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윤석정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는 2010년대 한일관계의 ‘잃어버린 10년’은 역사 문제를 지나치게 천착한 나머지 그로 인한 양국간 갈등이 협력 분야인 경제, 안보 등의 측면을 압도한 결과라고 설명하며, 이것이 한일관계의 복합위기로 이어졌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한국 국민들의 경우 역사 갈등을 한일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한 함수의 일부로 인지하고 있는 경향이 뚜렷한 반면, 일본 국민들은 역사 갈등을 문제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와는 동떨어진 갈등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합니다.

I. 서론

 

본고의 목적은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의 겐론NPO가 시행한 <한일국민 상호인식 조사>(2013-2023)의 설문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의 결과 분석을 통해 미래지향적 협력과 역사문제에 대해 양국 국민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설문의 네 가지 답변, 즉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는 어려울 것이다’,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모르겠다’에 내재된 한일관계에 대한 관점 및 전망, 정책 선호도를 검토하고, 설문 결과를 토대로 미래지향적 협력과 역사문제 간의 상관관계를 둘러싼 한일 국민의 상호인식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조사 기간을 세분해서 보면 2012년부터 2022년까지 한일 관계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가 2023년에 들어와 개선 국면을 보였다.[1] ‘잃어버린 10년’ 동안 한일관계는 역사문제로 민족주의적 충돌의 양상을 보였고, 역사 갈등이 경제-안보 분야로 파급되는 복합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2023년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의 현금화 문제에 대해 제3자 변제를 해법으로 제시했고, 이후 셔틀외교와 대화 채널이 복원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국민들은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는 어려울 것’이라며 역사문제의 해결을 미래지향적 관계의 전제 조건으로 생각했을까? 아니면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라며 협력을 지속함으로써 역사문제가 해결되는 화해의 미래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인가? 또는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역사문제의 지속을 전망하고 있었을 것인가? 혹은 ‘모르겠다’는 대답 아래 상황을 방치 또는 관망하고 있었던 것인가?

 

각 답변이 제시하듯이 한국과 일본 관계에는 역사문제와 미래지향적 협력이라는 두 개의 트랙이 놓여있다. 그리고 두 트랙 간의 우선순위와 조합 속에 양국 관계가 전개된다. 지난 한일관계의 ‘잃어버린 10년’은 역사문제를 지나치게 중요시한 나머지 역사 갈등이 협력 트랙을 압도한 결과였다. 역사문제-경제-안보의 복합위기는 그 절정이었다. 만약 양국이 협력 이슈에 방점을 두었다면, 다른 양상이 벌어졌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문제는 국가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바, 다시 한일관계에 등장하여 갈등을 가져올 수 있다.

 

한일관계 관련 다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의 역사 갈등으로 한국과 일본 사회에는 반일과 혐한의 구도가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반일과 혐한의 구도는 정부 차원에서 벌어진 역사 갈등의 결과적 측면이다. 이에 대해 본고는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 설문 결과를 조사함으로써 역사 갈등의 결과적 측면뿐만 아니라 갈등의 전망과 해법까지 포괄한 국민 인식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역사문제를 우선시한 정부의 정책 기조에 국민 여론이 얼마나 동조하고 있는지를 조사 결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늠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본고는 다음과 같은 구성을 지닌다. 먼저 조사 기간 내의 한일관계를 개괄하고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 설문과 이에 대한 3개의 답변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이어서 실제 조사 결과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일 국민들이 양국 관계의 ‘잃어버린 10년’ 속에 양국 관계의 발전과 역사 화해의 가능성에 대해 어떠한 생각과 전망을 가졌는지에 대해 밝힌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본론의 내용을 정리하고 한국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한 함의를 논하고자 한다.

 

II. 2013-2023 한일관계와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 설문

 

1. 2013-2023 한일관계에 대한 개괄

 

1) 박근혜-아베 정부 시기 (2013-2016)

 

박근혜-아베 정부 시기는 두 보수 정치인들의 민족주의가 충돌하는 시기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급격히 악화된 한일 관계를 계승한 두 지도자는 출범 초기부터 역사인식을 두고 갈등했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역사 수정주의적 자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이 지나도 변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등 역사문제를 두고 한일 간의 강대강 구도가 만들어졌다.

 

박근혜-아베 정부 시기 일본군‘위안부’문제는 가장 대표적인 역사 갈등 소재였다.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일본군‘위안부’문제의 해결을 한일관계 발전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가 부작위라고 판결했고, 그 이후 일본군‘위안부’문제는 한국 정부의 대일 외교에서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후임인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고, 일본의 전향적인 조치를 한일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렇게 한국 정부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한일관계 발전의 입구에 두면서 역사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양국 관계가 움직이지 못하는 경직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 원칙외교와 함께 당시 아베 정부의 역사정책 또한 관계 악화의 원인이었다. 아베 정부는 한국이 이미 해결된 역사문제를 계속 문제시하여 일본에게 사죄와 반성을 요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청구권 협정 등 이전 국가 간의 합의로 종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역사문제를 외교 카드로 활용하여 “전후 세대에게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하고 있다”는 인식이었다. 따라서 아베 총리는 반성과 사죄 표명이 아니라 역사문제에서 한국에게 일절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에 따른 한국과의 관계 악화는 감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21世紀構想懇談会 2015, 227-228). [2]

 

역사 갈등이 지속되며 치르는 비용이 점차 커지자 양국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를 맺으면서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도모하였다. 합의에서 아베 총리는 사죄·반성을 표명하고 책임을 통감하며, 일본 정부는 10억엔을 출연하여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시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한국 국내에서 피해자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고조되면서 합의는 순탄하게 이행되지 않았다.

