 4.58,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간의 이념거리는 5.06으로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유권자들은 이념적 측면에서도 정당 간 차이가 매우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는 이러한 인식이 두 정파 간 타협과 조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두 정당 지지자들 모두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은 이념적으로 보다 온건한 입장인 반면, 상대 정당은 극단적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신들이나 민주당, 이재명은 3-4의 위치, 즉 비교적 온건 진보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반면, 국민의힘이나 윤석열은 8에 가까운, 매우 강경한 보수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자신들은 6-7 사이의 비교적 온건한 보수의 입장을 취하는 반면 상대당과 이재명은 2-3이라는 매우 강경한 진보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우리 편은 온건한데 상대편이 강경해서 정파적 양극화의 상황이 생겨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적 경색이나 교착상태가 생겨나더라도 그 책임은 ‘우리 편’이 아니라 ‘상대방’에 있다는 책임 전가가 가능해 보이는 결과이다.

 

<그림 1>에서의 분석은 응답자가 스스로 매긴 주관적 이념위치 (self-placement)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주관적 이념평가를 사용할 때 종종 제기되는 비판이 응답자마다 각기 다른 기준에 의한 이념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적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경미, 한정택 이지호 2021: 131-133). 그런 점을 고려하여 이번에는 구체적인 정책적 입장에 대한 지지정당별 입장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표 2>에는 모두 9개의 정책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 9개의 질문은 각각 3개씩의 서로 다른 세 개의 이념적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강원택 2005). 첫 번째 범주는 이념의 대북, 안보 관련 정책이다. 2002년 이후 한국 정치에서 북한, 대미관계 등 외교, 안보 영역은 보수와 진보 간 매우 격렬한 이념적 갈등을 불러왔다. <표 3>에서 대북, 안보 범주는 대미 관계 강화, 한일 관계 강화, 남북 협력 등 세 정책 영역에 대한 태도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는 경제 영역이다. 가장 고전적인 이념 구분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 경쟁, 효율을 중시하면 우파, 국가 개입, 형평을 강조하면 좌파라는 서구 계급정치에서 나타난 전형적인 이념 구분이다. 여기서는 과세, 노조 경영 참여, 공기업 민영화 등 세 가지 질문 항목을 포함했다. 세 번째 범주는 사회 영역으로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 대 권위(authoritarian) 간 태도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개인의 자유, 자율, 선택을 강조하면 진보적인 데 비해, 질서, 전통, 권위를 강조하면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시위 및 집회 규제, 병역 대체복무, 학교 체벌 등 세 가지 정책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분석 결과는 매우 흥미롭게도 9개의 모든 항목에서 민주당 지지자와 국민의힘 지지자 간에 매우 일관되고 분명한 입장의 차이가 확인되었다.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 간 입장의 차이로 ‘남남갈등’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 온 대북, 안보 영역은 물론이고, 경제 영역과 사회 영역에서도 두 정당 지지자 간 입장의 차이가 분명했다. 정파적 입장에 따른 시각의 차이가 매우 분명하게 전 정책 영역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정파적 양극화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표 2>의 결과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결과를 두고, 정파적 양극화는 이러한 정책적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의 차이가 각 정당 지지자들이 공유하는 정책적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는 사실 분명하지는 않다. 오히려 정파적 지지가 우선시되어 지지 정당의 정책적 입장을 그대로 따르는 설득(persuasion)의 효과이거나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 방향을 스스로 짐작하여 응답하는 투사(projection)의 결과일 수도 있다 (Brody and Page 1972). 즉 정파적 지지에 맞게 자신의 정책 태도를 합리화(rationalization)한 결과일 수 있다.

