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김태균 서울대 교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증대되는 상황이 한국에게 새로운 정치적 기회 공간을 열어준다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한국이 인프라 개발협력을 통해 한일관계의 복원을 시도하면서, 지역 수준의 소다자주의인 쿼드(Quad)와 글로벌 차원의 인프라 소다자협력체(B3W/PGII)가 상호연계되는 통합적 접근을 통해 한미일 삼각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아울러 한일 협력을 매개로 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역내 시장을 활용함으로써 중국의 경제적 압박에 대처해 나가는 한편,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명시적으로 배제하기보다는 상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방향의 정책 구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Ⅰ. 들어가며: 인도-태평양 시대의 전개와 한일관계의 재건축 가능성

 

최근의 한일관계는 ‘잃어버린 10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말기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박근혜 정부 시기의 무리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 그리고 문재인 정부 시기의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 등 한일의 갈등 국면은 계속해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일본도 노다 요시히코 내각부터 시작해서 아베 신조 내각, 스가 요시히데 내각, 그리고 기시다 후미오 내각에 이르기까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고노 담화 재검토 등 전후 과거사 문제에 보수적인 행보를 보여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10년의 불편한 기간 동안 양국 정부 간 대화는 사실상 중단되었고 양국의 국민감정도 악화되었으며,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관광 교류까지 끊겨서 양국 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가 긍정적으로 재건축될 수 있는 대내외 정치적 기회 공간이 일정 정도 조성되고 있다. 우선, 아직까지 한국이 복잡다단해지는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지역 소다자주의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지정학적 환경 요소로서 인태시대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실제로 인태의 개념은 일본에 의해 시작되었고 미국에 의해 전략화되어 아베 신조의 간판 외교정책이자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외교 대전략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2006년 제1차 아베 내각 당시 아베가 인도를 방문하여 아시아 ·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계하는 지역 개념으로 인도-태평양을 강조한 바 있으며, 2016년 제6차 <도쿄 아프리카개발 국제회의>(Tokyo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frican Development: TICAD)에서 아베는 인태라는 지정학적 공간에 민주주의, 법치, 시장경제 등 자유와 개방을 공동의 규범으로 설정하고, 2018년 1월 일본 국회 연설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 전략을 일본 외교정책의 핵심축으로 천명하였다(손열 2019; 조은일 2020).

 

이러한 인태 개념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11월 아시아 순방에서 인태 지역의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강조했기 때문이다. 2020년 8월 트럼프 행정부는 인태판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를 선언하면서, 2004년 미국 · 인도 · 일본 · 호주 4개국이 모여 남아시아 대지진의 구호 및 지원을 논의했던 대화 협의체를 ‘4자안보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또는 약칭 ‘쿼드(Quad)’라는 정기적 정상회담으로 격상시키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도 쿼드를 인태전략의 핵심 플랫폼으로 승계하고, 더 나아가 2022년 5월 일본에서 개최된 쿼드 정상회담 참석차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면서 이른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를 또 하나의 핵심 전략으로 공식 출범시켰다. 동년 12월 호주 브리즈번에서 공식 출범한 제1차 IPEF에 한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호주, 뉴질랜드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과 함께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의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 회원국과 인도 등 14개국이 참여하였다(산업통상자원부 2012). 미국의 인태전략이 쿼드를 안보협력의 중심으로, IPEF를 경제협력의 중심으로 확장하면서 아시아 지역에 갈수록 커지고 있는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 확장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일본의 인태전략과 일치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봉쇄전략으로서 미국과 일본의 인태전략 활용은 미중 전략경쟁 가운데 선택의 기로에 처해 있는 한국에게 외교적 부담이자 동시에 기회로 작동할 수 있다. 특히, 한일 양자 간의 오래된 갈등을 풀 수 있는 교두보로서 인도-태평양 소다자주의의 전략적 가치는 한국에게 정치적 기회의 창으로 간주될 수 있다.

 

둘째로, 인태 지역의 외부 변수와 함께 새로운 한일관계의 구축을 위하여 한국의 국내정치에서 나타나는 내부 변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2년 5월 10일을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를 이어 윤석열 정부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 선거 공약 때부터 지속적으로 한일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일본과의 관계 회복을 강조하는 동시에 지난 문재인 정부의 중국에 대한 저자세 외교를 정상화하려는 기조를 유지하여 왔다. 일본의 국내정치에서도 2021년 10월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가 공식적으로는 한일 간 대립 현안에 일관된 일본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기존의 총리들보다 한국에 유화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한일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2023년 3월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고, 곧이어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 및 한국의 세계무역기구 제소 취하에 양국이 합의한 것은 이러한 가능성이 실현되는 첫 단계라 할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윤석열 정부는 쿼드 가입을 주요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대통령 당선 이후 바로 미국, 일본, 호주, 인도 정상과 차례로 통화를 할 정도로 한국의 쿼드 가입을 위한 정지 작업을 하고 있다(박대로 2022). 특히 쿼드 산하 백신, 기후변화, 신기술, 인프라 개발 등의 워킹그룹에 참여하여 쿼드 정식 가입을 모색하는 점진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국내 정치지형의 변화가 인태시대 한일관계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한편, 커지는 가능성을 실질적인 한일관계 개선의 성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변화의 임계점에서 구체적인 결과물로 전환되도록 촉발하는 한일 간 공통의 도구적 전략 장치가 필요하다.

 

한일관계의 변화를 위한 국내외 환경이 조성되는 상황에서 중국 변수는 대척의 상수로 작동하고 특히 한국에게는 경우에 따라 치명적인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 미일의 인태전략은 인도양을 전략적 공간으로 확장하고 아세안 등의 지역협력체를 안보협력의 주축으로 포함하며 인태 및 대만에서 유사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종용하여 궁극적으로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로 대표되는 중국의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견제하는 공동의 목표를 내포하고 있다(이동률 2018). 한국이 쿼드 및 IPEF 등 미국 중심의 인태전략에 가입하게 되면 중국은 이에 상응하는 경제 보복 등의 대응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 복원과 미국의 인태전략 참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을 구사해야 한다.

