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은 2002년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 (2007년), 《2013 대통령의 성공조건》 (2012년) 프로젝트를 통해 5년마다 민주화 이후 바람직한 대통령의 역할, 권한, 책임에 관한 제도화 방안을 강구해왔다. 2017년 대선의 해를 맞아, EAI는 2016년 4월 20일 박재완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원장(前 기획재정부 장관)을 초청해 《2018 대통령의 성공조건》 제5차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국정운영의 일관성과 연속성 확보

 

1987년 체제의 핵심은 5년 단임 대통령제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6명의 대통령을 경험했고, 그 중에서 수평적 정권교체가 두 차례 있었다. 문제는 정책의 일관성, 연속성 면에서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상당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보좌진의 시계(視界)를 5년으로 제한시킨다. 즉 국익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정책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고,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에 대통령과 보좌진의 관심이 편중된다. 청와대 내에 중장기 전략을 전담하는 국정기획수석과 미래기획위원회의 부활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5년 단임대통령제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개헌논의가 필요하다. 영국, 캐나다, 독일 등 의원내각제 국가의 경우 국민의 신임을 얻는 정권은 10년 가까이 이어진다. 대통령제라면 단임제보다는 중임제가 국정운영의 일관성과 연속성 확보에는 유리하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는 관료사회에서 두드러진다. 대통령이 장기적 비전을 바탕으로 전략을 만들어 관료사회를 독려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해법을 모색하기보다 대과 없이 여론의 지탄을 받지 않을 정도로 몸을 사릴 가능성이 높다. 단임 대통령의 잔여 임기가 줄어들수록 관료들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은 약해진다. ‘눈치 보기’가 늘어나고 때론 ‘줄 서(대)기’도 서슴지 않는다.
같은 정부 내에서도 정책의 연속성은 문제가 된다.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헌법적 한계와는 별도로 총리, 장관, 공공기관장 등 정무직 공무원의 임기가 짧기 때문이다. 5년 단임제가 유지된다면 원칙적으로 이들의 임기는 대통령과 함께 가는 것이 옳다. 최소한 2년 반은 돼야 하고,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능력 있는 정무직 공무원에게는 임기와 관계 없이 일을 계속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관료들에게 전문성과 장기적 관점의 책임성을 요구하기 어렵다.
국정운영의 일관성 및 연속성과 관련해 전임 정권과 과도하게 차별화 하려는 정치문화도 큰 문제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권의 핵심 정책은 쉽게 부정된다. 박근혜 정부를 포함해 민주화 이후 모든 정권이 전임자와 차별화하려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헌법가치를 훼손할 만큼 치명적인 정책은 거의 없었다. 국제사회에서 충분히 존중 받고 있는 모범 정책조차도 전임 정권의 핵심정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되지 못하고 오히려 부인되었다. 문제를 조정하고 수정해 발전시켜 승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국회와 바람직한 협력관계 정립

 

성공하는 대통령의 핵심 조건 중의 하나는 국회와 바람직한 협력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국회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첫째, 대통령은 특정 정당이나 계파의 실질적인 수장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여당 국회의원을 대통령 특보로 임명하면서 그런 이미지를 구축할 수는 없다. 둘째, 청와대의 정무라인을 강화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정무라인의 역할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은데, 총선 이후 협치가 강조되는 정치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면 예전처럼 여야, 그리고 캐스팅보트를 쥔 제2 야당까지 별도로 관리하는 정무라인이 확충되어야 한다. 매우 어렵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지만, 마음 열고(虛心) 귀 기울이는(善聽) ‘높은 길’(high road)이 오히려 지름길이다. ‘식물국회’가 발목을 잡아 국정이 난맥이라고 남 탓하는 방식은 ‘낮은 길’이다. 셋째, 여당과는 다양한 경로의 ‘당정협의’를 가동해야 한다. 총리와 당 대표가 만나는 고위당정회의, 장관과 정책위의장이 만나는 실무당정회의 등 기존 당정협의체 외에도 청와대 정무라인과 원내대표단, 청와대 정책 라인과 정책위 의장단 간의 당정협의회가 신설될 필요가 있다. 가능하다면 야당과도 실무선의 ‘정책협의회’를 신설해 정부 정책을 충분히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국회의 선진화와 재정건전성 확보

 