 

2) 문재인-아베·포스트 아베 정부 시기 (2017-2021)

 

2017년 5월 적폐 청산을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준수하지 못했다며 합의의 정당성을 문제시하였다. 2017년 12월 27일 한국 외교부의 위안부 합의 문제 검토 태스크 포스는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의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다. 일본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재단 해산을 합의 위반으로 간주했고, 강력 반발하였다.

 

문재인-아베 정부 시기의 갈등은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로 한층 더 악화되었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불법적인 강점이라고 규정하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이 남아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식민지 지배로 인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권이 1965년의 청구권 협정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피고 일본 기업이 배상에 나서지 않자 자산을 강제 매각하여 현금화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관련 배상 문제는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으며,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한일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9년에 들어와 강제징용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경제, 안보 분야로 확대되며 한일 관계는 복합갈등에 빠지게 된다. 피고 일본 기업의 자산에 대한 한국 법원의 현금화 절차가 진행되자 일본 정부는 반도체 핵심부품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부정하였지만, 수출규제조치는 강제징용문제에서 한국을 ‘움직이기 위한 알람’이자 보복 조치였다(<毎日新聞>. 2019/9/4).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로 맞대응하였다. 일본 정부가 역사문제를 이유로 경제적 협력 관계를 훼손시키자,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안보 협력 관계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대가를 치르게 하려한 것이다. 미국이 중재에 나서면서 GSOMIA는 조건부 종료 유예가 되었지만 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한일 갈등은 포스트 아베 시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포스트 아베 시기 일본 정부의 대한국 정책 기조의 특징은 현금화 문제의 해결방안을 관계 개선의 입구에 두었다는 점이다. 2020년 9월 아베 정부의 후임인 스가 정부는 한국 정부가 현금화 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일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스가 정부의 정책 기조는 현금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수출규제 조치, GSOMIA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구도를 고착화시켰다. 스가 정부의 후임인 기시다 정부에서도 동일한 정책 기조가 지속되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쌓아 올린 양국 우호협력의 기반을 토대로 한일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징용문제를 비롯한 한일 간의 현안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 윤석열 한국 신정부의 출범과 한일 관계 (2022-2023)

 

2022년 5월에 출범한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역사문제-경제-안보를 포괄하는 포괄적 접근 및 해결을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사와 미래 협력을 전부 함께 논의할 수 있다”며 “역사문제와 양국의 미래 문제는 모두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같이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합적 차원의 한일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역사문제뿐만 아니라 안보, 경제 현안까지 포괄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일본과의 안보, 경제 협력을 통해 역사 문제해결의 동력을 찾겠다는 정책 기조였다. 2022년 8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23년 3월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문제의 현금화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제3자 변제를 제시했다.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로 강제징용문제에서 돌파구가 마련되자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대한 수출규제를 해제하였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정상화되었다. 이와 동시에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를 비롯해 각계 정부 및 경제계 간의 대화 채널이 복원되면서 양국 관계는 복합위기에서 벗어나 관계 개선의 국면에 들어가게 되었다. 현재 한일 정부 간에는 안보, 경제, 민간 교류 등 다방면에 걸쳐 양국 협력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와 국민 상호인식

 

2013년부터 시작된 동아시아연구원과 겐론 NPO의 ‘한일국민 상호인식 조사’의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표1: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 설문>

 

[질문]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Ÿ 역사문제의 해결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

Ÿ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Ÿ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Ÿ 모르겠다.

 

 

각 답변은 한일관계와 역사문제의 관계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과 전망, 정책 선호도를 내포하고 있다.

 

● 역사문제의 해결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

 

첫 번째 답변은 역사문제가 한일협력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한일관계는 역사와 협력이라는 두 가지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과거사 갈등은 협력 트랙을 압도하곤 했다. 첫 번째 답변의 또 다른 측면은 역사문제의 해결을 한일관계 발전을 위한 우선적인 조건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문제의 해결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가 어려울 것’은 곧 ‘역사문제가 해결되어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이 가능’하다는 의미와 같다. 따라서 첫 번째 답변은 역사문제에 대한 정부의 원칙적 대응 또는 과거사 원트랙 정책과 기조가 유사하다.

 

다만 첫 번째 답변은 역사갈등이 한일관계의 전부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답변이 의도하는 바는 문자 그대로 상대국과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역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답변에서 역사갈등은 미래지향적 협력이라는 종착지가 있는 갈등이다. 바꿔 말하자면 역사문제로 불거지는 갈등 상황을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조정기로 본다고 할 수 있다.

 

●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두 번째 답변은 한국과 일본이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축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역사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는 답변이다. 그 반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첫 번째 답변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다. 두 번째 답변에 내재된 한일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독일 관계와 유사하다. 프랑스와 독일은 1963년 엘리제조약을 체결, 외교·국방·청소년 교육 분야 협력을 제도화하였고,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통해 양국 간의 오랜 역사적 대립을 종식시켰다(Feldman 2013).[3]즉,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 답변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협력을 우선해 나간다면 역사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 담겨있다.

 

한국과 일본이 협력을 한다면 양국 협력이 국익에 부합되기 때문일 것이다. 즉, 두 번째 답변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이 상대국과의 협력에서 국가 이익을 발굴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역사문제의 해결이 좌우된다. 따라서 북핵·중국에 관한 인식이 좁혀지면서 한일 협력이 필요해지고, 상대국을 중요시하는 인식이 형성되면 두 번째 답변의 수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역사문제보다는 미래지향적 협력 이슈에 방점을 두고, 양자 간의 분리 대응하는 정책 기조를 지향할 것이다.