 

이를 이념적 태도와 관련해서 살펴보면 더욱 분명하게 그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표 3>에서 보듯이 세 개의 정책 영역에 대해 보수, 진보, 중도라는 이념적 입장에 따른 차이가 뚜렷하게 확인되고 있다. 평균값의 패턴도 분명하게 ‘진보 < 중도 < 보수’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앞서 <표 2>에서 본 정파적 입장의 차이는 이념적 태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표 4>를 보면, 다소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정당 지지와 이념적 태도가 반드시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중 진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 이들의 비율은 절반을 조금 넘는 54.3%였다. 민주당 지지자 중 중도라는 응답이 34.2%로 상당히 높았고, 보수라는 응답도 11.5%에 달했다. 국민의힘 지지자는 62.4%가 자신을 보수로 규정했지만, 중도라는 응답도 30% 정도로 높게 나타났고 8.3%는 진보라고 규정했다. 즉 정파적 지지와 이념적 태도가 일정한 관련성을 갖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소 정파적 지지와 이념적 태도가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표 2>에서 나타난 9개 정책 모두에 대한 매우 일관되고 분명한 정파적 차별성은 이념적 입장의 반영이기보다, 정파적 영향에 의한 설득, 혹은 투사라고 하는 정파적 합리화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실제 일반 국민이 갖는 정책적 입장의 차이보다, 정파라는 요인이 개입하면서 그 차이를 증폭시킨 것이다. 정책적 입장의 일관되고 분명한 차이는 정책의 방향에 대한 각 유권자의 판단의 결과보다 정파적 동원이나 설득, 혹은 투사의 결과로 볼 수 있다.

 

 

 

3.2 정파적 양극화와 포퓰리즘

 

이번에는 정파적 양극화가 포퓰리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 설문조사에서는 애커먼 등(Akkerman et al. 2014)이 제시한 포퓰리즘 문항을 활용했다. 구체적 문항은 다음과 같다.

 

1. 국회의 정치인들은 국민 전체의 뜻을 따라야 한다.

2. 가장 중요한 정책 결정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 내려야 한다.

3. 나는 전문 정치인보다 한 사람의 시민에 의해 대표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4. 엘리트와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적 입장의 차이는 일반 국민들 간의 입장의 차이보다 크다.

5. 정치인들은 그들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해 타협으로 마무리한다.

6. 선거에서 선출된 이들은 말은 많지만 실제 행동은 별로 없다.

7. 정치는 결국 선과 악의 대결이다.

8. 사람들이 정치에서 타협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원칙을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8개의 문항은 포퓰리즘의 특성을 나타내는 세 개의 범주로 정리할 수 있다. 여덟 가지 문항 중 1, 2, 3은 대의제에 대한 회의, 직접민주주의나 대중의 직접 참여에 대한 선호를 의미한다. 4, 5, 6의 문항은 반(反)엘리트적 태도를 나타낸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7, 8은 반다원주의, 혹은 ‘우리 대 그들’ 간 경계 짓기, 대결의 정치를 의미한다.

 

우선 이러한 8개의 항목에 대한 응답의 평균을 알아보았다.

 

 

8개 항목 중 가장 높은 평균값을 보인 것은 “선거에서 선출된 이들은 말은 많지만 실제 행동은 별로 없다” (4.21), 두 번째는 “정치인들은 그들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해 타협으로 마무리한다” (4.14)였다. 정치인에 대한 상당한 불신, 반엘리트적 태도가 나타났다. 그다음으로는 “국회의 정치인들은 국민 전체의 뜻을 따라야 한다”(4.11), “가장 중요한 정책 결정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 내려야 한다”(3.96) 등으로 대의제보다 대중의 직접 주도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 개의 범주를 합한 것에서도 반엘리트 > 대중 직접 주도 > 선악, 대결의 정치 순으로 나타났다.

 

 

이번에는 포퓰리즘의 태도를 정당 지지 여부와 관련해서 알아보았다. <표 6>에서 보듯이, 정당 지지 여부에 따른 차이가 확인되었다. 지지 정당이 있는 경우 더욱 포퓰리즘에 수용적인 태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퓰리즘의 태도가 기존 정당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으로, 유럽에서 신생 정당, 비주류 정당 중심으로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다만 반엘리트 범주는 통계적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정파적 지지여부와 무관하게 그런 정서가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 개 범주 중 반엘리트의 평균이 가장 높았다.

