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박승현 계명대 교수는 한일 양국 간 역사 인식을 둘러싼 괴리가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발전에 장애요소로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중문화 소비가 한일 국민 사이의 접촉 통로로서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를 견인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이 뿌리 깊은 양국 간 역사 인식을 넘어 한일관계 발전을 위한 주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제언합니다.

I. 들어가며

 

이 글에서는 한국 민간싱크탱크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 NPO겐론(言論)의 2013년 제1회 한일국민상호인식조사부터 2023년 11회까지의 여론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일 양국은 상대국에서 무엇을 떠올리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한일국민상호인식조사(이하 상호인식조사)는 ‘상대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 ‘국민성에 대한 상호평가’, ‘상대국 역사에 대한 지식’ 등의 상세한 문항을 포함하여, 한일 간 상호인식 및 역사인식의 차이와 그 배경을 고찰하기 위한 유용한 지표들을 제공한다. 필자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역사문제의 원인과 그 해법에 대한 한일 간의 뚜렷한 인식 차이에 주목하면서, 그 배경에 있는 역사 지식과 역사적 경험의 차이를 고찰하고자 한다.

 

동아시아연구원의 상호인식조사는 한일 정세가 역사문제 속에 함몰된 지난 10년간의 여론을 담고 있다. 그 시작은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 ‘사죄’ 요구 발언이었고, 2015년 박근혜 정부 위안부합의 발표, 2018년 강제징용 대법원 확정판결, 2019년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조치 등 일련의 사건이 이어진다. 이 시기 일본정치의 우경화와 일본사회 혐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재특회 등이 주도하는 헤이트스피치, 혐한서적 출판이 횡행하였다. 한국에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및 일본여행 취소 등 반일감정이 고조되었고, 2020년 상반기부터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 속에서 상호 민간교류가 전면 중단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렇기에 이 시기는 ‘한일 관계의 잃어버린 10년’’최악의 한일관계’로 표현되고 한다.

 

한일관계가 전례 없는 갈등 속에 있었던 지난 2022년까지의 조사에서 상대국에 대한 인상은 ‘좋다’보다 ‘나쁘다’가 꾸준히 많았다. 2022년의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 대다수(81.1%)는 한일관계 회복을 바라고 있지만, 절반 이상의 응답자는 한일관계가 앞으로도 ‘현재와 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관계회복을 위한 과제로서 한국(57.7%)과 일본(66.3%) 모두 ‘역사문제 해결’의 난제를 꼽았다. 하지만 한일 역사문제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보면 한국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인식,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등 배상문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부족’을 드는 반면, 일본은 ‘한국의 반일교육과 교과서 내용, 반일행동’을 문제 삼는 점에서 역사문제 인식의 현저한 차이가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급기야 한국은 일본을 ‘군국주의’로, 일본은 한국을 ‘민족주의’로 인식한다고 응답하기에 이른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일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과 ‘일본하면 떠오르는 것’, ‘한일 역사문제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분리되지 않고 일치하여, 대일 인식이 역사문제에 압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 1 상대국에 대한 인상(2023년 동아시아연구원-겐론NP0 한일상호인식조사: 일본과 한일관계)>

 

 

상호인식조사를 통해 상호인상과 호감도, 역사 지식과 역사 인식, 상호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서로 맞물려 있으며, 한일관계 어려움의 핵심에 있는 역사문제 및 그 해법에 대한 한일 간 견해 차이는 해방 후 한국의 역사 되새김과 일본의 ‘망각의 전후’를 통해 형성되어 온 견고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일관계는 현재진행형의 변화 속에 있다. 상대국에 대한 ‘좋은 인상’의 이유는 일본인의 국민성이나 생활수준, 한국의 문화나 음식 등 체험에 따른 응답의 비중이 높다는 점, 항목에 따라 세대별 응답의 차이가 크다는 점은 향후 한일관계 변화 가능성을 전망하게 한다. 특히 2021년에 추가된 대중문화에 관련된 항목들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선호를 뚜렷하게 보여주며, 상대국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이 상호 호감도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 또한 선명했다.

 

2023년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는 양국 여론이 역사 문제에서 비롯된 상호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3년 한일 정상의 외교가 복원되는 등 양국 관계의 개선 분위기 속에서 양국 국민은 한일관계 개선을 체감했고, 한국에 대한 일본 측 ‘좋은 인상(37.4%)’의 응답이 2013년 조사 이래 처음으로 ‘좋지 않은 인상(32.8%)’의 응답을 앞질렀다. 최근 한일관계의 진전이 일본 여론에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이다(손열·김양규·박한수 2023.10.12). 한국의 정치와 사회 운영방식으로서 ‘민족주의’ 대신 ‘민주주의’라고 답하는 일본 측 응답 또한 많아졌다. 이에 비해 2023년 조사에서 한국 국민들의 일본에 대한 ‘좋은 인상’의 비율은 증가하지 않았으며, 한일관계가 중요하다는 응답 또한 감소했다. 나아가 한일 정부의 관계개선의 태도에 대해 일본인들은 ‘잘했다’라고 평가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모르겠다’라고 평가하는 등, 뿌리 깊은 입장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한일 정세에 대한 양국 국민의 평가가 엇갈림에도 불구하고, 본 조사에서 드러나는 한결같은 인식은 ‘한일관계는 중요하다’라는 점이다. ‘한일관계는 자국에 중요하다’라는 응답자 비율은 일본보다 한국 측이 높다. 그러나 일본 측 응답에 대체로 ‘모르겠다’의 비중이 높은 것을 감안하면, 2022년의 조사에서 ‘한일관계가 중요하다’라는 일본 측 응답(56.5%)은 ‘중요하지 않다(14.4%)’의 네 배에 이른다. 그리고 ‘한일관계는 자국에 중요하다’라는 일본 측 응답은 2023년에 61.8%로 증가했다. 2022년 조사에서 일본인들은 한국이 중요한 이유를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관계가 깊은 이웃나라이기 때문에’(71.9%)의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한국 측 답변에서도 ‘이웃나라’라는 점이 주요했으나(64%), ‘경제적인 상호의존성의 중요함’의 답변이 조금 더 많았다. 한편, 2023년 일본 측 응답에서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공동의 안보 이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40.9%로 대폭 늘어나, 안보 문제가 경제적 중요성(37,1%)을 넘어섰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한일 양국 국민의 상호인식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내‧외 정치적 요인으로 정책결정자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만, 상호인식조사가 본격적인 분석의 대상이 된 연구들은 많지 않다. 이 글은 이른바 ‘최악의 한일관계’라 불린 지난 10년간 한일 간의 상호인식을 분석하여 한일 간 역사 인식의 간극을 조명하며, 그 시사점과 변화의 실마리들을 읽어내고자 한다.