 

인태시대에 한일관계 복원과 한미일 공조, 그리고 중국 변수의 적절한 관리라는 상호 연계된 다중 목표에 연착륙하기 위하여, 인태지역에 구축되어 있는 쿼드 등 소다자주의의 추진 목표 가운데 글로벌 규범이 담보된 보편적인 이슈 영역부터 한국이 주요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개발협력 내지 긴급구호와 같은 비전통안보 분야의 협력부터 시작하여 점차 경제협력과 안보협력으로 확장하는 연착륙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한국은 이러한 점진적 접근의 핵심 파트너로 일본을 상정하고 인태지역 소다자주의 안에서 일본과 인프라개발협력 이니셔티브를 구축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는 소다자주의 개발협력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강조하는 인태전략의 일환이기 때문에 미국과는 동일한 궤적에서 상호 공조가 가능할 것이고, 이는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의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의 경우에도 동일한 가치 기반의 협력이 조성될 것이다. 한일 간 개발협력의 이니셔티브가 궁극적으로는 미중 전략경쟁 구조하에 중국의 아시아 팽창을 견제하고 일대일로의 영향력을 저지하는 목적을 공유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아시아 경제 개발과 사회 발전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개발협력의 보편적 가치 추구를 위해 중국과도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준다. 특히, 인프라 개발협력 프로젝트는 글로벌 남반구에서 중국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개발협력 사업이기 때문에 중국과 경쟁할 가능성도 높지만, 공동 프로젝트로 기획하여 중국의 비교우위와 한일의 비교우위가 상호 보완되도록 만들면 중국의 대아시아 정책과 정면으로 대치되지 않고 협력의 가능성을 높이는 유연한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윤유리 2018; 김태균 2018). 인태지역의 공급망 · 신기술 · 기후환경과 함께 인프라 투자 및 개발 등 새로운 글로벌 이슈의 신규범 정립과 협력에 있어 한일 협력은 미국이 강조하는 규범 기반 국제질서(rule-based international order)에 중요한 한미일 삼각 협력의 핵심축이 될 것이다. 동시에, 중국이 자국 중심의 도전적인 국제질서를 강조하는 일대일로와 공격적인 인프라 투자로 발생하는 개도국의 부채 문제에 한일이 공동으로 대응하고 중국의 개발원조와 차별화된 보편적인 가치를 반영한 대안을 한일이 쿼드 등의 소다자주의를 통해 강조할 수 있게 된다(Cannon and Rossiter 2022).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지난 10년의 갈등 국면으로 점철된 한일관계의 미래를 인태시대 국제개발협력 이슈 영역에서의 한일협력 가능성 타진으로 재조명한다.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는 인태시대 한일관계의 재건축을 위한 시발점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윤석열 정부가 미일의 인태전략 소다자주의에 연착륙할 수 있는 전략적 플랫폼으로 강조될 수 있고, 한미일 삼각 협력을 통해 글로벌 규범을 인태지역에 적용하는 도구적 효용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인태전략으로서 인프라 개발협력이 담보하고 있는 전략적 가치와 글로벌 규범과 조우하는 포괄적 접근성을 설명하고, 인태전략에서의 한일협력을 위한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의 가능성과 그 역할을 예상하며, 마지막으로 한일협력을 위한 인프라 개발협력이 제도화될 수 있는 쿼드,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ing Back Better World: B3W), “글로벌 인프라 · 투자 파트너십”(Partnership for Global Infrastructure and Investment: PGII) 등의 소다자협력 사례를 비교 · 분석한다.

 

Ⅱ. 인태전략으로서 인프라 개발협력의 전략적 가치와 포괄적 접근

 

미국, 일본, EU 등 인태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주요 행위주체는 예외 없이 인태전략을 이행하는 데 중요한 핵심 정책으로 개발협력 프로젝트를 강조하고 있다. 인태전략에 동원된 개발협력의 스펙트럼은 긴급구호 등 인도적 지원부터 기술협력을 포함한 무상원조, 그리고 고비용의 인프라 시설 구축 프로젝트까지 다양하게 포진되며 인태전략에 개발협력 전담기관이 참여하고 있어 소다자협력체를 운영하는 핵심 주체 중 하나가 개발협력 관련 기관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송지선 2022). 한국이 쿼드 등 소다자주의를 통해 일본과의 개발협력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개발협력이 인태전략의 주요 요소로 갖게 되는 전략적 가치, 인태전략의 인프라 협력이 갖는 중국의 일대일로와 차별화된 특징, 그리고 인태지역의 인프라 협력과 글로벌 규범 간의 연계성 등에 관해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1. 규범 기반 개발협력의 가치외교

 

인태지역에서 미일 간에 형성된 FOIP 개념의 공유는 어렵지 않게 EU의 인태지역 협력전략과 연계되었고, 더 나아가 한국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New Southern Policy)과도 2020년 한미 간 적극적인 조율이 시도된 바 있다(Choi et al. 2021; Botto 2021; U.S. Department of State 2021). 이는 미국, 일본, EU, 한국 모두 중국 요인이라는 공동의 견제 상대가 있다는 점과 민주주의와 인권 및 법치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상호 공유하고 있다는 가치외교 측면이 인태전략의 핵심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김태환 2019). 미일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규범 기반 국제질서의 원칙이 인태지역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인프라를 포함한 개발협력 분야에도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와 파리기후변화협정 등의 글로벌 규범과 개발원칙이 투영되어 있다.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태지역 주요 국가행위자들의 인태전략을 비교해 보면 미국, 일본, 한국, EU는 — 표현이 일정 정도 다를 수 있지만 — 평화안보, 거버넌스, 경제협력 등 세 가지 규범적 영역에서 컨센서스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미국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와 국무부(Department of State)가 2018년 공동으로 발표한 『2018-2022 공동전략계획』 (Joint Strategic Plan, FY 2018-2022) 에서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 안보, 민주주의, 인권, 법치에 반하는 행위에 개입하여 미국의 안보를 보호하고 미국의 리더십을 진작하는 전략목표를 강조하고 있다(U.S. Department of State &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2018). 일본은 2015년 개정된 『공적개발원조 헌장』 (ODA Charter) 에서 민주주의, 자유, 법치 등이 일본 ODA의 주요 철학적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일본의 ODA 정책이 일본 FOIP 전략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해양안보와 거버넌스, 그리고 연계성(connectivity)을 중점 분야로 강조하고 있다(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2023).