 

기존 정당 정치와 포퓰리즘 태도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두 정당 지지와 포퓰리즘 태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표 7>에서 보듯이, 정파적 지지에 따른 차이가 확인되었다. 대체로 민주당 지지층에서 보다 강한 포퓰리즘 태도가 나타났다. 대중 직접 주도나 반엘리트 성향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 보다 강한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선악의 정치, 대결 정치와 관련된 태도에서는 두 정당 지지층 간 유의미한 평균의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양당 지지자들 모두 비슷한 정도로 이러한 태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포퓰리즘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했다. 독립변수로는 정파적 지지, 정치 지도자에 대한 호오도, 이념, 정치 만족도, 국가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 그리고 정치지식, 정치 관심, 성별, 나이, 학력 등 사회경제적 요소 등을 포함했다. 선형회귀분석을 한 결과가 <표 8>에 정리되어 있다.

 

대중 직접 주도 범주에서는 ‘지지 정당 없다’고 답한 경우, 진보적 주관 이념, 정치 관심 높은 경우에 이에 대한 태도가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경제적 배경으로는 남성, 나이 많은 이들에게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반엘리트 범주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윤석열, 문재인 선호도 차이가 클수록 높게 나타났다. 이 두 범주는 <표 6>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서 보다 강한 성향이 확인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

 

선악, 대결 정치 범주에서는 지지 정당 있고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수록, 주관적 이념에서도 보수 성향에서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표 7>에서 보듯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국민의힘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 태도가 보다 강하게 나타난 점을 생각하면 이런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 두 정당 간 선호도의 차이가 커질수록 선악, 대결의 정치에 대한 수용성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이나 정치지식은 낮을수록, 연령은 높아질수록 이에 대한 수용성이 커졌다.

 

대의제 부정의 의미를 담은 대중 주도에서는 지지 정당 없을수록 높은 경향성을 보였지만, 선악, 대결의 정치라는 측면에서는 지지 정당이 있을수록 더 높은 경향성을 보였다. 결국 선악의 정치, 대결의 정치는 정파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그런 요소가 포퓰리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포퓰리즘 태도 역시 지지 정당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표 8>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표 8>의 분석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와 관련이 있다. “공직자들은 일반 국민의 생각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항목과 국회에 대한 부정적 신뢰도는 세 개의 포퓰리즘 범주와 8개 문항의 합 등 네 개 영역에서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나 같은 사람들은 뭐라고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는 항목도 두 개 영역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경제적 배경 변수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포퓰리즘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기존 정치제도가 국민의 요구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하는 정치적 반응성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포퓰리즘에 수용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결국 포퓰리스트 호소가 작용할 수 있는 것은 국회와 같은 대의제 기구에 대한 강한 불신, 그리고 정부나 공직자들이 국민의 요구나 호소를 제대로 경청하지 않는다고 하는 정치적 소외감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3 포퓰리즘과 가짜뉴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이번에는 가짜뉴스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해 분석했다. 가짜뉴스는 8개의 가짜뉴스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응답을 “1-전혀 사실이 아니다; 2-대체로 사실이 아닐 것 같다; 3-대체로 사실일 것 같다 ; 4-전적으로 사실이다”고 하는 4점 리커드 척도로 답하게 했다. 8개의 질문 항목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4개의 항목과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4개의 문항을 포함하도록 구성했다.

 

○ 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가짜뉴스

-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주변의 교통 체증이 심각해졌다.

- 현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처리수)에 대한 사실을 감추고 있다.

- 한동훈 법무장관이 청담동 술집에서 윤석열 대통령, 김앤장 변호사 30여 명과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 대장동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사건 수사 때 대장동 대출 건만 ‘봐주기 수사’를 해서 발생한 것이다.