 

II. 상대국에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는가

 

1. ‘좋은 인상’과 ‘좋지 않은 인상’

 

2013년부터 한일상호인식조사의 앞머리에 있는 항목은 ‘귀하는 상대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까’의 질문이다. 그리고 ‘좋은 인상’과 ‘좋지 않은 인상’의 답변에 따라 그 이유를 묻는 항목이 이어진다. 한일간 ‘좋지 않은 인상’의 압도적인 이유는 ‘역사문제’에 있다. 2021년 일본인들의 절반 가량은 ‘한국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48.8%)’라고 답하는데, 나쁜 인상의 이유(2개 복수응답)로 ‘역사문제 등으로 일본을 비판하기 때문’(45.4%), ‘현재 한국 정부의 행동에 위화감을 느끼기 때문’(35.3%), ‘독도를 둘러싼 영토대립 때문’(31.1%)이라고 답했다. 이 응답의 비중은 성별과 연령을 불문하고 높았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는 이유는(2개 복수응답) ‘한국을 침탈한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아서’(66.7%),‘독도문제 때문’(52.3)의 응답이 높았다.

 

<표 1 한국에 대한 ‘나쁜 인상’의 이유(2021년 일본주요문항 데이터 결과표, 동아시아연구원)>

 

한국에 대한 인상 좋지 않다 응답자

사례수 (명)

독도를 둘러싼 영토대립이 있기 때문에

한국인의 애국적 행동과 사고방식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

한국인의 언동이 감정적이기 때문에

현재 한국 정부의 행동에 위화감을 느끼기 때문에

역사 문제 등으로 일본을 비판하기 때문에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대립이 있기 때문에

강제 징용 판결을 둘러싼 대응으로, 대립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

한국의 민주주의에 위화감을 느끼기 때문에

기타

특별한 이유는 없다

▣ 전체 ▣

(482)

31.1

20.5

20.7

35.3

45.4

14.1

11.6

12.4

1.5

1.7

성별

                     

남자

(296)

35.8

22.3

18.6

35.1

41.9

13.9

11.1

11.8

1.4

2.0

여자

(186)

23.7

17.7

24.2

35.5

51.1

14.5

12.4

13.4

1.6

1.1

연령

                     

20세미만

(8)

25.0

25.0

25.0

25.0

50.0

12.5

0.0

12.5

0.0

12.5

20~29세

(41)

36.6

17.1

17.1

29.3

43.9

14.6

14.6

4.9

0.0

9.8

30-39세

(64)

37.5

17.2

26.6

28.1

45.3

9.4

10.9

15.6

3.1

1.6

40-49세

(73)

31.5

23.3

19.2

32.9

43.8

11.0

16.4

11.0

4.1

0.0

50-59세

(72)

31.9

13.9

30.6

29.2

63.9

16.7

4.2

5.6

0.0

0.0

60세이상

(224)

28.1

23.2

17.0

41.5

40.2

15.6

12.5

15.6

0.9

0.9

 

 

상대국에 대한 ‘나쁜 인상’은 한일역사 갈등에 압도적인 영향을 받는 것에 비해, ‘좋은 인상’의 이유는 보다 다양했다. 초기 인식조사부터 한국인들은 꾸준히 ‘일본의 친절하고 성실한 국민성’과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을, 일본인들은 ‘한국의 대중문화’‘식문화와 쇼핑’을 좋은 인상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일본인이 꼽은 한국 방문 목적 1위는 ‘쇼핑’이기도 하다.

 

<그림 2 상대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된 이유(2023년 동아시아연구원-겐론NP0 한일상호인식조사: 일본과 한일관계)>

 

 

2021년 상호인식조사에서 ‘1인당 GDP에 있어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고, 방위비 역시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수준이니 한일 양국은 대등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가’의 질문에 대해, ‘일본이 우위에 있다’라거나 ‘잘 모르겠다’라는 한국 측 응답은 합쳐도 10% 남짓이었고, 대부분의 응답자가 ‘대등’하거나(44%), ‘아직 대등하지 않지만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44.2%)라고 응답했다. ‘대등함’에 대한 일본 답변은 ‘모르겠다’(43.6%)의 비중이 크고, ‘이미 대등하다’(15.7%)’‘대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26.5%)의 두 응답이 ‘일본 우위가 확고하다’라는 응답(14.2%)보다 세 배 가까이 많았다. 한국도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되며[1], 한국인 대다수는 한국이 일본과 ‘대등하거나 대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고 판단하고 있음에도, 일본에 대한 ‘좋은 인상’의 이유로 꾸준히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을 꼽는 점은 흥미롭다.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일본을 ‘디지털 후진국’으로 칭하기도 했음에도,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성실하고 친절한 국민성’(49.8)과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38.5%)의 순위가 유지되었다. 2022년의 응답에서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의 답변을 살펴보면, 한일간 경제 격차의 경험이 서로 다른 세대 간 답변에 큰 차이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20대의 응답이 30%로 가장 높다. 그렇다면 한국 국민들이 평가한 일본의 생활수준이란 경제학의 관점에서 측정가능한 임금, 소득, 영양, 건강과 수명 등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진행된다면 흥미로운 응답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표 2 2022년 결과표 일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된 이유(1순위)>

 

 

사례수 (명)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이어서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친절하고 성실한 국민성

일본의 대중문화에 관심 있어서

일본의 전통문화에 관심

일본 제품 품질 좋아서

매력적인 식문화와 쇼핑

일본인 교류를 통해서

기타

특별한 이유없다

전체

(315)

24.4

14.3

41.3

5.1

1.9

4.4

6.3

0.3

0.6

1.3

100.0

성별

 

 

 

 

 

 

 

 

 

 

 

 

남자

(159)

25.8

19.5

40.3

1.9

1.3

5.0

4.4

0.0

0.6

1.3

100.0

여자

(156)

23.1

9.0

42.3

8.3

2.6

3.8

8.3

0.6

0.6

1.3

100.0

연령

 

 

 

 

 

 

 

 

 

 

 

 

18-19세

(15)

20.0

20.0

40.0

13.3

0.0

0.0

6.7

0.0

0.0

0.0

100.0

20-29세

(63)

30.2

4.8

33.3

11.1

3.2

3.2

14.3

0.0

0.0

0.0

100.0

30-39세

(53)

24.5

17.0

35.8

3.8

1.9

3.8

7.5

1.9

0.0

3.8

100.0

40-49세

(58)

25.9

19.0

41.4

5.2

0.0

1.7

3.4

0.0

1.7

1.7

100.0

50-59세

(59)

16.9

18.6

42.4

3.4

5.1

6.8

5.1

0.0

0.0

1.7

100.0

60세이상

(67)

25.4

11.9

52.2

0.0

0.0

7.5

1.5

0.0

1.5

0.0

100.0

 

2. 국민성의 상호인식과 평가

 

