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한일관계 악화 원인으로 자주 거론되는 역사 및 영토 문제는 표면적인 문제이며,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요인은 경제적 연결 약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고, 한일 경제협력 강화를 통한 관계 개선방안을 모색합니다. 저자는 한일 간 소득 격차 감소, 공급망 연계 약화, 자유무역협정 부재가 겹치면서 양국의 경제적 밀접성이 약화되었다고 분석하고, 아시아 개도국 공동 지원, 저출산 고령화 대응 정책 개발 및 회의체 창설, 북한경제개발 한미일 협력체 등 다방면의 경제협력을 통해 양국관계의 상승 잠재력을 높일 것을 제안합니다.

Ⅰ. 서론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가 악화된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흔히 한일관계의 악화 원인으로서 위안부나 징용공 등의 역사 문제, 독도 소유권에 관한 문제, 그리고 이를 국내 정치에 활용했던 정치인의 문제 등이 주로 거론된다. 즉 갈등의 소재인 역사나 영토 문제를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였기 때문에 한일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한일관계 악화의 이유를 부분적으로만 다루고 있다. 만약 한일관계 악화가 정치인에게 순편익이 아니라 순비용을 유발한다면 이들은 역사나 영토 문제를 이용할 동기를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일 간 경제관계가 밀접하다면 두 국가 간 분쟁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유권자의 정치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한일관계 악화의 구조적 요인은 흔히 거론되는 역사와 영토, 그리고 정치인의 문제와 별도로 존재할 수 있다.

 

이 글은 경제적 연결의 약화를 한일관계 악화의 구조적 원인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경제협력의 강화를 제시한다. 이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한국인의 일본관 추이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한일관계의 변화와 한국인의 일본관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 후 한일관계의 현 위치를 파악한다. 이어서 한일관계 악화의 이유로서 경제적 요인에 관해 분석한다. 여기에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 격차가 줄어들 뿐 아니라 경제적 연결망, 즉 공급망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분석을 기초로 이 글은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한 경제적 방안을 제시한다.

 

Ⅱ. 한국인의 일본관 추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은 2007년부터 시작된 통일의식조사에서 한국인의 주변국에 대한 인식을 설문조사하고 있다. 설문조사는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하여 실행되고 있으며 구조화된 설문지를 활용하여 1 대 1 개별 면접조사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설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항이 포함되어 있다. “다음 국가들 중 어느 나라를 가장 가깝게 느끼십니까?” “그러면 다음 국가들 중에서 어느 나라가 한반도의 평화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다음과 같이 설문한다. “다음의 국가가 우리에게 어떤 대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응답자는 네 가지 보기, 즉 “협력 대상, 경쟁 대상, 경계 대상, 적대 대상” 중 하나를 선택하여 이 설문에 응답하도록 되어 있다.

 

[그림 1]은 “다음 국가들 중 어느 나라를 가장 가깝게 느끼십니까?”라는 설문에 대한 한국인의 응답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2021년 응답자의 77.6%가 미국을 가장 가깝게 느낀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어서 각각 13.4%, 4.4%가 북한과 일본을 가장 가깝게 느낀다고 응답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를 가장 가깝게 느낀다고 응답한 비중은 4.0%와 0.6%에 그쳤다. 2007년에는 11.6%의 응답자가 일본을 가장 가깝게 느낀다고 응답함으로써 일본의 상대적 순위가 미국(53.3%)과 북한(16.0%)에 이어 세 번째였으나 2013년부터는 중국을 가장 가깝게 느낀다는 응답자의 비중이 일본을 앞서 일본은 네 번째가 되었다. 그 후 일본과 중국은 낮은 수준의 호감도에서 순위만 바뀌다가 2021년에는 다시 일본이 세 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과 2021년을 비교하면 일본의 호감도가 11.6%에서 4.4%로 크게 하락하였다.[1]

 

[그림 1] 국가별 호감도 추이 (2007-2021)

출처: 김범수 외 2022

 