 

●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답변은 역사문제가 지속적으로 한일관계의 갈등 요인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즉, 세 번째 답변은 역사문제가 ‘시지포스의 형벌’이 되는 한일관계를 전망하고 있다.[4] 첫 번째 답변과는 다르게 역사문제가 해결되어야 한일관계가 발전한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한일관계의 발전이 역사 화해를 가져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 두 번째 답변과도 다르다. 즉, 세 번째 답변은 또 다시 역사문제가 불거지면서 그 동안 쌓아 올렸던 협력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한일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첫 번째 답변은 역사문제로 갈등에 빠지더라도 이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라는 더 나은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고통스런 조정기라는 관점이다. 반면에 세 번째 답변은 역사문제가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회의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해결이 불가능한 역사문제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다시 대립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품고 있다. 즉, 세 번째 답변이 상정하는 한일관계에서 역사갈등의 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갈등을 갈등 그 자체로 보고 있는 것이다.

 

● 모르겠다.

 

네 번째 답변인 ‘모르겠다’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문항이다. 문자 그대로 ‘모르겠다’는 세 개의 답변 중 어느 하나를 고르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사례를 상정할 수 있다.[5] 첫째, 설문이 너무 어려운 경우이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들이 봤을 때 문제가 어렵다면 답을 고르지 못하고 ‘모르겠다’를 고를 수 있다. 이런 경우 지식이 부족해서 ‘모르겠다’가 될 것이다. 둘째, ‘모르겠다’는 문제 자체에 대한 무관심을 뜻하기도 한다. 한일관계의 발전과 역사문제가 정치적 이슈와 현상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모르겠다’는 정치학계에서 말하는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으로 볼 수도 있다. 결과론이지만 ‘모르겠다’의 답변은 갈등 상황에 대한 묵인 또는 방치와 동일선상에 놓인다. ‘갈등이 지속되어 한일관계가 발전하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이 이어져도 나에게는 상관없다’는 것이 ‘모르겠다’의 다른 한 측면이다(박승현 2022).

 

그렇기 때문에 ‘모르겠다’ 가 어느 쪽의 ‘모르겠다’를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다른 설문들에 대한 분석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III. 한국 국민 여론 조사 결과

 

1) 지난 10년의 경향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약 10년간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 대한 한국 쪽의 설문 결과는 아래와 같다.

 

<표2: 한국 측 설문 결과>

 

연도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2023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

41.5

41.2

52.8

42.8

39.5

33.5

39.1

28.4

38.1

39.6

29.6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29.1

23.3

20.9

33.1

31.9

35.8

30.8

24.5

38.1

42.5

36.3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29.4

30.7

24.3

22.3

25

27.4

25

43.6

21.7

15.2

27.0

모르겠다

0

4.9

1.9

1.8

3.6

3.3

4.5

3.5

2

2.7

7.1

무응답

0

0

0

0

0

0

0.7

0

0

0

0

 

 

10년에 걸친 조사에서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는 어려울 것이다’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다. 조사가 시작된 2013년에 41.5%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이후에도 2018년, 2022년, 2023년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답변을 차지했다. 한국 국민들은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과제로서 역사문제의 해결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조사가 진행될수록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가 점점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 발견된다. 동 답변은 조사가 시작된 2013년에는 29.1%로 가장 낮았다. 그 이후 2014년에는 23.3%, 2015년에는 20.9%로 감소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2016년에 들어와 상승하기 시작했고, 그간 1위를 차지한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 답변과의 격차가 줄어든다. 2018년에는 후자가 전자보다 높게 나왔으며, 2022년, 2023년과 같이 두 해 연속 가장 많이 나온 적도 있다. 대일 관계에서 ‘잃어버린 10년’을 겪었지만 한국 국민의 여론 안에서 일본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중시하고, 장기적 협력을 토대로 역사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상세 분석: 박근혜-아베 정부 시기 (2013-2016)

 

<그래프 1: 2013-2016 조사 결과>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한일은 정상회담조차 개최하지 못할 정도로 역사갈등으로 냉각된 시기를 보냈다. 이 사이에 한국 국민들은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는 어려울 것이다’를 가장 많이 택했다. 2013년에는 41.5%, 2014년에는 41.2%가 나왔다가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던 2015년에는 52.8%로 대폭 상승했다. 이 시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역사 갈등이 심화될수록 한국 국민들은 역사문제의 해결을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간주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문제에서 일본의 전향적인 조치를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던 당시 박근혜 정부의 대일 원칙외교와 한국 국민들 다수의 여론이 동조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많이 나온 답변은 ‘양국관계가 발전해도 역사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이다. 2013년에 29.4%로 시작해서 2014년에 30.7%, 2015년에 24.3%로 2위를 차지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급격하게 악화되는 한일관계의 양상을 보면서 상당수 한국 국민들은 역사문제의 해결 가능성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보수 우경화, 아베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인들에게 반성, 사죄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된 결과라 할 수 있다.

 

2016년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정부 합의가 만들어지면서 그간 경색되었던 한일관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던 해이다(연합뉴스 2016). 그리고 조사 결과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33.1%가 나오면서 처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2015년의 20.9%에 비해 12.3% 상승한 결과이다. 동 답변은 2013-2015년에는 3위였는데, 2015년까지 감소 추세(2013: 29.1%, 2014: 23.3%, 2015: 20.9%)를 보이다 2016년에 상승 국면으로 반전하면서 2위에 올랐다. 즉, 일본과의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역사문제를 풀어보려는 움직임이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2016년에도 여전히 1위는 42.8%의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는 어려울 것이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부분은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답변의 급격한 상승은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는 어려울 것이다’의 급격한 하락과 같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2015년 52.8%였던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는 어려울 것이다’는 2016년에는 10%가 하락했다. 한국 국민들의 대일 협력 중시 경향은 대일 원칙주의에 대한 지지 하락과 같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6]

 

2016년의 답변 순위는 그 이후 2020년까지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2013-2015년과 2016년과의 단절성은 주목을 요한다. 물론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 국민들 대다수의 평가는 부정적이었고, 합의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는 시각은 소수에 불과했다.[7] 그렇지만 합의가 가져온 양국 관계의 개선 국면은 한국 국민에게 대일 협력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2015년에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는 어려울 것이다’라며 역사문제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던 한국 국민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한일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재평가하는 경향 또한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2016년에 대두하는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답변의 급격한 상승은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흐름과 같이 하는 것이었다.