상호인식조사 초기인 2013년과 2014년에는 국민성의 인식과 평가를 묻는 설문 조사가 이루어졌다. 오늘날과 같은 복잡사회, 대규모사회에 해당 국가 구성원들의 문화, 사회, 행동, 사고방식 등의 독자성을 상정한 국민성(national character)의 개념은 국민국가 구성원을 균질적인 공동체로 간주하며 내부적 다양성을 간과한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그럼에도 이는 대중적인 상호인식을 포착하는 데에 유용하며, 이이범(2004, 13-14; 20-21)[2] 의 연구와 같이 국민성 인식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된다는 면에서 한일관계에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변하는 정치 분야의 응답과는 차별화된다. 본 상호인식조사에서 일본인 국민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친절함 등 시민의식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앞서 언급한 ‘높은 생활수준’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2014년 조사에서 <친절/배려없다, 근면/태만, 평화적/호전적, 유연함/완고함, 신용가능/신용 불가능, 정직‧성실/불정직‧불성실. 창조적/모방적, 협조적/비협조적, 이타주의/이기주의, 집단주의/개인주의>의 상반된 성격 중에서 일본인들이 꼽은 한국인 국민성의 가장 높은 응답은 ‘어느 쪽도 아니다’였다. 일본 측 응답자들은 한국의 국민성에 대한 10개의 문항 중 9개에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하여, 한국 국민성의 뚜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한국인의 국민성으로 특정한 성격은 ‘완고하다(51.9%)’였다. 그 외에 다수 응답을 꼽아보면, ‘이기주의(44.7%), 근면(42.9%), 호전적(41.3%), 신용불가능(41.1%), 비협조적(38.1%), 불정직‧불성실(31.9%)’로 ‘근면’을 제외하면 부정적인 속성들이 대부분이다.

 

2014년 조사에서 한국인이 보는 일본 국민성에 대한 다섯 문항에서도 ‘어느 쪽도 아니다’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과반수가 넘는 가/부의 응답이 나온 항목 중에는 친절하다(70.3%), 근면하다(75.6%)의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다. 또한 ‘완고하다(36.1%), 신용할 수 없다(37.6%). 비협력적이다(36.0%), 이기주의적이다(48.9%)’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정직하고 성실하다(33.1%), 창조적이다(42.1%)’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공존하였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 독도 방문과 천황 사죄 요구 이후 일본에서는 격렬한 혐한 시위가 벌어졌다. 한류열풍은 혐한서적 열풍으로 바뀌었고, 2014년 재특회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의 <대혐한시대>는 20여 일 만에 6쇄를 찍었으며, 일본의 혐한 분위기는 뉴스 보도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고스란히 전달되어 반일감정을 부채질했다. ‘일본’과 ‘일본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고조된 속에서도 일본 국민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유지되는 점은 한국 측 응답의 특이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인 국민성에 대한 인식과 비교할 때에 더욱 뚜렷하다.

 

2022년도의 조사에서는 일본인과 중국인의 ‘국민성’ 인식을 비교할 수 있는 항목이 추가 된다. ‘친절/무뚝뚝, 유연/완고, 계획적/즉흥적, 대담/꼼꼼, 창조적/모방적’ 등의 선택지에서 꼽은, 한국인이 보는 일본 국민성은 ‘친절하다(77.5%), 계획성있다(64.8%), 배타적이다(55.2%), 꼼꼼하다(49.4%)’이다. 한편, 일본인과 중국인에 대한 인식은 상반된다고 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한국인은 중국인을 ‘무뚝뚝하다(62.5%), 완고하다(61.2%), 대담하다(64.8%), 모방적(73%), 배타적(63.7%), 호전적(62.5%)’이라고 인식했고, 부정적인 평가가 확고하게 과반수를 넘는 것도 특징이었다.

 

한편, 한국과 중국 중 친근감을 느끼는 나라를 묻는 2022년도의 질문에 대해, 일본 측은 ‘어느 쪽에도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35.2)’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그 다음 응답은 ‘한국에 친근감 느낀다’(25.9%), ‘양쪽 모두 친근감 느낀다’(14.6%)였고, ‘중국에 친근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7.7%에 불과했다. 한국 역시 ‘어느 쪽에도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40.8%)’가 가장 많았고, ‘일본’(24.3%), ‘중국’(16.9%),‘양쪽 모두에 친근감을 느낀다(14.4%)의 순이었다. 한일 역사문제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한일/일한 관계보다 각각 중국과의 관계가 장래에 더 중요하다고 판단함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 모두 중국에 대한 친밀감보다 한일간 친밀감이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2023년에는 그 비율이 더 높아졌다. 연령이 낮을수록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며, 그에 비해 중국에 대한 친근감에는 연령에 따른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국에 대한 젊은 세대의 친근감은 대중문화 소비와 연관이 된다고 짐작할 수 있다.

 

<표 3 한국과 중국 중 더 친근한 국가(일본 주요문항 데이터 결과표 2021 동아시아연구원)>

 

전체

사례수 (명)

중국에 보다 친근감을 느낀다

한국에 보다 친근감을 느낀다

양국에 모두 똑같이 친근감을 느낀다

어느 쪽에도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

모르

겠다

무응답

전체

(1,000)

7.7

25.9

14.6

35.2

16.0

0.6

100.0

성별

               

남자

(483)

9.5

24.0

16.4

37.7

11.6

0.8

100.0

여자

(509)

6.1

27.9

13.0

32.8

19.8

0.4

100.0

무응답

(8)

0.0

12.5

12.5

37.5

37.5

0.0

100.0

연령

               

20세미만

(23)

13.0

52.2

13.0

4.3

17.4

0.0

100.0

20~29세

(119)

4.2

42.9

12.6

24.4

16.0

0.0

100.0

30-39세

(148)

5.4

26.4

10.8

35.1

22.3

0.0

100.0

40-49세

(173)

11.0

28.3

13.9

32.9

13.9

0.0

100.0

50-59세

(147)

8.2

27.2

12.9

40.1

10.9

0.7

100.0

60세이상

(390)

7.7

17.4

17.7

39.5

16.4

1.3

100.0

 

 

III. 상대국에서 무엇을 떠올리는가

 

1. 한일 상호 이미지

 

2013년도와 2014년도의 조사 항목에는 ‘상대국을 떠올릴 때에 무엇이 떠오르는가’의 질문이 있었다. 2013년도의 선택지를 보면 한국 설문지에는 <일본요리, 우수한 품질의 제품, 일장기, 후지산, 벚꽃, 사무라이, 경제대국, 천왕, 과학기술,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독도문제, 위안부 할머니, 정치인들의 망언, 태평양전쟁(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투하), 우익단체, 만화‧애니메이션, 자위대, 한류열풍, 국내 체류 일본인, 버블경제>의 선택지가 있었다. 2014년도에는 여기에 <아베신조 총리, 센가쿠열도, 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이 추가된다.

 

2013년 일본 설문지의 한국 이미지로는 <한국요리, 액정 TV 등 가전 제품, 서울 등의 고층 빌딩군, 인천 공항, 한강의 풍경, 빈부의 격차, FTA등 경제자유화에의 노력, 숭례문, 민주주의, 징병제, 한국 병합. 한일기본조약, 삼성, 현대 등의 재벌 기업, 판문점, 2002년 한일 월드컵, 원(화폐), 반일감정·반일 데모, 한류 드라마‧K-POP, 독도문제, 태권도>가 제시되었다. 2014년도에는 여기에 <인천공항, 종군위안부, 징병제, 삼성 현대 등 재벌기업, 한국병합,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침몰사건> 등이 추가된다.