 

[표 1] 미국 · 일본 · EU · 중국 · 한국의 인태전략 개요 비교

 

미국

일본

EU

중국

한국

전략명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위한 일본의 노력

인도-태평양 지역협력 전략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신남방정책 → 한국형 인태전략

중점 분야

경제번영
굿거버넌스
평화안보
인적자본
파트너십

해양안보
경제질서
연계성
거버넌스

번영
환경(녹색)
해양
디지털
연계성
안보/국방
인간안보

인프라
경제통합

인적교류
경제협력
안보협력

기본 가치

자유
민주주의
법치
인권
투명성 등

자유
민주주의
법치
인권 등

민주주의
법치
인권 등

해당 없음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평화(Peace)

전략 추진 방식

소다자협력
양자협력

소다자협력
양자협력

소다자협력
EU 내 협력
양자협력

양자협력
(일부) 다자기구협력

양자협력 → 소다자협력

 

출처: 송지선 2022; 일부 추가 보완함.

 

한국의 경우, 문재인 정부 당시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 경제 보복을 피하기 위하여 아세안과 인도를 새로운 경제협력의 파트너로 상정하고,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 동남아시아 순방 때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에서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평화(Peace)”의 3P 원칙을 천명하여 한국의 ODA 정책과 공공외교가 신남방정책을 동원 및 지원하는 체제를 구축하였다. 신남방정책의 3P는 미일의 인태전략에 배태된 가치외교의 원칙들과 어렵지 않게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으며, 이미 2020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인태지역 — 특히, 아세안 지역 — 경제 번영의 제고, 인적 자본 투자와 굿 거버넌스의 주류화, 평화안보 보장 등 방대한 이슈 영역을 포괄하는 한미협력의 규범 기반 토대를 마련하였다. 윤석열 정부가 전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승계하지 않고 쿼드 가입 등 소다자협력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향을 선택하면서, 한미 간에 이미 동의한 규범 기반의 요소들이 한일 간 공동의 가치와 규범 설정 과정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게 되었다. 거시적인 수준에서 가치외교에 기반한 한일협력의 철학적 토대를 구축하는 일과, 윤석열 정부가 신남방정책에서 어떤 방향으로 선회하여 인태지역에서 새롭게 한국의 전략적 위치 설정을 할 것인가에 모든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2. 중국의 개발원조와 차별화된 한일의 인프라 개발협력

 

인태전략으로서 인프라 및 개발협력의 전략적 가치는 국제개발에 내재된 규범적 특징과 이와 관련된 개발협력의 비정치성과 보편적 가치 실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보편적인 글로벌 규범의 수용력이 뛰어난 개발협력도 궁극적으로 공여 주체의 이해관계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고, 현실주의적 도구로서 공여국의 전략자산으로 동원될 공산이 크다. 미국과 일본은 자국의 인태전략을 추진하기 위하여 개발협력을 적극 활용할 의사를 명확하게 보임과 동시에, 미일 간의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대한 합의가 중국의 공세적인 일대일로와 차별화된 인프라 개발협력의 이니셔티브 대응으로 수렴되고 있다(송지선 2022). 쿼드의 역할 가운데 인프라 개발협력과 인도적 지원과 기술협력 등이 강조되고 있으며, 2021년 영국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서 주창된 B3W 이니셔티브도 대규모의 인프라 개발협력 재원을 동원하여 중국 방식의 개발원조와 개도국의 부채 문제를 견제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의 방향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미국과 일본, EU, 그리고 쿼드 참여국들이 중국 일대일로에 대응하는 각 국가의 인프라 이니셔티브를 상호 정책 조정을 통해 완벽하게 조율된 공동의 목표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느슨한 형태의 합의와 보편적 원칙이 공유된 미 · 일 · EU의 인태전략은 정치하게 제도화된 하나의 인프라 이니셔티브를 생산하지는 못하는 한편, 원칙과 방향성이 유사하게 공유될 수 있는 유사입장국가들이 중국 견제 및 대응책으로 미 · 일 · EU의 인태전략에 합류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한일의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도 쿼드 등 주요 국가의 인태전략에서 공통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중국 변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중국 변수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해법일 수 있다. 한일의 인프라 이니셔티브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중국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고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한일의 유상원조 인프라 사업을 발굴하는 노력도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미일 및 EU의 인태지역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의 공통점인 중국 일대일로 공동 대응, 그리고 개도국에게 일대일로와 차별화된 인프라 프로젝트 제공을 한일의 인프라 개발협력도 보유하고 있다는 특징을 강조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의 일대일로 및 개발원조는 많은 남반구 파트너 국가들에게 국가부도 내지 부채의 함정에 빠지게 하는 치명적인 경제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Lagerkvist 2013; Brautigam 2009). [그림 1]이 보여 주듯 중국의 BRI 원조는 2013년부터 고위험국가로 분류된 수원국에게 계속해서 투입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중국이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진행한 파키스탄과 스리랑카가 최근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공식적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한 바 있다.

 

[그림 1] 고위험국가에 투입된 중국 BRI 원조 규모, 2013-2020 (10억 달러)

출처: RWR Advisory Group 2021

 

3. 국제개발의 글로벌 규범에 조응하는 포괄적 접근

 

인태지역에서 인프라 개발협력의 전략적 가치는 인프라 사업의 유연한 연계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인프라 프로젝트의 성격상 단일한 섹터에 국한되지 않고 인프라 시설 구축에 필요한 다양한 섹터가 연계되어 있어 건설, 포장, 인력시장, 역량 강화 등의 섹터별 재원과 인력이 포괄적으로 동원되는 효과가 있다. 또한, 경제 번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프라 건설은 차후 인프라 시설에서 파급되는 사회 개발의 임팩트가 창출되며, 환경과 보건 이슈 영역과도 관계성을 띠게 되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 등 굿 거버넌스까지 연계되는 포괄적 특징을 보여 준다(이재연 · 이주헌 · 김유철 2021). 이러한 인프라 개발협력의 포괄성은 최근 국제개발 관련 글로벌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는 유엔의 “통합적 접근”(integrated approach)과 직결되는 경향이 강하다(United Nations 2020).