 

3) 상세 분석: 문재인-아베·포스트 아베 정부 시기 (2017-2021)

 

<그래프 2: 2017-2018 조사 결과>

 

 

문재인-아베 시기 한일관계는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갈등 국면 속에서 시작했다. 2017년 5월에 출범한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에 관한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 국민의 다수가 문재인 정부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었다. 2017년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 설문에서 한국 국민의 21.2%만이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반대는 55.5%였다. 2016년의 조사에 비해 긍정이 7% 하락하고, 부정이 18.1% 올라갔다. 이어서 2018년에는 긍정적 평가가 23.9%, 부정적 평가가 45.9%로 나왔다. 2018년에 들어와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 간의 격차가 좁혀졌지만 여전히 후자가 높은 양상을 보였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불만은 합의로 인해 일본군‘위안부’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2016년의 첫 조사에서 ‘해결되었다’는 21%, ‘해결되지 않았다’는 73.7% 였다. 2017년의 조사에서도 ‘해결되었다’는 19.5%에 불과했고, ‘해결되지 않았다’는 75%에 달했다. 그리고 2018년에도 ‘해결되지 않았다’가 70.4%로 ‘해결되었다’의 22.5%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가 나왔다. 합의로 인해 문제가 완전히 종결되었다는 일본 정부와는 정반대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그래프 3: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 (2016-2018)>

 

 

 

<그래프 4: 한일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 여부에 대한 입장>

 

 

중요한 것은 위안부 합의에 대한 불만이 한국 국민들의 대일 인식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국 국민들은 미래지향적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프2>를 보면 2017-2018년에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16년에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와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는 각각 42.8%와 33.1%로 9.7%의 격차가 있었다. 다음해인 2017년에는 7.6% 차이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전자가 33.5%인 반면 후자가 35.8%가 나오면서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여론 조사 이후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물론 2017-2018년에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가 1, 2위를 차지하면서 역사문제의 해결을 우선시하는 여론이 여전히 높은 비중을 나타내고 있었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2018년에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었다. 이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와 한일관계의 개선 및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의 필요성을 분리해서 인식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러한 한국 국민들의 인식은 당시 갈등을 겪던 양국 정부 간의 관계와는 다소 결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양국 정부 관계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일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답변이 상승한 배경과 역학에는 불분명한 부분이 존재한다. 일본 관광과 같은 민간 교류의 영향일수도 있고, 오랜 갈등에 대한 피로감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한일 정부 관계는 악화되고 있었지만 관계 개선의 기회 공간이 한국 국민 여론에서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관계 개선의 기회 공간은 정부 차원의 합의라는 개별 현안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인지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한일관계는 강제징용판결에 의한 갈등이 경제와 안보 분야로 파급되며 복합위기에 빠지게 된다. 2019년의 경향을 보면 2018년 10월 강제징용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의 갈등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가 39.1%로 다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전년도 1위였던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는 30.8%로 2위가 되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한일관계는 강제징용판결에 의한 갈등이 경제와 안보 분야로 파급되는 복합위기에 빠진 시기였다. 2019년에는 2018년 10월 강제징용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의 갈등이 반영되어 있는데,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가 39.1%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전년도 1위였던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는 30.8%로 2위가 되었다.

 

<그래프 5: 2019-2021 조사 결과>

 

 

2020년의 조사 결과는 역사문제-경제-안보의 복합갈등이 반영된 결과인데, ‘양국 간 협력 상황과 상관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가 43.6%로 가장 많이 나왔다. 2020년은 한국 국민 여론 조사에서 ‘양국 간 협력 상황과 상관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 가장 많이 나온 유일한 해이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상황이었고, 이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반발과 불신감이 ‘양국 간 협력상황과 상관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 쪽으로 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한국 국민들의 반응은 박근혜 정부 시기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전술했듯이 박근혜 정부 시기 한국 국민들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며 역사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지향성을 보였다. 반면에 2020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강해진 것이다.

 

그리고 ‘양국 간 협력상황과 상관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의 증대는 다른 두 답변의 동반 하락과 함께 일어났다.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는 2019년의 39.1%에서 28.4%로 하락했고, 2019년 30.8%가 나왔던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는 24.5%가 나왔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일본과의 관계가 전방위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이었다고 생각된다. 한일 간의 역사 갈등이 협력 분야인 경제, 안보 분야로까지 파급되면서 역사갈등의 출구인 미래지향적 대일 협력의 공간이 닫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문제를 서서히 해결하기 위해 미래지향적 협력관계을 해나가는 것’도 비현실적인 답변이 되었다. 그 결과 ‘양국 간 협력 상황과는 상관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이처럼 2020년의 여론 조사 결과는 한일 복합 갈등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1년 만에 변화가 일어났다. 2021년의 조사에서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과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각각 38.1%로 같은 수치가 나왔다. ‘양국 간 협력 상황과 상관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는 2019년에 비해 20% 이상 감소한 21.7%가 나왔다. 수치상으로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미래지향적 관계의 조건으로 역사문제의 해결’을 중시하는 여론과 ‘지속적이며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통해 역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2021년과 같이 한일관계가 좋지 않은 시기에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공동 1위에 오른 것은 주목을 요하는 부분이다. 당시 한일관계는 아베 정부 이후 출범한 일본의 스가 정부가 현금화 문제를 관계 개선의 입구에 두고 있었고, 문재인 정부 또한 현금화 문제의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복합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정부 관계의 고착 상태 속에 한국 국민들은 역사문제에 대한 원칙주의와 함께 역사문제와 미래지향적 협력을 분리 대응하는 유연한 자세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배경에는 북핵, 미중 경쟁과 같이 한일관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가 있었다. 미중 경쟁의 격화와 중국에 대한 우려, 특히 중국에 대한 위협 인식의 증가가 대일 관계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다. 미중 경쟁이 강화되고 특히 중국의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있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 국민들은 일본과의 협력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였다(손열 2021).