이어 [그림 2]는 2007-2021년의 기간에 한반도 평화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의 인식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2021년에 한국인은 중국을 한반도 평화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는 2017년부터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고 이어 2018년과 2019년에 한국인은 중국을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인식하였다. 반면 일본을 한반도 평화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인식하는 비중은 2007년의 25.8%에서 2021년의 11.3%로 절반 이상 하락하였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실행되었던 2019년에 그 비중이 28.3%로 치솟아 중국(34.3%), 북한(30.8%)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이듬해인 2020년 18.3%로 크게 하락하여 중국(32.4%), 북한(40.8%)과 현저한 격차를 보였다.

 

[그림 2] 한반도 평화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2007-2021)

출처: 김범수 외 2022

 

국가별 순호감도(net favorability)는 [그림 1]에서 나타난 수치에서 [그림 2]의 수치를 차감함으로써 구할 수 있다. 2021년도 국가별 순호감도는 미국 73.7%, 러시아 -0.3%, 일본 -6.9%, 북한 -24.5%, 중국 -42%로 나타난다. 이를 다시 호감국가, 무관국가, 비우호국가로 나눈다면 미국은 호감국가, 러시아와 일본은 무관국가(irrelevant country), 그리고 북한과 중국은 비우호국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즉 평균적인 한국인은 일본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국가도 아니라고 인식한다. 한마디로 한국과 관계가 적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일본과 함께 무관 국가 그룹에 속한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2]

 

이상의 해석은 각 국가를 대상으로 협력 대상, 경쟁 대상, 경계 대상, 적대 대상 중 어느 대상으로 인식하는지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와 유사하다. [표 1]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미국은 협력 대상, 중국과 러시아는 경계 대상으로 보는 성향이 강하다. 일본은 경쟁 대상으로 인식하는 비중이 45.7%로서 가장 많으며 다음으로 30.2%가 경계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다른 나라와 달리 2007년과 2021년 사이 이 네 가지 비중에 큰 변화가 관찰되지 않고 있다. 이는 한일관계가 역사 문제로 인한 외교적 갈등 외에 일종의 구조적인 한계에 갇혀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반면 미국은 2007년에 비해 경계와 경쟁 대상이라고 응답한 비중이 크게 줄고 협력 대상의 응답 비중이 크게 증가하는 등 인식 변화가 큰 편이다.

 

[표 1] 국가별 협력, 경쟁, 경계, 적대 대상 인식

 

협력 대상

경쟁 대상

경계 대상

적대 대상

2007

2021

2007

2021

2007

2021

2007

2021

미국

53.2

82.7

22.0

10.5

21.9

5.9

2.9

0.9

중국

19.3

10.8

46.4

23.0

31.0

51.8

3.3

10.8

일본

14.6

12.0

46.6

45.7

30.3

30.2

8.5

12.0

러시아

22.8

15.1

40.3

32.8

32.1

45.8

4.7

6.3

 

출처: 김범수 외 2022; 2021 통일의식조사

 

[그림 3]은 하방 위험(downside risk)과 순호감도를 각각 X축, Y축으로 하고 2007년과 2021년 각국의 위치를 보여준다. 하방 위험은 개별 국가를 적대 대상, 경계 대상, 경쟁 대상, 협력 대상이라고 응답한 비중에 각각 2, 1, -1, -2를 곱한 수치이다. 그리고 순호감도는 특정 국가를 가장 가깝게 느낀다고 응답한 비중에서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나라라고 응답한 비중을 차감한 수치이다. [그림 3]에 따르면 미국은 순호감도가 높고 하방 위험은 낮은 국가다. 그리고 2007년에 비해 2021년에는 하방 위험은 크게 감소한 반면 순호감도는 크게 증가했다. 반면 중국은 2021년의 순호감도가 2007년에 비해 크게 하락하였고 하방 위험도 크게 증가했다. 한편 같은 기간 일본과 러시아의 순호감도와 하방 위험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역사 문제가 정치적으로 증폭된 것이 한일관계 악화의 주요 이유라는 가설의 설명력에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즉 이 가설은 2007년부터 2021년까지 14년의 기간 동안 연도별 부침은 설명할 수 있지만 이 기간 동안에 왜 한국인의 대일본관에 큰 변화가 없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림 3] 한국인의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 대한 인식의 변화