대통령의 노력과는 별개로 국정의 핵심 동반 및 협력자로서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먼저 국회는 정쟁으로 대통령을 발목 잡는다거나 방만한 재정팽창을 시도한다는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스스로 불가역 확약기제(irreversible commitment device)를 확대해 변화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우선적으로 의정 시스템의 제도화 수준을 높여 국회 활동이 예측 가능하도록 운영해야 한다. 공청회나 청문회(월), 소위원회(화), 상임위(수), 법사위와 특위(목), 본회의(금) 등으로 요일 별 의사일정을 정례화하고, 본회의 의안도 상임위 통과 순서로 결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둘째, 방만한 재정팽창에 스스로 제동을 거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새로운 의무지출이 생기면 소요재원 마련 방안을 함께 고려해 재정건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페이고(PAYGO) 원칙을 따라야 한다. 국회 예산심의도 정부 예산 편성과 마찬가지로 총액배분-자율편성(top-down)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예결특위가 거시예산을 심의해 심의지침을 확정하면, 상임위는 이에 준해 부처별 미시예산을 심의해야 쪽지예산의 폐해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국회로 대표되는 정치권은 대선이나 총선과 같은 정치 일정이 국가 재정에 짐이 되지 않도록 쇄신책을 마련해야 한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과 정당은 세금 인상 약속보다는 선심성 지출의 유혹에 빠져 무책임한 공약을 제시하기 쉽다. 그 결과 재정건정성은 악화된다. 이러한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 공약등록제를 도입해야 한다. 최소한 대선이나 총선 3개월 전에 각 정당은 핵심공약과 공약 이행의 소요비용과 재원마련 대책을 담은 재정추계를 선관위에 등록하고, 선관위는 공약의 소요예산을 검증해 선거 1개월 전에 공표해 유권자의 이해를 도와야 한다. 공약등록제는 선거 후 무리한 공약을 이행하느라 경제에 부담을 지우는 폐습을 근절하고, 정치인과 정당의 책임성을 높여 정치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획기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정책은 국회의 입법 및 예산 협조를 필요로 한다. 이런 핵심 정책과 이에 필요한 예산은 대통령과 행정부가 발표 전에 여야와 사전에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실행되는 핵심 법률과 예산은 여•야•정이 함께 모여 서명하고 대통령이 공포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국회가 대통령을 ‘발목 잡는다’는 오해도 불식될 수 있고, 해당 정책은 힘을 받게 된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전환형 리더십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으로 대통령 개인의 덕목과 리더십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시대상황이 변했고 주변 환경은 더 엄중해졌다. 경제는 선진국 문턱의 ‘깔딱 고개’에서 정체되어 있다. 장기침체에 빠진 세계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치명적이다.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는 한국경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집단 간 갈등은 심화되고, 개발시대와 달리 해결의 여지도 줄었다. 누구도 손해보지 않으면서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이익이 되는 이른바 ‘파레토 개선’(pareto improvement)의 여지가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성숙하지 못한 대의정치는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처럼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과 별도로 혁신을 촉발할 수 있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카리스마형(charismatic) 리더십보다는 전환형(transformational)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 리더십의 필수조건은 통찰력과 설득력이다. 정치공학적 사고보다는 정책 마케팅 능력이 더 필요하다. 보좌시스템 역시 정치공학에 자질 있는 참모보다는 정책 마케팅 능력에 출중한 참모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또 하나의 리더십 스타일은 권위형 혹은 방임형 리더십보다는 민주형 리더십이다. 이 리더십의 필수조건은 소통과 공감 능력이다. 마음 열고(虛心) 귀 기울이며(善聽) 스스로 돌아볼 줄 아는(自省) 리더만이 중층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에 바탕을 둔 민주형 리더십은 권한을 위임하고 책임은 리더 스스로에게 돌린다. 전환형, 민주형 대통령의 리더십은 앞서 거론한 한국정치의 제도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

 

 


 

 

박재완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원장(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대통령비서실 서기관, 17대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국정기획수석비서관, 고용노동부 장관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다.

 

사회자
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 교수

 

토론

강원택 서울대 교수
김석호 서울대 교수
김재일 단국대 교수
김태영 경희대 교수
나태준 연세대 교수
박원호 서울대 교수
박형준 EAI 거버넌스센터 소장, 성균관대 교수
이내영 EAI 여론분석센터 소장, 고려대 교수
한규섭 서울대 교수
한승준 서울여대 교수
한정훈 서울대 교수
배진석 EAI 수석연구원
김보미 EAI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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