 

2021년의 한국 국민들은 정부 관계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미중 경쟁의 국제 정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대일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2018년에도 정부 간의 관계는 좋지 않았지만 한국 국민들은 대일 협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역사 갈등이 일어나면 한국 국민들 또한 갈등을 감수하더라도 역사문제의 해결을 중요시한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는 일본과의 협력,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중요성 또한 간과하지 않는 패턴이 나타난 것이다.

 

4) 상세 분석: 윤석열 한국 신정부의 출범(2022)과 대일 외교

 

<그래프 6: 2022-2023 조사 결과>

 

 

2022년은 한국의 신정부가 출범하며 일본과의 협력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시기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은 설문 조사의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와 유사한 기조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다음날인 3월 10일에 “과거보다는 미래에 어떻게 하는 것이 한일 양국의 이익이 되는지 찾는 것이 중요하다”여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역사문제 등의 갈등 사안을 해결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2022년의 조사 결과를 보면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42.5%로 가장 많이 나왔다.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단독으로 1위에 오른 것은 2018년 이후 처음이다.

 

2023년은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제3자 변제를 통해 강제징용 현금화 문제의 해결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양국관계가 복원되는 양상을 보인 시기이다. 2023년에도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36.3%로 가장 많이 나왔다. 두 해에 걸쳐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여론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비록 2022년에 비해 그 수치가 낮아졌지만 2023년의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이다. 역사문제를 중요시하면서도 한일 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에 방점을 두는 관점, 역사문제의 해결을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협력의 과정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과 정책 지향성이 한국 국민 여론 사이에서 정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23년 결과의 또 다른 특징은 ‘양국관계가 발전해도 역사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답변이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2022년에는 15.2%에 불과했는데, 2023년에는 11.8%가 오른 27%가 나왔다. 이 같은 급격한 상승은 나머지 두 개 답변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와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의 하락과 함께 일어났다. 비록 3위이지만 2위인 29.6%의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과는 불과 2.6% 차이이다. 2022년에 두 답변 간의 격차가 24.4%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국관계가 발전해도 역사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의 급격한 상승은 눈에 띠는 변화이다. 그간의 조사를 보면 2020년에 한국 국민들의 답변에서 ‘양국관계가 발전해도 역사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가 급상승한 바 있다. 이때는 한일 복합위기라는 갈등 상황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이번에는 관계 개선의 국면에서 수치가 올라갔다는 점이 특이한 부분이다.

 

2023년의 다른 조사 결과를 보면 대일 호감도, 한일 관계의 중요성 등의 주요 항목에서 상승세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전반적으로 대일 관계 개선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기대감이 높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특히 3자 변제안의 경우 찬성은 28.4%, 반대는 34.1%가 나왔다(손열 외 2023). 같은 맥락에서 ‘양국관계가 발전해도 역사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가 급상승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2023년의 한국 국민들은 미래지향적 협력을 통해 역사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현재의 관계 개선 국면이 역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신중한 자세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위의 특징은 2023년 한국 국민 여론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를 시사한다. 첫째, 제3자 변제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우세하지만 이를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에 방점을 두는 한국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반대로 해석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제3자 변제안에 대해 반대 여론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2023년의 조사에서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 기조가 일정 수준 한국 국민들의 여론과 동조화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둘째, ‘양국관계가 발전해도 역사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답변의 증가 현상은 제3자 변제안에도 불구하고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상황을 방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3자 변제안은 한일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되었지만, 이는 현금화 문제에 대한 해법이지, 역사문제 전체에 대한 해법은 아니다. 한국 대법원 판결이 제기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 문제는 현금화 문제의 해결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23년 한일관계가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양국관계가 발전해도 역사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답변이 늘어난 상황은 상당수의 한국 국민들이 제3자 변제안을 계기로 ‘양국관계가 발전해도’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 문제를 비롯한 ‘역사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IV. 일본 국민 여론 조사 결과

 

1) 지난 10년 간의 경향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약 10년간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 한일관계와 양국의 역사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답변 결과는 아래와 같다.

 

<표3: 일본 측 설문 결과>

 

연도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2023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

25.9

24.7

27.1

21.9

25.5

22.6

23.6

23.1

29.9

27.8

19.3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23.6

20

19.3

30.2

26.2

21.9

20.4

19.5

20.4

26

32.1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32.1

34.7

35.1

28.1

29.3

35.2

32.6

33.8

28.3

24.5

21.7

모르겠다

18.4

20.2

18.1

19.7

18.7

20

23.1

23.3

21.2

21.5

26.5

무응답

0

0.4

0.4

0.1

0.3

0.3

0.3

0.3

0.2

0.2

0.4

 

 

10년의 조사에서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가 가장 많이 나왔다. 2013년에 32.1%를 시작으로 많으면 2018년의 35.2%까지 나오면서 가장 많은 답변을 차지했다. 일본 국민들은 역사문제가 한일관계를 지속적으로 속박할 것이라는 인식과 전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주목할 부분은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는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가 1위를 차지하는 사례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29.8%, 27.8%가 나왔는데, 28.3%와 24.5%가 나온 ‘양국관계가 발전해도 역사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역사문제의 해결을 관계발전의 전제 조건으로 생각하는 답변과 역사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답변이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이러한 변화가 분석의 주안점이 된다.