 

2014년의 ‘일본에서 무엇이 연상되는가’라는 질문(3개까지 선택)에 대해 한국 국민은 ‘독도문제’(66.4%), ‘위안부할머니’(56%), ‘정치인들의 망언’(24.5%)을 떠올렸다. 2014년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는 이유(1순위+2순위)로‘한국 침탈한 역사 반성이 없어서’(76.9%), ‘독도문제’(71.5%)가 꼽혔는데, 한국 측 응답은 역사문제에 압도되어 ‘일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과 ‘일본하면 떠오르는 것’이 분리되지 않고 일치함을 알 수 있다. 특히 당시 현안이었던 독도문제가 1순위 응답으로 30%를 넘는 것은 모든 연령에서 공통적이며, 이는 일본 방문 여부 등 개인적인 경험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림 3 2014 한국데이터결과표 동아시아연구원>

 

 

한편, 2013년 제1회 조사를 보면, 일본 국민의 경우 한국을 떠올릴 때 59.1%가 ‘한국요리’를 선택하였고, 이어서 ‘다케시마문제’(56.7%), ‘한국드라마, K-POP’(47.2%)을 떠올렸다. 당시는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 독도 방문과 천황 사죄 발언 등으로 일본 내 혐한 분위기가 고조 되고, 한류 붐이 급격히 냉각되는 시점이었음에도 한국 문화 관련 항목의 답변이 우세한 점이 특징이다. 2014년도에도 ‘한국요리’(46.0%), ‘한류드라마, 케이팝(K-Pop)’(36.3%),‘세월호사건’(38.2%)의 응답이 ‘독도문제’(36.7%)와 ‘위안부문제’(31.0%)보다 더 많아서, 일본인이 한국을 떠올릴 때에는 한일 역사문제보다 한국 음식과 대중문화 등 한국 문화 및 체험이 먼저 떠오른다는 차이를 볼 수 있다.

 

최근 10년의 상호인식조사의 응답을 1980-90년대와 비교해보자. 박진우(2014)는 1984년부터 1997년까지 동아일보와 아시히신문이 공동으로 실시한 5차례의 여론조사를 분석하고 상대국에서 연상되는 바를 자유기술로 물은 바를 분석했다. 그는 일본은 한국을 문화의 관점에 바라보며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다고 분석했고 한편 한국에 대해서는 경제대국, 기술선진국 일본에 대한 선망과 동시에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기인하는 반일감정이 일관되게 30% 전후를 차지하는 것을 지적한다.

 

<그림 4 ‘일본인이 한국에 대하여 연상하는 것(%)’ 박진우(2014:114)>

 

 

 

 

<그림 5 한국인이 일본에 대하여 연상하는 것(박진우 2014: 114)>

 

 

 

현재의 시점에서 위 표의 1980-90년대 한국인의 일본 ‘연상’을 살펴보면, ‘36년의 고통’의 표현과 같이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 반성부족에 대한 문제인식이 한국인의 연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나, 오늘날과 같이 독도문제, 위안부, 강제징용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인식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사실 최초의 공개 증언이 있었고, 이로써 한일 역사문제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위안부 문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993년 고노담화,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 발족’과 무라야마 총리 담화 등 전후 50년을 맞은 한일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점이었다고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과 1999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2002년 한일공동월드컵, 2003년 ‘겨울연가’ 열풍으로 시작된 한류 붐,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한류상권의 재편 등 한일 우호 분위기 속에서 민간 문화 교류는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 시점은 전후 민주주의의 역사관을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가 대두하고, 일본사회에서 ‘혐한’이 노골화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2005년 야마노 샤린의 <만화 혐한류>는 출간되자마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곧 재특회가 탄생하고 ‘거리로 나온 넷우익’(야스다 고이치 2013)의 폭주가 ‘행동하는 보수’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이 시기를 한일 간 ‘역사전쟁’의 내용이 구체화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일 간 역사 갈등의 저변에 있는 양국 국민들의 역사 인식을 ‘상대국 역사의 무엇을 기억하는가’로 고찰해보자.

 

2. 상대국 역사의 무엇을 기억하는가

 

1회와 2회의 상호인식조사에는 ‘알고 있는 상대국의 역사적 사건’ 두 가지를 꼽는 문항이 있었다. 2013년 제1회 조사에서 한국인들은 ‘임진왜란’(80.6%),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74.8%),‘태평양전쟁’(55.4%), ‘한일강제병합’(49.9%) 등을 꼽았다. 2014년도에도 한국인들은 ‘임진왜란’(86.3%)을 가장 많이 선택했고,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한일강제병합’ 응답이 뒤를 이었다. 이에 비해 일본 국민은 2013년 제1회 조사에서 ‘여성대통령의 탄생’(72.4%)을 가장 많이 꼽았고, ‘서울올림픽’(71.1%), ‘일한월드컵’(70.0%) 순으로 보다 최근의 사건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높았다. 2014년 조사에서도 일본인들은 ‘서울올림픽’(67.0%), ‘한일 월드컵’(63.0%)을 꼽아, 한일 간 상호 역사를 바라보는 시대적 초점이 다르다는 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국인의 역사적 관심이 식민지시기에 집중되는 것은 ‘일본의 사회 및 정치제도에 대한 인식’의 질문에서 일본을 ‘군국주의’로 보는 응답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하면서도(2021년 ‘일본의 민주주의에 만족’ 67.1%), 동시에 일본을 떠올릴 때에는 군국주의를 먼저 떠올리는 모순을 또한 안고 있다. 한편, 일본인들 역시 ‘한국의 정치와 사회 상황’을 ‘민족주의’(52.3%)로 보면 응답이 우세하다. 일본 측 응답에는 세대차이가 크다는 점이 특징인데, 20대와 30대는 ‘민주주의’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연령이 높을수록 ‘민족주의’ 응답이 많았다(2021년 조사). 2023년 조사에서는 한국을 ‘민주주의’로 바라보는 응답이 더 많아져, 일본 여론이 한일정세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3년 한국 측은 여전히 군국주의(45.4%)의 응답이 우세하여 뿌리깊은 역사 문제 인식을 읽을 수 있으나, 자본주의(42.1%)의 응답이 근소한 차이로 다음 순위로 꼽혀 향후 상호 인식의 변화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표 4 현재 일본 정치와 사회의 운영방식은 어떻게 되어있다고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한국인 응답(2021년 조사, 동아시아연구원)>

 

전체

사례수 (명)

평화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군국주의

국제협조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대국주의

패권주의

사회주의

기타

(1,012)

4.6

35.3

30.0

21.8

50.6

4.0

40.8

15.9

31.7

36.3

8.0

0.1

성별

                         