 

개발협력 분야의 통합적 접근은 개발 프로젝트 기획과 이행에서 단순히 경제적 또는 기술적 부분만 강조하는 단편적인 접근법에서 벗어나 개발효과성과 책무성을 보장하기 위해 변화이론에 기반하여 개발 사업의 각 구성요소 간 관계를 파악하고 요소 간의 총체적 관리를 시도하는 접근법이다(박수영 · 윤유리 · 안미선 2021).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2015년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하면서 다시 국제사회에 글로벌 개발 원칙으로 공유되고 있으며, 통합적 접근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도주의-개발-평화”(Humanitarian-Development-Peace: HDP) 연계 방안이 시도되고 있다(Nguya and Siddiqui 2020). HDP 연계는 분쟁 이후 평화구축을 위해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개발사업이 동시에 투입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많은 원조 기관들이 이용하고 있는 통합적 접근법이다. 또한, 개발협력의 통합적 접근은 재원을 마련할 때 정부 예산인 ODA에 국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민간 재원을 동원한다는 측면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인프라 개발협력은 대규모의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민간 기업이 재원 제공과 더불어 사업의 주요한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게 된다. 미국과 EU는 민간 재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개발금융기관(Development Finance Institution: DFI)을 설치하고 민간 기업과의 협업을 제도화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과 일본은 아직 DFI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 한일 간 인프라 개발협력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데 어려운 현안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일본의 일본국제협력단(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JICA)과 한국의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은 공통적으로 개발협력의 통합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으며, 한국의 신남방정책도 경제협력과 개발협력이 같이 연동되어 통합적으로 관리되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손혁상 · 최정호 2008).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 인태전략으로서 한일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는 국제개발의 주요 원칙으로 부상하고 있는 통합적 접근을 준용하게 될 것이며, 이를 위해 한일은 민간 재원 활용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수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Ⅲ. 인태전략에서의 한일 협력을 위한 인프라 개발협력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EU가 개발협력 정책에 관하여 명시적인 원칙 내지 방향성을 구체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태전략에 대하여 인도적 지원에서 인프라 사업까지 개발협력의 중요성은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쿼드의 기능 중 하나로 개발협력과 인프라 사업을 강조하면서 인태지역의 역내 전략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다른 협력 파트너들의 전략과의 상호 접점을 찾아 가는 과정에 있다(송지선 2022). 인태전략에서 한일협력을 위한 인프라 개발협력은 먼저 일본의 현재 인프라 개발협력 전략을 이해하고, 한국의 신남방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재편성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과 함께 한일이 인프라 협력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요소에 관해 분석한다.

 

1. 일본의 “양질의 인프라를 위한 확장적 파트너십”과 FOIP 전략

 

일본의 아베 내각은 2016년 5월 이른바 “양질의 인프라를 위한 확장적 파트너십”(Expanded Partnership for Quality Infrastructure, 이하 확장적 파트너십)’ 이니셔티브를 선언하였고, 같은 해에 일본 이세시마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와 맞물려 이 파트너십을 토대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글로벌 인프라 사업에 약 2천억 달러의 재원 지원을 약속하였다(송지선 2022: 16). 본 확장적 파트너십 이니셔티브는 2015년 “양질의 인프라를 위한 파트너십”(Partnership for Quality Infrastructure) 이니셔티브를 확대 · 재생산한 버전으로 협력 대상 지역을 아시아에서 전 세계로 확장하고, 인프라의 범위를 천연자원과 에너지 등을 포함하여 확대하며, 시행기관을 다각화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는 다분히 중국이 일대일로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글로벌 남반구에 인프라 투자를 추진하는 전략에 대응하기 위하여 일본이 적극적으로 기획한 인태전략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2021년 3월에 발표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위한 일본의 노력』(Japan’s Efforts for a “Free and Open Indo-Pacific”)의 전략문서에 따르면 일본의 FOIP 전략 중 하나로 인프라 개발프로젝트에서 다양한 파트너 국가들과 ‘확장적 파트너십’을 구축해 오고 있는데, 파트너 국가에는 영국 · 프랑스 · 독일 · 이탈리아 · 네덜란드 · EU 등의 유럽 국가들과 미국 · 호주 · 인도와 구성한 쿼드, 미국 · 인도 · 뉴질랜드와의 양자협력, 메콩 유역 국가들을 포함한 아세안 파트너 국가, 그리고 TICAD를 통해 인프라 협력이 진행되는 아프리카 파트너 국가들이 포함된다(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2023). 확장적 파트너십에는 아직 한국이 포함되지 않은 한편,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일본의 인태전략에 인프라 파트너로 상정되어 있다. 또한 본 전략문서는 역내 해양질서, 경제협력, 거버넌스, 연계성 등에 기여할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 일본 인태전략의 3대 핵심 축으로 (1) 법치 · 자유무역 · 항행의 자유, (2) 경제 번영, (3) 평화와 안정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아직 FOIP 차원에서 인프라 등 협력 관계를 추진하고 있지 않지만, 2021년 전략문서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태전략의 비전을 공유하는 어떤 국가와도 협력할 의지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어 민주주의와 법치 등 중요한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인프라 개발협력 사업을 앞으로 구상해 볼 가능성이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 개발협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 초기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실익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류라는 점에서 볼 때, 일본의 인프라 개발협력은 아시아 국가 및 경제성장률이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강하다(Riddell 2007; Lancaster 2007; Browne 1990; 김석수 2016). 아세안 지역과는 메콩 유역 접경 국가들에 인프라 지원과 연계하여 협력 및 지원을 이어 오고 있으며, 인도와는 장기간에 걸친 다양한 협력 사업 외에도 미국 등과의 해당 지역의 경제안보적 특성을 반영한 단일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윤유리 2018). 인도의 경우는 2017년 아베 총리가 인도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 후 인도 최초의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약 1조 9,480억 원의 차관을 50년 만기 연 0.1% 금리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프라 협력 사업을 약속하는 등, 일본 정부는 인프라 사업을 이용하여 인도와의 협력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오화석 2020). 이렇듯 일본은 경제적 실익이 보장될 때 한국과의 인프라 개발협력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고, 한국의 ODA 성향도 경제협력 중심의 유상원조 기조가 강하기 때문에 상호 연계를 통해 쿼드 내 소다자협력 틀에서 한일 인프라 개발협력 프로젝트를 모색할 수 있다.