 

이러한 가운데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1위를 차지하는 해도 존재한다. 2016년과 2023년이다. 2016년의 경우 30.2%이다. 2015년의 19.3%에서 10% 이상 오르며 28.1%의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후 동 답변은 2022년부터 상승세를 보이며 2023년에 가장 많이 나왔다. 2022년에는 2021년에 20.4%였던 것이 5.6% 상승한 26%가 나왔고 이후 2023년에 32.1%가 나오며 1위에 올랐다. 2위는 21.7%의 ‘양국 간 협력관계와 상관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였다.

 

특이한 부분은 일본의 경우 ‘모르겠다’가 꾸준히 20%에 가깝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분석 대상인 [한일관계와 역사문제에 대한 입장]뿐만 아니라 그 밖의 설문에서도 ‘모르겠다’는 20% 대에서 많으면 40%에 가까운 수치가 나온다. 문자 그대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여 설문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정치적 의미가 담겨있는지 분석 대상이다.

 

2) 상세 분석: 박근혜-아베 정부 시기 (2013-2016)

 

<그래프 7: 2013-2016 조사결과>

 

 

2013-2015년의 한일 역사 갈등에서 많은 일본 국민들은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3년의 첫 조사에서 동 답변은 32.1%가 나왔고, 2014년에 34.7%, 2015년에 35.1%로 미세하게 증가하면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두 번째로 많이 고른 답변은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 관계는 발전하지 않는다’ 였다. 2013년의 25.9%에서 시작하여, 2014년에 24.7%, 2015년에는 27.1%가 나왔다.

 

일본 국민들이 보는 역사갈등에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라는 맥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갈등을 반복되는 갈등 그 자체로 보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일본 국민들의 인식은 아베 정부의 역사정책과 근저에서 서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일본 국민들이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 수정주의에 동조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일본 국민들은 한국에 대한 아베 정부의 불신감, 즉 한국이 계속해서 역사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에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은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한일 양국 정부가 관계 개선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이 같은 정부 관계의 변화에 직면하여 일본 국민의 인식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2016년에 들어와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30.2%로 가장 많이 나왔다. 2015년까지 1위를 하던 ‘한일관계가 발전해도 역사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는 28.1%가 나왔다. 비록 약 2% 정도의 차이이지만 2015년도의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답변 결과는 2014년의 19.3%에 비해 10% 이상 상승한 수치였다. 그리고 수치 상승은 다른 두 답변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관계는 발전하지 않는다’와 ‘한일관계가 발전해도 역사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의 동반 하락과 함께 일어났다. 전자는 2015년의 27.1%에서 21.9%로, 후자는 2015년의 35.1%에서 28.1%로 떨어졌다. 한국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역사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론이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확대된 것이다.

 

2016년도에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갑자기 늘어나는 경향은 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한국 조사에서는 2위였는데, 일본 조사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015년의 12월 위안부 합의 이후 한일관계의 개선 국면이 나타나자 이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기대감이 한국에 비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대감의 차이에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평가의 차이가 있었다. 한국 국민들의 다수가 합의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일본 국민들은 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2016년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들의 47.9%가 합의에 대해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한국의 긍정 평가에 비하면 약 20% 정도 많은 수치이다.

 

즉 2016년 일본 국민에게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답변은 위안부 합의에 대한 평가와 연동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위안부 합의가 순탄치 않게 이행된다면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답변 또한 저하될 것이었다.

 

3) 상세 분석: 문재인-아베·포스트 아베 정부 시기 (2017-2021)

 

<그래프 8: 2017-2018 조사결과>

 

 

일본에게 문재인 정부 초기 시절 해당하는 2017-2018년은 위안부 합의의 이행을 두고 겪은 갈등이 문재인 정부 초기로 이어지는 시기이다.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의 정당성을 문제시하면서 아베 정부와 갈등했는데, 이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2017년의 조사 결과를 보면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 35.2%가 나오면서 가장 높은 수치가 나왔다. 그리고 이 기간에는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부각되고 있다. 2017년, 2018년은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답변이 각각 29.3%와 35.2%로 상승 곡선을 보이는데, 이는 다른 두 답변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관계는 발전하지 않는다’, ‘한일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같이 하락하는 경향 속에서 나타났다.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관계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2017년의 25.5%에서 2018년에는 22.6%로 ‘한일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는 2017년에는 26.2%, 2018년에는 21.9%였다.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다시 한일관계가 갈등에 빠지자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한국과의 역사문제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프 9: 2019-2021 조사결과>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한일관계는 강제징용문제를 둘러싼 복합위기에 빠진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주요 경향으로 첫 번째, ‘모르겠다’가 2, 3위를 차지하는 해가 나온다. 2018년에 20%였던 ‘모르겠다’ 답변은 2019년에 23.1%가 나오면서 20.4%의 ‘한일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를 제치고 세 번째로 많이 나왔다. 2020년에는 23.3%로 2위에까지 오른다. 이러한 상황은 한일 갈등이 지속되면서 2016년에 최고점을 찍었던 ‘한일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점차 감소되는 경향 속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모르겠다’의 2, 3위 등극은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갈등이 계속되면서 역사 갈등을 미래지향적 협력으로 풀어보자는 여론이 한일 간의 정치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보다 적을 정도로 협소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르겠다’는 역사 갈등에 대한 묵인 및 방치와 다름없었다.