출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 자료를 기초로 저자 작성

 

주: 1. 순호감도는 특정 국가를 가장 가깝게 느낀다고 응답한 비중에서 그 국가를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나라라고 응답한 비중을 차감하여 구한 수치.
   
2. 하방 위험은 개별 국가를 적대 대상, 경계 대상, 경쟁 대상, 협력 대상이라고 응답한 비중에 각각 2, 1, -1, -2를 곱해서 산출.

 

Ⅲ. 한일관계 악화의 경제적 이유

 

이상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인은 일본을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로 인식하지도 않지만 우호적으로도 인식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일본을 협력 대상 혹은 적대 대상으로 이해하기보다 그 중간인 경쟁과 경계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경계 대상으로 보는 중국과 달리 일본은 경계보다는 경쟁 대상으로 인식한다. 경쟁 대상은 이겨야 할 대상인 반면 경계 대상에 대해서는 조심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즉 한일관계는 전체적으로는 상승 잠재력(upside potential)도, 하방 위험도 별로 없는 무관국가로 인식된다. 이런 구조에서 역사 문제와 이를 활용하는 정치 세력 때문에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것이다. 즉 한국과 일본의 일부 정치세력은 국민의 인식, 즉 각각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도, 잃을 것도 많지 않다는 국민 인식을 전제로 역사와 영토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일관계는 국내 정치의 활용도가 매우 높은 주제가 될 수 있다.

 

한일관계의 밀접성이 약화된 경제적 이유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한국과 일본의 일인당 소득 격차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2007년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24,000달러로서 일본의 35,000달러의 69%에 달했다. 1995년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의 29%에 불과했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한국의 추격 속도는 매우 빨랐다. 더욱이 일본의 경상 일인당 국민소득은 2020년까지 횡보한 반면 한국은 1995년의 12,500달러에서 2007년에는 24,000달러로 높아졌고, 2022년에는 35,000달러로 증가했다. 2022년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같은 해 일본보다 불과 5,000달러 적은 수치다. 따라서 한국인은 경제 발전을 위해 더 이상 일본과의 깊은 연대가 필요하지 않다고 인식한다. 오히려 일부 전자제품이나 메모리 반도체 등에서 일본보다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일관계가 악화되어도 이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일의 공급망 연계성이 약화되고 있다. 소재 · 부품 · 장비 산업은 전통적으로 한일 간의 공급망이 밀접히 연결된 산업이다. [표 2]는 한중일의 소재 · 부품 · 장비 산업에서의 생산 및 무역 파급효과를 보여준다. 이 표에 따르면 2000년에 한국의 일본에 대한 파급효과는 중국의 2배 이상이었으나 그 이후 낮아지면서 2018년에는 중국에 대한 파급효과의 절반 이하로 감소하였다. 한편 일본의 대(對)한국 파급효과는 2000년 0.007에서 2010년 0.019로 상승했지만 2018년 일본의 대중국 파급효과에 비하면 절반 정도에 머물렀다. 반면 중국의 대한국 파급효과는 2000년에 0.017으로서 일본의 절반 가량이었지만 2010년에는 0.042로서 일본을 초과했고 2018년에는 0.062로서 같은 해 중국의 대일본 파급효과인 0.049를 크게 앞질렀다. 즉 2010년부터 한국과 중국의 생산 및 무역은 더욱 밀접해지는 반면 한국의 대일본 파급효과는 절대적 혹은 중국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 결과 2018년에는 한국과 일본 모두 대중국 파급효과가 각각 대일본, 대한국 파급효과보다 컸으며 중국의 대한국 파급효과는 대일본 파급효과를 앞질렀다.