 

2.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새로운 한국형 인프라 인태전략

 

지금까지 한국의 인태지역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으로 수렴될 것이다. 쿼드에 입성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는 중국 변수에 현실적인 대응을 위하여 아세안과 인도에 초점을 맞추어 신남방정책을 진행해 왔지만, 신정부가 출범함으로써 신남방정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고 있다(이재현 2022). 윤석열 정부는 2022년 12월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고, 보편적 가치의 수호 및 증진을 대외 전략의 핵심으로 내걸었다(외교부 2022). 이어 2023년 3월에는 쿼드 실무그룹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한국형 인태전략에 기반한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는 2020년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에서 한미 간에 합의된 미국의 인태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의 협력 방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한미 협력 방안을 토대로 앞으로 일본과의 인프라 개발협력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2020년 한미 간 인프라 협력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고 이를 기초로 윤석열 정부의 대일 협력 방안도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인태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 간의 협력방안 중 인프라 개발협력에 관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U.S. Department of State 2021). 첫째, 미국의 인태전략과 한국 신남방정책의 3P와의 연계성을 강조하고 있고, 이 중 인프라 협력은 경제 번영(Prosperity)의 한 축으로 포함되어 있다. 인태지역의 경제 번영을 위하여 (1) 인프라, 에너지, 디지털 경제, 스마트시티, 그리고 천연자원 관리를 위한 한미협력 제고(Prosperity), (2) 굿 거버넌스를 주류화하기 위하여 인력 개발, 반부패 프로그램, 여성 권리 증진을 위한 인간자본 투자, 보건 · 기후변화 이니셔티브 등을 위한 한미협력 강화(People), 그리고 (3) 초국경 범죄와 마약 거래 근절을 위한 역량 강화 및 사이버 안보, 해양안보, 해양환경 보호, 재난 대응 등을 강화하기 위한 한미 간 평화 · 안보 역량 증진(Peace) 등 신남방정책의 3P가 적절하게 미국의 인태전략과 조율이 되었다.[1] 둘째, 개발협력 분야에서는 2019년 9월 한국 외교부와 USAID 간에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 MOU)와 상호 정책 협력에 관한 협의가 체결되었고, USAID와 KOICA는 개발사업 수준에서 코로나19 대응, 젠더 불평등 문제, 정보통신기술, 청소년 교육 섹터에 관하여 공동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셋째, 인프라 지원의 경우, 2019년 10월 한국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가 체결한 양해각서에 의거하여 시장 중심, 그리고 민간부문 투자를 지원하는 양자협력을 증진하기로 합의하였다. 2020년 2월 서울에서 제1차 한미 인프라재정작업반(Korea-U.S. Infrastructure Finance Working Group) 회의와 민간부문 라운드테이블 회의(Private Sector Roundtable Meeting)가 개최되었다.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U.S. International Development Finance Corporation: DFC)와 한국수출입은행 간에 인태지역에 공동 재원 조달 가능성을 정기적으로 타진하고 메콩 유역 인프라 투자를 촉진하기로 협의하였다. 또한, 한국 정부와 미국 국무부는 양질의 인프라를 위한 이른바 “청점연결망”(Blue Dot Network: BDN)에 관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교환하기로 하였다.

 

바이든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 간에 협의한 인프라 부문에서 미국의 인태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의 협력관계는 중국 변수로 인해 공식적으로 한국이 미국 주도의 쿼드에 참여하지는 않는다고 밝혔지만 실질적으로 내용 면에서는 미국과 협력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신속한 결단인 한국의 쿼드와 IPEF 참여가 기존 문재인 정부의 한미협력 수준에 비해 보다 적극적이고 긴밀한 수준으로 향상될 것은 사실이겠지만, 인프라 개발협력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존 방식과 큰 차별성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따라서 2019년부터 진행되어 온 한미 인프라 및 개발협력 성과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며, 분석 결과를 토대로 윤석열 정부의 쿼드 중심 인프라 개발협력에 대한 체계적인, 그리고 통합적인 접근이 기획되어야 한다. 기존의 양자협력 방식을 취한 한미 인프라 개발협력은 앞으로 쿼드와 IPEF라는 소다자협력체 안에서 다양한 참여국들과 인프라 협력이 가능해지며, 우선 협력 대상국으로 일본에 집중하고 차후 한일협력을 기반으로 한미일 삼자협력이 소다자협력 내부에서 강화될 수 있다.

 

3. 한일 인프라 개념과 인프라 개발 기제의 조율

 

한일 간의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가 인태지역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개념적 그리고 경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첫째, 한국과 일본이 인프라의 개념과 범위를 어떻게 책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우선되어야 한다. 일본의 2016년 확장적 파트너십에 따르면, 일본은 인프라의 개념을 연성적 인프라부터 경성적 인프라까지 포괄적으로 적용하고 있어서 대단히 광범위한 인프라 범주를 다루고 있다(송지선 2022, 16). 즉, 천연자원 · 에너지 · 석유 · 가스 등의 자원 개발에서 통신 · 방송 · 우정사업 등의 정보미디어 사업, 병원 · 도시개발 등의 공공서비스 사업, 그리고 도로 · 항만 · 철도 등의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이르기까지 일본 인태전략의 인프라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게 포진되어 있다. 일본의 인프라 개념이 확장적인 만큼 전통적으로 일본의 인프라 사업은 중상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양허성 차관인 유상원조의 비율이 일본 ODA 전체의 60%를 차지하기 때문에 인프라 개발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인프라 사업의 전문성도 높다는 평가이다([그림 2] 참조). 한편, 한국의 경우 물리적 인프라(디지털, 에너지, 교통 등)와 인적 연계성(교육, 보건 등), 그리고 거버넌스(행정 역량) 등으로 인프라의 개념을 구분할 수 있다. 유상원조의 범주에 해당되는 물리적 인프라는 기획재정부와 수출입은행의 EDCF가 주로 담당하고, 인적 연계성과 거버넌스 관련 인프라는 무상원조를 담당하는 외교부와 한국국제협력단이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한일 간의 구체적인 인프라 개념과 범위는 상이할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유상과 무상의 구분이 상대적으로 명확한 두 국가는 인프라 개념의 미시적 구분에 맞게 상호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인프라 개발협력 프로젝트를 이행하기 위한 재원 조달 방식의 다양화와 민간화가 한일 간의 인프라 개발협력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인프라 중 경성적 · 물리적 인프라 프로젝트는 고비용의 사업이기 때문에 기존의 전통적인 공적개발원조만으로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ODA 이외의 민간 재원 활용이 관건이고, 이를 원활히 동원하기 위해서 ODA가 촉매제 역할을 하는 이른바 ‘혼합금융’(blended finance) 방식이 국제사회에서 권장되고 있다. 많은 선진 공여국들은 국제개발 분야에서 민간 부문을 활성화하고 민간 재원을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DFI를 제도화하고 있다. 일본은 일본국제협력은행(Japan Bank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JBIC)을 현재 DFI와 유사한 기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미국은 DFC가 공식적인 DFI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오수현 2019). 반면 한국은 아직까지 DFI를 출범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여서 임시적으로 한국수출입은행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2020년 미국 DFC와의 인태지역 공공 재원 조달 회의 파트너로 한국수출입은행이 대신 참여한 바 있다. 앞으로 정부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과제는 일본, 미국과의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를 도모하기 위해서 한국의 DFI를 출범시키고 이 개발금융기관에 민간 재원을 동원할 수 있는 제도적 권한을 부여하는 노력이다. 고비용의 인프라 사업을 지원하는 민간 재원이 마련되어야 자연스럽게 민간 부문이 개발 파트너가 되어 한일의 인프라 프로젝트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2] OECD DAC 주요 회원국의 무상원조/유상원조 배분 비율 비교 (2018년 기준)