 

두 번째, 2021년에 들어 처음으로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 관계는 발전하지 않는다’가 1위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답변은 29.9%로 그 동안 1위였던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의 28.3%를 근소하게 앞섰다. 2021년 포스트 아베 시기의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의 현금화 문제를 한일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 국민들의 답변 경향은 정부 정책과 동조화하는 것이었다. 포스트 아베 시기 일본 정부는 현금화 문제를 한일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는데, 일본 정부의 정책 기조가 일본 국민 여론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2021년의 조사 결과는 일본 국민의 이전 반응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그간 한일 정부가 역사갈등에 빠지면 많은 일본 국민들은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2021년의 조사 결과에서 일본 국민들은 역사갈등을 반복되는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전제 조건으로 보기 시작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역사문제의 해결을 위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일본 국민들은 긍정적으로 반응할 여지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v

 

4) 상세 분석: 윤석열 한국 신정부의 출범과 한일 관계 (2022-2023)

 

<그래프 10: 2022-2023 조사결과>

 

 

2022년에 들어 일본 국민들의 대한국 인식에서 역사문제가 여타 사안을 압도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동시에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역사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경향 또한 나타났다. 2022년의 조사 결과는 ‘역사문제의 해결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가 27.8%로 가장 많이 나왔지만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26%로 2위를 차지했다. 2021년의 20.4%에 비해 5.4% 상승한 수치이다. 이러한 상승은 ‘역사문제의 해결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와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가 감소한 수치만큼 일어났다.

 

그리고 2023년에는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32.1%로 가장 많은 수치를 나타냈다.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1위가 된 것은 2016년 이래 두 번째이다. 이는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 이후 나타난 한일관계의 개선 국면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2023년 동아시아연구원-겐론NPO의 조사 전반적으로 일본 국민이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크게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에 대해 일본 국민의 35.2%가 긍정 평가를 내렸고, 부정 평가는 24.6%였다. 제3자 변제에 대한 한국 국민의 인식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위와 같은 경향은 위안부 합의 이후인 2016년과 비슷하다.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답변은 제3자 변제에 대한 긍정 평가와 함께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정부 간 합의를 비롯해 관계 개선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수록 미래지향적 협력의 중요성과 역사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강하게 인식하는 경향을 일본 국민들은 보이는 것이다.

 

한편 2023년에는 새로운 경향도 나타난다. ‘모르겠다’가 26.5%를 기록 조사 이래 처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는 19.3%,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는 21.7%에 그쳤다. 2023년 ‘모르겠다’ 답변이 기록한 26.5%는 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 한일관계의 개선국면에서 역사문제와 미래지향적 협력관계 간의 상관 관계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일본 국민들이 늘어난 것이다.

 

2023년에 나타난 ‘모르겠다’의 상승은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어려울 것이다’와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의 하락과 함께 일어났다. 이는 2019-2020년에 나타난 ‘모르겠다’의 순위 상승과는 다른 국면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 2023년에 처음 나타나는 경향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해석해야 할 것이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한일 관계의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나고 있는 움직임에 대해 일본 국민들은 기대감을 가지면서도 ‘모르겠다’는 ‘정치적’ 무관심의 자세 또한 가지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시기에 일본 국민들의 ‘모르겠다’가 늘어난 상황에 대해 향후 그 추이를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ㅍ

 

V. 한일 비교

 

1. 같은 역사갈등 속에 서로 다른 일차적 반응

 

역사갈등이 일어났을 때 한국 국민과 일본 국민 간에 보이는 일차적인 반응에서 차이가 발견되었다. 한국 국민의 경우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관계는 발전하지 않는다’고 보는 반면 일본 국민은 ‘양국 간 협력 상황과 관계없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했다. 즉, 역사 갈등 속에서 한국 국민들은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역사문제의 해결에 대한 강력한 지향성을 보였다. 반면에 일본 국민들은 역사갈등에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라는 맥락을 부여하지 않는다. 역사갈등을 반복되는 갈등 그 자체로 보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역사문제가 차지하는 의미와 위상 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국은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식민지 지배의 피해국가로서 역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일본에게 역사문제에 대한 한국의 문제제기는 또 다시 닥쳐온 갈등의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2010년대 일본사회에서 존재했던 역사문제에 대한 피로감과 상통하는 일차 반응이라 하겠다.

 

2.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를 둘러싼 한일 간의 차이

 

한일 국민들 간에는 장기적인 협력을 통해 역사문제를 해결한다는 접근법을 두고서도 서로 다른 인식의 경로를 보였다. 한국 국민들은 정부의 대일 협력 기조, 관계 개선 국면에도 영향을 받지만 그 정도는 일본 국민에 비해 덜하다. 한국 국민의 경우 2017-2018, 2021년의 조사 결과처럼 정부가 대일 관계에서 역사문제를 우선시하고,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도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증가하는 사례도 있다.

 

특히 한국 국민에게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답변은 역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합의 및 조치에 대한 지지 여부, 합의 및 조치의 원활한 이행 여부와는 밀접하게 연동되지 않았다. 이 부분이 일본과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생각되는데, 일본 국민들의 경우 정부 정책과 정책의 성과에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였다. 종합하자면 한국 국민은 정부 간 합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협력 이슈에 방점을 두는 유연한 자세를 보인다. 그러한 가운데 일본은 정부 간의 합의가 이행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발생하면 그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미래지향적 협력에 대한 인식을 압도하는 경향을 가진다.