남자

(501)

4.8

32.9

32.3

22.4

51.9

4.8

39.3

15.2

30.5

37.3

8.6

0.0

여자

(511)

4.5

37.6

27.8

21.3

49.3

3.1

42.3

16.6

32.9

35.2

7.4

0.2

연령

                         

18-29세

(176)

8.5

40.3

30.1

31.3

37.5

6.3

43.8

19.9

27.8

26.7

8.5

0.0

30-39세

(156)

3.8

37.8

32.1

24.4

44.2

3.2

39.1

17.9

29.5

36.5

8.3

0.0

40-49세

(191)

3.7

36.1

31.4

18.8

50.3

4.7

38.7

18.3

31.9

36.6

8.4

0.5

50-59세

(199)

4.5

35.7

28.6

16.6

57.3

4.0

41.2

13.1

30.2

41.2

8.5

0.0

60세이상

(290)

3.4

30.0

29.0

20.3

57.6

2.4

41.0

12.8

36.2

38.3

6.9

0.0

 

 

<표 5 현재 한국 정치와 사회의 운영방식은 어떻게 되어있다고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일본인 응답(2021 일본 주요문항 데이터 결과표, 동아시아연구원)>

 

전체

사례수 (명)

평화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군국주의

국제협조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대국주의

패권주의

사회주의

기타

(955)

16.9

39.7

52.3

34.3

26.9

4.4

31.9

9.9

3.8

8.4

8.5

1.3

성별

                         

남자

(473)

16.1

38.1

55.8

35.7

22.8

4.0

35.7

11.4

4.7

11.0

7.4

2.1

여자

(482)

17.6

41.3

48.8

33.0

30.9

4.8

28.2

8.5

2.9

5.8

9.5

0.4

연령

                         

20세미만

(25)

4.0

28.0

24.0

36.0

44.0

4.0

24.0

20.0

12.0

0.0

20.0

0.0

20~29세

(109)

20.2

40.4

31.2

45.9

28.4

5.5

35.8

11.9

1.8

9.2

11.0

0.0

30-39세

(142)

21.1

40.8

41.5

43.0

32.4

4.9

26.8

10.6

4.2

3.5

4.2

0.7

40-49세

(167)

22.8

37.7

49.7

40.1

22.8

6.0

30.5

9.0

3.6

7.8

8.4

0.0

50-59세

(143)

13.3

35.7

51.0

28.0

31.5

2.8

29.4

9.1

5.6

7.7

9.1

3.5

60세이상

(369)

13.8

42.3

66.1

27.4

23.3

3.8

35.0

9.2

3.0

11.1

8.4

1.6

 

 

 

<그림 6 2023년 상호인식조사(2023년 동아시아연구원-겐론NP0 한일상호인식조사: 일본과 한일관계)>

 

 

IV. 한일관계와 역사인식

 

1. 역사 집착과 망각의 간극

 

한국인이 한일관계사에서 ‘임진왜란’을 자주 떠올리는 것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라는 것과도 연관될 것이다(갤럽 2019). 갤럽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2014년에 이어 2019년에도 이순신 장군(2위는 세종대왕)이었다. 충무공 이순신은 거북선과 해전의 승리를 중심으로 대하드라마, 역사소설, 뮤지컬 등으로 꾸준하게 제작되고 인기를 얻었다. 김한민 감독의 ‘명랑’(2014), ‘한산: 용의 출현’(2022) 두 영화의 상업적 성공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대중적 인기를 잘 보여준다.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일본의 침략과 일제강점기의 민족적 수난을 재연하는 드라마와 영화, 특히 위안부문제나 강제연행 등 한일 역사문제 쟁점을 소재로 하는 작품도 꾸준히 제작되었다. 화제를 모았던 극영화만 떠올려 보더라도 ‘밀정’(2016년), ‘동주’(2016), ‘아이캔스피크’(2017), ‘군함도’(2017), ‘말모이’(2019),‘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 ‘봉오동 전투’(2019), ‘1947보스톤’(2023) 등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패전 후 일본은 아시아 침략전쟁의 기억을 지워나갔다. 사토 다쿠미(2007)는 저서 『8월 15일의 신화: 일본 역사교과서 미디어의 정치학』에서 ‘왜 8월 15일이 종전기념일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둘러싼 기억과 역사, 미디어 간의 관계를 기술한다. 1945년 8월 15일에 방송된 일본 천황의 ‘옥음방송’, 그와 관련된 신문보도, 라디오 방송, 역사 교과서 등 다양한 미디어가 전후 전쟁종결은 천황의 ‘성단’에 의한 것이라는 소위 ‘8월 15일의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것, 그 결과 전후 일본 사회는 ‘8.15 종전기념일’이라는 틀 안에서 태평양전쟁은 의식하고 있어도, 식민지에 대한 시선은 주변화 해왔다는 것이다. 천황의 종전선언에 따른다면 전쟁은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되었으며, 미국 및 유럽의 국가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었으며, 이러한 전쟁관에서 보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의 역사는 간과되기 쉽다.

 

이미 GHQ 점령 해제기 이후 일본 교과서의 역사교육은 아시아에 대한 일련의 침략행위를 서구열강에 대항한 방위전쟁으로 규정하는 서사를 만들어냈고, 침략전쟁으로서의 성격을 희석시켜 왔다(박소영 2023). 개인과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침략과 그 유산에 대해 성찰하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나, 1960년대 일본인의 대중의식에서 전쟁 체험의 기록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집중되고, 특히 전쟁 체험에 대한 후기들은 거의 전시기 일본 국민이 겪은 고통 및 전후 시베리아 억류 등과 같은 피해 체험에 집중되어, 다른 아시아 국가에 행사한 폭력은 언급되지 않고 대중의식에서도 잊혀진다(이가라시 요시쿠니 2022, 290). 요시다 유타카(2004, 5-6)는 침략전쟁이나 식민지통치에 대한 반성이 전후 역사학의 원점이자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나, 아시아 각국에 대한 가해의 역사나 아시아 민중이 입은 전쟁피해에 대한 연구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일본 전후 처리의 특수한 양상, 특히 냉전의 국제질서 속에서 일본인은 역사인식 문제를 방치한 채 고도성장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한편 전후 일본 사회의 전쟁관의 변용 속에서 전쟁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애매한 의식의 변화, 특히 1980년대 이후 국제관계를 의식한 정치적이고 현실주의인 전쟁관으로의 변화가 일어난다. 즉 ‘침략전쟁’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거부하지만 ‘침략적 행위’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반성’의 언명이 늘어나면서, 전후 50주년을 즈음한 1990년대 이후 ‘대동아전쟁 긍정론’은 급속히 퇴조했다. 그러나 1980~90년대의 NHK의 여론조사에서도 ‘침략전쟁이었다’의 응답이 절반이라면, ‘어쩔 수 없는 전쟁이었다’의 응답 역시 40% 정도 존재하는 위태로운 구도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쟁에 대한 이중기준(double bind)은 여전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5년 일본 사회의 전쟁관에 대한 여론조사(2015년 전후 70년 일본경제신문이 1,584명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침략전쟁이었다’의 응답은 66%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정부의 사과는 ‘이미 충분하다’는 응답도 77%에 달했다(<日本経済新聞> 2015/05/27). 같은 해 마이니치신문 세론조사에서는 47%의 국민이 2차 세계대전은 ‘잘못된 전쟁’이라고 답했고, ‘어쩔 수 없는 전쟁’ 혹은 ‘모르겠다’의 응답은 각각 24%였다. ‘잘못된 전쟁’이라 답한 이들은 그 이유로서 절반 이상은 ‘침략전쟁이었기에(56%)’라고 답했다. 그러나 ‘일본이 패했으니까’(3%), ‘두 이유 모두’(34%)의 응답도 적지 않았다. 이 설문에서는 전후 70년 아베담화에 과거의 식민지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おわび)가 ‘포함되어야 한다’(42%)는 의견이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15%)의 의견보다 많았다. 그러나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주변국 피해에 대한 사죄가 ‘이미 충분’하거나(44%) ‘본래 필요하지 않았다’(13%)고 답했고, ‘사죄가 미흡했다’의 응답은 31%에 그쳤다. 2005년 마이니치 신문의 조사에서는 ‘사죄는 충분하다’(36%)와 ‘필요없다’(11%)에 비해, ‘사죄가 미흡했다’의 답변이 42%를 차지했던 것과 인식의 변화를 보인다(ハンギョレ 2015).