 

[표 2] 한중일의 소재 · 부품 · 장비 산업에서의 상호 파급효과

 

2000

2010

2018

 

대일본

대중국

대일본

대중국

대일본

대중국

한국

0.069

0.027

0.045

0.056

0.033

0.071

 

대한국

대중국

대한국

대중국

대한국

대중국

일본

0.007

0.014

0.013

0.024

0.019

0.037

 

대한국

대일본

대한국

대일본

대한국

대일본

중국

0.017

0.032

0.042

0.038

0.062

0.049

 

출처: 정형곤 외 2021

 

셋째, 둘째의 원인과 관계된 것으로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체결 이전에 한일 간, 혹은 한일이 동시에 속한 FTA가 없었다는 점이다. RCEP는 동남아 국가연합 회원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자유무역협정으로서 한국의 RCEP 비준은 2022년 2월 1일자로 발표되었다. 반면 한중 FTA는 2012년에 협상이 개시되어 2015년 11월에 타결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한중의 공급망이 더욱 밀접해지는 데 기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즉 RCEP 체결 이전, 한국이 다른 국가와 자유무역지대 협정을 통해 글로벌 가치사슬에서의 연결이 증가된 반면 일본과는 자유무역지대 협정이 없어 연결망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이다.

 

한일관계 악화의 경제적 이유 중 한일 사이 일인당 소득이 비슷해진 점은 정책으로써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러나 한일 간 공급망의 연결이 적어도 상대적으로 약화된 점이나 자유무역지대 협정이 없었다는 점은 정책의 부족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한일관계는 상승 잠재력도, 하방 위험도 낮은 정체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Ⅳ.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경제적 방안

 

한일관계 개선의 경제적 방안은 한일관계의 상승 잠재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사이 경제적 연결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RCEP 이외에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에 한일이 공동으로 참여하거나 포괄적 ·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에 한국이 가입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미일 무역기술협의회(Trade and Technology Council: TTC)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실제 체결되어 성과를 거두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한일관계를 단기간에 개선하는 데 기여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절에서는 보다 신속히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이며 가시적인 경제협력 방안을 제시한다.

 

