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은 2002년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 (2007년), 《2013 대통령의 성공조건》 (2012년) 프로젝트를 통해 5년마다 민주화 이후 바람직한 대통령의 역할, 권한, 책임에 관한 제도화 방안을 강구해왔다. 2017년 대선의 해를 맞아, EAI는 2016년 3월 31일 박형준 동아대학교 교수(前 국회사무처 사무총장) 을 초청해 《2018 대통령의 성공조건》 제3차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시대적 추세와 민심을 읽는 대통령

 

단임제 대통령에게 5년은 매우 짧은 시간이다. 기존 시스템을 관리하는 시기라면 덜하겠지만, 국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구조적 전환기에 준비가 부족한 대통령이 집권했다면 그 5년이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만큼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과 대통령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문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선 시대적 추세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글로벌 경제시스템과 국제정치관계의 동향을 파악해 중장기적 접근을 통해 상황을 해석해야 한다. 국내 경제적 사회적 정세는 물론 정치적 세력관계 및 정치지형을 간파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요구와 민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어젠다
종합적이고 동태적인 분석에 기반해야

 

 

 

이런 요소들에 대한 종합적이고 동태적인 분석에 기반해 국정 중심 이념과 우선과제를 선정해야 한다. 어떠한 가치와 비전을 가지고 집권 5년을 운영할 것인지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이른바 대통령의 어젠다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어젠다 세팅이 집권 5년 성공의 50퍼센트 이상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대통령 어젠다가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글로벌 변화를 간파하고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한중수교 등의 북방정책을 펼쳤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와 군정종식 등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의도와 결과가 어긋나 단기자본 중심의 금융자율화가 외환위기의 원인이 된 측면도 있지만, 사실 김영삼 정부야말로 집권 5년 동안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에서 가장 준비가 많이 된 대통령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김영삼 대통령이 후보로 확정되는 순간부터 당선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준비할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었고, 대통령의 스타일 자체가 지식인들을 광범위하게 인재 풀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집권 전부터 상당한 연구가 이뤄졌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직후 마주한 상황이 위기 그 자체였기 때문에 외환위기 극복과 복지체계 확립이라는 과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제도 도입이나 의약분업 등의 과제에서 일정한 자기철학과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 어젠다는 매우 논쟁적인 사안들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탈권위주의를 기치로 세웠지만, 실제로는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등 이른바 ‘4대 개혁 입법’과 행정수도 이전 등 쉽게 합의를 끌어 내기 어려운 주제들이 국정의 중심에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과제였다고 보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과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글로벌 국가위상 정립 과제들을 중심에 놓았다. 그 성과가 현 정부에서 축적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은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가 거의 유일한 어젠다인데, 시행성 측면에서 여러 논쟁적인 요소들이 있다.
이런 중심적 과제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준비되고 실행되었는가? 지금까지의 대통령 어젠다 시행 사례를 관찰해보면 실행 전략 및 노하우, 즉 프로세스 매니지먼트의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정권 인수팀을 실질적으로 가동시킨 대통령이 있었는가? 구체적인 집권 초기 계획을 세운 대통령은? 정권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은 세워졌는가? 우선 과제의 목표가 뚜렷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잡혔는가? 그리고 그 과제에 대한 집중력을 제대로 발휘했는가? 국민들의 에너지를 모으고 국정에 대한 민심의 긍정적 흐름을 이끌어냈는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는 대통령은 거의 없다. 그나마 김영삼 대통령이 정권인수팀을 실질적으로 가동시킨 유일한 사례다.
정권 5년의 우선 과제를 1, 2년 차에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모두들 얘기하지만, 정권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도 대부분 즉흥적이고 순발력에 의존한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물론 선거 캠프 역시 선거 캠페인에 주력한 나머지 정권을 맡았을 때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거의 계획이 없었다. 선거 공약과 대통령 어젠다 준비는 다른 차원이다. 2007년 대선 경험을 소개하자면, 당시 이명박 후보가 각별한 관심을 보여 대통령 어젠다를 준비할 기획팀이 가동되었지만 선거 메커니즘에 매몰되어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인수위와 정권으로 체계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라는 주어진 환경 변화 때문에 어젠다를 쭉 밀고 나갈 수 있었을 뿐이다.

 

대통령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

 

대통령의 덕목과 관련해서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최종 의사결정자가 가져야 할 통찰력이다. 외부에서 보면 대통령은 굉장히 중요한 결정만 할 것 같지만, 대통령은 사실 매우 사소한 결정도 하게 된다. 사소한 것까지 대통령이 일일이 관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다. “누구에게 꽃을 보내라.”라는 것은 매우 사소한 결정이지만, 이런 결정이 정권에 피해를 줄 때는 엄청난 파급력이 생긴다. 이런 작은 결정부터 큰 결정까지 대통령의 통찰력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중요한 것과 시급한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고, 그 통찰력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국정운영의 동태적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국정의 본질은 복잡성과 다면성이다. 모든 문제들이 풍선 효과로 연결되어 있고 얽혀 있다. 다면적인 성격 때문에 사안에 따라 국민들의 생각도 갈린다. 기계적인 절충이 아니라 동태적인 균형감각으로 사안마다 중용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능력은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것이다. 여러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리더십을 키우지 않은 경우라면 동태적인 균형감각을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민주화, 정보화 시대에는 민의에 대한 감수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 본질은 소통 및 공감능력이다. 현 정부는 물론 지난 정부에게도 정부의 국정과제가 제대로 홍보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4대강 사업의 취지는 좋지만 홍보를 못했다.”라는 비판은 사실 제대로 된 비판이 아니다. 그것은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였다. 일방향 홍보는 소통이 아니다.
넷째, 민주주의에 기반한 권력운용과 이에 대한 정치적 능력이 중요하다. 대선이 끝나면 이너서클(inner circle)의 일부 세력에게 인사가 집중되는 경향이 생긴다. 정권 초기에 대통령의 권력운용과 관련된 국민적 이미지에 한계가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이너서클의 함정을 벗어나야 분열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 조건 안에서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점이다.