 

한국의 역사 되새김과 일본의 망각의 간극, 전쟁 책임과 사죄를 둘러싼 양국의 인식차는 ‘한일 역사문제에서 해결해야 할 것’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역사에 지식과 관심의 시대적 초점이 상이하나, 한일 역사문제를 ‘상대국 탓’으로 여기는 인식은 공통적이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문제 중 해결해야 할 것을 묻는 2021년의 문항에서, 한국 측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67.4%), ‘위안부문제’(67.1%), ‘침략전쟁에 대한 일본의 인식’(61.4%), ‘일본의 전쟁배상, 강제노동 등에 대한 보상 문제’(54.3%),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나 사죄의 부족’(52.8%)을 꼽았다. 일본 측 가장 많이 택한 응답은 ‘한국의 반일교육과 교과서 내용’(56.7%), ‘역사문제에 대한 한국인의 과도한 반일 행동’(53.8%), ‘위안부문제’(40.0%)였다. 이는 상대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의 이유로서, 한국은 ‘일본이 한국을 침탈한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아서’, 그리고 일본은 ‘한국이 역사문제 등으로 일본을 계속 비판하기 때문’이라고 꼽은 응답과도 일치한다.

 

<표 6 한일관계에 있어 해결해야 하는 역사문제(한국인의 동아시아 인식조사 결과표 2021.9 동아시아연구원)>

 

Base=전체

사례수 (명)

침략전쟁에 대한 일본의 인식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일본의 전쟁배상, 강제노동 등 보상 문제

위안부 문제

일본 정치가의 한국에 대한 발언

일본 언론매체의 한국에 대한 보도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나 사죄의 부족

한국 반일교육 및 교과서 내용

한국 정치가의 일본에 대한 발언

한국 언론매체의 일본에 대한 보도

역사문제에 한국인의 과도한 반일행동

특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없다

기타

모르겠다

▣ 전체 ▣

(1,012)

61.4

67.4

54.3

67.1

45.9

36.6

52.8

18.9

11.1

8.2

8.1

0.3

0.3

0.5

성별

                             

남자

(501)

60.3

65.3

51.9

65.1

44.5

36.9

52.9

18.0

12.6

9.6

9.0

0.4

0.6

0.6

여자

(511)

62.4

69.5

56.8

69.1

47.4

36.2

52.6

19.8

9.6

6.8

7.2

0.2

0.0

0.4

연령

                             

18-29세

(176)

55.7

65.9

54.5

65.3

44.3

38.1

57.4

21.6

10.2

8.0

7.4

0.6

0.0

1.1

30-39세

(156)

59.6

71.8

48.7

67.9

47.4

36.5

51.9

17.3

11.5

9.0

9.6

0.6

0.0

0.6

40-49세

(191)

58.6

63.9

53.4

64.9

44.0

34.0

55.0

22.0

11.5

5.2

8.4

0.5

0.5

0.5

50-59세

(199)

62.3

70.9

56.3

67.8

46.2

38.7

50.8

20.6

11.6

8.5

8.5

0.0

0.5

0.0

60세이상

(290)

66.9

65.9

56.6

68.6

47.2

35.9

50.3

14.8

10.7

9.7

7.2

0.0

0.3

0.3

 

 

 

<표 7 일본과 한국의 역사문제 중 해결할 것(일본 주요문항 데이터 결과표 2021, 동아시아연구원)>

 

전체

사례수 (명)

한국의 반일교육과 교과서 내용

한국 정치가의 일본에 대한 발언

한국 언론 매체의 일본에 대한 보도

역사문제에 대한 한국인의 과도한 반일 행동

침략전쟁에 대한 일본의 인식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

징용공(강제 징용) 문제

종군 위안부 문제

일본 정치가의 한국에 대한 발언

일본 언론 매체의 한국에 대한 보도

일본인의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부족

이제 해결해야 할 큰 문제는 없다

기타

잘 모르겠다

▣ 전체 ▣

(999)

56.7

31.8

32.9

53.8

12.9

12.3

25.0

40.0

6.2

10.6

7.5

3.9

0.6

19.2

성별

                             

남자

(486)

60.1

37.0

40.1

56.6

14.6

14.8

31.1

42.0

7.4

11.7

7.6

5.8

1.2

14.8

여자

(513)

53.4

26.9

26.1

51.1

11.3

9.9

19.3

38.2

5.1

9.6

7.4

2.1

0.0

23.4

연령

                             

20세미만

(25)

40.0

24.0

24.0

32.0

4.0

16.0

0.0

24.0

4.0

8.0

0.0

4.0

0.0

40.0

20~29세

(118)

44.1

22.0

31.4

43.2

8.5

8.5

12.7

34.7

5.1

12.7

4.2

0.8

0.0

27.1

30-39세

(149)

55.0

28.2

26.2

45.0

10.1

10.7

16.1

34.2

7.4

16.1

7.4

3.4

0.7

23.5

40-49세

(173)

60.1

37.6

38.7

45.7

15.0

12.7

19.7

33.5

7.5

12.1

7.5

3.5

1.2

22.0

50-59세

(148)

60.1

33.1

37.2

55.4

12.8

14.2

31.8

45.9

6.8

9.5

7.4

4.1

0.0

19.6

60세이상

(386)

59.3

33.7

32.4

64.8

15.0

13.0

33.7

45.6

5.4

7.8

9.1

5.2

0.8

12.4

 

 

한일 국민 모두 한일관계는 중요하다고 서로 인식하지만, 관계 개선은 쉽지 않다는 인식이 우세하다. 그 배경에는 관계 회복의 선결 조건인 역사문제 해결을 둘러싼 해법의 차이가 가로놓여 있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인식,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등 배상문제, 과거사 반성과 사죄의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으며, 일본인들은 ‘한국의 반일교육과 교과서 내용, 반일행동’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한국은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되새기고 있는 데에 비해, 일본은 조선 및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망각하는 길을 걸어온 양국 역사 궤적의 차이가 이 설문조사에 담겨 있으며, 이로써 양국 국민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역사문제의 해결점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임을 재차 확인하게 한다.