1. 아시아의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위한 한일 ODA의 공동 사용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 협력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는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를 포함한 국제개발협력 분야이다. 한국은 2021년 기준 125개국을 대상으로 31억 달러 가량의 공적개발원조를 수행했다. 수혜 금액이 가장 큰 국가 10개국 중 6개국이 방글라데시,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였다. 공적개발원조를 집행한 대표적인 한국의 기관으로서는 한국수출입은행(11억 달러)과 한국국제협력단(6.4억 달러)이 있다. 현재 한국의 ODA 규모는 국민총소득 대비 0.2%를 하회하지만 2030년에는 0.3%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일본의 총 ODA 규모는 2019년 117억 달러 가량으로서 국민총소득 대비 0.22%에 달한다. 일본 외무성 백서에 따르면 ODA의 목적 중 첫 번째가 ‘질 높은 성장’을 위한 협력(cooperation aimed at achieving “quality growth”)이다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2021). 그 세부 내용으로서는 산업 인프라와 산업, 그리고 경제정책의 개발, 부채 문제에 관한 노력, 정보통신기술 및 과학, 기술, 혁신과 연구개발의 진흥을 들고 있다. 이 중에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원격의료지원이나 자연재해의 피해 경감 프로그램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이며 첨단 기술 국가이다. 한일 양국은 산업과 기술을 활용해 아시아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할 수 있다. 보다 자세히는 통신 기술이나 빅데이터가 다른 권위주의 국가나 자국 권위주의 정부에 의해 사용되지 않게 함으로써 수혜국의 민주주의를 보호할 수 있다. 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산업과 기업에 한일이 공동으로 공적개발원조와 개발금융 활동을 펼 수 있다. 이는 수혜국의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공고화에 동시에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권위주의 국가가 아시아 국가의 민주주의를 교란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이 5G 통신장비를 투자하고 일본과 한국 기업이 이동통신망에 필요한 네트워크 사업이나 모바일, 센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등을 패키지로 묶어 투자하는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인프라는 자율주행차,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 팩토리 등 신산업 발전의 기초로서 수혜국의 경제 발전뿐 아니라 한일 간 그리고 한일과 다른 아시아 경제의 연결망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일본의 ODA를 집행하는 대표적인 기구는 일본국제협력은행(Japan Bank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 JBIC)이다. 일본국제협력은행은 수출입대출, 해외투자대출, 지분투자, 보증 등의 형태로 개발을 지원하며. 2019년 3월까지 총 대출과 투자의 절반을 아시아권에 집중했다. 한국의 수출입은행도 대외경제협력기금(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EDCF)이라는 유상의 정책기금을 활용하여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만약 일본국제협력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 공동으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을 지원한다면 자금 규모 면에서나 기술 부문에서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의 한일 간 국제 경제협력이 축적되면 한미일이 대외경제협력 및 지원 협의회를 구성하여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한미일 무역기술협의회와 보완관계를 맺거나 한미일 무역기술협의회를 확대하여 한미일 무역 · 기술 · 투자 및 대외협력 협의회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저출산 · 고령화 사회를 위한 경제협력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를 가장 먼저 경험한 선진국으로서 이에 대한 대응 경험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게도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다. 한국도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인해 유럽 선진국이나 미국에 비해 고령 인구의 비중이 훨씬 빨리 증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고령 사회의 경제 · 사회적 문제를 완화할 뿐 아니라 새로운 산업과 사업의 기회를 포착하는 기업 활동과 기술개발 모델을 만들어 한일보다 늦게 고령화를 겪는 국가에 수출할 수 있다. 나아가 고령화 사회에 적응하는 정책을 제시해 국제사회에 제공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정책의 예로는 사회 구성원의 건강 상태가 개선되는 추세에 맞추어 은퇴 연령을 늦춤으로써 노동력을 확대하는 것이 있다. 또 고령화를 감안하며 의료 서비스, 연금 제도 등을 바꾸는 등 고령화 적응을 위한 정책 메뉴를 한일이 공동으로 만들 수 있다.

 

고령화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일본에 진출한 독일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령화에 따라 수요가 증가할 제품군으로 의료 기기, 헬스케어 제품, 식음료품, 서비스, 가정용품, 패션 및 의류, 로봇과 기계류, 자동차 등이 꼽혔다(Deutsche Industrie- und Handelskammer in Japan 2010). 노인을 위한 신제품뿐 아니라 기존 제품을 노인 친화적으로 개량하는 것도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 조작이 쉽고 음성 인식을 강화한 휴대폰, 컴퓨터, TV 등이 그 예이다.

 

한국과 일본은 고령사회를 위한 경제협력의 첫 단계로 고령사회를 위한 기술 및 기업 포럼을 발족할 수 있다. 기업인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이 포럼에서 고령사회를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는 사업 기회 및 기술 개발을 논의하는 것이다. 이 포럼이 진전되면 한일 정부가 참여하는 1.5 트랙의 회의체가 시작될 수 있으며 고령화 관련 정부 정책도 논의, 개발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의 이니셔티브로 개별 국가와 국제사회가 고령 사회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국제기구의 설립도 제안할 수 있다.

 

3. 북한경제개발 한미일 협력체

 

북한이 비핵화를 하고 국제 경제질서에 편입된다면 동아시아의 평화가 증진될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경제도 큰 호기를 맞이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물류망이 효율적으로 재편되고 북한과의 무역뿐 아니라 북한으로 유입되는 국외 투자가 증가할 것이다. 또 북핵이라는 안보 위협 요인이 사라짐에 따라 부수적인 편익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기존의 국방비 지출을 보다 생산적인 용도에 사용할 수 있다.