출처: OECD 2019

 

셋째, 한국과 일본의 개발원조 추진 구조를 보면, 두 국가가 인태지역의 국가들 중 가장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를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는 파트너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과 일본의 ODA 구성을 유상원조와 무상원조로 양분하면 여타 OECD DAC 회원국들보다 월등히 유상원조 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전체 ODA 중 약 60%를, 한국은 약 40%를 유상원조로 배분하고 있고, 이는 2018년 기준 DAC 회원국 중 1위와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일 모두 유상원조 비율이 DAC 회원국 평균보다 높게 나온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와 국제사회로부터 정부 주도의 상업주의적 개발원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편, 양국이 공히 유상원조 비율이 높게 책정되었다는 특징은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에 적합한 개발원조 방식이 이미 제도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정민승 2019). 무상원조 비율이 100%에 육박하는 미국의 경우 DFI를 동원하지 않는 한 ODA 재원으로만 한미 또는 미일 간의 인프라 협력 방안을 추진한다면 실제로 개발효과성을 동반한 성과물로 귀결되기에는 재원 구조가 너무 이질적이라서 양국 간의 화학적 결합이 어려울 수 있다. 또한, ODA 추진 체계도 한일이 상당히 유사한 구조로 편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국의 현재 추진 체계가 2008년 이전의 일본의 체계와 대단히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본은 1999년 유상원조를 전담하는 JBIC을 설립하였다가 2008년 유상원조와 무상원조를 통합한 ‘신일본국제협력기구(New JICA)’를 출범하여 분절화 문제에 대응하였으나 다시 이전 방식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김태균 2010). 한국은 현재 유상원조와 무상원조 전담 기구가 분리되어 있고 2008년 이전 일본처럼 ODA 추진 체계의 분절화 이슈가 현안으로 거론되어 왔다. 양국 모두 분절화 문제를 경험하였고 유상원조를 전담하는 기구 간의 유사성이 강하기 때문에 인프라 사업에 대한 전문성과 독자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간의 인프라 협력은 인태지역의 어느 국가들보다 강한 연대와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인태지역 소다자협력 플랫폼에서 한일협력의 시작점으로 인프라 개발협력이 적극적으로 시도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일 간의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는 양 국가의 비교우위 인프라 사업을 적절하게 연계하는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 인프라 사업을 위한 유사한 추진 체계와 재원 구조를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재원 규모와 비교우위 사업이 상이하기 때문에 상호 보완이 될 수 있도록 한일 간의 대화 채널이 상시화되고 이를 통해 최적의 인프라 협력 방식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예로서, 한국이 인적 연계성 인프라 사업을 제공하고 일본이 경성적 인프라 부분을 맡아서 한일협력 사업을 추진하면서 점차 서로의 역할 전환을 통해 최적의 방식을 찾기 위한 실험을 해 볼 수 있다. 한일 간의 정책 조율은 직접적인 양자협력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지만, 쿼드 등 인태지역 소다자협력체 내에서 한일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미국, 호주, 인도 등 다른 참여국과 바로 연계될 수 있는 확장성을 확보할 수 있고, 중국의 직접적인 견제를 회피할 수 있는 중요한 방어막으로 소다자협력을 활용할 수 있다.

 

Ⅳ. 한일 인프라 개발협력의 소다자주의: 쿼드, B3W, PGII

 

현실적으로 한국과 일본 간의 새로운 협력 관계를 도모하는 방식은 인프라 개발협력이라는 연성적 이슈 영역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제하에, 인태지역에서 한일의 인프라 개발협력은 역내 협력국 또는 소다자주의에 입각한 협력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국 · 일본 · EU 등은 공통적으로 인태전략 이행을 위하여 역내 협력국, 자체 인태지역에 대한 전략을 수립한 국가, 그리고 소다자협력 및 유관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임을 명시한 바, 일본의 인프라 개발협력도 이러한 체계를 통해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송지선 2022, 8). 한국은 아직 본격적으로 인태지역의 소다자협력체에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쿼드와 IPEF 참여 결정으로 조만간 인태지역 협력국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일 간에 당장 양자협력 추진이 시기상조이거나 양자협력이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견인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면, 윤석열 정부가 쿼드 등 소다자협력체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일본과의 긴밀한 소통과 함께 한일협력의 시범 사업으로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를 소다자주의 내에서 통용되는 규범과 원칙을 준수하면서 추진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이 인태지역에서 인프라 개발협력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소다자주의로는 쿼드와 B3W/PGII가 대표적이며, 이 두 소다자협력체 내에서 인프라 협력이 이루어질 때 미국과 자동적으로 연계되어 삼자협력으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그림 3] 참조).