 

2. 대중문화와 한일관계

 

한일관계는 끊임없이 현재진행중인 변화 속에 있다. 최근 한일상호인식 조사와 그에 대한 분석에서 ‘대중문화’는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했다. 물론 2013년 1회 상호인식조사부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의 중요한 이유는 대중문화였다. 그러나 대중문화와 상호 호감도에 주목한 문항들이 생겨난 것은 2021년 이후 상호인식조사의 큰 변화이다. 2021년의 조사를 보면, 한국의 경우 일본 대중문화를 즐기는 비중은 18%이며, 이 중 67%(‘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10.4%),‘대체로 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56.6%)) 가 일본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답했다. 한국 대중문화를 즐긴다고 한 일본 응답 비율은 34.5%이며, 그 중 81.2%가 한국에 호감을 보였다(‘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25.8%), ‘대체로 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55.4%)고 답했다. 즉, 대중문화 소비와상대국에 대한 좋은 인상은 깊은 연관을 가지며, 대중문화 소비가 상호 호감도를 견인한다는 점이 뚜렷해졌다(오승희 2020; 2020.8.11; 손열‧이하연, 2021.11.15.)

 

<표 8 귀하께서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기십니까? (일본 주요문항 데이터 결과표 2022, 동아시아연구원)>

 

전체

사례수 (명)

① 매우 즐긴다

② 어느 정도 즐긴다

①+② 즐긴다

③ 즐기지 않는다

④ 관심 없다

③+④ 즐기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

무응답

▣ 전체 ▣

(1,000)

7.3

27.3

34.6

13.5

41.8

55.3

9.8

0.3

100.0

성별

                   

남자

(483)

4.6

22.4

26.9

16.8

46.4

63.1

9.9

0.0

100.0

여자

(509)

9.8

32.0

41.8

10.6

37.5

48.1

9.4

0.6

100.0

무응답

(8)

12.5

25.0

37.5

0.0

37.5

37.5

25.0

0.0

100.0

연령

                   

20세미만

(23)

13.0

43.5

56.5

17.4

13.0

30.4

13.0

0.0

100.0

20~29세

(119)

12.6

37.0

49.6

9.2

27.7

37.0

13.4

0.0

100.0

30-39세

(148)

5.4

28.4

33.8

9.5

41.2

50.7

14.9

0.7

100.0

40-49세

(173)

10.4

28.3

38.7

15.6

37.6

53.2

8.1

0.0

100.0

50-59세

(147)

7.5

26.5

34.0

18.4

39.5

57.8

8.2

0.0

100.0

60세이상

(390)

4.6

22.8

27.4

13.3

50.8

64.1

7.9

0.5

100.0

 

 

<그림 7 대중문화가 상대국 인상을 향상시키는가의 여부(2023년 동아시아연구원-겐론NP0 한일상호인식조사: 일본과 한일관계)>

 

 

 

<표 9 한일관계 악화가 본인 한국 대중문화 소비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대중문화 즐기는 응답자에만 질문) (일본 주요문항 데이터 결과표 2022, 동아시아연구원)>

 

한국 대중문화 즐긴다는 응답자

사례수 (명)

한일 정부 간 관계가 악화되어도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고 있다

한일 정부 간 관계가 악화되면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지 않게 된다

잘 모르겠다

▣ 전체 ▣

(338)

62.4

20.1

17.5

100.0

성별

         

남자

(127)

66.9

19.7

13.4

100.0

여자

(208)

59.1

20.7

20.2

100.0

무응답

(3)

100.0

0.0

0.0

100.0

연령

         

20세미만

(12)

50.0

33.3

16.7

100.0

20~29세

(59)

66.1

23.7

10.2

100.0

30-39세

(48)

66.7

16.7

16.7

100.0

40-49세

(65)

70.8

20.0

9.2

100.0

50-59세

(50)

56.0

26.0

18.0

100.0

60세이상

(104)

57.7

15.4

26.9

100.0

 

 

‘한일관계가 악화되어도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2021년 한국 32.4%, 일본 64.6%, 2022년 한국 35.6%, 일본 61.0%)는 태도에서 정치적인 부정적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문화소비와 이를 통한 소통의 장은 위축되지 않을 것임을 전망할 수 있다. 2020년에는 ‘최악의 한일관계’ 속에서도 4차 한류 붐이 일어난 것과 같이, 일본의 한류 소비층은 한일관계가 악화되어도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는 의견 또한 뚜렷하다. 대중문화는 상호성, 동시대적인 소통의 가장 의미 있는 매개이며, 대중문화를 통한 소통과 이를 통한 친밀감은 한일의 우호적인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임을 예견하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태도는 역사인식의 부재나 한일관계에 대한 무지/무관심의 연장으로 읽을 수도 있다.

 

대중문화를 통한 상호 호감도가 높은 젊은 층이 한일관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을 가질 것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그들의 답은 의외로 그렇지 않다. 2022년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묻는 문항에서 ‘중요하다’는 응답은 60세 이상에서 가장 높았고, 연령이 낮을수록 ‘모르겠다’의 응답이 높았다. ‘한일관계가 개선되어야 할 것인가’의 질문에서도 연령이 높을수록 ‘개선되어야 한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해결해야 할 역사 문제’에서 응답자 연령이 낮을수록 ‘모르겠다’ 응답이 많아 20대 이하에서는 40%에 달했다(박승현 2022.9.14.). 이는 전쟁과 관련 없는 세대들에게 어두운 역사의 짐을 지게 할 수 없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석주희(2020)는 MZ세대에서 나타나는 대중문화와 정치경제, 역사문제의 명확한 분리 현상에 주목하고, 한일 간 대중문화의 교류가 확대될수록 상호협력관계 또한 공고해질 것이라는 분석을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만이 가지는 힘, 대중문화를 통한 동시대적인 소통의 시공간은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관계가 깊은 이웃나라’ 가 공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임이 틀림없다. 문화의 영역이 정치적 역사적으로 무겁게 얽혀 있는 한일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을수록 그 가치가 온전하게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V. 맺으며

 

본 연구는 동아시아연구원과 NPO겐론(言論)의 2013년부터의 “한일국민상호인식조사”를 토대로 한일 간 상호 인상, 역사 인식과 역사문제 해법의 차이와 그 시사점을 분석하였다. 초기 인식조사부터 일본인들은 ‘한국의 대중문화’, ‘식문화와 쇼핑’을 좋은 인상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한국인 대다수는 한국이 일본과 경제적으로 ‘대등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일본에 대한 ‘좋은 인상’의 이유로 꾸준히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을 꼽으며, 동시에 ‘친절하고 성실한’ 일본 국민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중문화 소비는 한일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라는 일본 측 응답이 높은 것처럼, 한국인들의 일본 국민성 평가는 한일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 특징이 두드러졌다.