 

북한의 국제 경제질서 편입을 위한 한미일 협력체를 구성한다면, 북한 비핵화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한미일이 북한 경제를 재건할 구체적인 방안과 재원을 북한에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비핵화와 경제 발전에 관한 한일 협력은 한국 국민이 일본을 보다 우호적으로 인식하고 한일 협력의 잠재적 가치를 보다 명확히 알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 협력체는 투트랙에서 시작하여 적절한 기회에 1.5 트랙으로 옮겨갈 수도 있으며 미중관계의 변화에 따라 중국도 참여하는 국제적 협력체로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경제개발 한미일 협력체에서는 북한 경제개발의 전략과 로드맵 및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를 비핵화 단계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액션 플랜을 마련할 수 있다. 구체적이고 적절한 대북 지원과 북한 경제 발전 방안은 비핵화를 통해 북한이 누릴 수 있는 편익을 사전에 보여줌으로써 비핵화에 기여할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할 때 제재 완화 혹은 해제, 평화 체제, 북한 경제개발을 패키지로 묶어 북한에 제공해야 하며 이 때 경제개발 플랜은 비핵화 단계에 대응하여 북한에 제공할 패키지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된다.

 

Ⅴ. 결론

 

이 글은 한일관계가 악화된 이유를 경제적 연결의 약화에서 찾고 있다. 보다 자세히는, 경제적 연결이 약화되자 한국 국민이 일본과 협력할 필요성을 낮게 평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방 위험이 낮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응하지 않더라도 손해 볼 것이 크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처럼 낮은 상승 잠재력과 하방 위험은 정치인이 역사와 영토 문제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 글은 한일 간 경제적 연결망을 강화할 방안을 제시한다. 중장기적으로는 한일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공동 참여나 한국의 CPTPP 참여, 그리고 한미일 무역기술협의회 구성이 그 방안이 될 수 있다. 한일관계를 보다 시급히 개선하기 위해서 이 글은 아시아의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위한 한일 ODA의 공동 활용,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위한 한일의 경제협력, 그리고 북한경제개발 한미일 협력체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방안은 일종의 예로서 한일 간의 경제협력 방안은 그 외에도 많이 존재할 것이다. 기업과 시민사회, 그리고 정부가 많은 방안, 창의적 방법을 모색해 실행한다면 한일관계의 상승 잠재력은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범수 · 김병로 · 김병연 · 김학재 · 이성우 · 최은영 · 황수환 · 최현정. 2022. 『2021 통일의식조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정형곤 · 이홍배 · 이형군 · 박민숙. 2021. 『한중일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GVC 연계성 연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20-34.

 

Deutsche Industrie- und Handelskammer in Japan. 2010. Silver Business in Japan: Implications of Demographic Change for Human Resource Management and Marketing. https://demographic-challenge.com/files/downloads/6211018f987444a57eedb418895740ba/silver_japan_english20091203.pdf (검색일: 2022. 5. 5.).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2021. “White Paper on Development Cooperation 2019: Japan’s International Cooperation.” March 17. https://www.mofa.go.jp/policy/oda/page24_000074.html (검색일: 2022. 5. 5.).

 


 

[1]  연령대별로 보면 19-29세에서 일본을 가장 가깝게 느낀다는 응답자의 비중은 8.4%로 다른 연령대 평균의 2배에 달했다.

 

[2]  이 설문조사는 2021년에 실시한 것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인식 변화는 반영하지 않고 있다.

 


 

저자: 김병연_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옥스퍼드 대학교 경제학 박사. 영국 에섹스대학, 서강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대한민국 학술원상(2018), 서울대 학술연구상(2018), 니어재단 연구상(2019), 한국경제학회 청람상(2005), 영국 경제사학회 T.S. Ashton Prize를 수상한 바 있다. 대표 저서로는 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2277-1683 (ext. 204) hspark@eai.or.kr
 

6대 프로젝트

한일관계 재건축

세부사업

한일협력의 미래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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