 

○ 국민의힘 지지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가짜뉴스

- 한국전력의 적자가 대단히 크게 발생한 것은 탈원전 정책 탓이다

- 2020년 국회의원 선거 때 개표 조작 등 선거 부정이 있었다.

- 북한이 선관위의 선거 시스템에 해킹으로 침투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 ‘검수완박(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경찰의 수사 부담이 커지면서 지구대 인력이 부족해졌다.

 

실제로 이러한 구분이 지지 정파별로 상이하게 수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두 정당 지지자들의 관심 이슈를 두 지지정당으로 구분해서 그 평균값을 알아보았다. <표 9>에서 볼 수 있듯이, 지지정당별로 각기 상이한 가짜뉴스에 대한 반응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관심 이슈에 대한 반응은 지지 정당별로 매우 뚜렷한 대조를 보였는데,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했고,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같은 이슈에 대해서 대체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 가짜뉴스에 대한 소비가 정파적으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표 9>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가짜뉴스 수용에 미치는 요인들에 대해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표 10>은 민주당 지지자 관심 가짜뉴스, 국민의힘 지지자 관심 가짜뉴스, 그리고 가짜뉴스 8개 항목을 모두 합한 것 등에 대한 응답을 각각의 종속변수로 하고,

 

- 포퓰리즘 성향: 대중 주도, 반엘리트, 선악, 대결

- 정치 선호도 차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선호도 차이 절대값, 윤석열과 이재명 선호도 차이 절대값,윤석열과 문재인 선호도 차이 절대값

- 이념: 주관적 이념, 이념극화 정도

- 사회 갈등 정도 인식: 여당 대 야당, 부자 대 빈자, 보수 대 진보, 영남 대 호남

- 정치 제도 신뢰 정도: 대통령, 국회, 행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 개인적 정치 속성: 정치 관심도, 정치 지식

- 사회경제적 배경 변수: 연령, 성별, 학력

- 계층 : 가구 소득, 가구 자산, 주관적 계층 소속감

- 출신지: 충청, 전라,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등 9개 범주의 변수들을 독립변수로 하여 선형 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흥미로운 특성이 나타났다. 포퓰리즘 항목 가운데 ‘선악, 대결 정치’의 범주는 가짜뉴스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분열의 정치, 배제의 정치다. ‘아군과 적’의 명백한 구분이 있으며, 배제, 증오의 대상이 존재하는 분열의 정치, 배제의 정치가 가짜뉴스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분열, 배제의 정치가 가짜뉴스의 수용성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분열, 배제의 정치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끼리끼리의 정치와 논의를 강화시킬 수 있다. 가짜뉴스 역시 이런 환경 속에서 보다 쉽게 수용되는 것이다.

 