 

3. 일본 국민들의 ‘모르겠다’가 가져오는 한일관계에 대한 상대적 소극성

 

한국 국민들은 ‘모르겠다’가 많아도 7% 수준에 그쳤는데, 반면 일본 국민들의 여론 조사에서 ‘모르겠다’는 최소 18%에서 최대 26%까지 나온다. 20% 수준의 일본 국민들이 한일관계와 역사문제 간의 관계에 대해 뚜렷한 의견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국민들이 20% 수준이 ‘모른다’고 답함으로써 한국에 비해 다른 답변의 수치가 전체적으로 낮은 경향을 보인다. 역사문제의 해결 가능성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모든 수치가 한국보다 낮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 국민들이 한국 국민들보다 한일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VI. 결론

 

동아시아연구원과 겐론 NPO이 지난 10년 간의 조사 기간 동안 한일관계는 잃어버린 10년을 겪다가 2023년 들어 관계가 개선되는 국면을 보이고 있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한일 양국 모두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역사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가 가장 많은 순위를 차지했다. 10년에 걸친 갈등기 속에 한일 양국 국민들은 지속적이면서도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가면서 역사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0년에 걸친 역사갈등 때문에 한일 국민들의 상호인식에 반일과 혐한 인식이 증가 되었다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 본고의 조사에서도 한국 국민들은 역사갈등의 시기에 역사문제의 해결을 우선시하였고, 일본 국민들은 반복되는 역사갈등에 피로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10년치 조사를 통해 양국 국민들은 반일과 혐한의 불신 구도 속에서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지향하는 자세 또한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역사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조건으로 장기적인 협력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양국 국민들의 인식이 정착이 되어가고 있는 바, 이는 2023년부터 나타나고 있는 한일관계 개선 양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주의가 필요한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관계 개선의 국면 속에서도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일본에서는 모르겠다는 무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현재의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양국 국민들의 인식을 살펴보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역사문제가 해결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 무관심이 공존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대일 외교에서 향후 최대 과제는 제3자 변제, 대일 협력의 정책 기조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조사에서도 밝혀졌듯이 한일관계 개선에 대해 한국 국민들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제3자 변제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얻고,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이라는 민감하면서도 어려운 역사성의 문제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특히 미래지향적 협력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자세는 역사문제에 대한 정부 합의와 조치가 얼마나 잘 이행되는지 여부에 달려있는 바, 한국 정부의 국내적 설득 노력은 일본의 협력 자세를 지속시켜 2023년의 관계 개선 국면을 이어가는데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앞서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 간에 간극이 존재한다고 지적했지만, 한일관계의 개선 국면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들이 공동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 국민들의 20% 이상은 여전히 한일관계와 역사문제에 대해 ‘모르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한국 국민들도 한일관계와 역사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며 소극적인 일본 국민들을 상대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일본 국민의 상당수가 한일관계와 역사문제라는 정치적 문제에 무관심한 상황이 지속되는 한, 관계 개선의 동력은 상대적으로 한국 정부와 국민 쪽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일본 국민들의 ‘모르겠다’ 비중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 국민들을 상대로 정치적 존재로서의 한국,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알리는 대일공공외교와 민간 교류가 필요하다. ■

 


 

[1] 한일관계의 ‘잃어버린 10년’은 신각수 전 주일 대사가 사용한 표현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2012년부터 한일관계가 지속 악화되면서 협력의 귀중한 시기를 10년 간이나 놓쳤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2] 2015년 아베 정부가 전후 70주년 역사담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식자 위원회에 참여한 야마우치 마사유키 교수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들며 한국은 일본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죄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1世紀構想懇談会 日本経済新聞出版者. 2015. 『戦後70年談話の論点』. 227-228.

 

[3] 엘리제 조약과 같은 포괄적인 협력 체계가 한일 간의 역사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이 될 것이라고 주장도 있다. Lily Gardner, Feldman. 2013. “The Franco-German Elysee Treaty at Fifty: A Model for Others?,” American Institute for Contemporary German Studies.

 

[4] 그리스 신화에서 시지포스가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가지고 올라가면 신이 그 바위를 반복해서 떨어뜨리고, 시지포스는 다시 바위를 들고 올라가야 하는 형벌을 내렸는데,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 채 부조리함과 무의미한 시도가 지속되는 상황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5] ‘모르겠다’는 일본 국민들의 답변에서 작게는 18%에서 많게는 23%까지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이 많아도 4.9%가 나왔다는 점과는 대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의 ‘모르겠다’는 의미가 있는 답변으로 보고 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6] 2016년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겐론 NPO(言論 NPO)'의 조사결과 전반적으로 일본에 대한 개선된 인식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느낀 한국 응답자 비율이 작년 대비 11.5% 포인트 줄어든 61%였고, 한국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받은 일본 응답자 비율도 지난해(52.4%)보다 감소한 44.6%를 기록했다.

 

[7]  2016년 동아시아연구원과 겐론 NPO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 설문 결과에 따르면 부정 평가가 37.4%인데 비해 긍정 평가는 28.2%에 그쳤다. 특히 73.7%가 합의로 ‘해결되지 않았다’고 답변하였다.

 

참고 문헌

 

박승현. 2022. “’모르겠다‘라는 적극적인 응답”, 『EAI 이슈브리핑』

 

손열. 2021. “미중 갈등의 첨예화, 한일관계 개선을 요구하다”, 『EAI 이슈브리핑』,

 

____·김양규·박한수. 2023. “관계 개선을 바라보는 한일 국민의 거리: 2023년 한일 국민상호인식조사 결과 분석,” 『EAI 이슈브리핑』

 

연합뉴스. 2016. “<위안부 타결 1년> ②한일관계 개선 흐름 이어질까…'대선 변수'”,. https://m.yna.co.kr/view/AKR20161223106300014 (검색일: 2023.10.30)

 

Lily Gardner, Feldman. 2013. “The Franco-German Elysee Treaty at Fifty: A Model for Others?,”American Institute for Contemporary German Studies.

 

21世紀構想懇談会 日本経済新聞出版者. 2015. 『戦後70年談話の論点』. 227-228.

 

<毎日新聞>. 2019. 9월 4일.

 


 

윤석정은 국립외교원 교수이다.

 


 

담당 및 편집: 오준철_EAI 연구보조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5) | jcoh@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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