 

[그림 3] 한미일 인프라 이니셔티브 관계 구조

출처: 저자 작성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공격적인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대항하기 위한 인태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확산되고 있으며, 쿼드 가입에 소극적이었던 한국도 보수적인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이양되면서 미국 · 일본의 인태전략 중 핵심인 쿼드 가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중국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등 첨단 반도체 산업을 보유한 한국을 미일이 주도하는 경제안보의 소다자주의 틀로 유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전략이며, FOIP을 완성하기 위해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보조를 맞추고 중견국으로서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인 한국과 공조를 인태전략 내에서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미일의 공통 인식일 것이다. 미국의 인태전략 중 하나인 쿼드와 B3W/PGII에 한국 참여가 중요한 이유는 소다자주의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글로벌 안보와 경제의 규범 정립과 협력에 기여하는 데 한국의 동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게는 소다자협력의 참여로 인프라 투자, 공동 프로젝트 참여, 그리고 역내 주요국과 협력하여 디지털 및 신기술 이슈에 대한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통해 인태지역 시장에 진출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그널이 있다. 한미 간 인태지역에서의 협력 관계는 이미 신남방정책부터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앞으로의 숙제는 한일협력을 어떤 방식으로 인태전략하에 포함시킬 것인가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미일 삼국 모두 공히 인태지역에서 한일협력이 필요하며, 삼국의 인프라 개발협력에 관한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교집합 지점에 쿼드와 B3W/PGII라는 소다자협력체가 인프라 협력의 플랫폼으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1. 쿼드의 인프라 개발협력

 

쿼드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4개국으로 구성된 인태지역의 소다자협력체로 출발하여, 각 참여국의 인태전략 중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4자 안보대화 채널이다. 이러한 쿼드는 2007년부터 4개국이 정기적으로 정상회의를 통해 정보 교환 및 회원국 간 군사훈련에 의해 유지되었던 전략 대화가 인태지역의 소다자협력체로 발전한 것으로 현재 안보 이슈뿐만 아니라 코로나19와 관련된 인도적 지원과 인프라 개발협력까지 활동 영역이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 따라서 인태지역에서 미일의 인프라 개발협력에 관한 인태전략은 소다자협력을 통해 자국의 수원국들과 협력 관계를 안정화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으며, 여기에는 다분히 중국의 공세적인 원조와 차별화하려는 전략이 담겨 있다. 미국과 일본은 쿼드를 통해 역내 인프라 지원 품질을 고도화하고, BDN을 통해 양질의 인프라 지원을 추진하여 왔다. 2021년 9월 쿼드 4개국은 ‘신(新) 쿼드 인프라 파트너십 구축’을 선언하여 인프라 지원 조정, 역내 인프라 수요 파악, 상호 협력을 토대로 한 기술원조 제공, G7 · G20 · EU 등 기타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ies)과의 협력, 지속가능한 높은 수준의 인프라 지원, BDN과 지속적 연계라는 원칙에 합의하였다(송지선 2022, 20). 특히, BDN은 2019년 11월 미국이 출범시킨 다중이해관계자(multi-stakeholder) 이니셔티브로서 재정 투명성, 환경적 지속가능성, 경제 발전 영향 측정에 대한 전 세계 기반시설 개발 프로젝트의 평가 및 인증을 제공하기 위하여 쿼드 4개국이 결성한 해외 투자 민간자본 플랫폼 역할을 하기 때문에 쿼드의 인프라 프로젝트와 연동되어 민관 협력을 촉진하고 있다.

 

그러나 쿼드 참여국이 독자적으로 인프라 이니셔티브를 수립하고 유사입장국들의 협력관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인프라 공여국 간의 조정 기능이 핵심 이슈로 부상하였다. 미국은 2021년 9월 쿼드 인프라 조정그룹(Quad Infrastructure Coordination Group)을 개시하는 등 역내 인프라 사업 조정 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나, 쿼드 인프라 조정그룹에 참여하는 국가의 수가 제한적이고, EU를 비롯하여 프랑스, 독일 등 독자적인 역내 인프라 협력 전략을 수립한 공여국들이 쿼드 인프라 조정그룹에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공여국 간 정책 조정 이슈가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5년 파리선언 5원칙 중 하나인 공여국 정책 간의 조화(harmonization) 원칙에 어긋나는 현상이 인태지역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쿼드의 핵심 참여국인 인도가 중국, 러시아 등과 애매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미국의 리더십에 반하는 행동이 목격되고 있으며, 이러한 갈등의 요소는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지 않는 인도 모디 총리로 인하여 더욱 증폭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쿼드를 통한 소다자협력을 중심으로 ‘양질의 인프라’(quality infrastructure) 원칙을 글로벌 규범으로 표준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쿼드 안에서 일본과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미일이 추구한 양질의 인프라 원칙을 준수하고 이를 선도할 수 있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2016년 G7 이세시마 인프라 투자원칙, 2017년 APEC 정상회의 선언문, 그리고 2019년 G20 양질의 인프라 투자 원칙 등의 글로벌 합의를 지속적으로 도출함으로써 고도의 인프라 지원의 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중국의 인프라 정책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송지선 2022, 19). 이러한 노력에 부응하기 위해서 한국 정부는 DFI 신설과 인프라 프로젝트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한일협력의 기초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2. B3W/PGII의 인프라 개발협력

 

2021년 6월 영국 콘월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겨냥하여 G7 회원국들과 함께 글로벌 남반구 중 중저소득국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글로벌 인프라 계획인 B3W 추진에 합의하였다. 한국도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와 함께 미국의 초청을 받아 G7 정상회의에 참여하였고, 기본적으로 G7이 합의한 B3W 이니셔티브에 동참 의사를 밝혔다. B3W 이니셔티브의 주요 목표로 가치에 기반한(value-driven), 높은 기준의(high-standard), 투명한(transparent) 인프라 지원을 선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인프라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도국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인프라 프로젝트를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글로벌 규범과 원칙으로 제도화하겠다는 현실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The White House 2021). 2022년 독일 G7 정상회의는 B3W 이니셔티브를 토대로 글로벌 인프라 · 투자 파트너십(PGII)을 합의하여 G7 중심의 인프라 사업지원 규모가 더욱 확대되고 글로벌 남반구에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였다.