이런 특성은 갈등의 심각성 변수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보수-진보 이념 집단 간 갈등이 크다고 인식할수록 가짜뉴스에 대한 수용성이 높았다. 이념 변수에서도 이념적 입장이 극단으로 갈수록 가짜뉴스의 수용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념적 입장이 강하고, 이념적 갈등을 심각하게 느낄수록 가짜뉴스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당 간, 정치지도자 간 정치적 선호도, 호오도의 차이에 대해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요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도이다. 국회와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흥미롭게도 정파적 입장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민주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에 대해서는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커질수록 민주당 지지자들의 관심을 끄는 내용에 대한 가짜뉴스 수용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관심을 끄는 내용에 대해서는 국회 신뢰도가 낮을수록 가짜뉴스 수용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소속인 대통령의 신뢰도와 관련해서는 국회와 정반대의 패턴이 나타났는데, 민주당 지지자들의 관심 항목에 대해서는 대통령 신뢰도가 낮을수록 가짜뉴스 수용이 높아졌고, 국민의힘 관심 항목에 대해서는 대통령 신뢰도가 높을수록 수용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가짜뉴스 소비가 정파적 입장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앞서 본 것처럼 심각해진 정파적 양극화가 가짜뉴스 소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제도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법부이다.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모두 신뢰도가 낮아질수록 가짜뉴스에 대한 수용성이 높았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관심 항목과 관련해서는 법원이,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관심 항목과 관련해서는 헌법재판소가 각각 그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질수록 가짜뉴스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법원과 헌법재판소 모두 8개 항목을 종합한 경우에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보였다. 즉 사법부에 대한 신뢰 하락이 가짜뉴스 수용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제도에 대해 정파적으로 상이한 신뢰의 평가, 그리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 하락 모두 가짜뉴스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주요 정치제도에 대한 낮은 신뢰가 가짜뉴스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연령별로는 젊을수록 가짜뉴스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신지별로는 전라 출신에서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났는데, 민주당 지지자 관심 이슈에 대한 수용성이 큰 반면, 국민의힘 지지 관심 이슈에 대한 믿음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이 민주당의 강세 지역이라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결국 가짜뉴스에 대한 수용성은 우리 정치의 여러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정파적 양극화와 관련된 ‘선악, 대결 정치’라는 포퓰리즘적 태도가 가짜뉴스의 수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사법부와 같은 ‘제도적 심판자’에 대한 낮은 신뢰가 가짜뉴스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4. EAI 여론조사에 나타난 가짜뉴스 규제에 대한 여론

 

이 글에서는 정파적 양극화와 포퓰리즘 태도, 그리고 그것이 가짜뉴스의 수용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분석했다. 이 글의 발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정파적 양극화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정당 지지자들이 인식하는 정당 간 이념적 거리감이 타협을 어렵게 할 정도로 멀었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은 대체로 온건한 반면, 상대 정당은 이념적으로 매우 강한 성향을 갖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역시 두 정당 지지자에게서 유사하게 나타났다. 이념적 간극에 대한 책임 귀속이 상대방에 있다는 인식으로 보인다.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뚜렷하고 일관된 정파적 태도가 확인되었는데, 스스로 판단한 입장의 차이이기보다 정당에 의한 설득, 투사와 같은 정치적 합리화의 결과로 보인다. 즉 정당이 정파적 양극화를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태도와 관련해서 볼 때, 그 태도가 정당 지지라는 정파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가장 주목할 점은 정치제도가 국민의 요구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하는 정치적 반응성의 문제가 포퓰리즘에 수용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는 점이다. 정치제도와 관련해서는 국회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수록 포퓰리즘 태도에 수용성이 높았으며, 정치의 외적 효능감이 낮을수록, 즉 공직자들이나 정부가 내 요구나 생각에 무관심하거나 무대응한다고 생각할 때 포퓰리즘적 태도가 높아졌다. 기존 정치제도가 빈응성(responsiveness)이라는 측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포퓰리즘 정치를 키우고 있다.

 

가짜뉴스와 관련해서는 ‘선악, 대결 정치’적 속성이 가짜뉴스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제와 증오의 대상인 ‘적’을 규정하는 분열의 정치, 배제의 정치가 가짜뉴스 소비에 영향을 미쳤다. 분열의 정치가 가짜뉴스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냈다.

 

정치제도와 관련해서 볼 때 중요한 점은 사법부에 대한 낮은 신뢰가 가짜뉴스의 수용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모두 신뢰도가 낮아질수록 가짜뉴스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이나 국회 등의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는 정파적으로 상이한 형태로 가짜뉴스 수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무엇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성 하락이 가짜뉴스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짜뉴스의 문제가 정당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주요 정치제도에 대한 낮은 신뢰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심각함이 드러났다. 보다 경쟁적이고 투명한 정치를 위한 정치개혁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이러한 결과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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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는 가짜뉴스를 fake news보다 보편적인 허위조작정보 disinformation의 의미로 사용한다.

 


 

강원택_동아시아연구원 민주주의연구센터 소장.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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