 

보좌진의 능력이 곧 대통령의 능력

 

보좌진의 능력이 곧 대통령의 능력과 정권의 능력 상당 부분을 규정한다. 특히 초기 보좌진 구성이 매우 중요하다. 선거 캠프에 있던 정권인수 준비팀이 인수위원회로, 그리고 청와대 참모로 이어져야 전문성이 생긴다. 정책을 제공하는 능력과 국정을 운영하는 능력은 별개다. 정권에 참여해서 국정에 참여하려는 전문가들은 정권인수 준비팀부터 시작해 현실정치와 마주쳐서 집중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둘째, 대통령의 그림자로서 비서실장의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 이는 청와대를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실세형 비서실장이다. 비서실장에게는 대통령에게 필요한 덕목이 그대로 요구된다. 한국 정치시스템에서 비서실장은 사실상 부통령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권력완장형 인사’, ‘얼굴 마담형 인사’, ‘정책 무능자’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
셋째, 청와대 및 국정경험 인사의 적절한 배치가 필요하다. 수직적이든 수평적이든 정권교체 이후 청와대는 아마추어들로 가득하다. 초기 청와대 구성에는 국정경험자들을 곳곳에 배치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국정에서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 넷째, 가능하다면 전직 청와대 직원들 가운데에서도 일부는 남겨놓은 것이 바람직하다. 이전 정부가 무엇을 하려고 했고, 무엇이 되지 않았는지를 알아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효과적인 회의체계의 확립이다. 청와대의 세 축은 정무, 정책, 홍보인데, 이 세 라인의 유기적 소통과 건강한 긴장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 라인 간에는 논쟁이 필요하고, 이 논쟁은 대통령 앞에서 하는 것이 더 좋다. 논쟁의 결론만 보고 받는 것이 아니라 논쟁의 과정을 들어야 대통령에게 통찰력이 생길 수 있다.

 

집권 1년의 중요성

 

집권 5년 성공의 열쇠는 집권 1년 차의 개혁 어젠다와 실행에 있다. 김영삼 정부는 기획에 의해서, 김대중 정부는 주어진 조건에 의해서 각각 1년 차에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 프로그램의 준비부족과 조준 오류로, 이명박 정부는 초기 청와대의 경험 부족과 광우병 사태로 집권 1년 차를 허비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비전 부재와 어젠다 세팅 부족으로 관리 수준에 머물렀다. 차기 정부는 집권 1년 차에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개혁 과제의 선택지가 이전 정부보다는 훨씬 넓은 편이다. 구조적 전환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 개혁과제를 발굴해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청와대의 조정기능과 부처의 자율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부처가 하는 일이 대부분 정무와 홍보와 연결이 되어 있다. 그래서 정무와 홍보에서 청와대의 조정기능은 불가피하다. 국정기획수석과 홍보수석이 주관하는 차관회의에서 부처별 칸막이를 걷어내고 정무와 홍보 분야를 전체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다음 정책 측면에서는 부처의 자율성 확대가 필요하다. 정책 그 자체의 조율 기능은 국무총리실에 있기 때문에, 국무조정실장을 잘 활용해 1차적 조정 기능을 확충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장관에게 산하기관에 대한 인사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부여할 것인지의 논의가 관건이다. 인사권을 대폭 줘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거 후 불가피하게 ‘낙하산 인사’가 생길 수는 있다. 공공기관의 인사 개방성 확보와 기득권 혁파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장관의 자율성 확대가 원칙이다. 그래야 장관이 일을 할 수 있다.

 

대통령과 의회 관계
숙의와 협치를 통한 적대적 구조 해소 필요

 

대통령과 의회 관계 모델을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인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무능한 대통령’을 제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와 정부의 대립 시스템에 대한 근원적 고민이 필요하고 이것에 대한 근원적 해결책은 개헌을 통한 정치 시스템의 전환이다.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더라도 숙의와 협치를 통해 정부와 국회의 대립, 양당 간 적대적 구조 해소가 필요하다. 적대적 정당 구조에서 효율적 수행이 불가능하고 이는 대통령을 무능화 시킨다. 여야가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동시에 중요한 의제들을 여야가 함께 끌어내서 국정 수행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통령과 정당의 대화를 일상화해야 한다.■

 

 


 

 

박형준 동아대학교 교수는 중앙일보 기자, 청와대 홍보수석, 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공동대변인, 대통령실 홍보기획관, 정무수석비서관, 사회특별보좌관을 거쳐 국회사무처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사회자
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 교수

 

토론

강원택 서울대 교수
김석호 서울대 교수
김재일 단국대 교수
김태영 경희대 교수
나태준 연세대 교수
박원호 서울대 교수
박형준 EAI 거버넌스센터 소장, 성균관대 교수
이내영 EAI 여론분석센터 소장, 고려대 교수
한규섭 서울대 교수
한승준 서울여대 교수
한정훈 서울대 교수
배진석 EAI 수석연구원
김보미 EAI 선임연구원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민주주의 협력

대통령의 성공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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