 

B3W/PGII는 인태지역을 넘어서 글로벌 수준에서 합의를 이끌어 내었다는 점에서 지역 수준의 소다자주의가 아닌 글로벌 차원의 대중국 인프라 소다자협력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B3W/PGII는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지역부터 아프리카, 그리고 인태지역까지 글로벌 차원을 포괄하고 있으며, G7 파트너 국가들이 지역별로 주축국 역할을 하여 글로벌 남반구에 포진한 중저소득국 전체를 관장하게 된다. 이를 위한 거버넌스 원칙으로서 바이든 행정부는 다른 G7 회원국과 함께 6개의 기준을 마련하였다. 6개의 기준은 (1) 가치기반(value-driven), (2) 굿 거버넌스와 강력한 기준(good governance and strong standards), (3) 기후친화적(climate-friendly), (4) 강력한 전략적 파트너십(strong strategic partnerships), (5) 개발금융을 통한 민간 자본 동원(mobilize private capital through development finance), (6) 다자공공재원의 영향력 제고(enhancing the impact of multilateral public finance) 등이다. G7 회원국은 B3W/PGII를 통해 개도국의 약 40조 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수요에 부응하겠다고 밝히고, 향후 수천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하였다. G7 회원국은 중국 일대일로의 약 10배에 해당하는 지원 규모를 제시함으로써 중국 견제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미국은 B3W/PGII 추진을 위해 민간 재원을 조성하고 DFI와 다자개발은행으로부터 투자를 촉진하는 등 양자 및 다자 채널을 이용하여 수십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설명하였다(The White House 2021).

 

B3W/PGII는 중국이 표방하는 인프라 개발협력의 규칙과 표준을 변경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 글로벌 규범과 원칙을 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3W/PGII가 약속한 거대한 개발 재원의 규모를 과연 미국과 G7 회원국, 그리고 유사입장국들이 계획대로 제공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40조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계획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고 인태지역보다 B3W/PGII 참여국 간의 제도적 장치가 느슨하게 조직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이 B3W/PGII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G7이 표방한 가치 기반, 높은 표준, 그리고 투명한 인프라 개발협력 원칙을 준수하도록 한국 유상원조의 질을 제고하여야 하고, 무엇보다 한국형 DFI를 조직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또한, 인태지역에서 쿼드를 통한 일본과의 협업을 추진하는 동시에 글로벌 수준에서 B3W/PGII라는 소다자협력체 내부에서도 일본과의 인프라 협력의 가능성을 타진해야 할 것이다.

 

Ⅴ. 맺으며: 한일협력의 시발점으로서 인프라 개발협력의 포괄적 전략화

 

인태지역,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정치 지형 변화를 통해 국내외 변수가 한국에 새로운 정치적 기회 공간을 열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새로운 인태전략을 통해 최소한의 한일관계가 복원될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한일관계의 복원력은 인프라와 인도적 지원 중심의 개발협력에서 시작될 수 있으며, 이른바 ‘하위정치’(low politics)의 인프라 개발협력을 통해 한일관계가 ‘상위정치’(high politics)까지 복원될 수 있는 가능성도 타진해 볼 수 있다. 한일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는 한국과 일본 간의 양자협력으로도 구상될 수 있으나, 인태지역의 소다자협력체인 쿼드와 글로벌 플랫폼인 B3W/PGII를 통해 일본과의 인프라 협력이 추진되는 구상을 강구할 때이다. 일본과의 협력은 한국에게 한미일 삼각협력이 자동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동시에, 한일협력을 매개로 한 인태지역의 광범위한 역내 시장으로 중국의 경제적 압박에 대응할 수 있다. 또한, 한일 인프라 협력이 성공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중국과의 인프라 협력의 가능성도 타진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명시적인 배제보다는 상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결국 인태지역에서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 지역에서 통용되는 공식적인 개발협력의 규범과 원칙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 위주의 개발 표준으로 대체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 경쟁의 일환이다.

 

한일협력의 시발점으로 인프라 개발협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전략은 포괄적 접근이다. 국제개발 분야에서 최근 각광받고 있으며 유엔에서 주류화되고 있는 ‘통합적 접근’이 한일 인프라 개발협력을 위한 포괄적 전략의 근간이 될 수 있다. 인프라의 확장성을 기반으로 사회간접자본 시설 프로젝트에서 인력 자본과 기후환경까지 연계되는 통합적 사고가 한일협력의 복원과정에서 반영되어야 할 요소이다. 통합적 접근 인프라 프로젝트가 포괄하는 섹터 간의 수평적 확장성뿐만 아니라, 한국이 일본과 협력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인 소다자협력체 간의 수직적 확장성도 포함한다. 즉, 소다자주의 간의 인터페이스를 줄임으로써 서로 다르게 설계된 인프라 프로젝트 간에 정책 조정이 가능하고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글로벌 수준에서 기획된 B3W/PGII 인프라 사업이 인태지역에서 기획된 쿼드 중심의 인프라 사업과 상이하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계되고 재원과 인력이 서로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B3W/PGII와 쿼드 내에서 일본과 인프라 협력을 강구할 때 수직적 확장성을 고려한 전략적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술적으로는 일본의 JBIC과 인프라 개발을 논의할 수 있는 한국의 DFI 설립이 시급하다는 당면 과제가 있다. 일본과 미국이 적극적으로 한국과 인태지역에서 인프라 사업을 구상할 때, 민간 재원의 확보와 재원 동원을 논의하고 조정할 수 있는 한국 측 파트너 기관이 필요하게 되는데 아직까지 이를 한국수출입은행이 대신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게 전략적 손해를 낳게 할 공산이 크다. 또한, 일본과 유상원조 중심의 인프라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갈 가능성 크다는 점에서 한국이 지금까지 경험한 유상원조 프로젝트의 내용과 시스템을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과 일본은 지속적으로 양질의 인프라 역량 강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이러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단순히 민주주의와 법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라는 자격은 일본에게 크게 매력적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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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과 미국은 2020년 8월 한미 신남방정책-인태전략 대화(ROK-U.S. New Southern Policy-Indo-Pacific Strategy Dialogue) 채널을 구축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비대면으로 실무진 협의를 통해, 한미 공동으로 법집행(law enforcement), 사이버 안보, 그리고 태평양 도서국 협력을 강화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2020년 말에 아세안과 메콩 지역에 인프라 투자에 대한 추가적인 협의가 가동되었다.

 


 

저자: 김태균_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와 미국 존스홉킨스 고등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개발학, 평화학, 국제정치사회학, 글로벌 거버넌스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The Korean State and Social Policy: How South Korea Lifted Itself from Poverty and Dictatorship to Affluence and Democracy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대항적 공존: 글로벌 책무성의 아시아적 재생산》(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한국비판국제개발론: 국제개발의 발전적 성찰》(박영사, 2019)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2277-1683 (ext. 204) hspark@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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