 

한일 양국의 ‘나쁜 인상’에 있어서는 역사문제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양국 국민 모두 한일관계 발전의 최대 변수로 역사 문제를 꼽고 있는데, 한국은 일본의 침략전쟁 반성 부족, 독도문제, 강제노동, 위안부 문제 등을 드는 반면, 일본은 한국인의 반일감정, 반일행동을 가장 문제 삼는다. 한국인들이 일본을 떠올릴 때는 역사문제에 압도되어, ‘일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과 ‘일본하면 떠오르는 것’이 분리되지 않고 일치한다. 이에 비해 일본인들이 혐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한류 붐이 냉각되는 시점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 호의적인 응답이 높았다. 상대국에 대한 역사 지식 역시 한국이 ‘임진왜란’과 ‘식민지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반면, 일본인의 역사 지식은 한국 대통령 선거 등 최근 이슈들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 인식 차이로 인해, 한국은 일본을 ‘군국주의’로, 일본은 한국을 ‘민족주의’로 인식하기에 이른다. 특히 ‘한일 역사문제에서 해결해야 할 점’에 있어서의 한일 간 상반된 응답은 민족 수난의 역사를 곱씹고 되새긴 해방 후 한국과 조선 및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망각하는 길을 걸어온 전후 일본, 양국의 궤적의 차이를 가장 확연하게 드러낸다. 2023년도의 상호인식조사결과에서 보듯 한일 정상의 셔틀 외교가 복원되는 등 양국 관계의 개선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 호감을 가진 일본인들이 늘어났지만,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호감은 오히려 줄어들었다(손열·김양규·박한수 2023). 일본은 양국관계가 개선되면 한국에 대한 인상도 좋아지지만, 한국은 관계개선이 일본에 대한 호감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아, 한국 측 역사인식의 ‘뿌리 깊음’을 읽을 수 있다.

 

인식조사를 통해 한일관계에 있어서의 언론의 중요성 역시 다시금 부각된다. 한일 양 국민이 상대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매스미디어가 주도한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 부분이 적지 않다거나(조규철 2003), 언론보도가 상대국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판(이창현 2007)에 더해, 한일 갈등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이용하는 언론의 정파적 보도 행태(박영흠‧정제혁 2020)에 대한 비판 등 한일관계와 언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이루어져 왔는데, 상호인식조사의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상대국이나 한일관계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로에 대한 문항에서, 한일 양국 모두 ‘자국의 언론매체’를 꼽았다.[3] 2014년도의 조사에서, ‘미디어 보도는 한일 국민감정에 영향력이 매우 크다’라는 응답이 한일 양측 모두에서 60% 이상이며, ‘크지 않지만 영향력이 있다’는 응답을 합치면 80~90%에 달한다. 그럼에도 한일관계에 대한 자국 언론의 보도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낮은 수준으로, ‘언론은 한일관계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평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라는 응답의 비율이 꾸준히 더 높다. 2021년 한국 측 응답자들은 언론 매체들이 정치적 상황이나 입장에 좌우되며(62.3%), 센세이셔널리즘에 근거하여 반일감정을 자극하고(20.7%), 매체들은 일본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12.2%)하다고 평가했다. 한일관계 보도에 대한 여론의 평가에 대해서는 이후 보다 상세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1980-90년대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과거 민족 수난의 기억이 ‘36년의 고통’과 같이 모호하게 표현되었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독도 문제’ 등 일본의 ‘사죄와 반성’이 요구되는 역사문제가 구체화되었다. 또한 상호인식조사가 수행된 지난 10년간은 이 쟁점들을 둘러싼 한일 간 입장의 차이가 표면화되어 갈등이 증폭된 시기이며, 그렇기에 이는 ‘잃어버린 10년’의 ‘최악의 한일관계’ 아니라, 한일 간 얽힌 과거사를 직시하고 그 타협안을 찾는 데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진통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일관계는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한다’는 말로 압축되곤 한다. 그렇기에 상호인식의 차이, 역사인식의 간극과 그 역사적 경위를 분석하는 연구들이 한일 간 상호이해의 증진과 한일관계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그 작업의 성과들이 한일 양국이 함께 이루어 낸 역사적인 합의와 성취들을 재평가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

 


 

[1] ‘대등함’의 항목이 생긴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195개국 회원국 만장일치로 한국의 지위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되었다. 한국은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설립된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국가이며, 이로써 한국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으로 구성된 UN 선진국 그룹 32개국으로 공식적으로 분류된다.

 

[2] 통계수리연구소의 국민성 전국조사(1953년부터 5년 주기로 조사), NHK의 의식구조조사(1975년부터 5년 주기로 조사)을 통해 일본 국민성과 가치관을 분석하는데, 일본인들 스스로 일본인의 특징으로서 근면, 끈기, 예의바름, 친절함의 순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특징들은 한국인이 바라보는 일본인의 특성과 유사하며, 이 응답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거의 변화지 않고 있다. 이이범은 이 조사 결과를 통해, 그동안 ‘일본인론’ 또한 ‘일본사회론’에서 주장한 일본인의 특성 및 성향이 대체로 일치하며, 또한 일본인의 삶의 방식과 사회적 환경이 크게 변했음에도 지난 40년 동안 지속되고 있음을 조명한다. 

 

[3]  ‘자국 언론’을 꼽은 이들이 이용하는 매체로서는 텔레비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다음으로 모바일기기, 컴퓨터가 꼽혔다. 어떤 매체를 활용하는가에는 세대 차이가 크다. 2021년 한국의 결과를 보면 60세 이상에서 텔레비전이 95.3%를 차지하는 데에 비해, 18~29세는 텔레비전은 30%에 그치고, 컴퓨터 36.9%, 모바일 기기 33.1%를 차지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매체의 세대 차이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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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経済新聞> 2015. “政府による謝罪「すでに十分 77%” 5月27日.

 

ハンギョレ. 2015. “日本国民の47%「第2次大戦は間違った戦争” https://japan.hani.co.kr/arti/international/21624.html . (검색일:2023.10.30.)

 

ロイター共同通信> 2023. “公文書あるのに記録なし?” 7月17日.

 

東京新聞. 2023. “100年ぶり」の国会質問に政府の答えは?まもなく発生100年の関東大震災「朝鮮人・中国人虐殺」問題” https://www.tokyo-np.co.jp/article/251995 (검색일: 2023.10.30)

 


 

박승현은 계명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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